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8화
#78
“누가 의뢰했지?”
솔직히 말하자면 이들이 대답할 거란 기대는 없다. 그냥 형식적인 거지.
보통 악역을 상대로 선역이 할 수 있는 대사는 뻔하잖아?
“말할 리가 없다는 걸 알지 않나?”
“하긴, 나도 기대는 하지 않았어.”
역시는 역시였다.
“팅고. 저기 단검 챙겨 와.”
“충.”
바닥에 떨어진 단검.
게임 시스템 상 아무리 자신의 물건이라고 하더라도, 바닥에 떨어지는 순간 소유권은 없어진다.
그러니 먼저 줍는 사람이 임자라는 것.
‘이걸 악용해서 돈을 버는 이들이 있었지.’
이 시스템을 악용해서 돈을 버는 이들이 있었다.
사람이 많은 지역에 슬쩍 무기를 바닥에 떨어뜨리게 만들어 훔친다든가, 밥을 먹거나 물건을 사기 위해 잠시 무기에 손을 떼고 있을 때 말이다.
당연히 이 시스템은 많은 유저들에게 질타를 받았고, 지금도 언급되고 있는 일이다.
그래 봐야 월오룰은 꿈쩍을 안 한다. 시스템의 일부니까.
아무튼 그 시스템 덕분에 저 단검은 내가 주워 들면 내 소유가 된다는 것.
지금까지 저놈이 해 왔던 짓이니 전혀 꺼릴 것이 없다.
아니, 오히려 기분이 좋아. 지도 한번 당해 봐야 어떤 기분인지 알겠지. 한껏 후회해라.
라이지의 경우 복부를 꿰뚫은 내 검으로 인해 엄청난 고통은 물론이고 검 손잡이에 올라타 있는 범이 때문에 소유권이 여전히 나로 인정되고 있다.
거기에 조금만 이상한 움직임을 보이면 범이가 그대로 목숨을 끊어 버릴 것이니 문제가 없다.
팅고가 단검을 가지고 왔다.
이 단검은 존웍을 유명인으로 만든 것이다.
회귀 전까지 저 단검을 아무도 빼앗지 못한 이유는 저기 바닥에 꽂혀 있는 라이지와 함께 그 어떤 곳이든 도주할 수 있는 능력 때문이었다.
거기에 이름이 완전히 알려졌을 때는 이미 레벨이 500을 넘은 후였고, 길드의 보호 아래 움직였기에 빼앗는 건 더욱더 힘들어졌다.
‘지금이야 저 둘이 저렙이라 쉽게 제압했지, 거기에 아직 실력도 많이 미숙한 것 같고.’
당시 저들의 실력은 스킬과 무기만 좋은 게 아니라 실력 또한 일품이라고 한다.
쥐도 새도 모르게 기척을 죽이고 다가와 목을 베고, 그림자 속으로 사라지는 데 걸린 시간은 2초면 충분하다고 했을 정도니 말이다.
하지만, 그건 먼 미래의 일.
거기에 오늘 나에게 죽는 것을 생각하면 아마 존웍은 더 이상 보기 힘들 것이다.
[타란툴라 단검]
등급 : 레전더리
내구력 : 98/100
공격력 : 1-70
-치명적인 독이 검신에 묻어 있다.
-공격 성공 시 중독에 걸리게 한다.
-중독에 걸린 적은 초당 HP 1,000을 소모한다.
무려 초당 천의 HP를 소모시키는 엄청난 물건.
지금 내 피가 삼만이 안 되는 것을 생각하면 나도 이 단검에 찔리면 30초 안에 죽는다.
아마 어지간한 상위 랭커들도 1분은 못 버틸 것이다.
그만큼 치명적인 독을 가지고 있는 단검으로 앞으로 보스 전에서 상당히 유용하게 쓰일 것이다.
‘아, 팅고가 이걸로 상위 몬스터를 상대로 치고 빠지기를 한다면?’
내 머릿속에 행복 회로가 굴러갔다.
그전에 해결하면 가장 좋은 일이긴 하나, 정 안 되면 타란툴라의 단검으로 치고 빠지기라도 해야 할 것 같다.
