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9화
#99
“으흠…….”
나는 눈을 천천히 떴다.
등 뒤로 느껴지는 딱딱한 느낌. 코를 자극하는 풀냄새와 함께 흐릿한 시야 속에 보이는 푸른 하늘.
지금 내가 바닥에 누워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는 모든 것들이다.
내가 이렇게 바닥에 누워 있는 이유를 잘 알고 있다.
어이없어 나도 모르게 웃었다.
“하하하……. 기절을 하네.”
물론 기절을 한 것이 처음은 아니다.
회귀 전에는 횟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자주 기절을 했었다.
근데 지금 내가 어이가 없어서 웃는 이유는 따로 있다.
기절. 월오룰에서 기절을 하게 되는 경우는 크게 두 개로 나뉜다.
첫 번째로 스킬로 인한 강제 기절이다. 이런 경우엔 스킬의 상세 설명에 있는 시간만큼 잠깐 기절한다.
기절 스킬의 효과는 보통 2초에서 5초 정도 된다.
이때의 플레이어는 잠깐 눈앞이 검은색으로 물들었다가 정해진 시간이 흐르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다.
짧다면 짧고, 길다고 하면 긴 저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굳이 설명을 할 필요가 없다.
‘뻔하지. 저 기절 스킬을 사용하는 것이 대부분 플레이어니까.’
기절을 당하고 불과 몇 초.
그 뒤는 뭐 설명이 필요 없다. 근처 안전지대에 알몸이나 다름없는 상태로 태어날 거다.
그리고 분노로 가득 찬 욕설을 내뱉겠지.
그리고 다른 기절을 설명하자면 지금의 내가 방금 겪은 기절이다.
이 기절은 조금 특별하다.
스킬이 아니라 순수하게 육체에 엄청난 충격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캐릭터와 캡슐 이용자 간의 연결을 차단하는 시스템이다.
이 순간은 진짜 기절한 것과 같은 느낌을 받는다.
정말도 몇 초에서 몇 분 사이를 기절한다.
그 시간은 얼마나 강한 충격을 받는지에 따라 다르다.
“얼마나 기절한 거야…….”
내가 얼마나 기절했는지는 직접 시간을 확인해야 한다.
아직 흐릿한 시야 속에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눈을 데굴데굴 굴리려는 찰나였다.
“5분 정도밖에 안 되었어.”
들려오는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려 했다.
하나 내 머리는 움직이지 않고 고정되어 있었는지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 내 이마를 누르고 있는 가느다란 손가락을 볼 수 있었다.
“루이즈. 이젠 괜찮아.”
나는 손을 뻗어 손가락을 치워내곤 그대로 몸을 일으켰다.
‘크윽…… 전신이 뻐근하군.’
내 온 힘을 담은 일격을 휘두른 대가치고는 상당히 억울한 면이 있다.
최선을 다한 일격, 그리고 그것을 막은 템플러.
공격을 한 사람은 나지만, 부상당한 것은 나다.
그만큼 NPC 템플러와 나와의 격차가 심하다는 거다.
그와 동시에 떠오른 템플러의 얼굴이었다.
“큭큭큭. 볼 만했어.”
단단히 굳은 얼굴.
그의 굳은 얼굴에 내가 웃는 이유가 있다.
내가 기억하기론 템플러는 자존심이 엄청나게 강한 NPC다. 특히 검술에 관련된 자존심은 대륙에서 가장 프라이드가 강했다.
그가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있는 그의 말이 있었다.
“나는 단 한 발짝도 뒤로 물러나 본 적이 없다.”
그의 자존심을 지켜 준 단 한마디.
실제로 내가 기억하는 템플러는 절대 뒤로 물러나는 NPC가 아니었다.
오직 적을 향해 앞으로 걸어 나가며 스컬 대검으로 황실 소속 기사와 병사, 그리고 플레이어를 무참하게 살해했던 자였다.
그런 자가 내 공격을 막기 위해서 뒤로 한발 물러났다.
