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4화
#104
[누군가의 은신처]
난이도 : 매우 어려움.
최대 입장 수 : 없음.
입장 조건 : 메인 시나리오를 진행하는 자.
공략 조건 : 은신처에 숨어 있는 존재를 찾아 죽여라.
인던에 입장하고 가장 먼저 떠오른 시스템창의 내용. 이번 인던의 공략 조건을 보는 순간 떠오른 것은 조금 귀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숨어 있다라…….”
딱 봐도 이번 인던의 콘셉트가 숨바꼭질이라는 것을 암시했다.
인던의 크기가 짐작 가지 않는 지금으로선 딱 봐도 개고생하게 생겼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뭐, 그나마 다행인가. 비록 인던에 입장한 것은 나 혼자지만, 내겐 소환수들이 있으니 말이다.
나를 제외하고도 범이 팅고, 루이즈, 가직스, 숭이까지 다섯이나 더 있으니 충분히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시야도 문제없으니 말이야.”
밖과 다르게 이곳 인던 안은 안개의 영향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마기가 안개 대신 인던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아까 밖으로 뿜어져 나오던 마기가 이 인던에서 나간다는 것을 증명하듯 마기가 주변에 짙게 깔려 있다.
그 덕분에 숨을 쉬는데 조금 벅찬 느낌이 드는데, 그렇다고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다.
그냥 찝찝하다. 기분이 더러워지는 듯한 찝찝함이라 이곳에 오래 있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 정도? 딱 그 정도다.
그런 나와 다르게 루이즈는 기분 좋은 듯 콧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마기를 쐬니까 피부도 그렇고 기분도 좋아지네.”
슬쩍 루이즈를 보니 진짜 그녀의 말대로 확실히 기분이 좋아 보였다.
평소에는 후드를 뒤집어쓰고 있지만, 지금은 후드를 완전히 뒤로 넘겨 민얼굴을 보여주고 있었다.
반들반들한 피부에 윤기 나는 검은 머리카락이 찰랑찰랑 흔들렸다.
뭔가 허름해 보이던 옷들이 막 세탁이 된 듯 뽀송뽀송하게 변했고, 그녀의 길고 쭉 뻗은 다리는 너무나도 탄탄하고 매끄러워 보였다.
안 그래도 미인인 루이즈가 오늘따라 더 아름다워 보였다.
“마족이라 그런 거야?”
“그렇지. 인간에게는 햇살이 필요하듯이 마족은 마기가 필요한 법이야.”
광합성을 말하는 것 같다.
루이즈는 마기니까 마합성인가…….
음. 그만두자. 노잼 아재 개그는 하지 않는 게 좋다.
아무튼 홀로 신난 루이즈와 다르게 다른 소환수인 범이나 팅고, 가직스, 숭이는 뭔가 못마땅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럴 만하다. 숨이 막혀오는 이 마기 속에 서 있기 불편하니 말이다.
나는 박수를 두 번 치며 말했다.
“얼른 끝내고 나가자.”
고개를 끄덕이는 얘들을 보며 내가 먼저 걸어 나갔다.
이제 전투가 있을 예정이니 범이를 바닥에 내려두고 검을 뽑아 들었다. 이제 인던을 공략할 시간이다.
* * *
“끼에에엑!”
끔찍한 비명이 메아리쳤다.
듣는 것만으로도 그 고통이 생생하게 느껴질 정도로 처절한 소리에 나도 모르게 인상이 찌푸려졌다.
하지만 나 혼자만이 느끼는 감정이 아니었다.
“냐앙…….”
범이는 못 듣겠다는 듯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더니 몸을 웅크리고 앞을 바라보는 것을 포기했다.
가직스는 이미 멀찍이 떨어진 지 오래다.
숭이는 자신도 얼마 전에 처절한 비명을 질렀던 터라 동병상련의 감정이라도 느끼는지 안타까운 얼굴이었다.
“충!”
팅고만이 내 앞에서 당당하게 방패와 검을 들고 든든하게 서 있다.
“호호호. 울부짖어라! 더욱 처절하게 울어보란 말이야!”
루이즈는 처절한 비명 속에서 깔깔깔 웃으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마치 재밌는 장난감을 바라보는 듯한 눈빛. 거기에 눈앞의 모습을 보며 재밌는 구경거리를 놓칠 수 없다는 듯 바닥에 주저앉아 즐겁게 구경 중이었다.
“피이…….”
구슬픈 피이의 울음소리.
“아냐, 피이는 잘했어. 오히려 저놈이 재수가 없는 거지.”
나는 피이를 손목에 올려 두고는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위로해 주었다. 그러곤 정면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한 몬스터가 전신에 불이 붙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몸이 실시간으로 녹아가는 중이었고, 내 코를 자극하는 타는 냄새는 한때 유명했던 한 드라마를 떠올리게 했다.
