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2화
#82
또다시 니베라 후작과 함께 마차로 이동하던 중에 황궁 성벽을 통과하는 것을 보고는 화들짝 놀라 했다.
“어디로 가는 겁니까?”
내 말에 니베라 후작이 슬쩍 미소 지었다.
“흐레블레 백작령으로 가고 있다네.”
“이렇게 급하게 말씀이십니까?”
“그러네.”
당황스럽다.
아니, 말은 하고 가야지. 이렇게 마음대로 출발해 버리면 나는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기왕 수도에 온 김에 이것저것 볼일을 보려고 했던 나다.
특히 무엇보다도 가장 먼저 들를 생각이었던 마탑이라든가, 아직 한 번도 가 보지 못했던 직업 훈련소도 기대하고 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다름 아닌 명성 상점.
황궁에 있다는 명성 상점에 들를 생각이었다.
할 것이 많은 나인데 이렇게 납치해서 바로 일하게 만들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런 내 얼굴을 봐서인지 데닉크 후작이 입을 열었다.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게. 이유가 있으니.”
“이유 말씀입니까?”
“자네가 가려던 곳이 명성 상점이 맞는가?”
화들짝 놀란 내가 똥그란 눈으로 바라보자 니베라 후작이 껄껄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아쉽게도 그곳에 출입하려면 귀족의 작위는 있어야지만 가능하네.”
“아…….”
그제야 조금 납득이 되었다.
어차피 지금의 나는 명성 상점을 들를 수가 없다. 나는 귀족이 아닌 평민이기 때문이다.
그곳을 출입하기 위해서는 귀족이 되어야 한다는 소린데, 다행스럽게도 나는 귀족이 방법이 있다.
다름 아닌 메인 시나리오 퀘스트.
그 보상이 다름 아닌 귀족의 작위다.
퀘스트를 완료하면 나는 귀족이 된다는 소리다.
“아, 명성 상점에 대해서 자세히 알려 주실 수 있으십니까?”
“그러지.”
니베라 후작의 입에서 명성 상점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명성 상점에 대한 설명은 간단했다.
명성 상점의 위치는 황궁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건물이자, 대륙의 모든 귀족의 세금을 징수하며 관리하는 정부청사 역할을 하는 건물에 존재한다.
그리고 그 명성 상점은 귀족이어야지만 출입할 수 있는데, 이게 또 그냥 귀족이라고 무조건 모든 물건을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작위의 등급에 따라 명성 상점에서 살 수 있는 것이 다르다는 것이 큰 문제라고 한다.
남작의 작위에서 명성 상점에서 살 수 있는 물건이라곤 그다지 쓸모없는 것들이며, 차라리 안 사는 게 나을 정도로 의미가 없단다.
적어도 백작 정도는 되어야 쓸 만한 물건이 한둘씩 보이는데, 물건 하나 사는 데 몇십만의 명성이 필요로 하단다.
“그러니 지금 자네는 명성을 쌓는 것이 더 중요하네. 그곳을 방문해 봐야 딱히 얻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거네.”
“그렇군요.”
지금 내 명성은 고작 이천.
지금 가 봐야 살 수 있는 것도 없을뿐더러 입장도 못하니, 얼른 귀족이 되어 명성을 쌓는 것이 가장 좋다고 추천해 주는 것이다.
“참, 후작 승진 축하드립니다. 이제 영지로 안 가시는 겁니까?”
생각해 보니 아까 축하의 인사를 드려야 한다는 것을 깜박했다.
다시 만남과 동시에 마차에 올랐고, 그대로 붙잡혀 흐레블레 백작이 있는 곳으로 끌려가고 있었으니 말이다.
“다, 자네 덕분이네. 남작으로 머물 줄 알았던 우리 가문이 후작이 되었으니 이보다 더한 은혜는 없네. 정말 고맙네.”
“아닙니다. 그때도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고작 한마디 한 것뿐이니 말입니다.”
“말 한마디가 천 냥 빚을 갚는다고 하지 않는가? 그 한마디가 나에게는 너무나도 소중했다네.”
훈훈한 분위기 속에 우리는 마주 보며 웃었다.
“영지는 이제 아들 녀석이 꾸려 나가야지. 언제까지 내가 영지를 이끌 순 없지 않은가? 더군다나 소드 마스터가 되었으니 말이야. 사나이의 열정을 불태워 봐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황궁에 머물고 계셨던 겁니까?”
