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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소환수가 너무 강함-97화 (97/275)

제97화

#97

헬켄을 발견하고 군침이 싹 도는 것은 둘째 치고, 다른 문제가 생겼다.

“리치?”

하필이면 리치가 된 것이다.

리치가 어떤 존재인가.

마법사가 사악한 흑마법의 힘을 빌려 영생을 누리기 위해 인위적으로 자신의 생명을 라이프 베슬에 넣어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이 월오룰의 설정이다.

그러니 라이프 베슬을 파괴해야지만 죽일 수 있는 것인데, 이게 판타지 세상이 아니라 월오룰, 즉 게임 속 세상이기에 라이프 베슬은 항상 리치가 들고 다닌다.

‘뭐가 라이프 베슬일까?’

나는 서둘러 눈앞의 헬켄을 바라보며 놈의 무장 상태를 점검했다.

당장 보이는 것은 놈이 걸치고 있는 검은색의 로브다.

거기에 손에 쥐고 있는 지팡이.

지팡이는 평범했다.

그도 그런 것이 내가 기억하는 마신교의 흑마법사들과 달랐기 때문이다.

마신교에 속해 있는 흑마법사들이 쓰는 지팡이는 대부분 끝에 해골이나 뼈로 만들어진 장신구, 혹은 인간의 장기 일부를 마법으로 굳혀 만든 지팡이를 든다.

‘심한 건 지팡이에서 심장이 팔딱팔딱 뛰면서 피를 뿜어냈지.’

정말이지 미관상으로 좋지 않아 절로 인상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볼 때마다 얼마나 욕을 했는지.

처음 나도 보았을 때 순간 토가 쏠리는 것을 겨우 참았다.

그만큼 살아 있든 장기를 보는 것이 썩 기분이 좋지 않았으니 말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흑마법사 지팡이를 떠올리자면 중지만 펴고 나머진 접고 있는 손을 박고 다녔던 흑마법사다.

이름도 패드릭인가 그랬던 거 같았는데, 아무튼 그놈의 지팡이가 제일 기억난다.

하지만 헬켄은 그런 흉측하고 괴상한 지팡이가 아니라 흔히 마탑과 유저들이 사용하는 마법 지팡이를 들고 있다.

지팡이 끝에 달려 있는 마력석이 찬란하게 빛을 뿜어내고 있었으며, 딱히 이렇다 할 특징이 있는 물건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갑옷을 입은 것도 아니고, 순백의 백골이 눈에 잘 보일 정도니 몸에 딱 걸치고 있는 것은 없다.

‘그렇다면 하나네…….’

저 지팡이에 달려 있는 마력석을 최우선으로 노려봐야 할 것 같다.

홀로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에 헬켄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나를 향해 접근했다.

“죽어! 본 스피어!”

그의 손에 만들어진 뼈로 만들어진 창이 나를 향해 날아왔다.

평범한 뼈의 창이 아니었다.

헬켄의 경지를 나타내듯 뼈로 만들어진 창의 두께는 성인 팔뚝만 했고, 길이 또한 2미터는 훌쩍 넘어 보였다.

콰앙!

그 창의 종착지는 내 복부가 아닌 내 등 뒤에 박혀 있던 커다란 바위였다.

이유는 간단하다.

저 엄청난 두께를 자랑하는 날카로운 창이라고 하더라도 저 먼 거리에서 던졌는데 보고도 못 피하면 X신이지.

내 스텟을 생각하면 미리 알고만 있다면 충분히 피한다.

그런 나 때문일까? 헬켄이 소리쳤다.

“쥐새끼 같은 놈!”

아마 살아 있는 몸이었다면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거나 부들부들 몸을 떨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새하얀 백골만 있는 그의 몸뚱이.

그래도 분노를 느끼는 것을 증명하듯 그의 목소리가 분노로 가득 찼다.

“다크 파이어 볼!”

분노가 가득한 목소리에서 나온 주문은 나조차도 긴장하게 만드는 스킬이다.

