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0화
#80
“이건 아니잖아!”
나는 산속에서 절규했다.
그도 그런 것이 반나절을 산을 오르락내리락 반복하며 열심히 움직여 보았지만, 산적 한 놈 만나질 못했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이러지 않았다.
중간중간 튀어나오는 산적 놈을 처리하며 주머니 속에 금화를 쌓아 갔다.
거기에 두목이나 부두목 급 산적이라도 만나면, 그들의 수급을 챙겨 나중에 경비대에 넘김으로 얻을 수익까지 있다.
여기에 이곳 사냥터인 산적의 레벨은 150을 넘어갔고, 그만큼 들어오는 경험치도 짭짤하다.
“근데…… 한 마리도 없다고?”
단 하룻밤 사이에 산속에 모든 산적이 사라졌다.
아무리 여기가 리젠율이 나빠 효율이 떨어진다고 하지만, 이 정도로 떨어지는 곳은 아니다.
어지간하면 여기서 한몫 털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하게 생겼다.
허탈함에 나는 애꿎은 나무에게 화풀이하듯이 주먹을 휘둘렀다.
퍼억! 우지끈, 쿵.
일격에 나무가 부러졌다.
나를 대신해 땅을 울리며 커다란 소리를 내주니 조금은 속이 시원해졌다.
“어라? 주인님.”
저 멀리서 들려온 루이즈의 목소리. 나는 고개를 들어 저 멀리 하늘에 떠 있는 루이즈를 향해 외쳤다.
“무슨 일이야?”
루이즈는 마족. 그것도 상위 마족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그녀의 등에는 날개가 있었는데, 평소에는 작게 만들어 두었기에 본 적이 거의 없었다.
아무튼 그녀가 하늘을 날 수 있다는 소리를 듣고는 주변을 둘러봐 달라고 부탁했었다.
아마 그 결과를 보고하기 위해 나에게 돌아오는 중일 것이다.
“살아 있는 인간이라곤 아무도 없는데?”
순식간에 나의 품으로 달려든 루이즈였다.
흔히 공주님 안기라는 자세로 내 품에 안기고는 제 머리를 내 가슴에 비비고 있었다.
“뭐 해? 영역 표시해?”
“피, 그냥 좋아서 이러는 거 알면서.”
“어, 그래.”
“씨…….”
내 품에서 떨어지는 루이즈였다. 그러고는 투덜거리며 말했다.
“평소에 잘 안아 주지도 않으면서 실컷 부려 먹기만 하고, 그렇다고 예뻐해 주는 것도 아니면서, 흥! 칫! 뿡!이다.”
토라져도 단단히 토라진 모습.
아름다운 미인이 토라진 모습만 해도 귀엽기만 한데 그녀의 입에서 나온 대사는 정말이지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씰룩이게 했다.
오죽하면 조금 전까지 짜증과 화가 잔뜩 났던 내가 그녀의 애교에 녹아내렸고, 차분하던 심장이 세차게 뛰었겠는가.
현실이었다면 아마 그 자리에서 화를 풀어 주려고 온갖 노력을 다했을 것이다.
“이리와 루이즈. 안아 줄게. 미안해, 내가.”
물론 게임 속에서도 풀어 줘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나는 루이즈에게 다가가 뒤에서 안아 주었다. 그러고는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칫.”
확실히 화가 풀리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듯 뻣뻣했던 루이즈의 몸이 살살 녹아내리는 듯 편하게 나에게 안겨왔다.
거기에 살짝 들려오는 콧소리는 그녀의 기분이 상당히 풀렸음을 증명했다.
이쯤이면 될까나?
에효. 소환수 관리하기 힘드네. 이런 것까지 다 챙겨야 한다니 말이야. 범이의 집사 노릇도 힘든데 칭얼거리는 루이즈까지 달래야 하다니…….
이게 무슨 레전더리 직업 서머너 킹이야? 그냥 애들 보호자 아냐?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게 잠깐 시간을 보내자 완전히 기분이 풀린 듯 루이즈가 내 품에서 떨어져 아까 하지 않은 보고를 이어나갔다.
“주변에 아무도 없어. 그리고 누군가 습격이라도 했는지, 집으로 보이는 것들은 전부 불타고 멀쩡한 것도 없어.”
이렇다면 누군가 한바탕 제대로 쓸고 갔다는 소리.
그것도 내가 로그아웃하고 다시 접속하는 밤사이에 말이다.
아마 플레이어는 아닐 것이다.
월오룰의 세상은 현실 세상의 시간을 반영한다. 그것도 한국을 기준으로 말이다.
대한민국 정 반대편의 나라의 경우 그들이 밤이 될 때 월오룰의 세상은 아침을 맞이한다.
이것 때문에 난리가 난 적도 있었지만, 억울하면 한국에서 살아야지 어쩌겠는가?
실제로 몇 외국인은 월오룰 때문에 한국으로 이사를 왔다고 하니 그들의 불평불만은 금세 사그라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NPC뿐이라는 소리인데…… 그건 더 말이 안 되는 것 같았다.
