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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소환수가 너무 강함-103화 (103/275)

제103화

#103

“다녀왔어.”

지금 시간은 11시 조금 안 되는 시간.

평소라면 효진이가 공부하고 있을 시간이니 조용히 말하고는 냉장고에서 시원한 물을 꺼내 마셨다.

꿀꺽! 꾸울꺽!

목구멍 타고 흘러가는 물이 너무나도 시원했다.

점차 맑아지는 정신과 함께 긴장하고 있던 몸이 안정을 찾아가자 뻣뻣하던 몸이 흐물흐물하게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나는 의자에 앉고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후아…….”

이제 좀 살 것 같았다.

뻐근한 뒷목을 주물러 주며 오늘 있었던 일들을 떠올렸다.

피식.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생각보다 오늘 상당히 재밌었기 때문이었다.

데이트라 생각하고 김칫국을 한 사발 마시고 나갔지만, 실상은 밀린 계약서와 서류를 정리하는 일이었다.

씁쓸한 미소와 함께 업무를 모두 마치자 그다음부터는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났다.

“이야. 선남선녀네. 내 서비스 팍팍 줄게. 보기 좋아.”

이건 식당에서 들었던 말.

“와…… 저 가디건 예쁘다?”

“우리도 저거 하나 살까? 어디 브랜드지?”

“아서라. 저 커플이니까 어울리지.”

이건 식사를 마치고 소화도 시킬 겸 카페에서 커피 한잔하고 있을 때 들었던 말이다.

같은 디자인이자 브랜드의 가디건 때문인지 커플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민망해서 아무런 말을 못 했는데 그런 나와 다르게 비기너 님, 아니, 이지은 씨, 아니, 지은이는 그럴 때마다 감사하다는 말을 하거나 나에게 장난을 걸어왔다.

“오빠, 오빠. 그렇다는데?”

업무적인 이야기를 할 때와는 전혀 다른 캐릭터를 보였다.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고, 덕분에 재밌는 하루를 보냈으니 오히려 고마웠다.

정말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다를 떨며 공원을 산책하기도 했고, 범이 사진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다가 범이 사진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진짜요? 정말 오빠보다 더 덩치가 커진다고요?”

지은이는 엄청나게 기대하고 있다는 듯,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두 손 모아 나를 바라봤다.

거기에 빨리 보고 싶다며 나에게 언제 영상을 넘겨줄 것이냐며 물어왔다.

나는 조만간 라이브 방송을 하겠다고 대답했다.

“치사해!”

살짝 토라진 모습이 얼마나 귀여운지 정말 주머니 속에 넣고 싶을…… 정돈 아니고, 아무튼 나는 슬쩍 웃으며 넘겼다.

뭐, 그렇게 재밌는 하루를 보내고 지은 씨 집 근처까지 데려다주곤 이제 막 집에 돌아온 것이다.

“씻고 좀만 하다 잘까?”

나는 다시 월오룰에 접속할 생각이다.

듀스텔 백작이 부탁한 퀘스트.

밤에 일어나는 이상한 현상에 대한 조사이기에 밤에 접속해야 한다.

다행이라면 내일은 일요일.

효진이도 일주일 중에서 유일하게 늦잠을 자는 날이기에 아침 일찍 일어나 아침을 챙겨주지 않아도 된다는 거다.

물론 내가 미리 말하면 알아서 아침 챙겨 먹고 학교에 갈 착한 동생이지만 특별한 일이 아니고서는 내가 챙겨주고 싶었다.

아무튼, 지금 시간이 11시임을 생각하면 대충 두세 시간은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씻으러 가려는 찰나, 방문이 벌컥 열리더니 효진이가 휴대폰을 들고 통화하며 나왔다.

“어! 오빠 왔어?”

나를 향해 인사를 하더니 문자 보내겠다는 말로 통화를 끝내고 내 반대편 의자에 앉는다.

“어땠어?”

“재밌었어.”

“그게 다야? 기왕이면 오늘 집에 안 들어오지 그랬어. 아니면 내가 집을 비워줄까?”

장난기 가득한 얼굴과 말투에 나는 그대로 손을 들어 머리를 쥐어박았다.

콩.

“아얏!”

소리치는 동생.

하지만 엄할 땐 엄해야 한다.

“할 말이 있고, 못 할 말이 있는 거란다. 동생아.”

“피. 내가 뭐 못 할 말을 했나?”

