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5화
#115
“괜찮으려나…….”
내 걱정은 지금 그 방식을 사용해도 될까 하는 걱정이다.
회귀 전, 박진성의 등장으로 월오룰의 생태계가 파괴되었다.
그만큼 서머너 킹은 엄청난 존재였고, 기존의 사냥 방식을 비롯해 레벨링이라는 개념을 박살 내버린 것이 박진성이다.
하물며 모든 유저들이 그에 대한 원한은 물론이고 부조리함에 월오룰 공식 홈페이지를 테러하다시피 공격했고, 심지어 라온 소프트 본사 앞까지 가서 시위를 했을 정도가 아닌가.
그렇기에 나는 서머너 킹이 능력을 선보이는 게 상당히 위험하다는 걸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지금 고민하는 것이다. 이게 과연 맞는 선택인지를 말이다.
일단 공개하는 방향으로 잡아보자.
하나 확실한 건 메인 시나리오를 진행하는 데는 최고의 선택지긴 하다.
수많은 몬스터를 포획 스킬로 포획해서 소환수로 등록. 그리고 오크를 그 자리에서 바로 써먹을 수 있다.
순수하게 이론상 10초에 한 마리를 포획이 가능하고, 1분이면 여섯 마리, 한 시간이면 360마리를 포획할 수 있다는 소리다.
내가 하루 평균 4시간을 사냥하고 휴식을 취한다면 한번 사냥에 나서면 1,440마리씩 두 번 포획할 수 있다.
“물론 순수한 이론상으로 가능한 이야기고 실제론 그 절반도 안 되는 숫자겠지.”
포획만 해서 될 일이 아니다.
일부 몬스터는 사냥을 해서 경험치를 얻을 것이다. 그리고 그 몬스터의 시체를 이용해 스켈레톤을 만들거나, 도축해서 부산물을 얻기도 해야 한다.
물론 몬스터를 포획해도 원래 먹는 경험치의 절반을 먹기는 하지만, 그래도 사냥을 해서 얻는 부수입을 생각하면 전부 다 포획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거다.
대충 내가 레벨 업을 하면서 오크를 포획한다.
그럼 수천 마리의 오크를 내 소환수로 쓸 수 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오크는 주인이 내리는 명령을 어느 정도 이해하는 종족이라는 것이다. 포획해서 바로 전력으로 써먹을 수 있다는 소리.
그렇기에 오크는 소환사들이 선호하는 몬스터 중 하나다. 쉽게 포획할 수 있고, 바로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까지가 장점이다.
장점은 참으로 많다.
하지만 단점은 하나다.
“100% 신고 먹을 거다.”
이게 단점이다.
압도적인 물량으로 오크를 데리고 사냥하는 내 모습.
이건 같은 소환사 직업이 아니라 다른 직업이라도 당연히 욕할 것이 뻔하다.
그리고 한동안 공식 홈페이지부터 시작해서 라온 소프트 본사까지 난리가 날 거다.
“최악의 경우…… 나를 시기 질투하는 플레이어의 PK 확률이 높다는 거지.”
공공의 적이 될 수 있다는 소리다.
회귀 전에 박진성이 당했던 것처럼 말이다.
물론 그때 당시 그놈이 잘못했기에 나 또한 놈을 사냥하기 위해 투입되었을 정도면 말 다 한 것이다.
자, 그럼 이번엔 서머너 킹의 힘을 숨긴 상태에서 지금처럼 회귀 전의 지식을 이용해 열한 마리의 오크 족장을 사냥한다고 생각해 보자.
“X발. 때려치울까?”
진짜 못 해 먹을 짓이다.
상상만으로도 벌써 역겹다 못해 짜증이 나고 게임하기 싫어진다.
안 그래도 지겨운 오크인데 그걸 지겹게 사냥한다? 그것도 충분히 좋은 방법이 있는데, 그걸 포기하고 한다?
절대 못 해 먹는다.
아니, 안 하고 만다.
“결국 공개한다고 생각해야겠네.”
어쩔 수 없다. 그리고 언젠간 이런 날이 찾아올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언제까지 서머너 킹의 힘을 숨기고 살아갈 순 없다. 다만 그게 좀 더 천천히 공개되길 바랐을 뿐이다.
그게 아니면 아주 오랫동안 조용히 홀로 알고 싶기도 했다.
“후아…….”
나는 고민을 마치곤 과부하에 걸린 머리통의 안정을 찾기 위해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꾸욱꾸욱 누르며 냉장고로 향했다.
냉수 한 잔 시원하게 걸치고 나니 조금 살 것 같다.
“일단 어떻게 할지 정해졌고…… 다음은 역시 그건가?”
지금 내가 쇼핑한다면 바꾸고 싶은 물건이 두 개가 있다.
하나는 앞으로 오 년은 더 버텨줄 캡슐을 교체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다 죽어가는 컴퓨터의 교체다.
