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1화
#101
어이없어서 툭 하고 내뱉은 한마디. 그 한마디가 범이는 기분이 나빴나 보다.
“냐앙!”
나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어슬렁어슬렁 걸어온다.
지금까지 겪었던 범이라면 발톱을 뽑아 들고 나를 푹푹 찌르며 화를 낼 거라 생각했다.
사실상 애교에 가까운 행동인걸 잘 알기에 나도 과한 액션을 취하는 편이다.
조용히 받아들이려는 순간이다.
띠링.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시스템창 알림 소리에 나는 당황하며 떠 오르는 시스템창을 바라보았다.
-소환수 ‘범이’가 고유 특성 ‘자유 변형’을 시전합니다.
-몸집이 거대해집니다.
어? 거대해진다고? 이건 무슨 소리야?
당황한 건 물론이고, 불안한 마음에 범이를 내려다보았다.
근데 이상하게 내 시야에 검은 그림자가 지어졌다.
“버, 범이야!”
나도 모르게 소리치며 그 자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리를 움직이려고 했다.
하나 범이가 더 빨랐다.
쿠웅!
나와 범이가 바닥에 쓰러졌다.
그 소란 때문인지, 주변에 모여들었던 환수들이 화들짝 놀라 어디론가 사라졌다.
자리를 지키고 있는 환수는 몇 되지 않았다.
아무튼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나는 지금 날 깔고 앉아 있는 범이를 향해 소리쳤다.
“야! 범이야! 진짜 무거워! 거짓말 아니고 진짜 무겁다고!”
지금 범이의 덩치는 거의 다 자란 호랑이만큼 커다랬다. 덩치가 커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몸무게도 늘어났는데, 대충 200kg은 넘을 것 같았다.
거기에 이번에 진화하면서 각종 스텟이 상승했는데, 그 때문인지 그 근력을 이용해 나를 짓눌렀다.
나는 발악하듯 범이를 치워내려 했다. 어떻게든 팔을 뻗어 범이의 몸을 밀어내려 움직였지만, 소용없었다.
내 손길을 꼬리를 휘둘러 쳐내는 것도 모자라 앞발로 내 가슴을 지그시 눌러 더 움직이지 못하게 만드는 범이다.
그러곤 만족한다는 듯 씨익 웃는 모습이 상당히 얄밉다.
“항복! 미안하다, 범이야. 형이 잘못했어.”
나는 항복을 외쳤다.
어쩔 수 없다. 이미 제압당한 상황에서 내가 지금의 범이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러니 얌전히 항복해야 한다. 그것 말고는 지금의 상황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갸르릉!”
내 위에 올라타 있던 범이가 만족한다는 듯 울음소리를 내었다. 그와 동시에 방금까지 커다란 덩치를 유지하던 몸이 서서히 작아졌다.
-소환수 ‘범이’가 원래 상태로 돌아옵니다.
시스템창의 알림과 동시에 내가 알던 범이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러곤 내 가슴에서 슬쩍 내려와 편한 자세를 잡더니 앞발을 들어 바닥을 툭툭 쳤다.
지금 저 행동은 지금 자신의 기분 나빴었으니까 먹을 걸 내놓으라는 뜻.
나는 인벤토리에서 범이가 먹을 걸 꺼내 주었다.
냠냠. 쩝쩝.
식사를 시작한 범이를 보곤 나는 한숨을 쉬며 옷에 붙은 흙먼지를 털어냈다.
내 모습이 짠한지 루이즈가 다가와 거들었다.
“고생이 많아, 주인님.”
“그러게 말이다.”
“이러다간 나중엔 상전으로 모셔야 할 것 같은데?”
“진짜 그럴까 봐 무섭다.”
진심 나중에는 상전으로 모셔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번엔 농담 삼아 생각했던 것인데, 지금은 진짜로 현실이 될 것 같았다.
지금 범이는 고작 1차 성장과 1차 진화를 했을 뿐이다. 2차 성장과 진화를 한 번씩 더 할 수 있다는 상태창을 보았다.
근데 그게 끝이 아니라 앞으로 몇 번을 더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하…….”
땅이 꺼져라 나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괜찮아. 어떻게든 될 거야.”
내 등을 토닥여주는 루이즈. 그 위로에 힘이 나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나는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
히죽히죽.
루이즈의 입가에 미소가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치 ‘내 일이 아니니 알아서 고생하겠지.’라는 저 미소.
입으로는 나를 위로했지만, 그저 말뿐이었던 것이다.
“하…….”
절로 한숨이 나왔다.
* * *
어질어질했던 정신을 차렸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지금 내가 이곳 환수계에 왔다는 거다. 얼른 한 마리 포획하고 다시 원래 세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어디 보자. 누가 좋으려나.”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지금 내 눈에 보이는 환수는 몇 마리 없다. 아까 범이가 덩치를 키우며 나를 괴롭히는 사이에 대부분의 환수가 도망쳐 버렸기 때문이다.
아까까지만 해도 경건한 자세로 떨고 있던 환수들이었으나 지금은 상당히 흥미롭다는 얼굴로 나와 소환수를 바라보고 있다.
