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6화
#86
내가 사냥을 위해 벌이는 짓은 따지고 보면 환경 파괴에 가깝다.
숲으로 잘 조성되어 있는 곳을 파괴하니까.
사실상 일반 유저가 나랑 똑같은 방식으로 숲을 파괴하며, 사냥을 한다? 그랬다간 바로 NPC 병사들이 출동해 유저를 포박, 강제로 아이템 다 뺏기고 그대로 감옥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렇게 되면 캐릭터 삭제 말곤 답이 없지.”
월오룰의 NPC인 귀족들이 내리는 벌은 두 가지다.
하나는 사형. 그 자리에서 모든 아이템을 빼앗기고 기본 세팅으로 마을로 쫓겨난다.
여기서 끝이라면 다행이지만, NPC의 형벌은 가볍지 않다. 이름표의 색이 붉은색으로 변하며, 모든 NPC에게 공격받는다.
마을로 들어가는 경비병은 물론이고, 상점의 주인도 물건을 팔기보단 경비병을 먼저 부르는 현실.
그 캐릭터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계속해서 NPC에게 죽어 갈 뿐이라는 소리다.
또 다른 하나는 감옥행인데, 감옥에 들어가면 아무것도 못 한다. 그곳에서 평생을 썩어야 한다는 소리다.
이것 또한 캐릭터 삭제 말고 답이 없다.
그러니 NPC의 심기는 절대 건드리면 안 된다.
다만 나야 다르다.
“뭐, 이게 다 든든한 빽을 둔 덕이지.”
지금 내 등 뒤를 든든하게 받쳐 주는 자들이 있다.
먼저 이곳으로 퀘스트를 준 셀레스틴 세드릭 공주가 있다.
평범한 귀족도 아니고, 무려 황족.
공주마마께서 내린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내가 숲을 망가뜨렸다고 뭐라 한다? 황명을 이행하는 나를 뭐라 한 것은 공주를 뭐라 한 것이나 다름없기에 중죄다.
그 자리에서 반역도로 몰려 즉각 사형 당해도 모를 일이다.
거기에 이곳으로 동행한 니베라 후작이라든가, 신성 교단의 미리엘 장로와 마탑의 볼드모드의 신뢰를 받아 월오룰 대륙을 누비는 나다.
이 정도 뒷배를 가지고 활동하는 플레이어는 단언컨대 나 말고는 없을 거다.
“후후후.”
절로 웃음이 나온다.
하루 종일 숲에 나무를 모두 쓰러뜨려 육식 원숭이를 학살했다.
단 하루 만에 엄청난 양의 레벨이 올랐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123레벨을 달성했습니다.
-스킬 뽑기 권이 생성되었습니다.
-소환수 ‘팅고’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123레벨을 달성했습니다.
-스킬 뽑기 권이 생성되었습니다.
-소환수 ‘범이’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120레벨을 달성했습니다.
-스킬 뽑기 권이 생성되었습니다.
-소환수 ‘가직스’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125레벨을 달성했습니다.
-스킬 뽑기 권이 생성되었습니다.
처음 이곳에 입성할 때까지만 해도 90레벨이었다.
나는 33레벨을 올렸고, 팅고 또한 마찬가지다.
범이는 32레벨업, 기존에 레벨이 높았던 가직스의 경우 25레벨을 올렸다.
백 레벨 기념으로 나만 스킬 뽑기 권을 사용했었는데, 그 뒤로 두 번의 스킬 뽑기 권에서는 포획 스킬을 얻었기에 ‘고급 포획’ 스킬이 Lv.3로 성장했다.
팅고의 경우 세 장의 스킬 뽑기 권에서 기적을 일으켰다.
그 기적은 다름 아닌 한 가지 스킬은 연속으로 세 장이나 뽑은 엄청난 기적을 말이다.
그 스킬은 다름 아닌 일기토.
[일기토 Lv.3]
등급 : 유니크
엑티브 스킬
-지정한 대상을 도발해 10분간 사용자만 바라보게 만든다.
-지정한 대상의 모든 능력치를 10분간 20% 하락시킵니다.
재사용 대기 시간 : 30분
소모MP : 100
스킬 레벨이 3이 되면서 적의 능력치 하락이 무려 20%까지 늘어났다.
1레벨당 5%.
일기토 스킬이 잘만 성장하면 10레벨 때 적의 능력치를 55%나 감소시킬 수 있다는 소리다.
크, 평소의 반절 조금 너머라…….
감탄사와 함께 몸이 떨려 왔다.
팅고는 물론이고 나도 편할 테니까.
그런 팅고와 다르게 범이의 뽑기는 그럭저럭이다.
물어뜯기, 할퀴기, 꼬리치기의 스킬이 나왔으니까.
물론 나쁜 일은 아니다.
이번 뽑기 덕분에 세 개의 기본 스킬의 등급이 올라갔으니까.
[물어뜯기 Lv.1]
등급 : 레어
액티브 스킬.
-대상의 신체 일부를 물어뜯어 버린다.