‘쳇. 이건 피해야 한다.’

이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스킬이 아니다.

지금 나를 향해 시커먼 화염을 뿜어내며 날아오고 있는 스킬은 무려 유니크 등급의 스킬이다.

대미지도 대미지지만 저 다크 파이어 볼의 귀찮은 점은 쉽게 불길이 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을 뿌린다거나 바닥에 비벼 끈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신성력을 기반으로 한 정화나 회복 스킬, 혹은 유니크 등급의 치료 스킬, NPC 마법사라고 하면 5클래스 이상의 마법사의 회복 마법뿐이었다.

그게 아니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부 불타 버리며 HP가 0이 되어야 꺼진다.

전력을 다해 몸을 옆으로 날렸다.

다크 파이어 볼은 아슬아슬하게 내 몸을 스쳐 지나갔다.

콰앙!

내 곁은 스쳐 지나가고 떨어진 종착점은 다름 아닌 망자의 군대가 있는 곳.

거대한 폭음과 함께 그 자리에 있던 좀비와 구울이 녹아내렸다.

머리를 깨트려야 죽는 언데드지만, 다크 파이어 볼은 그 언데드를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다 태워 버리기에 그 자리에는 한 줌의 재만이 남았다.

“쩝, 내 경험치.”

저게 다 경험치인데 못 먹게 되니 조금은 안타까워 나도 모르게 입맛을 다시게 되었다.

그런 내 마음도 모르고 헬켄은 나를 향해 계속해서 마법을 사용했다.

“다크 에로우! 본 스피어! 커즈 포이즌!”

흑마력으로 만들어진 화살에 한걸음 뒤로 물러나자 그 자리에 박혔다.

그런 날 예상한 것인지 뼈로 만들어진 창이 나를 향해 날아오는 것이 보였다.

“하합!”

나는 그대로 손에 쥐고 있던 천마검을 휘둘렀다.

그냥 휘둘러 쳐내는 것이 아닌 살짝 점프해 허공에 뜬 상태로 말이다.

까앙!

날카로운 쇳소리와 함께 뼈의 창이 튕겨 나갔고, 그와 동시에 내 몸 또한 뒤로 한참 밀려났다.

그리고 방금 내가 있던 자리에 독을 머금은 연기가 고약한 냄새와 함께 땅이 썩어 갔다.

“크악! 촐랑촐랑 잘도 도망가는구나!”

아까보다 더욱 고함치며 화를 내는 헬켄이다.

살아 있는 몸이었음 벌써 얼굴이 터지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붉게 물들고도 남았겠지만, 리치기에 새하얀 두개골만이 보일 뿐이었다.

헬켄은 멈추지 않고 나를 향해 공격하려는 것인지, 지팡이를 들고 있지 않은 손까지 들어 올렸다.

나는 그것을 보곤 외쳤다.

“서, 설마!”

내가 당황했다는 듯 말을 떨며 외치자 헬켄이 방금까지와 다르게 기대한다는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흐흐! 이번에는 다를 것이다!”

순식간에 놈의 몸 주변으로 흑마력이 집중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런 놈에게 나는 외쳤다.

“한 손으로 ‘다크 핸드’를 만들어 나를 붙잡으려고 하고, 다른 손으로 도망갈지 모르니 ‘본 스피어’를 날린 다음, 그래도 안 되면 ‘본 월’을 만들어 나를 가둔 다음에 그곳에 있는 시체를 ‘커프스 익스플로젼’을 사용해 터트리려고 했냐?”

내 말에 방금까지 손을 들고서 나를 향해 마법을 사용하려던 헬켄이 멈칫했다.

그러곤 나를 향해 지금까지 분노로 가득해 흥분하던 목소리가 아니라 황당하다는 듯 그리고 어떻게 알았냐는 듯 나에게 물었다.

“어, 어, 어떻게?”