“뭐, 말해 줄 생각은 없다니 죽여야지. 루이즈.”
나는 루이즈를 불렀다.
하나 루이즈 대신 시스템창이 대답을 해 주었다.
-현재 소환수 ‘루이즈’와 동기화 중입니다.
아, 동기화 중에는 소환이 불가능하군.
서둘러 서먼 스피릿 스킬을 풀고는 다시 루이즈를 소환했다.
“고마웠어. 루이즈.”
“나도 색다른 경험이라 재밌었어, 주인님.”
“아, 그래? 이건 나중에 듣기로 하고, 어때? 저 둘의 영혼은? 먹을 만하면 챙겨 주고 아니면 그냥 죽이고.”
내 말에 루이즈가 둘을 번갈아 보더니 남자 쪽을 가리켰다.
“이쪽이 좋겠어.”
“알겠어. 팅고 죽여.”
“충!”
내 말에 팅고가 바닥에 박혀 있는 여자에게 다가가 그대로 검이자 몽둥이를 휘둘렀다.
빠르고 깔끔한 일격임을 증명하는 시원한 소리와 함께 라이지는 폴리곤 조각으로 변했다.
그곳에 시선을 떼고 루이즈를 바라보자, 그녀가 권능을 발동하는 시스템창이 떠 올랐다.
-소환수 ‘루이즈’가 권능을 사용합니다.
-플레이어 ‘존윅’의 영혼 구슬을 획득했습니다.
-영혼 구슬을 흡수했습니다.
-근력 스텟이 1 상승합니다.
오호. 이런 식이다 이거지?
저번에는 구슬을 깨트렸기에 볼 수 없었던 모습에, 상당히 흥미로웠다.
이거라면 나중을 생각해서라도 꾸준하게 루이즈에게 영혼 구슬을 먹여 주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구할 수 있다면 말이다.
이쯤이면 PK범이 나타나거나 마족이 나오는 사냥터라도 찾아야 할 것 같다.
뭐 하나 편한 게 없네. 아니, 이게 월오룰이지. 언제나 그래왔잖아?
이미 10년을 직접 몸으로 굴러 봤으니 더 이상의 설명은 내 입만 아프다.
“일단, 가직스부터 처리해 볼까?”
지금 멀리 떨어진 곳에서 내가 포획한 가직스 두 마리가 야생 가직스를 붙잡고 제압하고 있었다.
“카락! 캬락!”
아까부터 소리치며 발버둥 치는 가직스였다.
혼자 행복 회로를 굴리는데 자꾸 시끄럽게 굴기에 확 죽여 버릴까 싶기도 했지만, 저 한 마리만 포획하면 목표 숫자를 채운다.
“고급 포획.”
-스킬 ‘고급 포획’을 사용했습니다.
-가직스를 포획합니다.
-포획에 성공했습니다.
-소환수창에 등록됩니다.
드디어 백 마리째 가직스를 확보했다.
이제 남은 것은 다름 아닌 소환수 합성, 그 자리에서 나는 바로 스킬을 활성화했다.
“소환수 합성.”
-스킬 ‘소환수 합성’을 시작합니다.
-합성 가능한 소환수는 ‘가직스’입니다.
-가직스 100마리를 합성하시겠습니까?
-소환수 합성 시 등급이 상승할 수도, 하락할 수도 있습니다.
친절한 시스템창.
우리는 기회를 준다. 하지만 결정은 니가 해라. 책임은 안 진다.
이 말을 어렵게도 써 두었다.
“당연히 GO지.”
이건 못 먹어도 고다. 그리고 혹시 아는가? 이러다가 대박이라도 뜨게 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나와 소환수들은 이미 밸런스 파괴범이나 다름없지만, 더 강한 존재가 추가된다는 것은 참을 수가 없다.
-소환수를 합성합니다.
가직스를 합성한다는 말과 동시에 내 소환수창에 있던 가직스가 하나둘씩 사라졌다.
사라진 가직스를 대신해서 눈앞에 있던 세 마리의 가직스가 그 자리에서 폴리곤 조각으로 변해 덩어리로 뭉치더니 점차 덩치를 키워 가는 것은 물론이고 환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오!”