“흔적이라곤 수많은 이들이 다녀간 듯한 발자국이 전부였어. 한두 명이 아니라 수십 명은 되어 보이는 발자국 말이야.”
“수십 명?”
여기서 수십 명이라.
그렇다면 같은 산적들끼리 싸우기라도 했다는 건가?
그게 아니면 딱히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쩝, 어쩔 수 없네. 이대로 수도로 향하는 것밖에.”
아무래도 한몫 거하게 버는 것은 포기하고 이대로 수도로 향해야 할 것 같다.
“뭔가…… 나 때문에 미래가 바뀌어서 이러는 건 아니겠지?”
혹시나 하는 생각.
그것도 잠깐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슬쩍 피식 웃을 뿐이다.
아니겠지. 과한 생각이겠지.
나는 방향을 수도로 향하는 대로로 꺾었고, 그대로 길을 따라 앞으로 쭈욱 걸어 나갔다.
* * *
수도 세크드릭.
월오룰의 유일무이한 제국인 세드릭 제국의 수도이자, 황궁이 있는 곳이다.
수도 세크드릭의 크기는 엄청나다.
대충 크기만 해도 세종특별자치시의 면적과 필적한 크기다.
놀라운 것은 그 넓은 땅덩어리를 전부 성벽을 세워 둘렀다는 점이었다.
성벽의 높이는 3m에 달했고, 그 문은 사람 셋이 나란히 서서 통과해도 문제 없을 정도로 컸다.
이만한 높이에 두께가 있으니 옛날 마왕의 침공을 막아 낼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마왕의 침공을 맞서 싸운 곳은 북쪽 성문이 있는 곳이다.
그곳엔 옛 마왕과 싸웠던 흔적을 비롯해 그때 당시 맞서 싸웠던 위대한 영웅들의 동상이 세워져 있으며, 영웅들의 위대한 업적을 기린 추모비도 있다.
나름 월오룰의 관광지이자 플레이어와 NPC가 자주 들르는 곳이기도 하다.
“진짜 박물관 같은데?”
“와…… 동상 리얼한 거 봐봐.”
“재수 없네. 마왕인데 개 잘생겼네.”
“하…… 하루만 잘생겨 보고 싶다. 난 매일 못생겼는데.”
“뭔 동상을 보고 질투하냐. 그냥 가자.”
“그래.”
실제로도 월오룰을 플레이하는 유저만 해도 이곳을 한 번쯤은 들르게 되어 있다.
이곳 수도에서 받을 수 있는 서브 퀘스트 중 하나가 수도에 중요 시설을 들러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는 퀘스트가 있다.
그 퀘스트의 마지막 종착지가 바로 북쪽 성문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한 번은 들르게 되어 있다는 소리다.
아무튼 그런 북쪽의 성문과 수도로 입성하는 남쪽의 성문을 제외하고도 수도에는 여섯 개의 성문이 더 있다.
그 성문을 통과하면 각기 다른 영지로 통과한다.
동쪽의 세 곳은 100레벨에서 200레벨까지 성장할 수 있는 사냥터가 있으며, 서쪽의 세 곳은 200레벨에서 300레벨까지 성장할 수 있는 사냥터가 존재한다.
사냥터로 향하기 전에 앞서 유저들은 수도를 먼저 방문한다.
수도에 방문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일단 길드가 있는 유저들의 경우 처음으로 길드 하우스를 방문하게 된다.
지금까지 길드를 가입해도 딱히 채팅 말고는 이득이 없는 그들에게 처음으로 길드의 간부를 비롯해서 길드원을 만날 수 있다.
거기에 길드에서 지원하는 물품을 현장에서 수령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배신과 PK가 난무하는 월오룰의 세상에 길드원만으로 구성할 수 있는 파티도 짤 수 있는 곳이 길드 하우스다.
두 번째는 확실히 달라진 시장의 규모다.
일단 포만감을 채울 수 있는 먹거리의 종류가 다양하다.
먹거리는 판타지 세상에서 볼 수 있는 음식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음식들이 존재한다.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인 김치와 불고기를 시작해 치킨, 피자, 햄버거 같은 인스턴스 음식은 물론이고, 세계 삼대 진미라 불리는 트러플, 푸아그라, 캐비어도 볼 수 있다.
놀랍게도 세계 삼대 진미는 현실에서 느끼는 식감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잘 표현했을 정도라니 월오룰을 즐기는 플레이어들은 한 번씩은 사 먹곤 한다.
세 번째는 다름 아닌 직업 길드.
지금까지 유저들인 직업 길드는 정식 건물이라기보단 지부에 가까운 곳들이다.
하나 수도에 있는 직업 길드는 정식 건물로 지금까지 배우지 못했거나, 직업 NPC를 통해 새로운 스킬을 익히거나 전수받는 둥, 월오룰을 플레이하는 유저들이 한 걸음 더 강해질 수 있는 길을 제시해 주는 곳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는 길드 하우스다.
