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8화
#98
-NPC 헬켄을 쓰러뜨렸습니다.
-대량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소환수 ‘루이즈’가 ‘데스 나이트 Lv.843’의 영혼 구슬을 흡수했습니다.
-근력 스텟이 5 상승합니다.
-소환수 ‘루이즈’가 ‘데스 나이트 Lv.732’의 영혼 구슬을 흡수했습니다.
-민첩 스텟이 3 상승합니다.
-대량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레벨 169를 달성합니다.
헬켄을 쓰러뜨리기는 쉬웠다.
순식간에 데스 나이트 두 마리가 움직이지 못하고 바보가 되어 버리자 자포자기한 듯 헬켄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다행스럽게도 내가 예상했던 것처럼 헬켄의 지팡이가 라이프 베슬이었다.
지팡이를 빼앗아 박살 내는 순간까지도 헬켄은 그저 주저앉아 있었다.
홀로 중얼거리는 이야기는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에 대한 후회, 그리고 자신을 이렇게 만든 볼드모드와 신을 대한 원망과 한탄으로 가득했다.
라이프 베슬이 박살 나고 서서히 몸이 재가 되는 그 순간까지도 그는 세상을 원망했다.
“자, 그럼…….”
나는 다시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수많은 망자가 여전히 수도 세크드릭을 노리고 공격하는 중이었다.
“그어?”
“으어어어.”
다만 몬스터들은 처음과는 많이 다른 모습을 보였다.
몬스터들은 지금가지 헬켄의 명령대로 움직였는데, 우두머리가 사라져 우왕좌왕하는 것이다.
그래도 언데드이자 몬스터라서 그런지 살아 있는 인간이 있는 뱡향이자, NPC가 지키는 수도 정문으로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마무리해야겠지.”
갑작스러운 이벤트성 몬스터 웨이브.
그렇다고 해서 이벤트 퀘스트가 발생하거나 그러진 않았다.
짐작 가는 것이 하나 있다면 다름 아닌 내가 받은 메인 퀘스트.
지금 내가 진행 중인 메인 퀘스트는 ‘셀레스틴 공주에게 가는 길에 있는 적을 피해 수도로 입성하라.’였다.
퀘스트의 내용대로 눈앞에 적이라 할 수 있는 망자의 군대와 헬켄, 그리고 두 기의 데스 나이트가 나타났다.
“그런 것치곤 극악 난이도는 아니지 않나?”
문명 퀘스트의 난이도는 극악.
그것 때문에 상당히 긴장하고 있던 나였는데, 지금 상황을 봐라. 긴장은커녕 오히려 들어오는 경험치에 신나서 탭댄스라도 추고 싶은 심정이다.
물론 배운 적도 어떻게 추는지도 모른다.
그냥 그 정도로 기분이 좋다는 거다.
“뭐, 내가 너무 강한 탓이겠지.”
이제는 그러려니 하는 생각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가기도 한다.
사실 이미 내 스텟만 봐도 상당한 수준이고, 내 소환수만 봐도 저마다 강력함이 숨어 있다.
하물며 나와 범이, 팅고의 경우엔 아직 200레벨도 넘지 않았다.
앞으로 성장 가능성을 생각하면 할 말은 다 한 셈이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이제 남은 망자의 군대를 처리하기 위해 한발 앞으로 나갔다.
아직도 많은 숫자의 몬스터가 수도 세크드릭을 향해 공격하고 있었다.
저게 다 경험치니 한 마리라도 더 잡아야겠다는 생각이다.
“어느 사냥터를 가더라도 이렇게까지 바글바글한 몬스터는 보기 힘드니까.”
아무리 무리 지어 움직인다 해도 대여섯 마리.
부락을 이루고 있으면 수십에서 많게는 백 마리까지 몬스터가 모여 있긴 하나 여기 있는 수백 마리의 몬스터와 비교하자면 어림도 없는 수준이다.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저기 멀리 떨어진 곳에서 싸우고 있는 범이와 팅고, 가직스, 숭이를 향해 다가가려는 찰나였다.