이건 나도 나지만 효진이를 생각하면 당연히 뭘 사야 할지는 정해져 있다.
그럼 나가 볼까, 라는 생각으로 옷을 입으려다가 멈췄다.
아직 이른 아침이라 아직 문 열린 가게가 없다. 적어도 두 시간은 더 있어야지 은행 업무도 가능하다.
시간이 빈다는 소리다.
“쩝, 한숨 자자.”
역시 휴일엔 잠이 최고다.
* * *
“이거 받아.”
“이게 뭐야?”
내가 내미는 종이 가방을 받은 효진이가 의아하다는 듯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묵직한 무게 때문인지 더욱 의아하다는 듯 변한 얼굴이 순식간에 놀람으로 변하는 게 걸린 시간은 단 1초면 충분했다.
“오빠?”
노트북을 발견하고 너무 놀라 날 부르는 것 말고는 떠오르지 않는지 입만 뻥긋거린다.
금붕어도 아니고. 진짜 내 동생이지만 너무 귀엽네.
“이제부터 편하게 인강 보라고. 그리고 인강 끊고 싶은 거 있으면 알려주면 다 결제해 줄게.”
“…….”
여전히 입만 뻥긋거리는 내 동생.
그런 동생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툭 하고 때렸다.
“아야.”
아픈 척하기는. 전혀 아프지 않다는 걸 때린 내가 잘 알고 있다. 그냥 저건 자동 반사 같은 거다.
“뭐 그리 감동 받아. 지금까지 없어서 고생했으니 오히려 기뻐해야지.”
“하지만…… 비쌀 텐데…….”
아무래도 내 동생에게 내 통장 내역 한번 보여줘야겠다. 이제 오빠도 나름 돈을 잘 벌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이거 봐봐.”
내가 휴대폰으로 통장 내역을 보여주자 그 자리에서 입을 딱 벌리고 두 눈을 똥그랗게 뜨더니 경악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짜야?”
“그럼, 뭐 이런 걸로 거짓말하겠냐?”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통장에 찍힌 내역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지금 내 영상의 수익과 광고 수익으로 들어온 돈이 벌써 천만 원을 넘어갔기 때문이다.
이게 겨우 한 달 만에 번 거라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일이긴 하다.
회귀 전을 생각하면 눈가가 촉촉해진다.
나 그때 정말 어떻게 산 거야. 진짜 나란 놈. 대단했네.
그리고 내 동생도 고생이 많았다.
그러니까 지금은 그런 힘들었던 삶이 아니라 편하게 그리고 하고 싶은 거 다 할 수 있게 살고 싶다.
아니, 그렇게 할 거다.
“그러니까. 이제 그만 밥 먹자.”
“웅.”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노트북을 조심스럽게 내려두더니 야무지게 숟가락과 젓가락을 들었다.
눈물을 참으려는 것인지 손가락에 힘이 많이 들어갔다.
나는 모르는 척하며 숟가락을 들었다.
한 손에 상추를 들고 그 위로 밥 한 숟갈과 아까 사 온 고기로 만든 두루치기를 올렸다.
그러곤 한가득 입에 넣고는 맛있게 먹었다.
음. 역시 내가 만들었지만 잘 만들었네.
오늘도 내게 요리를 알려주신 만종원 형님의 레시피는 최고인 것 같다.
그리고 우리 남매는 도란도란 오늘 있었던 이야기를 하며 밥을 먹었다.
* * *
다음 날.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아침을 보내고 캡슐 앞에 섰다.
“후, 일단 레벨 업을 우선으로 나가자. 그리고 천천히 숫자를 늘려가자.”
일단 급한 건 레벨 업. 그러니 회귀 전에 알려진 명당을 찾아가 꿀 빨다가 천천히 움직이면 된다.
나는 캡슐에 누워 게임을 시작했다.
* * *
크세이트 공작령.
월오룰이 오픈한 지 일 년하고도 한 달이 넘은 시점에 이곳은 상당히 중요한 위치라 할 수 있는 사냥터라 할 수 있다.
최전선의 레벨이 500이 안 되는 것을 생각하면 중간 지점은 아니지만, 월오룰을 플레이하는 유저의 입장에선 이곳이 중간쯤 되는 위치다.
여기까지 도달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크세이트 공작령에 오기 위해서는 각종 몬스터와 싸워 이겨냈다는 것이고, 기본 실력은 있다는 게 증명되기 때문이다.
하물며 어지간한 길드에서도 크세이트 공작령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큰 지원보다는 앞으로 어떻게 나아갈지 방향을 제시해 주는 편이다.
그래야 실력을 확실하게 알아볼 수 있으며 앞으로 지원을 해 줄지 말지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걸 알기에 크세이트 공작령에 도착한 유저는 도착과 함께 환호성을 지르게 된다.
“드디어! 도착했다.”
“후, 이제 길드에서도 날 인정해 주겠지.”
“으엉엉엉. 드디어 나도 이곳에 왔어.”