“그러네. 공주님이 하시는 일을 돕게 되었네. 그러니 절대자에 관한 이야기는 나와 함께하면 된다는 걸세.”
든든하다.
이 기분은 마치 전날 밤새우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한 그릇 뚝딱 비워내는 국밥과 소주 한 병의 만족감 정도였다.
하물며 직장 상사가 다름 아닌 니베라 후작이다.
딱히 불편한 사람도 아니거니와 은인 관계이며 지금 대화로 느낄 수 있다시피 친한 편이다.
앞으로 직장 생활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는 것.
오히려 상대편이 불편한데, 평범한 사람도 아니고 NPC인 이상 불편해질 일은 없다.
“절대자의 흔적이 발견되었지만, 어느 순간 ‘뚝’ 하고 끊겨 버렸네. 아직 근처에 있을 걸세. 그동안 흐레블레 백작의 병사들이 그곳을 통제하고 있으니 말이네.”
NPC의 통제라.
지금 사냥터가 통제 중이라는 것은 컬렉터 길드에서도 사냥터를 관리하지 못하고 있다는 상황이 아닌가?
이거 운이 좋다면 초대장을 소모하지 않고 사냥터를 편하게 이용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동안 자네도 강해진 것 같으나 그곳 또한 만만치 않네. 괜찮겠는가?”
지금 가고 있는 흐레블레 백작령의 사냥터는 다름 아닌 숲속.
그곳에 서식하는 몬스터는 나무 위를 자유자재로 타고 아니며 주변에 있는 각종 물건을 던지며 공격하는 원숭이 놈들이 서식한다.
이름은 ‘육식 원숭이’라고 하며 평균 레벨이 130~180의 몬스터다.
“전혀 문제없습니다.”
이곳 사냥터의 확실한 공략법이 존재한다.
다만 그 방법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한 명의 허락이 필요하다.
“그전에 흐레블레 백작님을 만나고 싶습니다.”
“그러지.”
우리가 타고 있는 마차는 흐레블레 백작의 성으로 향했다.
* * *
흐레블레 백작령.
그곳은 거대한 산과 숲속을 끼고 있는 영지다.
산과 숲이 있는 이곳 흐레블레 백작령의 특산품은 다름 아닌 약초.
산속 깊숙한 곳은 물론이고, 산 아래의 숲속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각종 약초가 이곳 영지의 특산품이라 할 수 있다.
그걸 알기에 컬렉터 길드는 수도 세크드릭이 아닌 이곳에 본거지를 만들었다.
이유는 하나다.
이곳 흐레블레 백작령에서 특산품인 약초를 채집하여, 바로 포션으로 만들어 팔기 좋기 때문이다.
컬렉터 길드는 기본적으로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고리대금 길드다.
문제가 있다면, 컬렉터 길드에서 돈을 빌릴 때 현실의 주소와 각종 프로필을 받아 낸다는 점이다.
그 때문에 컬렉터 길드에 돈을 빌린 유저가 갚지 못할 경우, 직접 현실에서 찾아가 강제로 돈을 갚게 만드는 것은 물론이고, 현실 돈으로도 부족할 경우 정신이 아득할 정도로 게임으로 갚게 만드는 악질적인 길드다.
그런 길드를 현실 법으로 처리하고 싶어도 문제가 있다.
컬렉터 길드는 놀랍게도 중국의 삼합회의 자본과 인력으로 만들어진 길드. 그것도 모자라 전 세계의 악질적인 조직과 함께해서 만든 최악의 길드다.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수준.
월오룰의 개발 업체인 라온 소프트의 경영 방침에 따라 게임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는 절대 터치하지 않았기에 그들은 더욱 세력을 넓힐 수 있었다.
자, 내가 왜 컬렉터 길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이유가 있다.
왜냐면…….
“흐레블레 백작님의 주된 수익은 약초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육식 원숭이 놈들 때문에 약초를 캘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해졌다고 알고 있습니다.”
“마, 맞네. 그 때문에 문제가 많네.”
흐레블레 백작은 내 말에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한 올의 머리카락도 없는 머리를 손수건으로 연신 닦아냈다.
“제가 알기론 약초의 생산율에 높게 자란 나무가 문제가 되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네. 높이 자란 나무는 약초가 햇살을 받기에 문제가 많네.”
“그렇다면 제가 숲을 개간해도 되겠습니까?”
“숲을?”
