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6화
#96
수도 세크드릭에 나타난 망자의 군대.
그 숫자는 눈으로 셀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숫자였다.
스켈레톤을 선두로, 그 뒤를 따르는 좀비와 구울, 멀리서 각종 마법을 날리는 스켈레톤 메이지까지.
수도 세크드릭을 중심으로 양쪽에 있는 여섯 개의 사냥터에서도 볼 수 없는 몬스터였다.
문제는 숫자도 숫자지만, 몬스터 한 마리, 한 마리 전부 레벨이 높다는 점이다.
[스켈레톤 Lv.345]
[스켈레톤 메이지 Lv.385]
[좀비 Lv.402]
[구울 Lv.399]
평균 레벨 380을 넘기는 수준.
앞에서 스켈레톤이 날뛰고 뒤따라온 좀비와 구울이 물어뜯으며, 멀리서 스켈레톤 메이지가 마법을 날리는 식으로 수도 세크드릭을 향한 공격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 망자의 군대와 싸우고 있는 것은 NPC.
수도와 황궁을 지키는 병사들이 밀려오는 망자의 군대를 향해 악다구니를 써 가며 들고 있는 무기를 휘두르고 있었다.
“막아라!”
“빌어먹을 스켈레톤!”
“크아악!”
“한스! 개놈들 내가 네놈들은 꼭 죽인다!”
“사, 살려 줘…….”
이곳은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병사들은 망자의 군대를 향해 정신없이 무기를 휘둘렀다.
분명 방금까지만 해도 함께 웃고 떠들던 전우가 죽어 가는 모습을 눈앞에서 본다.
전우의 죽음에 처절한 절규가 전장을 맴돈다.
하나 그 절규는 이내 망자의 군대를 향한 분노로 변했고, 병사들은 더욱 힘을 내어 한 마리의 몬스터를 죽이려 발악했다.
하나 성문을 지키는 병사들의 한계는 명확했다.
계속해서 밀려드는 망자의 군대로 인해 서서히 뒤로 밀려나는 것은 물론이고, 그 자리에서 수도 없이 죽어 간다.
이제 남은 것은 죽음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병사들의 눈은 서서히 공포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그때였다.
둥! 둥! 둥! 둥!
어디선가 들려오는 북소리.
그 소리와 함께 방금까지 공포로 물들어 있던 병사들의 눈에서 점차 생기가 돌아오기 시작했다.
“기사님들이다!”
“길을 열어 드려라!”
“이제 우리는 살았어!”
“와! 세드릭 제국 만세!”
방금까지 처절한 싸움을 하고 있던 병사들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순식간에 기사들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내는 병사들이었다.
기사들은 그 공간으로 빠르게 진입했고, 가장 선두에 있던 기사가 외쳤다.
“세드릭 제국을 위하여!”
그의 외침에 뒤에 따르던 기사들이 외쳤다.
“황제 폐하를 위하여!”
그 외침과 함께 기사들의 검에서 푸른 오러가 불쑥 솟아올랐다.
춤을 추듯 너울너울 움직이는 푸른 오러에 수도 세크드릭으로 몰려가던 망자의 군대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정확하게 머리를 가르는 기사의 오러는 고통을 모르고 오직 살아 있는 존재를 향해 살육을 떠올리는 이들을 원래 가야 할 곳으로 인도했다.
황실 기사단이 활약을 시작하자 밀려났던 전선을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기사들이 넉넉하게 자리 잡을 수 있는 공간이자, 그 기사들을 받쳐 줄 병사들의 공간까지 만들어졌다.
이대로 밀고 나가기만 하면 되는 상황.
하지만 망자의 군대에서 그걸 가만히 지켜보지 않았다.
슈슈슈슈슝!
무언가 바람을 가르고 날아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수많은 스켈레톤 메이지가 기사들이 있는 곳으로 마법 공격을 날린 것이다.