눈앞의 빛이 커지면 커질수록 내 기대감은 점차 부풀어 올랐다.
다른 건 안 바란다. 그냥 한동안 데리고 다니기에 문제만 없으면 된다.
지금 내 상황은 그리 좋지 않다.
성장이 멈춘 팅고와 범이를 데리고 다니는 데 큰 문제는 없겠으나, 다음 사냥터부터는 둘의 화력이 현저하게 줄어든다.
당연히 나 혼자 고생하게 생겼고, 백 마리의 가직스를 데려간다고 해서 이곳 사냥터처럼 장악하며 학살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기는 힘들 것이다.
내가 편하기 위해서. 그리고 우리의 성을 위해서. 이 합성은 무조건 성공해야 한다.
아니, 절대 성공할 거다.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내 기대에 부응하듯 뿜어져 나오는 빛은 점차 강해졌고, 그에 내 심장은 더욱더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소환수 합성을 완료했습니다.
합성이 끝났다는 것을 알리는 시스템창이었다.
-소환수 합성을 통해 유니크 등급 ‘변이 가직스’가 합성되었습니다.
어랍쇼. 이거 뭐야.
지금 시스템창을 통해 하나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은 다름 아닌 가직스의 등급은 상승도 하락도 아닌 그대로 유지가 되었다.
그렇다면 이번은 꽝이라는 소린 건가?
나는 살짝 짜증이 나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외쳤다.
“변이 가직스 상태창.”
이름 : 변이 가직스
계열 : 필드 보스 몬스터
등급 : 유니크
레벨 : Lv.100
스텟 : 근력190 민첩240 체력90 지식10 지혜10
충성도 : 100
진화 가능.
상태창을 바라보는 순간 짜증이 사라졌다. 그도 그런 것이 예상외로 변이 가직스의 상태창은 너무나도 만족스러웠기 때문이었다.
“대충, 110레벨 수준이라 보면 되겠네.”
기존의 가직스보단 10레벨 정도 높은 수준.
하지만 놀랍게도 스텟은 이전에 비해 많이 달려졌다.
근력과 민첩은 두 배 정도 올랐고, 체력은 10, 지식과 지혜는 8 정도 올랐다.
사실상 근력과 민첩만 상당히 오른 수준이다.
그제야 나는 변이 가직스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전체적인 외형에 큰 변화가 찾아온 것은 키가 2미터나 되었다는 것이다.
거기에 어깨에 튀어나온 가시가 양쪽 합쳐서 두 개뿐이었던 것이 여섯 개로 늘었으며, 혀가 더욱 길어져 입 밖으로 튀어나와 있다.
등 뒤로 활짝 편 날개는 기존에 비해 두 배로 처져 등 뒤를 다 덮을 정도였고, 팔에 있는 낫 모양의 검신은 더욱더 두껍고 날카로워진 것 같다.
한마디로 하자면 확실히 강해진 모습을 볼 수 있다.
“편하게 부르려면 이름부터 정해야겠지. 앞에 변이 빼고 가직스라 부르지.”
-몬스터 ‘변이 가직스’의 이름을 지어 주었습니다.
-몬스터 ‘변이 가직스’가 ‘가직스’ 이름을 마음에 들어 합니다.
-충성도가 MAX입니다.
-진화 조건이 개방됩니다.
1. 150레벨 달성.
2. 곤충형 정예 몬스터 이상 사냥 0/1
줄지어 올라오는 시스템창 때문에 정신이 없을 정도.
그럼에도 내 얼굴에는 미소가 끊이질 않았다. 아니, 오히려 웃음이 나올 정도.
“이러면 한동안 더 데리고 다녀야 하잖아.”
나는 가직스의 가능성을 그리고 미래를 보았다.
적어도 지금 최전방은 아니지만 중간 위치에 있는 유저들과 비교해도 전혀 꿀리지 않는 스펙이다.
거기에 밸런스 파괴의 주범이라고 할 수 있는 나와 비교하자면 딸리겠지만, 당분간 함께하기엔 문제가 없다.
“좋아. 앞으로 잘 부탁한다. 가직스.”