“킁킁. 어디서 타는 냄새 안 나요?”
“깔깔깔. 주인님 진짜 재밌다.”
내 말에 아주 자지러지는 루이즈였다.
그런 루이즈 너머의 불타고 있는 존재를 바라보았다.
[썩은 다크 우드 Lv.500]
눈앞에 있는 인던의 보스 몬스터는 다름 아닌 한 그루의 나무. 지금은 불에 타들어 가는 나무였다.
물론 처음 등장은 저러하지 않았다.
썩은 다크 우드는 커다란 회랑 한가운데 있었다. 높이 5m에 나무 몸통의 굵기가 내 다섯 배는 되어 보이는 엄청난 나무.
거기에 사방으로 뻗은 나뭇가지는 마치 살아 움직이는 뱀이 떠오를 정도였다.
그냥 보아도 공략하기 힘들 것 같은 보스 몬스터.
하지만 놀랍게도 단 한 번의 공격으로 나를 포함한 소환수 전부가 움직일 필요가 없었다.
“피이, 멸화.”
“피이!”
피이가 날갯짓했다.
영혼까지 불태워 버린다는 피닉스 피이의 고유 스킬이 발동되었다.
-소환수 ‘피이’가 스킬 ‘멸화’를 사용합니다.
-영혼까지 불태우는 불길이 치솟습니다.
-대상의 모든 능력이 10% 감소합니다.
정상적으로 스킬이 발동되었다는 것을 알리는 시스템창에 만족하며 고개를 끄덕였을 때였다.
“끼에에엑!”
몸에 불이 붙어 나오는 비명인 줄 알았다.
이제 저 몬스터를 공략하기 위해 각종 버프 스킬은 물론이고 디버프 스킬까지 덕지덕지 바르기 위해서 몬스터의 상태를 확인하려던 때였다.
화륵! 화르르륵!
피이가 붙여둔 불이 심상치가 않았다. 아니, 갑자기 미친 듯이 불길이 치솟았다.
“아…….”
처음엔 이해가 안 되었다.
아무리 영혼까지 태워 버리는 불길이라지만, 저렇게 심하게 불이 치솟을 거란 생각을 못 했으니 말이다.
아무리 나무라도 완전히 바짝 말린 장작이 아니고서야 저렇게까지 불이 안 붙는데…….
하지만 보스 몬스터의 이름을 보니 이해가 되었다.
썩었잖아. 뭐 생기가 없는 게 당연하지. 그래. 활활 타올라라. 어후, 보는 내가 속이 시원할 정도 잘 타네.
그러곤 뭐, 더 이상 설명할 필요도 없다.
지금 눈앞의 보스 몬스터인 썩은 다크 우드는 5m에 달하던 그 덩치가 이제는 거의 다 타버리고 1m도 남지 않았다.
이제 조금 있으면 죽을 것 같았다.
얼마 가지 않아 시스템창이 나에게 알려주었다.
-썩은 다크 우드를 쓰러뜨렸습니다.
-대량의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레벨 175를 달성합니다.
보스 몬스터를 쓰러뜨렸다는 생각에 기뻐하려는 찰나 문뜩 떠오른 게 있었다.
“응? 이놈이 클리어 조건이 아니야?”
나는 당황한 나머지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나, 지금 보이는 것이라곤 한 줌의 재도 남기지 않고 전부 홀라당 불타 버려 이 자리에 뭔가 있었던 흔적만 남아 있다.
나름 인던을 이리저리 돌며 겨우 찾아낸 녀석이라 이놈이 숨어 있는 존재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쩝, 다시 찾아봐야 하나?”
나는 귀찮아진 얼굴로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지금 이곳 회랑은 막혀 있다. 그렇다면 뒤로 다시 돌아서 다른 곳을 찾아 헤매야 하나 싶을 때였다.
“주인님. 여기 구멍이 있는데?”
“응?”
루이즈의 말에 그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은 방금까지 썩은 다크 우드가 뿌리박고 있던 자리였다.
“오! 진짜네.”
직접 가서 보니 진짜 아래로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 보이는 바닥까지.
확실히 아래로 더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가 볼까?”
나는 그대로 몸을 던져 구멍으로 들어갔다.
“냥!”
“충!”
내 뒤를 따라 바로 범이와 팅고가 따라 움직였다.
순식간에 바닥에 닿았다.
“슈퍼 히어로 랜딩.”
한때 즐겨 보았던 영화 속 주인공의 모습을 따라 하듯이 멋들어지게 착지했다.
하나, 그것도 잠시였다.
“냥!”
