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2화
#92
[천마검]
등급 : 레전더리
내구력 : 100/100
공격력 : 300-500
-천마신교 교주 천마가 사용했던 애검이다.
특이 사항 : 봉인되어 있음.
내 손에 들린 천마검의 옵션. 레전더리 아이템치고는 의외로 심플하다.
“다만 봉인을 풀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지금은 이런 심플한 검이지만, 봉인을 풀게 되는 순간 전혀 다른 검으로 바뀐다.
“바로 스킬이 하나 생성되거든.”
단순히 스킬이 하나 생성된다고 다른 검이 되냐고 묻는다면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그 스킬이 너무 사기적이거든.
스킬 명은 다름 아닌 ‘천마 군림보’.
흔히 천마 군림보라고 하면 천마가 세상을 군림하듯이 걷는 발걸음이라 알고 있는데, 단순히 걷기만 해도 주변 사람들이 압박을 받거나 한 번의 발 구름으로 지진이 일어나거나 지형이 통째로 바뀌는 듯 엄청난 위력을 가진 무공으로 알고 있다.
하나 월오룰에서는 그렇게까지 구현하진 않았다.
그저 검 하나를 들었을 뿐인데, 홀로 사기적인 위력을 낸다 생각해 봐라. 다른 유저들이 벨런스 붕괴라고 난리 칠 게 뻔하지 않는가?
대신 특별한 능력치로 만들었다.
“한 발 움직일 때마다 강해지게 만들었지.”
고작 한 발. 이 한 발에 무려 공격력 증가 10%의 옵션이 있다.
단순히 10% 증가에 무슨 레전더리 아이템이냐고 묻는 사람이 있겠지.
생각해 봐라. 보스 레이드나, 정예 몬스터 같은 몬스터를 상대할 때를 말이다.
싸움이 단순히 한두 번 공격한다고 끝나겠는가?
하물며 대규모 보스 레이드의 경우라든가 몬스터 웨이브 같은 특별한 사냥터도 있다.
그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10%씩, 열 번만 움직여도 100%다.
거기에 최대 1,000%까지 상승하니 백 걸음을 움직인 천마검의 유저는 엄청난 대미지를 자랑하게 된다.
“그래서 제자의 이름이 엄청 유명해졌지.”
제자의 캐릭터 네임은 세이지. 천마검을 가지고 난 다음부터는 천마라 불리게 되었다.
제자는 천마검을 이용해 어지간하면 그 어떤 레이드에서 막타를 전무 먹어 치웠고, 몬스터 웨이브에서도 다른 유저들과 다르게 1,000% 공격력 상승 덕분에 일격으로 몬스터를 사냥하고 다녔다.
제자는 검은 손 길드의 메인 딜러의 자리를 가져갔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할까. 게임밖에 모르던 순수한 제자가 어느 순간 달라졌다.
권력에 심취했고, 순수하게 게임만 보던 사람이 돈에 미쳤다.
거기에 길드원과 호흡을 맞춰 게임을 공략하던 재미는 없어졌고, 그저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하며 절대자의 자리에서 군림하길 바랐다.
그런 제자의 최후는 그리 좋지 못했다.
내가 회귀하기 몇 달 전. NPC와 트러블이 생기면서 그 자리에서 기습 아닌 기습으로 죽어 버렸다.
플레이어의 죽음은 모든 것을 잃는 법.
그 자리에서 NPC에게 천마검을 빼앗긴 제자는 그 뒤로 2군으로 내려왔다.
“불쌍한 녀석.”
2군으로 내려와 며칠 접속한 모습을 보았을 때 제자는 세상을 잃은 듯한 얼굴이었다.
그 모습이 마치 내가 2군으로 막 내려왔을 때의 모습을 보는 듯해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모른다.
누구보다 찬란하게 빛날 줄 알았던 내가 단숨에 무너졌으니 말이다.
저 마음은 직접 당해 본 이가 아니면 절대 알 수 없다.