지금까지 길드 스카우터에 의해 길드에 가입을 한 유저들이 정식으로 길드 건물을 방문할 수 있는 곳이며, 여태껏 채팅으로밖에 볼 수 없었던 길드원을 실제로 만날 수 있는 건물이기도 하다.
길드원을 만난다는 것은 상당한 이점이 있다.
월오룰에는 무수한 PK범을 비롯해 파티 사냥 중에도 뒤통수를 치는 놈들이 있다.
길드원끼리 파티를 짜면 그런 놈들을 피할 수 있고, 안전한 사냥을 할 수 있다.
이렇듯 월오룰의 플레이어는 수도 방문을 통해 한층 성장할 수 있기에 수도 방문에 큰 의미를 둔다.
그런 유저들과 다르게 유일하게 한 명의 유저는 평범한 플레이어는 절대 들를 수 없는 수도 한가운데 성벽으로 막혀 있는 황궁으로 향했다.
“어이구야, 또 자살하는 유저가 있네.”
“지금까지 그 누구도 통과하지 못한 곳을 통과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건가?”
“죽는 순간 후다닥 달려가서 아이템이나 챙겨야지.”
“당연한 소릴. 슬슬 준비하자고.”
지금까지 수많은 유저들이 황궁을 방문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성문을 지키는 문지기는 절대 통과시켜 주지 않았다.
오죽하면 스킬로 성벽을 뛰어 넘으려는 자도 있었다.
하지만 성벽의 방어는 철저하다.
성벽에 올라가는 순간 엄청난 인원의 병사가 몰려들었고, 그 자리에서 바로 죽여 버린다.
그렇기에 황실은 아직 그 누구도 가 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다.
그러다 보니 목숨을 걸고 성벽을 넘으려는 유저가 많았고, 그가 죽고 나서 떨어뜨린 아이템을 줍기 위한 유저가 있을 정도.
오늘도 또 한 명의 자살하는 유저의 아이템을 줍기 위해 슬슬 몰려드는 승냥이들이었다.
하나 그들은 얼마 가지 못해 더 이상 움직이지 못했다.
“미, 미친?”
“성벽을 통과했다고?”
“이거 최초 아냐? 이거 엄청난 사건을 두 눈으로 목격한 거 아냐?”
그들의 눈앞에 처음으로 황궁으로 향하는 성문을 통과하는 유저를 발견했다.
“누구야?”
“아이디 봤어?”
모두가 궁금해하는 그 유저의 이름.
유일하게 그 유저의 이름을 본 한 유저가 서둘러 그 자리에서 벗어났다.
‘속보다. 이걸 제보하고 한탕 벌자고.’
이 정보를 팔 곳은 딱 한 곳.
월오룰의 정보를 기사로 만드는 기자들이다.
가장 높은 가격을 부른 기자에게 팔 생각이다.
플레이어 시저가 황궁으로 들어간 것을 말이다.
* * *
얼떨떨하다.
‘이걸 통과했다고?’
지금 황궁을 지키는 성벽을 통과했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았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 황궁 성벽은 지금까지 그 누구도 통과하지 못했다.
심지어 회귀 전의 10년이라는 시간 동안에도 그 누구도 방문하지 못한 곳이다.
‘이게 다 착하게 산 덕분이지.’
내가 황궁으로 들어올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다름 아닌 눈앞에 있는 한 남자 덕분이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니베라 남작님.”
다름 아닌 니베라 남작.
내가 깨달음을 얻게 해 줌으로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올라간 NPC다.
내 접근에 경비병들이 날카로운 살기를 뿜었지만, 니베라 남작이 나타나 문을 열고 나를 반겨 주고부터는 살기는 없어졌다.
대신 철저한 감시 속에 있다는 것을 증명하듯 주변에 수많은 NPC의 이름이 보였다.
아무렴 어때?
지금 난 황궁에 발을 들인 것이다.
이건 역사적인 일이고, 꼭 남겨야 할 일이다.
‘빨리. 카메라 세팅.’
나는 서둘러 카메라를 세팅하기 바빴다.
소환수를 촬영하는 카메라를 전부 나를 중심으로 주변을 촬영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황궁을 찍을 생각에 상당히 흥분되었다.
최초 공개.
이건 정말 참을 수가 없다.
기대한 가득 신나게 카메라를 설정하며 바삐 손을 움직이고 있을 때였다.
-세드릭 제국 황궁에 입장했습니다.
-특수 지역입니다.
-모든 카메라 기능을 정지시킵니다.
아…… 선 넘네. 이걸 못하게 막는다고? 그것도 시스템으로?
정말이지 너무나도 아까웠다.
조회 수 한번 제대로 빨아 먹을 콘텐츠였는데, 포기해야 할 것 같다.
“자, 그럼 가세. 자네를 기다리는 분이 계셔.”
내가 용건을 말하기도 전에 니베라 남작은 나를 마차 안으로 밀어 넣었다.
마차는 황궁 정원을 유유히 통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