오싹.
갑작스럽게 등골을 타고 느껴지는 오싹한 기분에 그 자리에서 멈춘 나다.
그것만이 아니다.
언제부터였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순식간에 내 몸을 짓누르는 강한 압박감은 물론이고, 헬켄이 죽고 나는 다음부터 느껴지지 않던 짙은 마기의 향이 내 코를 자극했다.
‘엄청난 강자다.’
지금까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강자가 지금 등 뒤에 있는 것이다.
당장에라도 고개를 돌려 누구인지 보고 싶었다.
‘이 압박은 한번 느껴 본 적이 있다.’
묘하게 익숙한 이 기운.
순식간에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기억과 함께 내 등 뒤에 있는 존재가 누구인지 짐작이 갔다.
나는 서서히 떨려 오는 손끝을 참으며 억지로 주먹을 쥐어 내가 떨고 있지 않고 있음을 보여 주려 노력했다.
“오호…… 이 늙은이의 기세를 받고도 안 떠는 젊은이는 처음 보는군.”
중저음의 목소리.
성우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깨끗하고 귀에 속속 박히는 톤을 가진 남자.
이미 내 머릿속은 그 남자의 이름이 떠올랐지만, 쉽사리 입으로 뱉어 내기가 어려웠다.
“마신교의 보물을 찾으러 나왔는데…… 이미 누군가 가져갔더군. 그 뒤를 추적하며 따라오니 이곳이더군.”
마치 아주 성가신 일을 맡게 되어 아주 귀찮아 죽겠다는 말투. 거기에 뿜어져 나오는 은은한 기세는 그 상대를 죽이고 싶다는 듯한 기세였다.
그러곤 마지막으로 나에게 물었다.
“혹시 자네인가?”
무미건조한 말투.
툭하고 내뱉은 말이었지만 그 말은 내 심장을 훅하고 찌르는 듯 날카로웠다.
순간 나는 고민에 빠졌다.
‘어쩌지? 어떻게 대답해야 하지?’
당연한 고민이다.
지금 뒤에 있는 NPC는 마신교의 절대 강자 템플러다.
이건 굳이 내가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알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에게 거짓말을 한다?
‘아마 통하지 않을 거야.’
분명 내 거짓말은 바로 탄로 날것이다.
딱히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 상으로 그렇게 될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에서야 이 퀘스트의 난이도가 극악이 왜 붙었는지 알 것 같았다.
뒤에 있는 저 NPC 템플러 때문에 말이다.
‘그렇다고 솔직하게 말해?’
그런다고 해서 저 NPC가 나에게 ‘그렇군. 축하하네.’와 같은 말로 나를 칭찬해 줄 것도 아니다.
내가 보아왔던 템플러는 말보다는 검이 앞서는 자였다.
회귀 전. 황실 군에서 한 기사가 대화를 하려 몇 번이나 접선한 적이 있었다.
그때마다 템플러는 가차 없이 검을 휘두르며 말했다.
“대화를 나눌 가치가 없다.”
그 자리에서 가슴에 구멍이 뚫리거나 하나의 몸뚱이가 두 개로 나뉘는 죽음을 맞이한다.
그게 끝이면 참으로 다행이지만 안타깝게도 스컬 대검의 패시브 스킬로 인해 스켈레톤으로 부활해 방금까지 아군이었던 자들을 향해 달려가게 만든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그와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누는 것조차가 불가능하다는 거다.
지금 이 상황을 벗어날 방법으로 가장 좋은 방법이 하나 있긴 하다.
루이즈의 고유 권능인 ‘영혼 착취’ 스킬을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
그렇다면 NPC 템플러 또한 쉽게 제압할 수 있다.
‘하필이면 쿨 타임이지.’
하지만 루이즈의 스킬은 이미 데스 나이트 두 기를 제압하는 데 사용했다.
당장 사용할 수 없으며, 앞으로 30분이나 더 기다려야 한다.
지금 내가 템플러를 상대로 30분을 버틴다?
어림없는 소리. 3초도 불가능할 것이다.
