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5화
#95
헬켄이 망자의 군대를 만드는 이유가 있었다.
다름 아닌 마신교의 명령.
그는 저번 실패한 일을 만회하기 위해 이렇게 망자의 군대를 만드는 중이었다.
“쳇……. 내가 리치가 될 줄이야…….”
헬켄은 5클래스 마법사였다.
한때는 엘리트 코스를 밟고 성장했으며, 훗날 대현자 볼드모드 다음으로 버금갈 마법사가 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러질 못했다.
그의 경지는 40년을 노력해도 그 자리인 5클래스 마법사였다.
거기에 함께 마탑에서 마법사의 길은 가던 동기들은 6클래스를 목전에 두고 있었고, 한 명은 이미 6클래스를 넘어섰었다.
마법 실력으로 한참을 떨어진 헬켄이었고, 결국 그는 가선 안 될 길을 걸었다.
그 길은 마신교로 향하는 길.
마신교의 도움으로 그는 6클래스 마스터의 마법사로 경지가 올랐고, 튜벨란 백작령의 지부장까지 승격됐다.
마신교의 도움을 받았으니 당연히 그 대가를 치러야 하는 법.
튜벨란 백작과 미르지카 자작의 사이를 갈라놓고, 남부 지방을 흔드는 것이 헬켄의 목표였다.
5년간의 노력을 통해 거의 다 했다고 생각했는데, 한 플레이어에 의해 망가졌다.
튜벨란 백작령만이 아니다.
미르지카 자작령에서 준비 중이던 작업까지 망가졌고, 신성 교단까지 나타났을 정도로 일이 제대로 꼬여 버렸다.
이대로는 남부 지방에 아무런 타격을 주지 못하는 상황.
대신 마신교가 생각한 것은 수도 세크드릭을 공격하는 것이다.
하나 그것은 속임수다.
지금 일으키는 망자의 군대로 수도 세크드릭을 함락시킬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수도 세크드릭을 공격하는 목적은 딱 하나.
“플레이어 시저. 꼭 죽인다.”
남부 지방에 있었던 모든 일을 망친 범인이자 지금 마신교에서 가장 최우선으로 죽여야 하는 플레이어인 ‘시저’를 죽이기 위해서다.
시저를 죽이는 일은 그에게 있어서 마지막 동아줄이다.
이번 임무에 실패하면 더 이상 마신교로 돌아가지도 못한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리치가 되는 것이지.”
그는 더 이상 살아 있는 몸이 아니다.
라이프 베슬이 파괴되지 않는 이상 절대 죽지 않는 몸으로 변했고, 더 이상 원소 마법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닌 흑마법이 그와 함께 한다.
헬켄이 가장 마음에 들어 하는 것은 지금 자신의 경지가 7클래스 마법사에 필적한다는 것이다.
“크크크. 차라리 잘되었어. 이번 일을 성공시킨 다음 마신교에 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야.”
인간의 육체를 잃어버린 이상, 이제 그가 즐길 수 있는 건 몇 가지 없다.
더 이상 마법에 대한 흥미도 없는 상황, 그저 부와 명예 그리고 권력만이 그의 머릿속을 장악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번 일, 즉 시저를 죽이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헬켄은 등 뒤에 있는 두 존재로 인해 무조건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데스 나이트 두 기.
평범한 데스 나이트가 아니다.
마신교에서 직접 만든 데스 나이트이자, 인간을 베이스로 만든 것이 아닌 마족을 베이스로 만든 데스 나이트다.
시저가 하루만 더 빨리 움직였더라면 도착하지 못했을 것이다.
시저가 늦게 움직여 준 것이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덕분에 이 일을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았으니 말이다.
헬켄의 시선은 저 멀리 조금씩 불이 꺼지는 수도 세크드릭으로 향해 있었다.
* * *
그날 저녁. 오랜만에 운동 마치고 식탁에 앉아 동생과 치킨 한 마리에 맥주 한 캔을 마셨다.