-10% 확률로 출혈을 일으킨다.
-출혈 대미지는 근력에 비례한다.
재사용 대기 시간 : 10초
소모MP : 10
물어뜯기 스킬과 할퀴기 스킬의 경우 확률적으로 출혈 대미지가 생겼고, 꼬리치기의 경우엔 스턴을 일으키게 되었다.
“아직 범이의 전체적인 스펙이 낮아서 그리 강한 편은 아니지만 말이야…….”
이건 요번 기회에 범이를 성장시키고, 진화시키면 알아서 해결될 일이니 걱정은 덜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직스.
여기서 나는 조금 의아했다.
“흠…… 좋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사실 가직스의 스킬 뽑기가 최악이다.
전부 가시 방출 스킬이 나왔으니까.
고유 기술이라 방심했던 탓일까? 그게 아니면 정말 배울 수 있는 스킬이 그것밖에 없던 것일까? 잘은 모르겠지만, 가시 방출의 위력이 상승한 것은 기뻐할 일이긴 하다.
아무튼, 우린 잘 성장하고 있다.
“그나저나 진화 조건은 잘 오르고 있겠지?”
-환수 ‘범이’의 성장 조건.
1. 레벨 100달성.
2. 자신보다 레벨이 높은 몬스터를 소환사와 함께 천 마리의 몬스터를 사냥하기 342/1,000
3. 동료 소환수와 함께 천 마리의 몬스터를 사냥하기 342/1,000
-홉 고블린 워리어 ‘팅고’의 진화 조건.
1. 레벨 90 달성.
2. 상위 몬스터 천 마리 사냥 342/1,000
착실하게 사냥 중인 것이 증명되는 순간이다.
이제 남은 것은 꾸준하게 사냥하는 것뿐이다.
한바탕 또 사냥을 끝낸 나는 바닥을 향해 손을 뻗었다.
“해골 소환.”
내 외침과 함께 시체에서 해골 한 마리가 만들어졌다.
턱을 딱딱딱 부딪치며 어기적어기적 걷는 스켈레톤이었고, 나는 그대로 소환수창으로 집어넣었다.
“이번이 삼십 마리째지. 후, 생각보다 멀었네.”
342마리의 육식 원숭이를 사냥했지만, 이번이 삼십 번째 스켈레톤으로 만들어진 이유가 있다.
해골 소환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 순수하게 내 손은 죽은 시체를 이용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나무를 쓰러뜨리고 내 소환수와 함께 사냥을 하다 보니 순수하게 내가 죽인 육식 원숭이의 숫자는 적을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소환수를 컨트롤하며 내가 나섰기에 이 정도 숫자를 확보한 거지, 그게 아니라면 몇 마리 얻지도 못했을 것이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이 정도면 충분하다.
무려 세 곳의 숲을 박살 내었다.
“이쯤이면, 그놈들도 손해가 크겠지.”
지금 내가 무너뜨린 곳은 컬렉터 길드가 주로 약초를 수집하는 구역만 골라서 했다.
내가 의도하고 노렸다.
그들의 입장에선 나를 추궁할 수 있다.
자신들의 작업장만 노린 것이 아니냐고.
“맞는 말이야.”
일부러 그랬으니까.
거기에 아직 남아 있는 작업장이 더 많다는 것도 알고 있고, 아직 약초가 덜 자라 수집 대기 중인 곳도 어딘지 안다.
그곳까지 전부 박살 내 버릴 거다.
그리고 다 끝났을 땐 이곳 숲의 크기가 절반으로 줄어들 것이고, 육식 원숭이가 이곳에서 활동해도 나 말고 다른 일반 유저들이 사냥하기에도 충분히 괜찮은 지형으로 바뀔 것이다.
“대충 계산하니 삼 일 뒤에 보겠네. 정예 몬스터.”
오늘을 포함하면 나흘째에 정예 몬스터가 등장할 것 같다.
그리고 그 날은 방송도 할 예정이다.
정예 몬스터 사냥인데, 방송으로 써먹어야지.
다만 정예 몬스터를 그냥 사냥하면 재미없을 테니 뭔가 특별한 콘셉트도 생각해 봐야 한다.
바쁘다. 바빠.
어후, 숨이 턱턱 막히고 제대로 쉴 틈 없는 이 스케줄을 소화하기 벅차지만 어쩌겠는가? 이게 다 미래의 나를 위한 투자인 것을.
그리고 내가 좋아서 하는 것이니, 기분 좋은 미소로 받아들일 뿐이다.
나는 소환수를 전부 소환수창으로 돌려보내고는 조용히 로그아웃 버튼을 눌렀다.
* * *
수도 세크드릭.
수많은 주점 중에서 한 주점에 앉아 있는 남자 둘은 조용히 주변을 살펴보았다.
마치 누군가에게 쫓기는 듯, 두리번거리는 모습이 상당히 불안해 보였다.
지나가던 사람이 그들을 보고 같이 불안한 기분이 들 정도였다.
