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8화
#108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전투에 앞서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은 적과 주변 지형이다.
“적은 리자드맨. 이족보행. 밖에 있는 녀석들과 조금 다르다면 무장 상태인가?”
밖에 있는 리자드맨은 각종 무기는 물론이고 몸을 보호하는 가죽 갑옷부터 철제 갑옷까지 다양한 무장을 하고 있다.
정확하게는 플레이어를 사냥하고 얻은 무기와 방어구이거나 늪 속에서 꺼내 사용하는 물건들이다.
그러나, 이곳의 리자드맨은 한 손엔 쿠크리라 불리는 무기를, 다른 한 손엔 라운드 실드를 들고 있다.
방어구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라운드 실드 하나뿐이라는 소리다.
헐벗은 상체와 다르게 하체는 가죽 재질의 옷을 입고 있었다.
공격할 때 라운드 실드만 피해 때린다면 충분히 치명적인 일격이 가능하다는 소리.
키가 180cm는 되는 것이 비해 라운드 실드의 크기는 40cm인 것을 생각하면 공격할 부위가 넘쳐난다는 거다.
“뭐, 지금까지와 별다른 차이 없는 사냥이 되겠지.”
언제나 그렇듯 팅고가 전방에 서서 탱커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하면, 범이가 주변을 맴돌며 적을 물어뜯어 죽인다.
가직스는 도약을 이용해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며 적을 향해 날카로운 두 팔을 휘두르며 사냥할 것이고, 숭이는 근처에 있는 적을 향해 주먹을 날린다.
루이즈야 구경하겠지만, 나는 상황에 맞게 명령을 내리거나 밀린다 싶으면 검을 들고 합류하면 되는 일이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사냥.
하지만 오늘은 기대가 남다르다.
“로빈후드.”
“딱딱!”
이제 뒤에서 엄호 사격 및 확실한 딜을 뿜어낼 수 있는 소환수가 생겼다. 고작 한 명의 원거리 딜러가 생긴 것 하나만으로 가슴이 설레 왔다.
지금까지와 다른 사냥이 될 테니 말이다.
당장에라도 로빈후드의 활약을 보고 싶어 싸우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할 정도로 살짝 흥분해 있다.
‘그래도 할 건 해야지.’
나는 흥분한 마음을 달랬다.
적을 확인했으니 이번에는 주변 지형을 살펴봐야 한다.
지금 이곳은 분지 형태로 사방이 막혀 있다.
지면에는 커다란 나무 몇 그루가 심겨 있었고 그 나무 주변으로 만들어져 있는 물길은 한곳으로 천천히 흘러가고 있었다.
그 물줄기는 내가 서 있는 반대편으로 향했고, 멀리 있음에도 들려오는 소리는 그곳에 폭포가 존재하고 있음을 알게 해 주었다.
중간중간 박혀 있는 바위라든가, 토굴 같은 것이 몸을 숨기기 좋아 보였다.
적당히 싸울 만한 공간은 충분히 있다는 소리.
거기에 멀리서 로빈후드의 지원까지 있다면 어렵지 않은 전투가 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최후의 저지선은 이곳이고.”
지금 서 있는 입구를 끼고 싸운다면 적의 숫자가 얼마가 되든 충분히 버티며 사냥이 가능하다.
빠르게 머릿속으로 전투 구도를 짠 나는 입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리자드맨을 바라보았다.
[리자드맨 Lv.300]
[리자드맨 Lv.304]
[리자드맨 Lv.297]
-리자드맨의 개체 값을 분석합니다.
-개체 값은 14%입니다.
-개체 값은 8%입니다.
-개체 값은 43%입니다.
대충 300레벨을 전후로 가지고 있는데, 개체값은 쓰레기다.
그냥 얌전히 경험치로 만든 다음 스켈레톤으로 만들어 합성이나 시키면 될 것 같은 수준.
일단 눈앞의 세 마리의 리자드맨을 우선으로 노린다.
“가자.”
내 말에 가장 빠르게 대답한 것은 팅고였다.
“충!”
그대로 방패를 앞에 세워 앞으로 얼어갔다.
그 뒤를 숭이 녀석이 경쾌한 발걸음으로 따라갔다.
“우끼! 우끼끼!”
대충 해석하자면 드디어 싸워볼 만한 녀석이 생생겼다는 것이다.
거기에 눈앞의 리자드맨 중 하나가 무기가 아닌 숭이와 같이 건틀릿을 끼고 있었는데, 숭이는 그놈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둘이서 앞서 가고 조금만 더 가면 충분히 서로를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의 거리가 되었을 때 나는 외쳤다.
“팅고, 돌진.”
“추웅!”
내 명령에 팅고가 방패를 들어 어깨에 밀착했다. 그러고는 그대로 적 리자드맨이 있는 방향으로 폭주 기관차처럼 폭발적으로 달려갔다.
“끼륵!”
달려드는 팅고를 발견한 한 리자드맨의 외침.