실제로 그의 손에는 두 개의 마법이 만들어져 있었다.

지팡이를 들고 있는 손에는 본 스피어가, 반대편 손에는 다크 핸드를 조종하기 위한 검은색의 기운이 뭉쳐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뭐, 그냥.”

그냥은 무슨.

사실 나에게 있어서 흑마법사, 또는 암흑 기사단을 상대하는 것이 가장 쉽다.

그 이유가 있다.

‘가장 최근까지 싸웠던 적이 저들이니까.’

최근이라기보단 아주 진절머리가 날 정도로 지긋지긋하게 싸웠던 것이 흑마법사, 암흑 기사단이기 때문이다.

내가 한번 말했듯이 월오룰은 마신교의 등장으로 세계관이 확 바뀌었다.

원래는 단순히 다시 강림할 마왕을 대비해 힘을 기르며 오픈 월드 세상을 탐험하는 것이 월오룰이라는 게임이었다.

몬스터는 사냥해서 경험치를 얻어 레벨을 올리고, 부산물로 돈을 벌고 무기와 방어구를 마련하며, 세상을 탐험한다.

흔하디흔한 MMORPG 게임이다.

하나 마신교의 등장과 함께 세상이 반으로 나뉘어 서로 싸우기 시작하고부터는 달라졌다.

몬스터보다는 마신교에 속해 있는 흑마법사와 암흑 기사단과 자주 부딪치게 된다.

하물며 유저들도 반반으로 편이 나뉘다 보니 사냥터에서 몬스터를 사냥하기보단 플레이어 사냥을 더 하게 만들어졌을 정도로 월오룰 세계관이 변했다.

그런 내가 회귀하고 한 달밖에 지나지 않았다.

흑마법사와 암흑 기사단과 뒹굴뒹굴하던 것이 고작 한 달 전이라는 것이고, 회귀하고 지금 내가 서 있는 이곳은 무려 9년 전에 들렀던 곳이다.

기억의 비중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오히려 저렙 사냥터의 몬스터보다 쟤들이 더 쉽다 이거지.”

나는 그대로 천마검을 빼 들고 앞으로 뛰었다.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가자 헬켄이 소리쳤다.

“호락호락 당할 내가 아니다!”

손에 만들어진 두 개의 마법을 동시에 나를 향해 던졌다.

어둠의 기운으로 만들어진 손이 내 몸을 붙잡기 위해 다가왔고, 그 뒤를 따라 본 스피어가 내 몸을 꿰뚫겠다는 듯 날아왔다.

나는 달려가는 방향을 꺾어 두 개의 마법을 피했다.

흑마법사를 상대로 가장 멍청한 짓은 정면으로 돌파하는 것이다.

흑마법사들은 한 방, 한 방이 묵직한 데미지를 갖고 있기에 그들에게 정면으로 돌파하는 것은 그냥 때려 달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처음부터 나는 언제든 옆으로 꺾을 준비를 한 상태에서 달렸기에 무리 없이 피했다.

“하앗!”

나는 헬켄에 순식간에 접근했고, 기합과 함께 일단 머리통을 날려 줄 생각으로 검을 휘둘렀다.

카앙!

“히익!”

쇠와 쇠가 마주한 소리와 뒤이어 들려오는 헬켄의 목소리.

내 검은 헬켄의 머리통에 닿기 직전 아슬아슬한 거리에서 멈춰 있었다. 헬켄의 마법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검이 십자로 교차하여 내 검의 진로를 완벽하게 차단했기 때문이다.

“흠…….”

나는 신음과 함께 뒤로 물러났다.

생각보다 손이 얼얼했다.

나름 스킬 없이 순수 악력의 절반가량을 써서 휘두른 검인데 얼얼한 것을 보면 상대의 힘이 상당히 강하다는 증거다.

나는 천천히 내 검을 막은 존재를 바라보았다.

[데스 나이트 Lv.843]

[데스 나이트 Lv.732]

눈앞의 두 존재를 보니 수긍이 갔다.