일단 당장 눈에 띄는 녀석들을 바라보았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환수’를 ‘통찰안’으로 꿰뚫어 봅니다.
-개체값을 분석합니다.
-개체값은 60%입니다.
-개체값은 79%입니다.
-개체값은 30%입니다.
대충 보이는 녀석들은 대부분 개체값이 낮은 애들이다.
지금까지의 경험을 토대로 개체값은 최소 90%는 넘어야 쓸 만하다. 그 이하의 개체값은 진화나 성장의 가능성이 없는 단순 일회성이라 보면 된다.
“최소 90% 이상. 그리고 당장 쓸 수 있는 전력.”
지금 내가 바라는 최고 베스트 소환수다.
합격 목걸이를 걸 만한 녀석이 있는지 찾기 위해 주변 걸으며 둘러보았다.
가장 먼저 가 본 곳은 처음 이곳 환수계에 왔을 때 알을 챙겼던 곳. 그 자리엔 무언가 놓여 있었던 흔적만 남아 있었다.
이곳에 또 알이 생기지 않을까 했던 궁금증은 해결되었다.
대신 주변을 둘러보았다.
숲속에는 작고 귀여운 환수들이 머리와 두 눈만 슬쩍 내밀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호기심 가득한 눈이라 그런지 똥글똥글하게 뜨고 있어 귀여움이 폭발하는 것 같았다.
‘나쁘지 않지. 범이랑 쌍벽을 이루는 귀여움으로 어필하는 것도.’
물론 그건 순수 방송을 생각했을 때의 이야기다.
나는 귀여움보다 즉시 전력을 더 원한다.
다시 시선을 돌려 주변을 둘러보았다.
숲속을 날아다니는 환수. 불 속에서 춤을 추는 환수. 물속에서 유유히 헤엄치며 아름다운 자체를 뽐내는 환수. 하늘에서 멋들어지게 날아다니며 뭔가 나에게 어필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환수.
수십을 넘어 수백 마리에 달하는 환수들의 개체값을 보느라 눈알이 빠질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였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환수’를 통찰안으로 꿰뚫어 봅니다.
-개체값을 분석합니다.
-개체값은 98%입니다.
“오! 좋은데?”
화들짝 놀라며 소리친 나다.
순간 내 눈에 보인 상당히 높은 개체값을 가진 환수. 하나, 문제는 순식간에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는 거다.
아무래도 내가 화들짝 놀라며 소리친 탓인 것 같아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려 찾아보았다. 그리고 다시 발견했을 때는 아까보다 더욱더 놀랄 수밖에 없었다.
화륵, 화르륵.
내가 발견한 그 환수가 불 속에서 부리로 깃털을 정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 모습에 ‘혹시?’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작? 아니 피닉스? 아니면 레드 드래곤?’
이곳이 판타지 세상인 것을 생각하면 피닉스나 레드 드래곤일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한발씩 움직이며 불이 피워진 곳이자 개체값이 높은 환수에게 다가갔다.
그러곤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안녕?”
내 인사에 깃털을 정리하고 말다 나를 바라보았다. 나 또한 눈앞의 새를 자세히 바라보았다.
가까이서 보니 생각보다 덩치가 크다.
대충 다 자란 독수리 정도? 대충 몸길이가 70cm쯤 되어 보였다. 아마 날개를 펼치면 180cm는 훌쩍 넘지 않을까 싶었다.
눈앞의 새의 몸에서 불이 이글이글 타올랐다.
이미 겉모습만으로도 충분히 간지가 철철 흘러넘쳤다.
이걸 보고 안 끌릴 이유가 없다. 하물며 개체값이 98%니 말이다.
원거리 공격을 못 해도 된다. 간지가 나니까.
이건 못 참겠다.
“나랑 계약해 주겠니?”
완전한 포획으로 그냥 강제로 포획이 가능하지만, 굳이 이렇게 물어보는 이유는 다름 아닌 충성도 때문이다.
강제로 계약하면 충성도가 낮아진다. 거기에 이름이라도 실수해 봐라, 그냥 나가리가 된다.
그러니 차근차근 절차를 밟는 게 좋다.
‘괜히 제이스가 교감이라는 단어를 강조한 게 아니지.’
소환수 직업을 얻으면서 가장 먼저 배운 것이 교감이지 않은가? 나는 그것을 착실하게 실천하는 거다.
“내가 잘할게.”
나는 진심을 담아 그렇게 말했다. 내 진심이 전해지길 바라며 간절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렇게 나는 기다렸다. 눈앞의 새가 고개를 끄덕일 때까지.
“…….”
눈을 마주하고 몇 초가 흘렀을까?
초조했다. 눈앞의 새가 얼른 대답해 주길 바라며 이 시간이 빨리 흘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나 거절할지 몰라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초조함을 벗어나려 할 때였다.
끄덕.
눈앞의 새가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외쳤다.
“완전한 포획.”
-고유 특성 ‘완전한 포획’을 사용합니다.
-대상은 ‘정체를 알 수 없는 환수’입니다.