그래. 숲을 개간하고 싶다. 정확하게는 산의 초입까지 숲으로 이뤄진 곳을 전부 밀어 버릴 생각이다.
“제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숲속의 나무는 전부 베어 원숭이 놈들은 산속으로 밀어 버리는 것입니다. 놈들은 나무를 타고 사람을 공격하는 몬스터. 나무가 없다면 그놈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몬스터가 됩니다.”
“오호, 그거 멋진 생각이네.”
“그러기 위해서는 백작님의 허락이 필요합니다. 거기에 제가 베어낸 나무를 이용해서 영지를 발전시키는 데 사용한다면 일거양득의 효과가 아니겠습니까?”
몬스터를 처리해, 나무로 영지를 발전해, 약초의 재배율도 올라가.
흐레블레 백작의 입장에서 절대 손해 볼 건 없다.
“오히려 내가 부탁하네. 꼭 그리해 주게나.”
“알겠습니다.”
나는 슬쩍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이렇게 말한 이유가 있다.
회귀 전, 그때 당시 나와 일행은 조용히, 몰래 사냥을 하고 있었는데, 갑작스러운 사고로 인해 숲이 제대로 불타게 되었다.
숲이 사라지자 자연스럽게 육식 원숭이 놈이 산속으로 밀려났고, 그 과정에서 숨겨진 인던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때 당시 숲을 불태웠다는 이유로 몇 유저가 감옥에 들어간 것은 물론이고, 월오룰을 플레이하는데 페널티를 받을 정도로 난리가 난 적이 있다.
나는 그때의 지식을 이용해 합법적으로 그것도 확실하게 숲속을 개간하려는 것이다.
물론 그 숲을 개간하는 데 안성맞춤인 물건도 로미오에게 받았으니 말이다.
나는 거기에 추가적으로 필요한 물건으로 많은 양의 밧줄과 함께 육식 원숭이 놈들이 가장 좋아하는 고기를 나눠 달라 이야기했고, 흐레블레 백작은 아낌없이 지원해 줬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나는 조용히 흐레블레 백작의 성을 지나쳤다.
“크크크. 한번 죽어 봐라, 이놈들아.”
컬렉터 길드. 내가 숲만 개간할 것 같지? 니들을 위해서 아주 그냥 뒤집어엎어 주마.
그게 미래를 위해 가장 좋은 선택지니까.
* * *
육식 원숭이 사냥터. 그곳에 모인 유저들은 하나같이 한숨부터 쉬었다.
“에효……. 이게 뭐냐.”
“그러게 기껏 시간 내서 왔는데 아무것도 못 하네.”
“야, 소문 들었어? 컬렉터 길드에서 사냥터 독점하다가 다 밀려났다잖아.”
“그 덕분에 작업장 노가다하던 애들 숨통 트였다며?”
“쉿! 조용. 이걸 알면 그 자리에서 PK 건데.”
“어후, 입 조심해야지.”
기껏 시간을 투자해서 육식 원숭이 사냥터에 온 유저들은 소곤소곤, 저마다 자신의 의견을 꺼내들었다.
지금 가장 핫한 이슈는 다름 아닌 원숭이 사냥터를 독점하던 컬렉터 길드가 통수를 맞았다는 것.
오죽하면 근처에 있던 유저가 구경하기 위해서 이곳을 방문할 정도로 이미 공론화가 되어 버린 상황이었다.
컬렉터 길드의 간부가 조용히 NPC를 향해 사냥터에 입성하고 싶다는 의견을 내었지만, 모조리 무시해 버리는 NPC 때문에 웃음거리만 되는 상황이었다.
덕분에 모두가 재밌는 구경을 하며 즐기고 있을 때였다.
“추웅!”
갑작스럽게 들려온 소리에 그곳에 있던 모든 유저의 시선이 한쪽으로 모였다.
그곳에는 니베라 후작이라는 NPC와 한 유저가 함께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둘은 순식간에 사냥터 앞에 도착했고, NPC는 그 자리에서 대기, 대신해서 한 유저가 사냥터 안으로 입성했다.
그와 동시에 유저의 입에서 한마디 흘러나왔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컬렉터 길드가 통제하던 사냥터. 지금은 NPC가 통제하는 사냥터.
그 누구도 들어가지 못하던 사냥터에 유일하게 들어갈 수 있는 유저가 생겨났다.
그 유저의 이름은 시저.
얼마 가지 않아 사냥터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