딱히 중요한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소소하게 동생과 최근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참, 이번에 범이 팬 카페 인원 더 늘어난 거 알아?”
“그래? 얼마나 늘었기에?”
“오빠 방송 이후 만 명이나 더 늘었어. 조만간 210만 명 찍을 것 같은데?”
“어우야…… 범이 인기가 날로 늘어가네.”
아직 한 달도 안 된 이 시점에 범이의 팬이 엄청나게 늘었다.
뭐 이해는 되긴 한다. 지금 월오룰의 소환수 중에서 우리 범이만큼 귀여운 소환수가 없으니 말이다.
내 눈에 콩깍지가 씌어서가 아니라 진짜 진심으로 말하는 거다.
지금 랭커들의 소환수는 대부분 우락부락한 몬스터다. 오우거라든가, 오크 같은 소환수를 두고 있다.
그게 아니면 동물형 몬스터인 워 울프라든가 워 베어 같은 종류도 있고, 특이하게 파충류 몬스터를 소환수로 둔 이들도 있다.
그런 와중에 내 범이는 고양이다.
정확하게는 고양이가 아닌 것 같지만 아무튼 지금 겉모습은 고양이다. 하는 짓도 영락없이 고양이다.
당연히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범이의 귀여운 모습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내 영상 편집자이자 라이브 방송 채널을 관리하는 비기너 님이 꼬박꼬박 올리고 있었다.
단순히 귀엽기만 한 것이 아니라 전투할 때의 든든한 모습이라든가, 밥 먹는 모습, 하품하는 모습 같이 일상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을 하나도 빠짐없이 팬 카페에 올리는 중이었다.
“비기너 님이 고생이네.”
정말이지 많은 신세를 지고 있다.
내 영상의 편집부터 방송, 거기에 범이의 팬 카페 활동까지. 나랑 연관된 일들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그녀였다.
“그러네. 저번에 뒷모습만 봤었는데…… 어때?”
나를 향해 게슴츠레한 눈빛으로 물어보는 효진이다.
마치 나와 비기너 님 사이에 뭐라도 있는 것은 아니냐는 눈빛.
그 모습에 나는 효진의 이마에 딱밤을 날렸다.
“아얏!”
톡하고 건드릴 정도로 약하게 때렸는데 엄살은 무슨. 누가 보면 주먹으로 때린 줄 알겠네.
“우리가 그런 사이였으면 이런 시간에 연락을 했겠지? 안타깝게도 이 오라버니의 휴대폰은 조용하단다.”
나는 아까부터 조용한 휴대폰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나도 뭐, 달달한 연애 같은 걸 해 보고 싶긴 하다. 하지만 지금은 월오룰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벅차다.
아니, 다른 곳에 신경을 쓸 틈이 없다는 게 맞다.
하루 8시간 정도 월오룰을 플레이한다.
월오룰이 끝나고 저녁 먹고 운동 다녀오면 밤 10시쯤이다.
여기서 내가 가질 수 있는 여유라 해 봐야 한두 시간이 전부다.
일찍 자야 아침에 효진이 학교 보내고 나도 일과를 시작하니 말이다.
‘이런 와중에 데이트를 집어넣을 틈이 어디 있냐고?’
진심으로 데이트를 하려면 무언가 하나는 포기해야 하는 그런 스케줄을 소화 중인 나다.
하…… 인생…….
살짝 눈물이 나려 하네.
언제쯤이면 나도 돈 벌며 게임하며 연애도 할까.
갑작스럽게 밀려오는 외로움에 나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부르르르.
갑작스럽게 들려온 진동 소리에 근원지를 찾아봤다.
“어?”
“설마?”
휴대폰에 표시되어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비기너 님.
그 이름에 효진이가 나를 향해 기대가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한마디 했다.
“조만간 새언니가 생기는 건가?”