화들짝 놀라 그 자리를 벗어나기 위해 서둘러 움직이려 했지만, 시간이 부족했다.
콰앙!
마치 공성추가 성문을 두드리는 것처럼 커다란 폭음.
그 속에서 멀쩡하게 서 있는 팅고와 다르게 허공에 떠 오른 한 마리의 리자드맨은 전신에서 피를 뿜으며 그대로 땅에 떨어졌고, 그 충격으로 인해 더 이상 움직이지 못했다.
-소환수 ‘팅고’가 리자드맨을 사냥했습니다.
-경험치 3,000을 획득합니다.
-식탐의 목걸이의 효과로 추가 경험치 9,000을 획득합니다.
-최초 발견 보너스로 추가 경험치 3,000을 획득합니다.
깔끔하게 일격에 죽인 팅고였다.
팅고는 만족하는 듯 검과 방패를 부딪치며 포효했다.
“끼에륵!”
그 포효에 가장 먼저 반응한 한 마리의 리자드맨.
팅고를 향해 건틀릿을 끼고 있는 주먹을 휘둘렀다.
부웅!
허공을 가르고 뻗어가는 주먹이 팅고에 닿기 직전, 그 리자드맨은 뻗던 주먹을 급하게 회수할 수밖에 없었다.
“우끼!”
팅고가 달려갈 때 함께 달려갔던 숭이가 건틀릿을 끼고 있는 리자드맨을 향해 주먹을 뻗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숭이의 울음소리는 날 상대해야지 누굴 상대하느냐는 듯한 분노에 가득 찬 소리였다.
그것을 증명하듯 숭이의 주먹은 특별했다.
-소환수 ‘숭이’가 스킬 ‘정권 지르기’를 습득했습니다.
-스킬 ‘정권 지르기’가 발동됩니다.
스스로 스킬을 익히고 그걸 사용해 버리는 숭이였다.
[정권 지르기 Lv.1]
등급 : 레어
액티브 스킬.
-안정적인 자세로 상대를 향해 강한 일격을 날린다.
추가 대미지 150%
재사용 대기 시간 : 10분
소모MP : 100
생각보다 좋은 스킬. 그것도 무투가나 다름없는 숭이에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스킬이었다.
스킬의 보정을 받은 숭이의 일격은 다급하게 주먹을 거두고 숭이의 주먹을 맞상대하려던 리자드맨의 반응 속도보다 빨랐다.
숭이의 주먹이 리자드맨의 가슴 한복판을 강타했다.
퍼어어억!
묵직한 일격.
가슴을 강하게 때린 것이 아니라 리자드맨의 가슴을 뚫고 등 뒤로 튀어나왔다.
뻥 뚫린 가슴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가 숭이의 전신을 덮었다.
낼름.
숭이는 혀를 내밀어 입가에 묻은 그 피를 마셨다. 그러고는 가슴을 뚫고 있는 주먹을 거두고는 툭하고 리자드맨을 밀었다.
쿵.
-소환수 ‘숭이’가 치명적인 일격을 날렸습니다.
-소환수 ‘숭이’가 리자드맨을 사냥했습니다.
-경험치 3,000을 획득합니다.
-식탐의 목걸이의 효과로 추가 경험치 9,000을 획득합니다.
-최초 발견 보너스로 추가 경험치 3,000을 획득합니다.
이제 남은 것은 한 마리의 리자드맨.
남은 사냥감을 향해 팅고와 숭이가 달려들려는 순간이었다.
피슝!
내 등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
그 소리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았기에 뒤를 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남은 한 마리의 리자드맨을 바라보았다.
-소환수 ‘로빈후드’의 화살이 ‘리자드맨’의 심장을 꿰뚫었습니다.
-소환수 ‘로빈후드’가 ‘리자드맨’을 사냥했습니다.
-경험치 3,000을 획득합니다.
-‘식탐의 목걸이’의 효과로 추가 경험치 9,000을 획득합니다.
-최초 발견 보너스로 추가 경험치 3,000을 획득합니다.
단 한 발의 화살.
그 단 한 발의 화살은 놀랍게도 약점 포착에 표시되어 있는 가장 진한 붉은 색인 심장을 꿰뚫었다.
“와우…….”
놀라운 실력.
그냥 가만히 있던 리자드맨도 아니고, 팅고와 숭이의 공격을 막기 위해 움직이던 리자드맨의 심장을 정확하게 꿰뚫어 버린 것이다.
어지간한 실력자도 힘든 높은 명중률이다.
“내 소환수가 되어주어서 고마워.”
나는 지금 내 심장이 말하는 대로 외쳤다.
단 1의 거짓이 없는 순수한 감탄과 고마움, 그리고 존경심을 담아 외쳤다.
“딱딱!”
로빈후드는 활을 들고 있지 않은 손을 들어 자신의 가슴을 쿵쿵 쳤다. 그와 동시에 입에서 들려온 딱딱거림은 믿고 맡겨 달라는 말과 자신감을 표현했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듬직했다.