“캬락.”
지식과 지혜 스텟이 올랐지만, 여전히 대화는 통하지 않는 가직스였다.
살짝 기대했지만,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법. 대신 가직스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이로써 새로운 식구가 늘어났다.
“좋아 좋아. 그럼 전리품을 마저 챙기고 데닉크 자작령으로 향해 볼까?”
나는 죽은 두 암살자의 전리품을 모두 인벤토리에 집어넣고는 목록을 쭉 훑어보았다.
“캬! 사치품 천지네. 이게 다 뭐야.”
내 인벤토리를 채워 준 두 사람의 물품은 사치를 넘어서 상당히 부르주아 느낌이라고 할 수 있다.
일단 먹는 건 전부 요리사 직업을 가진 사람이 파는 물건으로 하나같이 버프 아이템이었다.
개당 10골드는 훌쩍 넘는 고오급 음식으로, 회귀 전의 나였다면 쳐다도 안 볼 그런 음식이다.
거기에 둘이 입고 있던 장비는 다름 아닌 다음 사냥터에서 얻을 수 있는 세트 아이템이다.
“굳이 바꿀 필요는 없겠네.”
나야 미르지카 자작이 만들어 줄 아이템을 입을 예정이고, 팅고야 아직 코볼트 세트면 충분하다.
사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이 세트 아이템은 나나 팅고 같은 전사에게 어울리는 장비가 아니라 민첩 스텟을 많이 요구하는 이들에게나 어울리는 아이템이다.
“가직스는 못 쓰나?”
유일하게 사용처가 가직스뿐이었는데, 내 말을 듣고도 못 알아듣고는 그저 침을 흘리며 명령을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뭐, 그냥 팔자. 그동안 사냥하면서 얻은 수익도 없는데 이걸로 메꾼다 생각하지, 뭐.”
그렇게 생각하니 몸도 마음도 편해지는 기분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두 가문의 특별한 보상.
나는 데닉크 자작이 준 반지를 이용해 설정해 둔 데닉크 자작령으로 이동했다.
* * *
두 귀족은 삼 일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데닉크 자작이 하루가 더 필요할 것 같다며 양해를 구해 왔다.
어쩔 수 없이 나는 하루를 기다려야 했고, 다행스러운 점이라면 인벤토리에 필요 없는 물품을 전부 정리했다는 것이다.
사실상 경매장에 아이템을 올리는 것이 전부지만, 친절하게 나에게 돈을 물어다 준 두 암살자 덕분에 천 골드라는 짭짤한 수익을 얻었다.
그다음으로 대장간에 들러 팅고가 사용하는 방어구 전부를 수리하고, 좋은 방패가 있는지 확인도 해 보았다. 아쉽게도 좋은 물건은 없었지만.
아무래도 잠깐이라도 미르지카 자작령의 대장간에 들러야 할 듯싶다.
그것 말고도 이것저것 둘러보며 남은 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부터 접속했고, 놀랍게도 세 귀족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오게. 자네를 위한 물품일세.”
미르지카 자작이 나를 반겨주었고, 한 벌의 옷이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그 옷을 착용했다.
“허허허. 잘 어울리는군.”
“미르지카 자작령의 대장장이들이 눈썰미는 대단해.”
“하하하. 정말이지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엄청 마음에 든다. 그냥 마음에 드는 것이 아니라 진짜 완전히 말이다.
[심플한 가죽 상의]
등급 : 유니크
내구력 : 100/100
방어력 : 50
모든 능력치 +10
-미르지카 대장간의 장인 브란의 작품이다.
-클린 마법이 부여되어 있는 하의다.
2세트 착용 시 모든 능력치 +10
[심플한 가죽 하의]
등급 : 유니크
내구력 : 100/100
방어력 : 50
모든 능력치 +10
레벨 제한 : 없음
-미르지카 대장간의 장인 브란의 작품이다.
-클린 마법이 부여되어 있는 하의다.
2세트 착용 시 모든 능력치 +10
계정 귀속
내가 알기론 유니크 세트 중에서 이 정도 성능을 가진 녀석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상당히 좋은 걸 선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