말도 안 되는 헛소리에 나는 또 한 번 효진이의 이마에 딱밤을 날렸다.
“아얏!”
이번에는 손가락에 아까보다 힘을 더 주었다.
그러니 조금은 아플 거다.
“일 이야기겠지. 헛소리하지 말고 뒷정리 부탁해.”
나는 휴대폰을 들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네, 비기너 님.”
-늦은 시간 죄송합니다. 시저 님.
“아닙니다. 아직 잘 시간은 아닙니다. 무슨 일 있으신가요?”
나는 방에 들어와 컴퓨터 앞에 앉았다.
고물 컴퓨터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열심히 부팅 중이라는 것을 알려 왔다.
-다름이 아니라…….
말을 하다가 마는 비기너 님. 이러니 오히려 더욱 호기심이 새록새록 솟아올랐다.
내가 조용히 대답을 기다렸고, 마침내 그녀의 입이 열렸다.
-혹시 주말에 시간 있으신가요?
“네?!”
나도 모르게 되묻고 말았다.
놀라서 나온 대답인데 비기너 님은 긍정의 대답으로 들었나 보다.
-그럼 주말에 뵐게요.
그와 동시에 전화가 끊어졌다.
어라? 이거…… 나……. 주말에 데이트 약속이 잡힌 것 같다.
* * *
다음 날, 월오룰에 접속한 나는 그 즉시 인던 밖으로 향했다.
이제 인던에 볼일은 마친 상황이다.
인수인계만 남았다.
인던 속에 인던을 나와 처음 들어왔던 인던으로 나왔고, 다시 그 옆에 있는 포털을 타자…….
“니베라 후작님.”
“오, 시저. 어떻게 되었나?”
“찾았습니다.”
“고생했네.”
직접 다가와 어깨를 두드려 주며 노고를 치하는 니베라 후작이었다.
그런 그의 뒤에 있던 흐레블레 백작이 나에게 다가왔다.
“플레이어 시저. 정말이지 고맙네. 다 자네 덕분이야.”
“음?”
내 손을 붙잡고 위아래로 흔들며 기뻐하는 흐레블레 백작이었다.
그의 행동에 의아함을 느낀 나였는데, 백작이 직접 설명을 해 주었다.
“자네 덕분에 약초를 재배할 공간은 물론이고 몬스터를 퇴치해 주어 고맙네.”
그가 말하길 자연에서 자란 약초를 캐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한다.
영지민이 캐는 양도 있는데, 세상에 플레이어가 나타나면서 그 약초를 구할 수 있는 양까지 줄어든 상황이라고 한다.
그런 와중에 악질적인 길드인 컬렉터 길드가 자리를 차지하고 약초를 몽땅 캐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내가 숲을 뒤집어엎어 버리는 수준으로 만들었다.
이번에 얻는 나무를 이용해 울타리를 비롯해 약초를 전문적으로 키울 수 있는 시설을 만들어 운영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줬다는 것이다.
‘뭐…… 잘된 건가?’
안 그래도 컬렉터 길드를 엿 먹일 생각으로 시작한 일이다.
근데 결과적으로 흐레블레 백작에게 도움이 되었다? 이건 충분히 기뻐할 일이다.
내게 한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이 증명하듯 지금 사냥터 주변은 전부 NPC로 바글바글하다.
내가 쓰러뜨렸던 나무를 베어 울타리를 만들고 있었고, 몇 NPC는 바닥에 호미나 괭이질로 땅을 고르고 있었다.
주민 NPC만이 아니라 병사들까지 전부 거들고 있는 모습은 얼른 이곳을 완성시키겠다는 흐레블레 백작의 의지를 표현하는 듯했다.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입니다.”
나는 마주 잡은 손을 살짝 흔들었다.
“이건 내 소소한 선물이네. 몇 개 안 되는 것이니 잘 쓰게나.”
흐레블레 백작이 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나에게 세 개의 병을 내밀었다.