-포획에 성공했습니다.
환수를 포획했다는 시스템창이 떠오르자 나는 소환수창에서 이번에 포획한 환수의 상태창을 확인했다.
이름 : 피닉스(火)(변경 가능)
등급 : 유니크
계열 : 환수.
레벨 : Lv.169
스텟 : 근력174 민첩169 체력174 지식169 지혜169
충성도 : 70
특이사항 : 불안정한 상태의 환수다. 현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소유자의 레벨과 순수한 능력치로 유지된다. 불안정한 상태를 회복시킬 시 완전한 피닉스로 새롭게 태어난다.
-퀘스트가 생성되었습니다.
[불안정한 피닉스를 완전한 존재로 만들어라.]
난이도 : 극악
제한 : 불안정한 피닉스를 포획한 자.
내용 : 대륙 곳곳에 숨겨진 피닉스의 파편을 회수하라 0/3
보상 : 완전체 피닉스
특이사항 : 강제 퀘스트입니다. 거절할 수 없습니다.
어우야…… 이거 아무래도 엄청난 소환수를 얻은 것 같다.
일단 진짜 내 예상대로 이번에 포획한 소환수는 진짜 피닉스다.
흔히 아는 상식으로 수명이 다했을 때 자신의 몸을 불로 태워 한 줌의 재가 되고, 그 재에서 다시 태어난다는 그 불사조인 피닉스 말이다.
설마 하는 마음이 진짜가 되니 절로 입이 쩍하고 벌어졌다.
이건 엄청난 일이니까.
회귀 전에도 이 정도로 대단한 소환수는 없었다.
화염 속성을 가지고 있는 소환수 중에서 최고가 불의 최상급 정령이었다.
하지만 눈앞의 피닉스는 그 최상급 불의 정령보다 몇 수는 위에 있는 존재다.
단순한 피닉스를 포획한 것도 아니다.
성장과 진화도 가능하다.
이 때문에 개체값이 중요하다는 거다.
단순히 지금 당장만 쓰는 소환수가 아니라 나중에도 계속해서 쓸 수 있으니 말이다.
근데 문제가 있다.
“어…… 음…… 그러니까 불안정하다 이거지?”
특이사항에 나와 있는 내용.
지금 눈앞의 피닉스는 완전한 상태가 아니라 불안정한 상태라는 것이다. 그 때문에 나와 레벨과 스텟이 똑같다는 거고 말이다.
그래도 게임이라 그런지 희망은 있다.
시스템은 피닉스를 완전한 상태로 만들어 주기 위한 방법을 알려주었다. 그것도 극악 난이도를 자랑하는 거절 할 수 없는 퀘스트로 말이다.
나는 조금 불안해졌다.
“괘, 괜찮겠지?”
이미 극악 난이도의 퀘스트를 한번 당해서 그런지 덜컥 겁이 났다.
비록 내가 한 방 크게 먹였다곤 하나, 그대로 기절했었다.
만약 그때 템플러가 죽이고자 하는 마음을 먹었더라면 나는 그 자리에서 죽었을 것이다.
그걸 생각하니 몸이 절로 떨려왔다.
“피이!”
갑작스러운 울음소리.
살짝 떨려 오는 내 어깨 위로 무언가 올라오는 느낌이 들어 고개를 돌려 어깨 쪽을 바라보았다.
“너구나.”
이번에 새롭게 얻은 소환수.
불안정한 피닉스가 내 어깨 위에 앉았다.
확실히 겉모습만으로도 불안정해 보였다.
크기는 아까보다 줄어들어 절반 정도 되지 않았다. 거기에 이글이글 불타오르는 몸이 아니라 비약한 불길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런 불안정한 피닉스가 나를 위로해 주는 것인지 부리로 내 얼굴을 살살 긁어주었다. 마치 걱정 말라는 듯한, 그리고 함께 할 수 있다는 마음이 전해져 왔다.
“그래. 함께하면 할 수 있겠지.”
나는 손가락을 들어 녀석의 머리를 슬쩍 긁어주었다.
“피이~ 피이~”
내가 긁어주는 것이 좋은지 기분 좋은 울음소리를 내뱉었다.
울음소리가 특이하다.
‘피이’라 울다니.
그럼 이름을 피이라고 지을까?
“환수 피닉스의 이름을 피이로 짓겠어.”
-환수 ‘피닉스’의 이름을 ‘피이’로 지어주었습니다.
-환수 ‘피닉스’가 이름을 마음에 들어 합니다.
-충성도가 오릅니다.
다행히 이름이 마음에 드나 보다.
나는 피이의 머리를 긁어주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래, 어떻게든 되겠지.
지금의 나는 이대로 멈추는 게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강해질 예정이니까. 어떤 고난이 있어도 해 낼 수 있다.
그리고 내 소환수들과 함께라면 더욱 자신 있고 말이다.
이제 환수계에서 볼일은 끝난 상황.
그럼 이제 다시 돌아가 볼까?
“얘들아. 돌아가자.”
다시 브리타니아 대륙으로 돌아갈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