그렇게 며칠을 더 접속하다가 결국 더 이상 접속하지 않게 되었다.
아무튼. 막강한 위력을 내는 천마검.
봉인을 해제하면 패시브 형태로 발동되는 스킬 ‘천마 군림보’의 능력을 갖춘 천마검.
나는 당시 제자가 천마검을 확보하는 것을 보았고, 그것도 모자라 봉인을 해제하는 것도 함께했다.
그러니 지금 내 손에 쥐어진 천마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나다.
그리고 이걸 제자에게 양보한 걸 후회도 했던 것이 나다.
하지만 그런 미래는 없다. 이젠 내 손에 들어왔으니까.
“잘 써 주마.”
잘 쓸 자신이 있다.
이 검에 대해 그 누구보다 제자와 함께 철저한 연구를 하지 않았는가? 거기에 봉인을 함께 푼 것은 물론이고, 아직 진행되지 않았지만, 서브 직업을 얻을 수 있는 퀘스트가 있지 않은가?
나는 이 검을 그 누구보다 잘 쓸 자신이 있다.
지금까지 쓰던 검을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동상에 걸려 있는 검집을 풀어 허리에 묶었고, 그곳에 천마검을 넣었다.
스릉, 탁.
천마검을 확보했으니, 또 하나 이곳에서 확보한 걸 확인할 시간이다.
내가 바라보고 있는 곳엔 방금 포획한 이곳 보스 몬스터인 전투 원숭이 100호가 있었다.
“육식 원숭이 100호의 이름을 ‘숭이’로 변경한다.”
-몬스터 ‘육식 원숭이 100호’의 이름을 지어 주었습니다.
-몬스터 ‘육식 원숭이 100호’가 ‘숭이’ 이름을 수긍합니다.
-이름이 변경되었습니다.
이런 시건방진 소환수를 보았나. 기껏 이름을 지어 주니 그냥 알겠다고 고개만 끄덕이는 것이 아닌가?
다른 소환수처럼 마음에 들어 하면서 충성도도 오르고 하면 편한 것을 성가시게 만들고 있지 않는가?
“숭이야. 이러면 형이 섭섭하잖아?”
나는 숭이를 바라보며 그렇게 말했다.
하나 녀석은 ‘우끼?’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마치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다는 얼굴에 내 속만 답답해졌다.
어쩌겠는가? 이게 다 내 잘못인 것을 말이다.
포획 과정에서 내가 잘못한 탓이다.
그러니 앞으로 잘해 주며 충성도를 올려야지. 그리고 그걸 위해서 뇌물을 꺼내 들었다.
“숭이에게 이게 어울릴 것 같은데…….”
그와 동시에 인벤토리에서 ‘냉기가 서린 건틀릿’을 꺼냈다.
그리고 그것을 본 숭이가 반응했다.
“우끼!”
똥그란 두 눈을 커다랗게 뜨고는 순식간에 내 앞으로 다가오더니 뚫어져라 건틀릿을 바라보고 있다.
거기에 입에서 뚝뚝 떨어지는 침은 얼마나 마음에 들었는지를 증명해 주었다. 그만큼 탐나서 입이 벌어진 지도 모른다는 것이니 말이다.
“앞으로 형이랑 잘해 보자. 혹시 알아? 다음에는 더 근사한 걸 구하면 줄 수도 있고 말이야.”
“우끼! 우끼끼!”
내 말에 당연하다는 듯 외치는 숭이.
그리고 내 손에서 숭이의 손으로 건틀릿이 넘어가자 시스템창이 떠 올랐다.
-소환수 ‘숭이’의 충성도가 올랐습니다.
이번에 오른 충성도는 30%.
처음 포획했을 때 40%에, 추가로 30%가 상승하여 70%가 되었다.
이대로 쭉쭉 올라서 100%까지 힘내 보자.