저 정도의 레벨의 데스 나이트는 이곳에서 볼 수 없는 수준의 몬스터다.

아마 회귀 전 이 시점의 나였다면 벌벌 떨며 공포에 물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강력한 존재이며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짙은 마기는 물론이고 육중한 갑옷과 들고 있는 검에서부터 풍겨 오는 살기로 충분히 겁을 먹고 벌벌 떨어도 이상하지 않다.

“후후후. 아무리 네놈이 강하다고 해도 이 두 데스 나이트는 이기지 못할 것이다. 인간의 시체로 만든 것이 아니라 마족의 시체로 만들어진 것이니 더더욱 상대하기 힘들 것이야.”

혼자 신난 듯한 목소리로 외치는 헬켄.

두 데스 나이트는 그런 헬켄을 보호하듯이 서서 나를 향해 검을 겨누었다.

언제든 공격하겠다는 의지를 뿜어내듯 몸에서 짙은 마기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어우야. 무섭네, 무서워.

헬켄이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내가 여기서 벌벌 떨면서 오줌이라도 지리는 모습을 보여야 하나 싶을 정도로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는 듯했다.

“하…… 어쩌냐…….”

나는 한숨을 푹 쉬며 그렇게 말했다.

진짜 어쩌지.

뭐라 할까. 저리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는 듯 기고만장한 헬켄에게 미안한 마음이 생겨났다.

저 무시무시한 데스 나이트를 처리할 아주 쉬운 방법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내가 말하기 전에 벌써 알아차린 내 소환수 하나가 다가왔다.

“어머! 낮선 남자에게서 익숙한 향기가 나.”

나에게 슬쩍 다가온 루이즈가 내 어깨에 팔을 기대고는 고개를 척하고 올렸다. 그리고 내 귀에다가 조용히 속삭였다.

“어떻게 할까나?”

야릇한 목소리.

거기에 검지로 내 볼을 살짝 찌르며 짓궂게 말하는 그녀 때문에 절로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지금 루이즈는 나에게 장난을 치는 것이다.

누가 봐도 자신이 나서야 할 때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그녀.

하지만 이런 기회가 자주 오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나와 함께 이런 상황을 즐기며 함께할 수 있는 것이 기분이 좋아서 이러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우린 소환사와 소환수 사이니까.

영혼의 계약을 한 사이. 어느 정도 서로에 대한 감정을 읽을 수 있다.

그러니 이 장난의 장단에 맞춰 줘야지.

나는 손을 뻗어 루이즈의 허리를 감싸며 내가 있는 방향으로 당겼다.

“꺅!”

수줍은 소녀처럼 귀여운 비명을 지르며 나에게 안기는 루이즈.

그런 비명과 다르게 얼굴에는 만족한다는 듯, 그리고 다음의 행동과 대사를 기대하는지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부탁드려도 될까요? 레이디.”

나는 최대한 부드러운 미소로 그녀에게 부탁했다.

말로 부탁해서는 이 장난이 재미가 없다. 나는 그녀의 이마에 입술을 가져가며 키스했다.

쪽.

일부러 생생하게 들리도록 크게 소리 내었다.

그러곤 부탁했다.

“이건 선불입니다.”

이걸로 과연 루이즈가 만족할까?

나는 장담한다. 이거면 완벽하다.

그리고 기뻐하는 루이즈의 입에서 기분 좋은 소리가 들렸다.

“합격!”

그와 동시에 루이즈의 손가락이 ‘딱’하고 튕겼다.

-소환수 ‘루이즈’가 고유 권능 ‘영혼 착취’ 스킬을 사용했습니다.

-대상은 데스 나이트입니다.

시스템창이 떠 오름과 동시에 눈앞의 두 데스 나이트가 그대로 허물어졌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헬켄이 당황한 듯 중얼거렸다.

“이, 이걸 어찌…….”

그러게. 이걸 어쩌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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