물론 방심한 것도 있겠지.
아무리 내가 진심으로 전력을 다한 일격이라고 하더라도 템플러의 경지를 생각하면 한참 멀었다.
방심이 불러온 결과. 그리고 그가 나에게 내뱉었던 한마디까지.
이 두 가지 덕분에 나는 기절했지만 죽지 않았다.
“템플러는?”
“그 인간? 오만하게도 ‘자신의 입으로 내뱉은 약속은 지킨다.’라며 갔어. 확 죽여 버릴까 싶었지만…… 왠지 살려 둬야 할 것 같아서 보냈어.”
“그랬군…….”
조금은 아쉽다.
만약 그대로 루이즈가 죽였다면…… 아마 최강의 적이 하나 줄어들었을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아니라도 미래는 확실하게 바뀌었을 것이다.
오히려 좋은 방향이 될 수도 있겠지.
그럼 뭐 하는가. 이미 가 버렸는걸.
나는 머리를 한번 세차게 흔들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전히 언데드군을 상대로 전투 중인 NPC와 그 속에서 소드 마스터의 진면목을 보이는 니베라 후작이 보였다.
내 귀여운 소환수는 내 근처에서 나와 루이즈를 보호하듯 둘러싼 상태에서 다가오는 언데드만 상대하는 중이었다.
그나마 전투는 거의 막바지에 달해 있었다.
황궁에서 모든 인력을 다 투입이라도 시켰는지 기절하기 전보다도 훨씬 많은 숫자의 기사들이 언데들를 상대하고 있었다.
오러를 머금은 검이 깔끔하게 몬스터의 머리통을 베거나 박살 내는 중이었다.
아마 곧 끝날 것 같았다.
내가 나설 필요도 없어 보였다.
“그럼, 우리는 황궁으로 가 볼까?”
나는 소환수를 전부 불러 소환수창에 넣었다.
다음으로 조용히 구석에서 조용히 숨어 있던 마부를 찾아 황궁으로 향하자고 했다.
“이럇!”
마부의 채찍에 다시 움직이는 마차.
나는 그대로 황궁으로 향했다.
* * *
“고생하셨어요. 플레이어 시저.”
-퀘스트 아이템을 건네주었습니다.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보상이 지급됩니다.
시스템창의 알람이 끝나자 곧이어 공주의 손에 끼워져 있던 반지 하나를 빼더니 나에게 내밀었다.
“남작의 작위를 인정해 주는 반지입니다.”
“감사합니다.”
반지를 받은 나는 바로 정보를 확인했다.
[귀족임을 증명하는 반지]
등급 : 레전더리
내구력 : 100/100
모든 능력치 +10
모든 상태 이상 저항 +10% 증가
-세드릭 제국의 귀족임을 상징하는 반지이다.
-반지에 마나를 주입할 시 인장을 찍을 수 있다.
단순히 반지 하나 치고는 상당히 좋은 옵션을 가지고 있다.
하물며 내가 끼고 있는 반지 중에서 레전더리 반지인 분노의 반지와 비교해도 전혀 꿀리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좋다고 할까? 특히 모든 상태 이상 저항 10% 증가 옵션은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다.
나는 그 반지를 손가락에 끼웠다.
-플레이어 최초로 귀족이 되었습니다.
-업적 ‘나도 이제 귀족’을 획득했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10 추가됩니다.
-명성이 +1,000 증가합니다.
놀랍게도 업적과 함께 명성 포인트가 추가되었다.
반지 하나가 엄청난 이득을 안겨 주었다.
극악 퀘스트를 성공한 보람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내가 떠 오르는 시스템창을 보고 있는 사이에 절대자의 흔적을 살펴보던 공주였다.
그런 공주의 모습을 조심스럽게 바라보며 내 몫의 차를 한잔 마셨다.
-물망초로 만든 차를 마셨습니다.
-10분간 머리를 맑게 해 줍니다.
-지식이 +10 상승합니다.