이리저리 빠르게 머리를 굴렸지만, 딱히 마땅한 대답이 없다.
‘에라, 모르겠다.’
나는 그냥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대로 말했다.
“제가 가졌습니다.”
그냥 쿨하게 인정했다.
뭔 일이라도 일어날 게 너무나도 뻔한 상황이라 나도 모르게 긴장하며 몸이 움츠러들었다.
하나 내 예상과 다르게 등 뒤에서 시원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허허허. 재밌군, 재밌어.”
정말로 어이없다는 듯한 목소리였다.
거기에 방금까지 나를 압박하던 기운이 전부 사라졌다.
등을 돌려 템플러가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여전하군.’
등을 돌려 마주한 NPC 템플러.
흑색의 갑주를 위아래로 꼼꼼하게 둘러싼 것은 물론이고, 그가 입고 있는 검은색의 망토가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새하얀 백발과 다르게 피부는 중년의 나이로 보였고, 잘생긴 외모를 가지고 있는 그였다.
중년 미의 남성으로 남자 NPC 인기투표에서 늘 상위권에 자리 잡고 있던 그 템플러가 지금 눈앞에 있다.
“이 늙은이를 정면으로 보고도 당당한 모습을 보인 자는 처음이네. 이름이 뭔가?”
놀랐다.
내가 아는 템플러라면 지금 당장 검을 휘둘러 날 죽여도 이상하지 않다.
거기에 날 발견하고 죽이려고 바로 달려들던 헬켄과 다르게 나에게 대화를 걸었다는 것은 상당히 의외다.
“플레이어 시저입니다.”
“시저라……. 자네가 그 시저군.”
마치 내 이름을 들어 보았다는 듯 말하는 템플러였다.
하긴 그럴 만도 한 것이, 메인 시나리오를 시작하고부터 내 이름이 마신교에 자연스럽게 알려졌다.
하나 그다음으로 하는 말에 나는 더욱 긴장하게 되었다.
“자네가 그 플레이어군. 마왕님의 천적이자 ‘서머너 킹’이라 불리는 플레이어 말이야. 그러고 보니 교단에서도 자네를 보면 죽이라고 했지.”
무섭게 말하는 것 치고는 별다른 행동을 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나를 위아래로 한번 훑어보더니 말했다.
“뭐, 나랑 관련 없는 일이지. 오히려…….”
말끝을 흐리는 템플러가 궁금하다는 듯 말했다.
“그 검의 인연이 자네에게 어울릴지 궁금하군.”
그와 동시에 그가 허리에 걸려 있던 검을 뽑았다. 그러곤 나를 향해 겨누었다.
“당장에라도 자네를 죽일 수 있지만…… 나에게 흥미를 이끈다면 살려 주지. 어떤가? 내 제안이.”
그 말에 나는 오히려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전신을 떨며 기뻐하며 외쳤다.
“가, 감사합니다!”
내가 이렇게 감사하는 말과 함께 그 자리에서 바로 천마검을 꺼내 드는 것은 이유가 있다.
호기심. 그리고 호승심.
이 두 가지가 지금 나를 지배하고 있다.
‘이런 기회를 쉽게 얻을 수 없잖아?’
눈앞에 있는 존재는 회귀 전을 기준으로 했을 때 최강의 NPC라 불리던 템플러다. 그것도 마신교의 암흑 기사단의 단장인 그 템플러 말이다.
그런 자가 나에게 검으로 대화를 나누자고 한다.
물론 이 대화로 인해 내 목숨이 날아갈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 싸움을 할 것이다.
회귀 전의 나는 템플러 앞에도 서지 못할 정도로 약한 평범한 플레이어였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린 것으로 숨이 막혔던 것이 불과 어제다.
사실 지금도 정면으로 템플러의 기운과 기세를 버틸 거라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래도 이거 하나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경험해 본 것과 하지 않은 것은 차이가 크다.’
그러니 나는 이번 기회에 경험해 보려는 것이다.
“좋은 선택이네.”
내 대답에 흡족한지 슬며시 웃는 템플러였다.