같은 주점에 있던 NPC와 다른 유저들이 기분 나쁘다는 듯 자리에서 벗어났고, 주점에는 두 남자만 남았다.
주점의 주인인 NPC가 못마땅한 얼굴로 구석에 있는 두 손님을 바라보았다.
하나 손님으로 와서 이것저것 상당히 많은 양의 음식을 시켰기에 군말 없이 묵묵히 요리를 내줄 뿐이었다.
테이블에 한가득 요리가 올라오자 그 둘은 그제야 불안한 눈빛을 접고는 양손을 들어 눈앞에 있는 먹을 것을 손에 가져가기 시작했다.
와구와구.
우걱우걱.
쩝쩝쩝.
식사 예절이라곤 단 하나도 느낄 수 없는 모습에 주인장이 기겁하며 뒤로 물러났다.
포크와 나이프는 그저 장식에 불과하다는 듯 한쪽에 치워 두곤 양손을 이용해 먹어 치우는 모습은 청소기가 먼지를 빨아들이는 듯했다.
그런 둘의 모습에 경악한 주점 주인 NPC는 일단 밀린 주문을 계속해서 가져다주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둘이서 10인분에 가까운 음식을 다 먹어 치웠다.
마지막으로 후식이라도 되는 듯 남은 빵을 손에 들고는 천천히 먹는다.
포만감에 기분이 좋은 듯 아까 보였던 불안한 모습은 찾을 수 없었고, 오히려 조금씩 사라지는 빵 쪼가리에 아쉬운 눈빛이 뚝뚝 흘렀다.
그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 버린 주점 주인이 잠깐 주방으로 들어갔을 때였다.
딸랑딸랑.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한 남자가 들어왔다.
그러곤 엄청난 전투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으로 향해 가더니 의자를 빼고 앉더니 어이가 없다는 듯 바라보며 말했다.
“어이가 없네. 얼마나 처먹은 거야?”
그 말에 두 남자는 방금까지 느꼈던 포만감의 여운 따위는 없어지고, 다시 벌벌 떠는 모습으로 변했다.
“의뢰다.”
그와 동시에 서류 뭉치를 둘에게 하나씩 주었다.
“시마이 님 직할로 내려온 명령서다. 성공하면 그만큼 엄청난 보상을 챙겨 주겠지.”
그 말에 방금까지 불안에 떨던 둘이 눈을 똥그랗게 뜨고서는 놀랍다는 듯 말했다.
“지, 지, 진짭니까?”
한 남자의 물음에 의뢰를 하러 온 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러니 잘해 봐. 이번 기회에 길드에서 식충이가 아니라 간부로 승진해 보지?”
그 말에 불안에 떨고 있던 눈빛이 단숨에 변했다.
간부라는 말에, 승진이라는 말에 방금까지 불안에 떨던 모습은 사라지고, 의욕이 가득한 얼굴로 변했다.
당장에라도 떠날 것 같이 두 다리에 힘이 들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래, 그래. 가 봐. 위치는 육식 원숭이 사냥터다. NPC가 통제 중이지만, 너희 둘이면 충분히 뚫고 가겠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두 남자였다.
“가 봐. 식비는 예정대로 내가 내주지. 성공하면 별개로 이보다 세 배는 더 먹여 주마.”
그 말에 두 눈이 커다래졌다.
그것도 모자라 세상에서 이렇게까지 착한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의 눈빛은 감동을 넘어서 은인을 바라보는 눈빛이었다.
“얼른 가.”
의뢰를 주는 남자의 호통에 둘이 후다닥 튀어 나갔다.
그 남자는 혼자 남았고, 그제야 주점 NPC에게 술 한 잔을 부탁했다.
손에 들린 술잔을 찰랑찰랑 흔들며 생각에 잠긴 남자였다.
‘설마 실패하겠어?’
그래도 뒷골목에서 꽤나 알아주는 두 유저다.
다만 둘 다 극도의 불안 증세라든가, 엄청난 식욕, 친한 사람 앞에서만 말을 하는 저 성격 때문에 길드에서도 같이 어울려 주는 이가 없다.
그런 둘에게 유일하게 손을 내민 것이 시마이였고, 그 후로 남들보단 편하게 지내왔다.
그럼 뭐 하는가. 저 성격 때문에 사냥의 효율이 나오지 않았으니 말이다.
유니크 직업이 아까울 정도.
그나마 저 둘에게 믿고 맡길 수 있는 것이 다름 아닌 한 유저를 죽이는 것이다.
저 둘 앞에 일반 유저는 그저 고양이 앞의 쥐니까.
‘설마 물겠어?’
가끔 고양이를 무는 쥐가 있는데, 그 경우가 아니길 바랄 뿐이다.
그리고 이번에 실패하면 저 둘만 타격을 입는 게 아니라 자신도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된다. 그러니 성공해야 한다.
‘나도 나서 볼까.’
함정이 하나로 부족할 거 같으면 또 하나 만들면 되는 법.
그는 본인 스스로가 두 번째 함정이 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