그래야 이 녀석의 성장 조건과 진화 조건을 알아낼 수 있다.
“자, 그럼 다음으로…….”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지금 찾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인던 속에 또 하나의 인던.
이곳에 들어오기 전에 잡았던 필드 보스 몬스터가 떨구고 간 ‘정체를 알 수 없는 열쇠’의 사용처를 찾고 있는 것이다.
“분명 동상 근처에 있다고 들었는데 말이야…….”
인던 속의 인던.
예전에 이곳으로 들어가는 영상에서 봤을 때 인던은 단순했다.
커다란 공간에 인던 보스 몬스터 한 마리가 등장. 그 보스 몬스터를 쓰러뜨리고 나면 하나의 제단이 나타난다.
그 제단은 특별한 것 없이 검 한 자루를 놓을 수 있는 틀이 있다.
모두가 그 틀을 보고 무슨 검이 들어갈지 의아했는데, 유일하게 나는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그 윤곽이 천마검의 형태라는 것을 말이다.
“확신이라기보다는 예상이긴 하지만.”
한 99%쯤?
내 제자 다음으로 내가 천마검을 많이 쥐어 보았다. 그리고 그걸 이용해 제자를 가르쳤고 말이야.
“여기다.”
동상 뒤에 있는 벽에 있는 작은 구멍.
이게 인던 안에 인던으로 향하는 입구다.
-숨겨진 인스턴스 던전을 찾았습니다.
-인스턴스 던전 ‘전투 원숭이 왕의 동굴’을 발견했습니다.
-인던 속의 인던을 찾았습니다.
-업적 ‘인던 속의 인던을 찾은 자.’를 획득했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10 추가됩니다.
-최초 발견 보너스가 적용됩니다.
-사냥 시 얻는 경험치가 두 배가 됩니다.
-아이템 드랍율이 두 배가 됩니다.
굿. 아주 기분이 좋다.
천마검에 인던 속에 인던에서 얻을 아이템만 생각했었는데, 여기에 업적까지 추가라니.
이 맛은 끊을 수가 없다.
나는 기쁨에 몸서리쳤다.
“냐앙?”
범이가 나를 향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울었다.
눈빛만 봐도 해석이 가능한데 ‘또 미쳤구나, 집사야.’란 눈빛이다.
“흠, 흠.”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헛기침하곤 모두를 둘러보며 말했다.
“가자.”
인던 속 인던.
전투 원숭이 왕을 만나기 위해 포털에 몸을 실었다.
* * *
포털을 넘자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다름 아닌 시스템창이었다.
-‘전투 원숭이 왕의 동굴’에 입장했습니다.
-특이점이 발생했습니다.
-메인 시나리오를 진행하는 플레이어가 입장했습니다.
-인스턴스 던전이 바뀝니다.
[흔적을 찾아라.]
메인 시나리오
난이도 : 매우 어려움
최대 입장 수 : 10명
입장 조건 : 메인 시나리오를 풀고 있는 자.
공략 조건 : 던전 내 절대자의 흔적을 찾아라.
갑작스럽게 던전의 내용이 바뀌었다.
“흠…… 뭐 예상했던 거니까.”
크게 놀랄 것도 없다.
이미 셀레스틴 공주를 만나고 메인 시나리오를 시작하면서 이곳으로 가라고 하지 않았는가?
다만 어이없는 것이 하나 있다.
‘회귀 안 했으면 못 들어왔잖아?’
이게 어이가 없다.
나야, 회귀했으니 인던 속에 인던이 있는 걸 알기에 이렇게 찾아왔다. 근데 회귀 전이라 가정하고 우연치 않게 인던을 찾아왔다면 절대자의 흔적을 찾지 못했을 것이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메인 시나리오. 어이가 없지 않은가?
뭐, 일단 그건 둘째 치고 정면을 바라보았다.
“우워어어엉!”
눈앞에 거대한 원숭이.
아니, 저건 원숭이가 아니다. 차라리 고릴라라 불러야 한다.