고개 돌리고 토라진 척하는 동생에게 한 대 더 때려주려다가 참았다.

“뭐, 좋은 분위기였던 것 같아.”

“그으래?”

내 말에 다시 기대가 가득한 눈으로 변하는 효진이다.

그러나 그 호기심을 더 채워줄 생각은 없다.

“공부하다 자렴. 나는 퀘스트 때문에 오늘 늦게까지 할 것 같아.”

“엥? 여기서 끝이야? 더 안 해 줘? 퀘스트는 무슨 퀘스트?”

한 번에 여러 개의 질문을 했지만, 그중에 하나만 대답해 줬다.

“그러게. 밤마다 사건이 벌어진다고 조사해 달라네?”

그 말과 함께 나는 손을 휘휘 저으며 그대로 씻으러 들어갔다.

문 너머로 동생이 뭐라 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깔끔하게 무시했다.

후다닥 씻은 나는 대충 몸을 말리고 머리를 탈탈 털어내고는 그대로 캡슐에 누웠다.

“시작하자고.”

다시 월오룰의 세상으로 떠났다.

* * *

듀스텔 백작의 성벽 앞.

그곳에서 눈을 뜬 나는 주변을 둘러보곤 화들짝 놀랐다.

“와…… 장난 아닌데?”

짙은 안개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화 속이나 현실에서 가장 안개가 심한 곳이라 불리는 캐나다의 뉴펀들랜드섬의 안개 사진보다 더욱 짙었다.

가시거리가 1m는 될까 싶을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다.

“이거 현실이면 교통사고 오지게 나겠네.”

뭐 밤이라 차가 적긴 하겠지만, 이 정도면 거의 운전은 포기해야 할 수준이 아니라 걸어서 집 앞에 편의점도 못 갈 수준이다.

팔뚝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등줄기를 타고 오르는 꺼림칙한 기운은 물론이고 이상하게 몸이 으스스한 기분이 들었다.

혼자 이렇게 있자니 불안감이 살짝 올라오는 것 같았다.

“얘들아.”

서둘러 소환수들을 불렀다.

범이와 팅고, 루이즈, 가직스와 숭이까지 한 번에 모습을 드러냈다.

등장과 함께 가장 큰 반응을 일으키는 것은 다음 아닌 루이즈였다.

“주인님, 미약하지만 마기가 느껴져!”

“어디서?”

“저쪽이야.”

루이즈가 가리키는 방향은 다름 아닌 호수가 있는 방향. 그곳에서 안개가 만들어진다는 듀스텔 백작의 말을 들은 것 같았다.

“그럼 가 볼까?”

나는 출발하기 전에 바닥으로 몸을 숙여 범이를 들어 안았다.

“냐앙?”

범이의 울음소리.

마치 ‘집사 니가 웬일이냥?’이라는 느낌의 울음소리에 나는 아무런 말 없이 그냥 앞으로 걸었다.

절대 쫄아서 그러는 거 아니다.

그냥 좀 으슬으슬하기에 범이의 체온을 나누려는 것뿐이다.

진짜 그런 거다.

나는 앞서 먼저 걸어갔다.

* * *

미네아 호수.

듀스텔 백작령에 있는 호수로 브리타니아 대륙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아름다운 호수로 수많은 관광객이 찾아오는 호수다.

호수 주변에 피어 있는 아름다운 꽃과 하늘에 떠 있는 크고 아름다운 두 개의 달이 호수를 비춰주며,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하늘에 있는 별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한 호수다.

밤낮으로 사람이 많아야 할 호수에 지금은 단 한 명의 인기척도 느낄 수 없다.

“여긴 더 짙네.”

미네아 호수에 도착한 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놀랐다. 진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조금만 떨어져도 내 소환수가 보이질 않으니 말이다. 하물며 우리 중에서 가장 덩치가 큰 가직스가 말이다.

아무튼, 진한 안개를 뚫고 겨우 도착한 미네아 호수다.

앞도 잘 보이지 않는 시야로도 내가 호수 근처에 도착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다음 아닌 시스템의 일부인 미니맵을 보고 움직였기 때문이다.

가장 기본적인 정보만 보여주는 미니맵이라 중간중간 넘어질 뻔도 했지만, 무사히 도착한 것에 감사했다.

‘그나저나…… 회귀 전엔 이런 안개에 대한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는데 말이야.’