스켈레톤 메이지가 날리는 마법은 마법으로 치자면 1클래스 마법인 파이어 볼트, 썬더 볼트, 아이스 볼트 마법이고, 월오룰의 스킬 북으로 치자면 노말 등급의 스킬이다.
월오룰의 마법이 시전하는 사용자의 스텟에 영향을 받는 것을 생각하면 그 위력은 평범한 노말 등급의 스킬이 아니다.
평균 레벨 380일때의 마법사가 날리는 노말 등급의 마법이라 하더라도 평범한 유저라면 한 방에 피가 절반 이상이 날아가 버릴 정도로 강력하다.
하물며 제대로 된 방어구가 아니라 가벼운 방어구를 입고 창과 검으로 망자의 군대를 맞서 싸우는 병사에게 있어선 치명적이 공격이다.
“크악!”
“뜨거워!”
“아파…… 아프다고…….”
겨우 자리를 잡고 병사들과 싸우려는 병사들이 마법 공격에 맥을 못 추고 쓰러졌다.
어쩔 수 없다.
병사들을 전원 무장시키기엔 아무리 대륙의 유일한 제국이라는 세드릭 제국에게도 매우 벅찬 일이기 때문이다.
병사들은 순식간에 쓰러져 갔다.
그 때문에 자리 잡았던 공간에 틈이 생겼지만, 망자의 군대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우우우웅!
환하게 빛나고 있는 푸른 오러가 자신의 주인을 지켜 주며 위풍당당하게 울고 있었다.
기사들은 다시 검을 휘둘러 망자의 군대를 죽이기 위해 오러를 머금은 검을 휘둘렀다.
서걱.
그들의 검이 한 번 휘둘러졌을 뿐인데 무언가 베이는 소리가 났다.
피슈슈슝!
또다시 들려오는 소리.
또 한 번 파란 하늘을 형형색색으로 수놓는 무수한 마법에 기사들이 오러를 강하게 뿜어내며 자신을 보호하려는 순간이었다.
“1진 매직 실드!”
갑작스러운 외침.
성벽 위에서 들려온 소리에 기사들은 하늘 위로 올리던 검을 다시 아래로 향했다. 그러곤 더 이상 날아오는 마법 따위는 신경 쓰지 않겠다는 듯 다시 춤을 추었다.
서서서걱.
망자의 군대가 허물어졌다.
기사들이 오러를 이용해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공격할 수 있는 이유는 방금 들린 목소리의 뜻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우우우웅!
허공에 만들어진 투명한 막이 그 자리에 있는 모든 기사와 병사를 감쌌다.
스켈레톤 메이지 마법은 성벽 위에 있는 마법사로 인해 만들어진 매직 실드에 맥없이 막혔다.
“2진 포격!”
또다시 성벽 위에서 외침이 들려왔다.
성벽 위의 마법사들이 망자의 군대를 바라보며 손으로 수인을 그림과 동시에 주문을 외웠다.
그리고 마법이 완성된 순간, 망설임 없이 멀리 있는 스켈레톤 메이지와 몰려오는 망자의 군대로 향해 날렸다.
“파이어 볼!”
“체인 라이트닝!”
“윈터 블레이드!”
“락 케논!”
월오룰로 따지자면 레어에서 유니크 등급의 마법이 순식간에 전장에 떨어졌다.
쿵, 콰앙!
망자의 군대는 엄청난 굉음과 함께 쓸려나갔다.
적 진형 한가운데 생겨난 커다란 구멍에 마법사들이 기뻐했다.
전장의 기세는 다시 제국의 편으로 넘어왔다.
NPC들은 이 기세를 몰아 단숨에 망자의 군대를 쓸어 버리겠다는 듯 힘을 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보아 온 장면만 해도 한편의 전쟁 영화를 보는 듯한 기분. 이 모든 것은 실시간으로 월오룰 공식 홈페이지에 방송되고 있었다.