나는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받았고, 상세 정보를 보곤 살짝 놀랐다.
‘헐? 만 골드짜리 녀석이네?’
[극상 체력 회복 물약]
등급 : 유니크
-단숨에 70%의 체력을 회복한다.
무려 한 번에 체력 70%를 회복시켜 주는 무시무시한 물약.
이 물약의 경우, 월오룰을 플레이하는 유저 중에서 상위 사냥터에서 활약하는 이들이라면 꼭 하나씩은 들고 다니는 긴급 물약이다.
죽을 위기에서 다시 쌩쌩하게 만들어 주는 물약이다.
여벌 목숨 하나, 아니, 세 개나 생긴 것이나 다름없기에 기뻐할 수밖에 없었다.
조심스럽게 인벤토리에 물약을 챙겨 넣었다.
이제 이곳 흐레블레 백작령에 더 이상 볼일은 없는 상황.
니베라 후작은 나보다도 더 급한 모습을 보였다.
“그럼, 가세.”
그의 얼굴은 당장에라도 절대자의 흔적을 공주에게 주고 싶어 하는 듯했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거기에 이동하는 동안 스킬 뽑기도 해야 하고 말이다.
할 게 많다.
마차에 내가 올라타자 마부가 채찍을 휘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짜악!
그 소리와 함께 마차가 덜컹거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길에 보이는 유저의 숫자가 몇 없었다.
“그럼 뽑기 시작해 볼까?”
지금 스킬 뽑기 권은 총 여덟 장.
나를 포함해 범이와 팅고, 가직스까지 합쳐서 뽑아야 할 목록이라는 거다.
가장 먼저 가직스의 스킬 뽑기 권을 사용했다.
‘뭐, 여전하네.’
가직스는 지금까지 하나의 스킬만 뽑혔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가시 방출 스킬을 뽑았다.
뭐, 기뻐할 일이라면 그 가시 방출 스킬이 노말 등급에서 레어 등급으로 진화했고, 대미지와 범위, 그리고 가시의 숫자가 배로 늘어났다.
다음으로 팅고의 경우 ‘강타’ 스킬을 연속으로 뽑았다.
이제 강타 스킬의 레벨이 5가 됨으로 150%의 추가 대미지로 상승했다.
범이는 ‘몸통 박치기’ 스킬과 ‘물어뜯기’ 스킬이 나왔다.
두 개의 스킬은 이제 레어 등급에 Lv.9가 되었다. 이제 1레벨만 더 올리면 유니크 등급으로 올라간다.
이제 남은 것은 내 차례.
큰 기대 없이 첫 번째 스킬 뽑기 권을 사용했다.
-스킬을 선택했습니다.
-스킬을 익혔습니다.
-노말 스킬 ‘포획’을 익혔습니다.
일단 첫 번째는 꽝.
요즘은 스킬 뽑기 권에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
‘아직 뽑을 일이 한참 남았으니까.’
이제 겨우 160레벨을 넘긴 나다.
앞으로 몇십 번은 더 뽑을 기회가 있으니, 한번 뽑을 때마다 내 감정이나 영혼에 흠집을 내고 싶지 않다.
‘이게 무지성 뽑기지!’
곧바로 다음 스킬 뽑기 권을 사용.
그러곤 바로 손을 뻗어 구슬을 골랐다.
-스킬을 선택했습니다.
-스킬을 익혔습니다.
-레전더리 스킬 ‘다중 포획’을 익혔습니다.
“어라? 다중 포획?”
자세한 스킬의 능력을 알고 싶어서 누르려는 순간 마부의 비명이 들려왔다.
“몬스터가 나타났습니다!”
그와 동시에 멈춰 선 마차였고, 그곳에서 내린 나와 니베라 후작은 화들짝 놀랐다.
“이, 이게 무슨…….”
눈앞에 수도 세크드릭으로 향하는 망자의 군대가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