분명 내가 기억하는 회귀 전에는 이런 안개에 대한 소문은 없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이곳이 아니라 한참 뒤에 있는 거대한 강을 끼고 있는 사냥터엔 안개가 자주 끼기는 한다.

물론 그 안개는 강을 중심으로 세워진 한 영지가 마신교의 손에 넘어간 걸 숨기기 위해서 인위적으로 만든 안개다. 햇수로도 4년은 지나야 나오는 사냥터니 지금 이곳이랑 관련은 없다.

그렇다면 이 안개의 정체는 무엇일까 싶었다.

원래 안개라는 것은 수증기를 포함한 대기의 온도가 어떤 이유로 내려가 이슬점 온도에 도달할 때 포함된 수증기가 작은 물 입자가 되어 공중에 뜬 상태를 말한다.

호수다 보니 안개가 생기기 쉬운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 정도가 심하다는 거다.

‘음…… 이 근처에서 사건이 있었던 것 같은 기분도 드는데 말이야.’

분명 특별한 일은 아닌 것 같다.

그러니 정확하게 기억을 못 하지.

하지만 뭔가 이 가슴 한구석에 남아 있는 이 찝찝함은 뭐라 표현을 할 수가 없다.

차라리 누가 속 시원하게 알려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주인님. 저쪽이야.”

루이즈가 손가락으로 방향을 가리켰다. 나와 소환수 모두가 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우리는 얼마 가지 않아 호수 가장자리의 한 부분에 도착했다.

“여기야.”

루이즈가 움직임을 멈추고 손가락으로 아래를 가리켰다.

하나, 바닥은 그 무엇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확실하게 느껴지는 기운이 있었다.

“마기네.”

끈적끈적하면서 불쾌한 기운. 하지만 그 속에서 느껴지는 강력한 힘은 나도 모르게 가지고 싶다는 욕망을 일으켰다.

회귀 전부터 최근까지 만났던 마신교의 신도들과 암흑 기사단이 뿜어내는 그 기운이 바닥에서부터 올라왔다.

조금 시선을 돌리니 땅속에서 불쑥 튀어온 쇠로 된 작은 통이 보였는데, 그곳에서 마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거기서 나온 마기가 호수의 물에 접촉하니 그대로 짙은 안개가 생성되어 사방으로 조금씩 조금씩 땅따먹기하듯이 퍼져나갔다.

지금 이 모습을 보아하니 마기로 인해 안개가 생성되고 있다는 것이 맞았다.

다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땅속을 파야 하나?”

지금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는 평지.

땅속에서 마기가 올라오고 있다면 그곳과 연결되어 있어야 할 입구가 보여야 한다는 소리다.

근데 보이는 게 없으니 땅이라도 파야 하나 싶은 거다.

그런 와중에 하나 떠오른 게 있었다.

“탐지.”

그것은 다름 아닌 탐지의 반지에 있는 탐지 스킬. 이거라면 숨겨진 입구를 찾아 줄 것이다.

-탐지 스킬을 발동했습니다.

-반경 1km를 탐지합니다.

-특별한 곳을 찾았습니다.

시스템창이 반응했다.

지금 있는 자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커다란 바위가 있는 곳. 탐지 스킬이 그곳을 가리켰다.

우리는 그곳으로 향해 다가갔고, 숭이가 그 바위를 힘으로 밀어냈다.

드르르르륵.

숭이의 괴력에 바위가 밀려나자 포털이 드러났다.

-숨겨진 인스턴스 던전을 찾았습니다.

-인스턴스 던전 ‘누군가의 은신처’를 발견했습니다.

-최초 발견 보너스가 적용됩니다.

-사냥 시 얻는 경험치가 두 배가 됩니다.

-아이템 드랍율이 두 배가 됩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퀘스트가 생성되었습니다.

[절대자의 흔적을 따라가라]

난이도 : 매우 어려움.

제한 : 없음.

내용 : 절대자가 들어간 공간입니다. 그가 남긴 흔적을 찾아야 합니다.

보상 : 연계 퀘스트.

특이사항 : 강제 퀘스트입니다. 거절할 수 없습니다.

“오, 개꿀.”

놀랍게도 이곳은 메인 퀘스트와 연관된 곳이었다.

그렇다면 하나다.

“지금 듀스텔 백작령에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모두 메인 시나리오와 연관되어 있다는 거군.”

모든 수수께끼가 풀렸다.

이제 남은 것은 해결하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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