-와…… 이거 뭡니까? 대박이네요.
-지금 실시간이죠? 지금 수도 앞에 난리 난 거죠?
-대박! 대박! 진짜 영화 한 편 본 것 같네요.
-캬, 이게 한국 게임 클래스다. 주모 국뽕 한 그릇 말아 주소!
└막걸리는 필수지!
└암암, 한잔 걸쳐 보세.
모두가 흥미롭게 그 장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월오룰을 만든 기업은 라온 소프트.
순수 한국 기업이자 외국 자본은 하나도 들어가지 않은 기업이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라도 라온 소프트를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고, 이런 멋진 게임과 영상을 보여 주는 것에 기뻐하며 칭송한다.
모두가 전쟁 영화나 다름없는 영상을 시청하고 있을 무렵 커뮤니티에는 지금 일어난 일에 대한 분석이 한창 이뤄지고 있었다.
-이거 메인 시나리오 냄새가 나지 않음?
└그럴 거 같음.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
└저 어제 저기 지나갔는데 산에 아무런 일도 없는 게 수상하다 생각했는데…… 그 탓인 듯.
└산적 한 마리 못 봄.
└저도 못 봄.
-이전에 이벤트 퀘스트 생각하면 슬 수도 근처에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음.
└님 말 듣고 접속합니다.
└왠지 이벤트 할 것 같아 접속해 봄.
└에이. 설마. 또 이벤트가 시작된다고?
-근데 시기상 슬슬 한 번 할 때 되지 않았나?
-어! 그러고 보니 소환사 시저 그 근처에 있지 않아?
└갑자기 시저는 왜?
└아니 저번 이벤트 1등 했잖아. 혹시나 이번에도 하는 생각이지.
└그제 방송함. 근데 전혀 관련 없는데? 흐레블레 백작령임.
└아, 그럼 아니겠네.
-슬 유저들도 합류해야 하는 거 아님?
-그러게. 수도 무너지면 끝 아닌가?
-아무런 이득 없는 곳을 왜 감? 차라리 다음 사냥터로 가지.
└ㅇㄱㄹㅇ
└인정 또 인정입니다.
-팝콘 들고 구경이나 합시다.
모두가 지금의 상황을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저 구경만 할 뿐 누구 하나 거들 생각이 없어 보였다.
누가 봐도 압도적인 물량으로 몰려드는 망자의 군대가 수도 세크드릭을 무너뜨릴 것 같은 상황임에도 근처에 있는 유저들은 나서지 않는다.
“괜히 죽어 봐. 그게 얼마나 손해인데.”
“암, 굳이 아이템을 담보로 목숨을 걸 순 없지.”
“차라리 이벤트 퀘스트라도 생성되면 몰라도 굳이…….”
“이야……. 영화관에서 보는 거랑 전혀 다르네. 진짜 생생함이 느껴져.”
“이 맛에 월오룰 하지.”
망자의 군대와 NPC간의 싸움을 성벽 위에서 바라보는 유저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재밌는 구경이라도 하는 것처럼 즐기고 있을 무렵이었다.
“어? 저기!”
“그놈 아냐? 시저?”
“와, 저 새낀 이 와중에도 그냥 싸우네.”
“호구네, 호구야. 굳이 이걸 직접 뛰어드네.”
그들의 시선에 한쪽에서 소환수와 함께 싸우고 있는 시저가 들어왔다.
* * *
나는 검을 휘둘렀다.
서걱.
좀비의 목을 베었다.
허공에 떠오르는 좀비의 머리통을 바라보며 외쳤다.
“범이 꼬리치기.”
“냐앙!”
내 명령에 범이가 허공에 떠 있는 머리통을 향해 꼬리치기 스킬을 시전했고, 머리통은 그 자리에서 터졌다.
-소환수 ‘범이’가 좀비를 사냥했습니다.
-경험치 1,000을 획득했습니다.
