제116화
#116
크세이트 공작의 성.
공작령에서도 상당히 북쪽에 만들어진 공작의 성이다.
이는 북쪽에서 몰려드는 오크 무리를 확실하게 그리고 신속하게 토벌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오크틴 산맥은 마왕이 강림하기 전부터 오크 서식지로 유명했다.
지금보다 옛날엔 더욱 심각했다.
오크 말고는 다른 종족이 살아갈 수 없을 정도로 산맥 가득 오크가 살았고, 당시 부족의 숫자만 해도 100개가 넘어갈 정도였다.
그런 오크들이 가장 무서웠던 것은 다름 아닌 마왕이 강림했을 당시다.
오크틴 산맥에 있던 수만 마리의 오크가 서로를 향해 싸우던 무기의 방향을 인간으로 돌린 것이다.
인간의 군대가 순식간에 무너졌다.
성벽이라는 울타리는 마치 썩은 나무처럼 무너졌고, 인간이 만들고 세워 둔 왕국은 웅장한 위용과 아름다움은 따위는 없어진 폐허가 되어 버렸다.
단순히 오크라는 존재는 몬스터가 아니라 하나의 잘 훈련된 군대와 같다.
그런 오크를 상대하며 세드릭 제국의 수도를 지키기 위해 굳건하게 버틴 난공불락의 요새라 불리는 곳이 바로 이곳 크세이트 공작령이다.
이걸 내가 왜 알고 있냐고?
지금 눈앞의 크세이트 공작이 열심히 이곳에 대한 역사를 나에게 알려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마치 데자뷔 같은 느낌이라 어색하면서도 익숙하다.
그래서 나는 웃으며 그의 말을 경청하는 척하고 있다.
“그리하여 우리 가문은 공작이라는 작위를 얻게 되었네. 수많은 오크를 상대로 버틴 것은 물론이고, 수도 세크드릭으로 향하는 몬스터의 절반가량을 묶어 둔 것이 바로 우리 가문이네.”
“대단하십니다. 정말이지 엄청난 업적을 남기셨습니다.”
“그렇네. 그게 우리 가문이네.”
내가 맞장구쳐 줄 때마다 신나서 떠드는 크세이트 공작이다.
지금 이 자리에는 꽤 많은 인원이 있었다.
테이블에 앉아 있는 나와 루이즈를 제외한 소환수는 내 등 뒤에서 대기 중이다.
맞은편에 크세이트 공작과 그의 아들과 딸이 앉아 있었고, 그 뒤로 나를 이곳으로 안내해 준 데브라 경을 비롯해 다섯 명의 갑옷을 입은 NPC가 서 있었다.
그중에서 크세이트 공작의 아들이라는 자가 나를 안쓰러운 얼굴로 바라보았다. 공작의 딸도 나를 향해 양해를 구한다는 얼굴이다.
마치 자신의 아버지가 TMI가 심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오랜만에 찾아온 손님 때문에 신나서 저런다는 것을 이해해 달라는 표정이었다.
하물며 뒤에 서 있는 다섯 명의 기사 NPC도 같은 표정이니 참으로 우스웠다.
하지만 나는 내색하지 않고 조용히 크세이트 공작이 하는 말에 맞장구를 쳐주며 신나게 떠들게 만들었다.
이 모든 모습이 게임 속 세상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아 조금은 놀랐지만, 나에게는 조금 익숙하다.
친근하게 나에게 안기며 애교를 부리거나 토라진 모습을 보이는 루이즈라든가, 진짜 살아 있는 고양이가 할 법한 행동을 하며 내 무릎 위에서 식빵 굽는 자세로 자고 있는 범이라든가 말이다.
거기에 요즘 만나는 NPC를 떠올리다 보면 어느새 이게 일상이 되어 버린 걸 알 수 있다.
“그런 역사적인 가문에 처음으로 방문한 것을 환영하네, 플레이어 시저 남작.”
“영광입니다. 크세이트 공작님.”
이제야 환영 인사가 끝났다.
사실 내가 이 자리에 불려온 이유도 모르겠는데 거창한 환영 인사가 끝났으니 빠르게 본론으로 들어갔으면 좋겠다.
그런 내 마음을 알았는지 공작의 아들이 빠르게 치고 들어 왔다.