3미터는 훌쩍 넘어 보이는 커다란 덩치에 얼굴은 얼마나 험상궂은지, 심신 미약자나 노약자, 어린아이에겐 보여 주면 안 될 것 같았다.
물론 나도 오늘 말고는 더 볼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였으니 할 말은 다했다.
거기에 몸은 살집으로 가득해 출렁출렁하는 뱃살은 보기가 더 흉한 것은 물론이고, 누더기나 다름없는 거적때기를 둘러 중요 부위만 가려 둔 상태였다.
[전투 원숭이 왕 Lv.400]
무려 400레벨의 보스 몬스터.
엄청난 덩치에 상당히 높은 레벨까지.
인던 밖의 몬스터의 레벨이 150레벨인 것을 생각하면 말도 안 될 정도로 높은 난이도다.
“그럼, 뭐 해.”
나와 소환수들이 함께한다면 저 정도 보스 몬스터는 문제가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치명적인 보스 몬스터의 약점도 알고 있다.
“덩칫값을 하지.”
덩칫값을 한다.
뒤룩뒤룩 살이 쪘다. 행동이 둔하고 느리다.
이게 바로 눈앞의 놈의 치명적인 약점이다.
자, 봐라. 눈앞의 보스 몬스터가 우릴 발견한 지 시간이 조금 흘렀음에도 아직 근처도 오지 못했다.
쿵, 쿵, 쿵.
대신 육중한 몸을 움직일 때마다 땅을 울렸다.
한참 전부터 땅이 울렸음에도 아직 우리의 거리는 절반도 줄지 않았다.
“이러면 너무 쉽지.”
몸놀림이 너무 빨라 눈으로 쫓기 힘든 적이라면 공략하기 상당히 힘들다. 그만큼 내 동체 시력도 좋아야 하고, 소환수도 즉각 반응해 줘야 하니까 말이다.
하나 그 반대의 경우, 오히려 공략이 편하다.
“안 맞기만 하면 되니까.”
눈에 뻔히 보일 정도의 움직임을 자랑하는 보스 몬스터.
그저 잘 보고 피하고 공격하면 공략하기엔 아주 쉽다는 소리다.
“자, 그럼 애들아.”
내 말에 소환수 모두가 나를 바라봤다.
“한번 해 보자고.”
“냐앙!”
“충!”
“카락!”
“우끼!”
내 말에 우렁차게 대답하는 소환수.
그런 사랑스러운 소환수를 위해 내가 외쳤다.
“파괴의 가호.”
-스킬 ‘파괴의 가호’를 사용했습니다.
-모든 파티원과 소환수의 공격력을 32% 상승시킵니다.
-스킬 ‘파괴의 가호’의 스킬 레벨이 올랐습니다.
-모든 파티원과 소환수의 공격력을 34% 상승시킵니다.
숙련도가 올랐는지 스킬 레벨 상승과 함께 공격력이 추가로 더 상승되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눈높이 교육.”
-스킬 ‘눈높이 교육’을 사용했습니다.
-격을 비교합니다.
-대상보다 격이 높습니다.
-전투 원숭이 왕의 모든 능력치 20% 하락합니다.
전투 원숭이 왕의 시선이 나에게 박혔다.
같은 왕이라는 단어를 쓰지만, 몬스터의 왕과 모든 소환수의 왕의 격차는 절대 넘을 수 없는 커다란 벽이다.
그것을 알았는지, 보스 몬스터의 눈에서 조금이지만 공포심이 피어오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개체값은…… 쓰레기군.”
눈앞에 보이는 개체값은 2%.
아주 그냥 쓰레기 중 쓰레기다. 포획할 가치도 없다.
그럼 이제 남은 것은 무엇이냐?
내 사랑스러운 소환수들의 스킬과 함께 공격을 이어가는 것.
우리는 그저 저 느린 보스 몬스터를 향해 총공격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