-식탐의 목걸이의 효과로 추가 경험치를 3,000을 획득합니다.
달달하다.
경험치 하나하나가 엄청난 양으로 들어온다.
이걸 그냥 넘어갈 수 있겠는가? 당연히 나는 열심히 사냥한다.
나는 스킬을 연속으로 시전했다.
“가로 베기. 세로 베기. 찌르기.”
세 번 연속으로 이어지는 스킬에 눈앞에 있던 구울 세 마리가 그대로 허물어졌다.
-구울을 사냥했습니다.
-경험치 1,000을 획득했습니다.
-식탐의 목걸이의 효과로 추가 경험치를 3,000을 획득합니다.
-구울을 사냥했습니다.
-경험치 1,000을 획득했습니다.
-식탐의 목걸이의 효과로 추가 경험치를 3,000을 획득합니다.
-구울을 사냥했습니다.
-경험치 1,000을 획득했습니다.
-식탐의 목걸이의 효과로 추가 경험치를 3,000을 획득합니다.
줄지어 올라오는 시스템창을 무시하곤 바로 팅고를 불렀다.
“팅고! 대지 강타!”
“추웅!”
팅고의 손에서 무기가 허공으로 던져졌다.
빈손이 된 두 주먹이 강하게 움켜쥐고는 그대로 지면을 후려쳤다.
콰앙!
-소환수 ‘팅고’가 스킬 ‘대지 강타’를 사용했습니다.
-대지 강타 스킬의 영향권에 있는 모든 적이 혼란스러워합니다.
-좀비가 기절합니다.
-구울이 혼란스러워합니다.
-스켈레톤이 넘어집니다.
각종 상태 이상을 만들어 낸 팅고가 허공에서 떨어지는 무기를 다시 쥐고는 상태 이상에 걸린 몬스터를 학살했다.
또다시 시스템창이 줄지어 올라왔지만 무시하고 다시 명령했다.
“가직스. 가시 방출!”
“캬락!”
가직스의 어깨에서 십여 개의 가시가 방출되었다.
투투투투투툭!
순식간에 머리통에 커다란 구멍이 생긴 몬스터가 바닥으로 천천히 쓰러졌다.
그런 가직스 뒤로 숭이 녀석이 튀어나왔다.
“우끼! 우끼!”
내가 준 냉기가 서린 건틀릿을 끼고 몬스터의 움직임을 느리게 만들었다.
단순히 느리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죽일 수 있는 능력을 증명하듯 일격에 한 마리의 스켈레톤의 머리통을 박살 내기 시작했다.
“크…… 달다, 달아.”
진짜 줄지어 올라오는 시스템창에 나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며 좋아했다.
지금 한 마리당 사천 경험치를 먹고 있다. 이건 뭐, 엄청난 효율을 넘어서 쭉쭉 성장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정도.
눈앞에 보이는 망자의 군대만 다 쓰러뜨려도 레벨 300까지는 무난하게 달성할 것 같았다.
그러다 보니 신이 났고, 적진 깊숙한 곳에서 소환수와 함께 마구 날뛰었다.
벌써 내 손에 죽은 망자의 군대만 100마리가 넘었고, 소환수를 포함하면 500마리가 넘어갔다.
레벨 업을 했다는 시스템창도 무시할 정도로 전투에만 집중하던 나였다.
그러던 중이었다.
“노옴! 시저!”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그 자리엔 웬 리치가 하나 있었다.
새하얀 순백의 몸을 가지고 검은색의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는 리치 말이다.
의아한 얼굴로 바라보다 위에 떠 있는 이름표를 본 순간 화들짝 놀랐다.
[NPC 헬켄 Lv. 742]
“헬켄?!”
놀랍게도 튜벨란 백작이 놓쳤다는 헬켄이 그 자리에 있었다.
놈의 현상금이 얼마더라?
벌써부터 군침이 싹 돌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