“시저 남작님을 부른 이유는 다름이 아닙니다. 셀레스틴 공주님께서 시저 남작님이 방문할 것이며, 그에 따른 협조를 친히 부탁하셨습니다.”
“그렇습니까?”
“그와 동시에 오크 부족과 큰 싸움이 일어날지도 모르기에 대비도 해 두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말에 크세이트 공작이 난감한 얼굴로 말했다.
“지난 몇 년간 오크는 동족끼리 싸우고 있었네. 마왕과의 전투 이후, 오크는 인간을 꺼리는 편이었지. 하나, 작년에 플레이어가 나타난 다음부터는 조금씩 인간과 마찰을 일으키고 있다는 걸세.”
NPC의 입장에선 플레이어의 등장으로 인해 오크와 마찰이 생긴 것이 영 탐탁지 않았다.
지난 백 년간 오크는 어지간하면 인간이 머무는 곳에 나타나지 않으려 하는 편이었다.
워낙 번식력이 뛰어나고 싸움을 좋아하는 오크라 동족끼리 치고받고 싸우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었던 것 같다.
하나, 플레이어가 나타난 후로부터 인간이 먼저 오크 부족을 건드렸다.
플레이어는 오크를 사냥함으로 경험치를 얻고 부산물로 강해져야 하기에 NPC 입장에선 그것을 막을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하물며 신 아이샤의 신탁에서도 플레이어가 강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막지 말라는 내용까지 있었으니 NPC 입장에선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인지 오크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걸세. 정말로 조만간 전쟁이라도 일어날 분위기는 물론이고, 오크 부족 내에서도 평범한 전투가 아니라 부족이 하나로 합쳐지는 현상이 일어났을 정도니 말이네.”
작년에 확인했을 때 오크 부족은 총 서른 개 부족이었다.
하나, 얼마 전 확인했을 때 열한 개 부족으로 줄었고, 그 세력이 엄청나게 거대해졌다는 것이다.
이대로 두면 하나의 부족으로 합쳐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 정도였는데, 마침 플레이어가 오크의 숫자를 차곡차곡 줄여주고 있기에 이렇다 할 큰 전투가 벌어지진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걱정이네.”
지금 나와 공주가 무엇을 하는지는 당사자를 제외하곤 그 누구도 자세히 알지 못한다. 그런 와중에 협조를 부탁하니 크세이트 공작의 입장에선 따를 수밖에 없으면서도 난감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네를 불렀네.”
크세이트 공작의 말에 나는 수긍했다.
이제야 내가 이 자리에 왜 있는지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이해한다. 아무리 황실의 명령이라고 하지만 무작정 따르기엔 의문점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하물며 공주와 내가 하는 일은 정말로 극비에 부쳐진 상태로 그 누구도 모르니 의문은 더 할 것이다.
지금 크세이트 공작은 명령을 따르는 것이 불안하고 걱정되는 것이 아니라 혹시나 무슨 일이라도 일어날까 봐 걱정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안심할 수 있게 내가 대충이나마 말해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저와 공주님께서 하는 일은 훗날 마왕과의 혹시 모를 싸움을 대비하는 자그마한 일입니다. 은밀하게 행동하는 것은 마신교의 시선을 피하기 위함이니 평소와 같이 지내시면 됩니다.”
많은 것을 함축시킨 말.
자세한 내용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미래를 대비하고 있다는 나의 말에 공작을 비롯해 그곳에 있는 모든 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자네를 믿겠네. 그리고 공주님을 믿지.”
크세이트 공작이 그렇게 말하며 그 자리에 있는 기사들에게 명했다.
“경들은 듣게.”
“충!”
“당분간 경계 병력을 두 배. 언제든 움직일 수 있도록 모든 병력에 대기하라 하게.”
“충!”
순식간에 다섯 명의 기사들이 응접실을 빠져나갔다.
“자네도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찾아오게.”
그 말을 끝으로 크세이트 공작과 두 자녀가 응접실을 나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속으로 웃었다.
‘크크크. 이제 공작령에서 마구 날뛰어도 되겠구먼.’
이제 공작의 지원을 받게 되었으니 든든한 백이 생긴 거나 다름이 없다.
그러니 이번 사냥터에서 활개를 띄고 마구 날뛰어줄 생각이다.
“그럼 우리도 가 볼까?”
나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랜만에 그 오크 사냥터로 가 볼까나.