미, 미친? 무려 지식이 10이나 상승한다고?
나는 지금 눈앞에 있는 차를 보며 어이가 없어 할 말을 잃었다.
이 정도면 한 잔에 100골드는 훌쩍 넘는 가격의 차라는 소리다.
와…… 금수저는 다르네. 가볍게 마시는 차 한 잔이 백 골드가 넘는 물건이라니.
이게 신분의 격차라는 건가.
뭔가 엄청난 차를 마시는 기분이라 나도 모르게 한 모금 마실 때마다 차의 향과 맛을 느끼기 위해 노력해 봤다.
“후루룩.”
에라. 그냥 마시자.
그냥 포기했다.
아무리 월오룰의 시스템이 뛰어나다고 해도 정작 그걸 느낄 줄 모르는 나다 보니 자연스럽게 포기하게 되었다.
차 한 잔을 비워 냈을 때 공주가 내가 가져다 둔 책을 다 읽었다.
“절대자는 그곳에서 특별한 약초를 찾으려 했었어요. 하나 그가 원하는 약초는 이미 누군가가 가져갔고, 그자를 뒤쫓아 갔다고 적혀 있어요.”
지금 내용을 들어 보면 거의 일기장 아냐?
설마 절대자의 흔적이라는 게 일기장이라면 나도 보고 싶어진다.
왜, 그 남의 일기장이라면 궁금해지는 게 사람의 심리가 아닌가? 나도 모르게 그 흔적인 책을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듀스텔 백작령으로 가세요. 그곳에서 절대자의 흔적을 찾을 수 있으실 거예요.”
-퀘스트가 생성되었습니다.
[듀스텔 백작령에서 절대자의 흔적을 찾아라.]
메인 퀘스트
난이도 : 극악
내용 : 절대자가 듀스텔 백작령르로 향했다. 그 뒤를 따라가 보자.
보상 : 연계 퀘스트.
이어서 올라오는 시스템창에 나는 퀘스트를 수락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나는 셀레스틴 공주에게 인사를 올렸다.
그와 동시에 듀스텔 백작령에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떠올렸다.
‘첫 번째는 죄악의 힘. 두 번째는 메인 시나리오, 세 번째는 가직스의 진화다.’
그곳에 서식하는 몬스터는 리자드맨이며 정예 몬스터는 대형 모기가 서식하는 사냥터다.
다만 늪지대라 발이 빠질 수 있어 위험하기 그지없는 곳이다.
‘쩝, 원거리 딜러만 있었어도 꽤 편할 텐데.’
대형 모기나 리자드맨의 경우 늪 근처에 머물다 보니 안전한 땅에서 사냥하기 위해서 원거리 공격을 이용해 끌고 온 다음 사냥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사냥법이다.
한데 지금 당장의 나는 불가능하다. 원거리 딜러가 없기 때문이다.
‘활이라도 하나 들까?’
아무래도 내가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뭐 그게 아니더라도 당장 희망이라 할 수 있는 것이 있긴 하다.
‘환수계, 그리고 마지막 스켈레톤 합성.’
내일이면 환수계를 방문할 수 있다.
그곳에서 원거리 딜러를 데려오면 지금 걱정은 쓸데없는 시간 낭비가 된다.
다만 수많은 환수 중에서 누가 원거리 딜러인지 모르니 아무래도 고르는 데 상당히 신중해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또 하나 기대하는 것이 스켈레톤 100마리의 합성이다.
만약 여기서 스켈레톤 메이지라든가 리치 같은 상위 존재가 된다면 그 또한 원거리 딜러 고민을 해결하는 순간이다.
그러니까, 얼른 듀스텔 백작령으로 향하면 된다.
“시저 남작의 앞길에 축복이 있기를…….”
나를 향해 조용히 두 손 모아 기도하는 셀레스틴 공주의 기도가 끝나길 기다렸다.
기도가 끝나자, 나를 이곳으로 데려와 준 시녀가 나를 데리고 밖으로 향했다.