내 머리 위에서 들려오는 범이의 울음소리에 다급하게 포즈를 풀고 범이를 받을 자세로 바꿨다.
그러다가 나는 문뜩 고양이들은 높은 곳에서도 잘 떨어진다는 것이 생각나 옆으로 슬쩍 자리를 비켰다.
“냥!”
예상대로 범이는 나보다 더 멋들어지게 바닥에 착지했다. 그리고 그 뒤로 ‘쿠웅’하고 팅고가 떨어졌다.
팅고는…… 못 본 척해 주자.
아무튼 그런 우리 셋과 다르게 루이즈는 천천히 날 듯이 내려왔다.
그런 루이즈 뒤로 가직스가 날개를 펄럭이며 내려왔고, 숭이는 가직스의 몸에 달라붙어서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푸하하하하.”
저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러자 숭이 녀석이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우끼! 우끼!’거리다가도 떨어질까 봐 겁을 먹고 오히려 더욱 가직스에게 매달렸다.
아무튼 우리 모두가 안전하게 착지했다.
이제 남은 인던을 공략하면 되겠다는 생각을 하곤 앞을 바라보려 고개를 돌렸다.
“쿨럭, 쿨럭. 거기 누구지?”
갑작스러운 목소리.
나는 화들짝 놀라 정면을 응시했고, 그곳에 있는 자의 이름이 떠 올랐다.
[NPC 사카린 Lv.999]
그곳엔 엄청난 레벨의 NPC가 다 죽어가는 모습으로 발견되었다.
* * *
갑작스럽게 나타난 NPC. 그것도 구멍을 통해 내려오자마자 발견한 NPC.
당연히 나는 긴장과 동시에 검을 뽑아 들었다.
스릉- 챙.
빠르게 뽑힌 내 검과 동시에 내 소환수 전부가 전투태세에 들어갔다. 내가 명령만 내리면 당장에라도 달려들 것 같은 모습이었다.
하나, 나는 앞을 겨눴던 검을 아래로 내리며 다른 손을 들어 멈추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도 그런 것이, 눈앞의 NPC는 우리를 공격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쿨럭…… 쿨럭…….”
NPC 사카린이 기침을 할 때마다 입에서 검은색의 피가 뿜어져 나왔다.
입에서 질질 흘렀지만, 그는 손을 뻗어 그 피를 닦아 내지 못했다.
이미 앞섶은 피가 굳어 있었고, 그것도 모자라 코를 자극하는 악취로 무언가 썩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네는 누군가?”
“제가 뭐라 대답해야 합니까?”
사카린의 누구냐는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물었다.
그러나 눈앞의 NPC는 힘겨운 웃음과 함께 대답했다.
“클클. 소속이 어디냐 묻는 거네. 쿨럭쿨럭.”
말을 할 때마다 기침을 동반한 피는 보는 것만으로도 안쓰러웠다. 누가 보아도 고통을 억지로 참고 버티는 것 같다.
그는 그 고통 속에서 입을 쉬지 않고 열었다.
“마신교의 인물이면 안 기뻐할 생각이고, 제국의 인물이면 기뻐할 생각이네.”
희미하게 나를 바라보던 그가 손을 들더니 가슴을 문지르기 시작했다.
힘없는 손가락이 움직이자 그의 가슴에 세드릭 제국 황실의 문장이 선명하게 보였다.
그제야 나는 눈앞의 사카린이 황실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런!”
나는 서둘러 그의 곁에 다가갔다. 그러곤 인벤토리에 있던 회복 물약을 꺼내 들었고, 그것을 그의 입에다 가져다주었다.
“마시세요. 저는 시저 남작이자 플레이어입니다.”
나는 대답을 듣기도 전에 그의 입에다가 포션을 들이부었다.
그의 목이 꿀렁하고 움직이는 것을 보아 제대로 마셨다는 것을 알았고, 한 병의 포션을 더 꺼내려고 할 때였다.
“쿨럭! 쿨럭! 소용없네.”
사카린은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눈빛으로 나를 향해 말했다.
“포션으로도 고칠 수 없네. 성녀가 와도 마찬가지네. 그러니 이것을 황실로 가져가게.”
그의 피 묻은 손이 갑옷 속으로 들어가더니 한 권의 책이 나왔다.
그것을 건네받는 순간 시스템창이 반응했다.
-퀘스트 아이템을 습득했습니다.
-퀘스트가 변경되었습니다.
[사카린의 안식]
난이도 : 매우 쉬움.
내용 : 스스로 목숨을 끊지 못하고 고통 받고 있는 사카린을 죽여라.
보상 : 연계 퀘스트.
특이사항 : 강제 퀘스트입니다. 거절할 수 없습니다.
놀랍게도 눈앞의 NPC를 죽이라는 퀘스트가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