그런 그와 다르게 나는 긴장을 하기 시작하며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지는 것을 느꼈다.
‘검은 평범한 클레이모어군.’
길이 120cm즘 되어 보이는 검이다.
손잡이는 십자형으로 장식 하나 없이 심플했다.
단순히 보기엔 대장간에 굴러다니는 흔하디흔한 검으로 보이지만, 눈앞의 템플러의 위치를 생각하면 평범한 생김새와 다르게 매우 튼튼하거나 날카로울 것이다.
그에 비해 내 손에 들려 있는 천마검은 브로드 소드의 형태라 보면 되었다.
전체 길이 80cm 정도 되었고, 내 검 또한 특별한 장식 없이 손잡이와 손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가드가 전부다.
나는 천마검을 템플러에게 겨누며 속으로 마음을 다스렸다.
‘할 수 있다.’
지금 이 순간, 나는 최선을 다 할 것이다.
우우우웅!
나는 오러 스킬을 이용해 천마검에 오러를 씌웠다.
소드 마스터는 아니지만, 소드 익스퍼트 상급에 근접한 내 오러를 보자 놀랍다는 듯 템플러가 중얼거렸다.
“어린 나이에 상당히 높은 경지를 가졌군. 소환사가 아니라 검사로서 키워졌다면…… 소드 마스터가 되었을지도 몰랐겠군.”
덕분에 시시하게 끝나지 않을 것 같아 만족한다며 중얼거리더니 그도 오러를 만들어 냈다.
우우웅!
내가 뿜어내는 푸른색의 오러가 아닌 암흑 기사단의 오러인 검은색의 오러가 말이다.
형태가 뚜렷하지 못한 나와 다르게 완벽한 오러 블레이드가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충분히 기다린 듯하니. 자, 그럼 어서 오게.”
나를 향해 기회를 주겠다는 듯 템플러가 자세를 잡았다.
그런 그를 향해 나는 검을 들고 템플러를 향해 뛰었다.
끼이익.
천마검의 손잡이에서 나는 소리다.
순수한 내 근력을 전부 사용하겠다는 듯 세게 꽉 쥐었기에 천마검이 아프다고 비명을 지르는 소리 같았다.
하나 내 힘을 풀 순 없다.
단 일격. 난 오직 단 한 번의 일격으로 내 모든 것을 보여 줄 생각이다.
그렇기에 힘을 풀 수가 없다. 아니, 오히려 더욱 강하게 검을 쥐기 위해 노력했다.
불끈.
내 두 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단 한순간의 일격을 위해 두 다리가 튼튼하게 고정될 수 있도록 무게 중심을 잡았다.
그와 동시에 나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던 필살의 스킬을 발동했다.
“분노의 일격!”
필살의 일격을 위해 아껴 두었던 스킬을 처음으로 꺼내 들었다.
-스킬 ‘분노의 일격’이 발동됩니다.
-다음 일격에 추가 10배의 대미지를 상승시킵니다.
반지의 옵션이 발동되는 사이에 나와 템플러의 거리가 좁혀졌고, 이제 검을 휘두르기만 하면 되는 거리에 다다랐을 때 나는 외쳤다.
“가로 베기!”
내 혼신을 다한 스킬인 가로 베기가 시전되었다.
까앙!
엄청난 굉음과 함께 눈앞에 불꽃이 화려하게 튀며 폭음을 일으켰다.
콰앙!
폭음과 함께 충격이 내 전신을 두드렸다.
오장육부를 잡고 쥐어짜는 듯한 엄청난 고통과 함께 의식이 서서히 멀어져 갔다.
희미해져 가는 눈동자를 어떻게든 부여잡고 템플러를 바라봤다.
“…….”
그의 얼굴엔 상당히 놀랍다는 듯 굳어 있는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제야 나는 편하게 의식의 끈을 놓았다.
‘성공했네.’
내 눈에는 뒤로 한 걸음 물러난 템플러를 발견할 수 있었고, 기분 좋은 미소와 함께 의식이 멀어지는 것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