그럼 출발하기에 앞서 할 게 있다.
“필요한 물품부터 사 볼까.”
이번에 갈 곳은 늪지대.
죄악의 아이템까지 나올 예정인 곳이니 단단히 준비해야 한다.
적어도 열흘은 가볍게 버틸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나는 수도의 번화가로 이동했다.
* * *
황성에서 메인 퀘스트를 받은 그 날 밤.
저녁도 잘 먹고, 헬스장에서 태선이 형이 새로운 프로그램을 개발했다며 나보고 해 보라며 평소 강도보다 두 배나 빡세게 운동을 마치고 돌아왔다.
보통 같았으면 폼 롤러로 혹사당한 내 몸을 풀어 주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지금은 좀 달랐다.
“뭘 입어야 하나…….”
옷장의 있는 옷을 바라보며 고민에 빠졌다.
지금 내일 스케줄을 생각하면 상당히 바쁜 일정이다.
일단 월오룰에 접속해서 환수계로 가야 한다.
무려 한 달 만에 방문하는 환수계.
그곳에서 한 마리의 환수를 완전한 포획 스킬로 데려와야 한다.
첫 환수계 방문에서 얻은 것은 다름 아닌 정체를 알 수 없는 알. 그 알이 죄악의 힘을 흡수할 줄 누가 알았겠나?
덕분에 탐욕의 목걸이 덕분에 추가로 얻는 경험치가 늘었고, 분노의 반지로 강력한 한 방을 날릴 수 있게 된 나다.
자연스럽게 기대된다 이 말이지.
다음 데려올 녀석은 과연 나에게 어떤 이득을 줄지 생각하면 참으로 기대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보통 이런 상황이 왔을 때면 얻을 환수에 대한 정보나 이런 환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폼롤러를 굴려야 하겠지만, 지금 내 신경은 온통 다른 곳에 쏠려 있었다.
“쩝, 지금이라도 나가 봐야 하나.”
시간이 시간이라 열려 있는 옷가게도 몇 곳 없을 텐데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되었다.
아니, 오히려 지금 이렇게 고민하고 있는 사이에 얼른 나가는 게 가장 현명한 정답이 아닐까, 라는 생각에 일단 나가기 위해 등을 돌렸을 때였다.
“에효…… 이럴 거 같더니…….”
나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효진이다.
그러고는 성큼성큼 내 방으로 들어오더니 옷장을 보고는 하나씩 꺼내더니 순식간에 한 벌을 골라냈다.
검은색 슬랙스 바지에 흰색 티셔츠, 거기 위에 걸칠 카디건까지.
“요즘 트랜디는 와이드 핏 슬랙스에 스니커즈로 깔끔하고 단정한 코디가 좋아.”
거기에 가방까지 결정하고는 만족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효진이였다.
집 안에서 게임만 하는 방구석 폐인인 나보다는 학생인 효진이의 추천을 믿을 수 있다.
하물며 내 옷장에 있는 옷인데도 이런 식으로 코디하다니. 역시 젊은 애들의 눈썰미는 다른 것 같다.
내가 고마운 마음을 가득 담은 눈빛으로 바라보려다가 떨떠름한 얼굴로 변했다.
“뭐냐…… 그 표정은?”
“내가? 뭐? 어떤 표정인데?”
내 물음에 효진이가 핸드폰을 들어 얼굴을 확인하더니 아까보다 더 음흉한 얼굴로 변했다.
“평소랑 다른 게 없는데?”
다른 게 없기는 이미 얼굴에서부터 티가 나는데 어디서 거짓말을 하는 거야.
딱밤을 때리려 나도 모르게 손이 올라갔는데, 효진은 그걸 보곤 잽싸게 방으로 도망갔다.
에효. 어쩌다가 동생에게 놀림까지 받을 정도가 되었는지.
그래도 저 밝은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기분 좋은 미소가 피어올랐다.
대충 정리하고 침대에 누웠다.
제길. 잠이 오질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