“빌어먹을. 여기까지 오는 데 얼마나 쓴 건지. 캐릭터만 다섯 개째네.”
“이제 그 빌어먹을 오크를 사냥한다 이거지.”
“이제 돈이 벌리는 사냥터다. 월오룰에 현질 그만하고 싶다고.”
이곳에 도착한 유저 모두가 기뻐하는 그 순간을 바라보고 있는 무리가 있다. 그들은 이미 이곳에 도착한 지 오래이며 한창 이곳에서 사냥을 해 왔던 이들이다.
그들은 추억에 잠긴 듯한 눈빛이자 파릇파릇한 뉴비들을 바라보는 듯 중얼거렸다.
“저때도 잠깐이다.”
“맞아. 좀만 지나면 죽겠다고 욕하겠지.”
“욕만 하면 다행이지. 빡쳐서 묻지 마 PK를 걸고 다닐지 모른다고.”
“큭큭큭. 오크랑 싸워봐야 아, 내가 드디어 월오룰을 하는구나, 싶겠지.”
“어후, 내가 저 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얼른 캐릭터 정리하고 월오룰 정리한다.”
“맞아. 차라리 시청자의 입장으로 돌아가는 게 정답이라는 걸 알게 깨닫겠지.”
“귀엽다 귀여워.”
이미 크세이트 공작령에서 머물고 있는 유저의 입장에선 새롭게 찾아오는 뉴비들이 그저 귀엽기만 했다.
지금이야 저렇게 기뻐하고 있지만, 곧 있으면 저들도 알게 될 것이다. 이곳 사냥터. 즉 오크 사냥이 정말로 더럽게 X랄 맞는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거쳐 왔던 사냥터가 얼마나 행복했는지를 말이다.
이제 막 도착한 유저와 기존 유저 간의 보이지 않는 선이 그어진 상태의 크세이트 공작령에 소란이 일어났다.
“어! 그 소환사 양반 아냐?”
“뭐야? 벌써 여기 도착했다고?”
“며칠 전에 리자드맨 잡고 있었는데? 내가 방송 봤다고.”
“레벨이 얼마기에 벌써 온 거야.”
“이상하다. 소환사 육성이 다른 직업에 비해 엄청 늦다고 하던데.”
“진짜 소문이 맞나보네. 진짜 특별한 소환사라는 소문이 말이야.”
그들의 시선은 마차에서 내리고 있는 시저로 향해 있었다.
시저의 어깨에는 화력이 약한 작은 새 한 마리 부리로 깃털을 정리하고 있었다.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리는 불꽃은 금방이라도 꺼질 듯 불안했다.
그런 시저의 뒤로 내린 홉 고블린이 방패를 들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마치 황제라도 경호하는 듯한 살벌한 눈빛이었다.
그런 팅고의 옆으로 숭이와 가직스가 섰고, 그 옆으로 루이즈가 범이를 품에 안고 있는 상태로 마차에서 내렸다.
“오! 범이 님이다!”
“루이즈 님이랑 범이 님의 투샷이라니.”
“이건 힐링 된다.”
“보고 있는데도 계속 보고 싶네.”
시저보다 오히려 많은 관심을 받는 루이즈와 범이였다.
그런 일행의 마지막으로 활에 화살을 메긴 로빈후드까지 마차에서 내렸다.
분명 플레이어는 시저 하나지만 함께 하는 소환수 때문인지 하나의 파티, 혹은 잘 짜인 길드를 보는 듯했다.
등장만으로도 충분히 임팩트 있었다.
하나, 그런 그들보다 더욱 임팩트 있고 위엄 있는 자가 나타났다.
“충!”
성문 근처에 있던 병사들이 그 자리에서 자세를 잡고 경례를 붙였다.
그들이 바라보는 방향에서 한 남자가 걸어왔고, 그 남자를 보는 순간 플레이어들이 숙덕거렸다.
“NPC 데브라 경이다.”
“이곳 최강자 아냐?”
“저번에 한 유저가 깝치다가 손가락 하나에 제압당하지 않았나?”
“내 눈으로 직접 봤지. 엄청나게 강한 NPC야.”
이미 이곳에서 오랫동안 사냥해 왔던 유저들 사이에선 꽤나 유명한 NPC다.
그런 그가 시저가 있는 방향으로 향했다.
갑작스러운 상황.
주변에서 구경하는 유저는 이게 무슨 일인지 궁금하다는 얼굴로 변했고, 각자 손에 씹을 거리를 들고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들의 얼굴은 곧 경악으로 물들었다.
“크세이트 공작님께서 찾으십니다. 시저 남작님.”
“안내 부탁드리겠습니다. 데브라 경.”
“맡겨만 주십쇼.”
둘의 대화에 다른 유저들은 두 가지 충격을 받았다.
크세이트 공작이 시저를 찾았다는 것. 시저가 남작 작위의 귀족이라는 것.
이 소식은 순식간에 커뮤니티로 퍼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