* * *
북쪽 성문을 통과하자 거대한 협곡이 보였다.
수천수만의 오크의 무덤이라 불리기도 하는 오크틴 협곡이다.
양쪽으로 높은 절벽과 겨우 마차 두 대가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길. 협곡의 절벽과 땅은 녹색으로 물들어 있다.
수천수만의 오크가 이곳에 잠들어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듯 풀 한 포기 자라지 못하는, 생기라곤 없는 그런 땅이다.
길을 걷다 보면 뼛조각이 심심치 않게 보일 정도였으니 협곡에 묻혀 있는 오크의 숫자가 얼마나 될지는 짐작도 할 수 없는 수준이다.
그런 협곡을 지나가고 나면 웅장하기 그지없는 오크틴 산맥이 등장한다.
수십 개의 산봉우리가 저마다 자태를 뿜어내듯 구름을 뚫고 서 있다. 사방에 보이는 수십 그루의 나무는 누가 더 높게 자라는지 내기라도 하는 듯 들쑥날쑥하게 자라 있다.
간간이 들려오는 산새 소리는 마음은 차분하게 만들어 준다.
바람은 하늘 높이 떠 있는 뜨거운 햇살에 흘린 땀을 식혀주기라도 하는 듯 선선하게 불어왔다.
그냥 평범하게 바라보면 아무런 개발도 안 된 시골이라든가, 사람이 오지 않는 오지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다.
하지만 그것도 오크틴 산맥 초입에만 그렇지 조금만 안으로 들어가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취익! 취익!”
산맥 안으로 조금만 들어가도 들려오는 오크의 거친 콧바람 소리. 그와 동시에 오크 특유의 누린내가 코를 자극한다.
방금까지 땀을 식혀주려는 듯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오는 오크 누린내와 피 냄새가 가득하다.
정신이 아찔할 정도의 악취와 비린내는 사냥터에 들어섬과 동시에 의욕을 떨어뜨릴 정도.
오크를 사냥하기 위해서는 첫 번째로 이 냄새에 적응해야 한다.
사실 그건 어려운 일이다.
“진짜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매번 맡아도 도무지 적응이 안 되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한다.
어느 정도 오래되면 그 상황이나 냄새에 적응해 면역력이 생기게 마련이다. 하나, 오크 특유의 누린내는 절대 그렇지 않다.
맡으면 맡을수록 X같고 적응 따위는 되지 않는다.
그냥 순수하게 참아야 한다는 소리다.
그래서인지 오크 사냥터는 원거리 딜러와 근거리 딜러보단 탱커에게 정산 비율이 높다.
안 그래도 누린내에 악취가 심한 오크를 탱커는 정면에서 하루 종일 붙들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딜러들 또한 탱커들의 고충을 잘 알고 있기에 이곳 사냥터만큼은 탱커가 어깨에 뽕을 넣고 있어도 되는 곳이다.
회귀 전에는 그 역할을 내가 했다.
그땐 탱커이자 공략파의 일원이었기에 이곳 사냥터에서 사냥하는 나로서는 그 오크의 누린내와 악취를 코앞에서 견뎌야 했었다.
십 년이라는 시간과 함께 이번에 또다시 찾아온 오크 사냥터지만 여전히 적응 안 된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한다면 이번에는 내가 정면에서 오크를 맞서 탱킹할 필요가 없다는 소리다.
“에구, 우리 불쌍한 팅고…… 나중에 형이 뭐라도 챙겨줄게.”
“끼에륵?”
당분간 누린내와 악취 때문에 고생할 팅고라 위로해 줬더니 의아한 얼굴로 바라본다.
“어라?”
이상한 마음에 주변을 둘러보니 나를 제외하곤 모두가 평온한 얼굴이었다. 마치 지금 풍겨오는 오크의 누린내와 악취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듯 말이다.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것은 나뿐이다.
루이즈도 평온한 얼굴이다.
“아…….”
이유를 알 것 같다.
이들은 AI. 그러니까 소환수고 살아 있는 존재지만 후각이라는 것이 없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결론이 나왔다.
그렇게 생각하니 겁나 부러웠다.
정말 너무 부러워서 내 후각을 마비시켰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말이다.
그것도 잠깐이었다.
오크에 대한 추억은 물론이고, 누린내와 악취에 대해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그 개꿀 사냥터 근처에 도착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제 사냥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