“자, 그럼 계속해서 가 보자고.”
본격적인 사냥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아직 눈앞에는 수많은 리자드맨이 존재했다.
대략 백 마리는 넘어 보이는 리자드맨과 저 멀리 있는 왕을 사냥하기 위해서 움직였다.
“그전에…….”
나는 서둘러 지은이에게 연락을 취했다.
연락의 내용은 다름 아닌 라이브 방송.
미리 공지된 시간도 아니고 즉석 라이브라 얼마나 많은 인원이 올지 모르겠지만, 어떻게 하겠는가? 나도 하겠다고 생각만 했지, 이렇게 급하게 하게 될 줄은 몰랐으니 말이다.
거기에 추가 구매해야 할 것도 있다.
“어휴, 소환수 하나 생길 때마다 카메라 설치비용도 장난 아니네.”
숭이와 로빈후드를 찍을 카메라를 결제하려니 통장에 있던 돈이 뭉텅이로 빠져나갔다.
이러다가 카메라값만 몇천만 원을 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니겠지…….”
나는 살짝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다리를 떨며 카메라를 세팅했다.
세팅이 끝나자 지은이에게서 답장이 왔다.
자, 그럼 방송 준비를 해 보자고.
* * *
갑작스러운 방송 요청에 당황한 것은 이지은만이 아니었다.
“너무 갑작스러운데요. 이러면 시청자 숫자가 별로 없을 텐데요.”
한 직원의 중얼거림에 한 팀장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시저 님이 요청했으니 응해야지. 안 그렇습니까? 사장님.”
“맞아요. 일단 지금 즉시 공지를 올리고 10분 뒤에 시작하겠다고 시저 님에게 알려주세요.”
“알겠습니다.”
비록 급작스러운 방송 요청이지만, 사실 이들이 할 수 있는 대답은 알겠다는 것밖에 없다.
어떻게든 이 소식을 빨리 알려 최대한 많은 시청자를 모을 수 있도록 홍보하는 것이 이들의 일이기에 빠르게 움직였다.
방음부스에 설치되어 있는 설비를 켜고, 서둘러 세팅했다.
월오룰 커뮤니티에 서둘러 시저의 방송을 알리는 글을 올렸고, 방송 채널을 열어 미리 대기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했다.
고작 10분의 여유 시간밖에 없지만, 이지은과 팀원은 모두가 각자 서둘러 방송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준비 끝났습니다.”
“여기도 준비 완료입니다.”
“당장에라도 가능합니다.”
방송 시작 3분 전.
이미 채널을 오픈하고 5분가량이 지난 시점에 시청자 숫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스타트 천 명이면 괜찮네요.”
아직 아무런 화면이 나오지 않는 방송 화면.
그럼에도 채팅창을 시끌벅적하게 떠들고 있는 모습을 조심스럽게 바라보는 그들이었다.
-오! 오랜만에 방송.
-이번엔 어딜까요?
-저번에 수도 근처에 언데드 출몰했을 때 혼자 사냥하던데.
-다른 건 모르겠고. 범이 님! 범이 님이 너무 보고 싶습니다.
-들리는 소문에 새로운 소환수도 생겼다는데?
-오늘 방송 꿀잼 각 예약인가요?
-일단 치킨부터 시키자.
-모르겠고 얼른 시작하시죠!
채팅창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기다렸다는 반응이 더욱 컸다.
그리고 무엇보다 범이의 출연을 기다리는 이들이 가장 많았다.
그 모습에 이지은의 입가에 미소가 피었다.
“후후. 시저 님이 말씀하신 날이 오늘이군요.”
의미심장한 그녀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 몰렸다. 궁금증을 참지 못한 팀장이 그녀에게 물었다.
“뭔가 들으신 게 있으십니까?”
“네, 뭐…….”
말을 하다가 멈추는 이지은. 그러곤 고개를 흔들며 한 마디 더했다.
“오늘 특별한 모습을 보여준다고 하셨어요. 그러니 너무 놀라지 말라고 하셨어요.”
그녀의 말에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기대된다는 듯 두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시저 님이 특별한 모습이라고 하셨다면…….”
“이건 무조건 깜짝 놀랄 일이라는 거지.”
“어우, 벌써 긴장되는데? 어떡하지?”
“릴렉스…… 릴렉스…….”
이지은과 한 팀장을 제외한 네 명의 직원들이 서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에 대해 떠들었다.
누구 하나 ‘이거다.’하고 확실하게 말하진 못했지만, 모두가 기대하고 있다는 것을 감추지 못하고 흥분한 상태였다.
“이제 시작하죠.”
이지은의 말에 직원들은 흥분을 가라앉혔다.
그들이 프로라는 것을 증명하듯 시작하자는 말과 동시에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알아서 찾아 움직였다.
카운트와 함께 시저의 방송이 시작되었다.
“안녕하세요. 시저입니다.”
시저의 방송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