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5화
#75
-여왕 메뚜기를 쓰러뜨렸습니다.
-알을 모두 파괴했습니다.
-인스턴스 던전의 클리어 조건을 충족했습니다.
-인스턴스 던전을 클리어했습니다.
딱히 특별한 보상은 없는 인스턴스 던전.
대신 하나 확실한 건 그 뒤로 떠 오르는 시스템창이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Lv.62가 되었습니다.
-소환수 ‘팅고’가 Lv.62가 되었습니다.
-소환수 ‘범이’가 Lv.59가 되었습니다.
-스킬 뽑기 권이 생성되었습니다.
경험치 하나는 짭짤하다.
정확하게는 여왕 메뚜기와 알을 전부 파괴시킨 경험치겠지.
덕분에 나와 팅고는 스킬 뽑기 권 하나씩 챙겼고, 범이는 다음 레벨에 생성될 예정이다.
“그럼 기분 좋게 스킬부터 뽑고 시작해 볼까?”
그와 동시에 스킬 뽑기 권을 사용했고, 백 개의 구슬 중 하나를 집었다.
-스킬을 선택했습니다.
-스킬을 익혔습니다.
-레전더리 스킬 ‘소환수 폭주’를 익혔습니다.
“오우야. 오랜만에 레전더리……. 폭주?”
시스템창의 설명에 당황한 내가 서둘러 스킬창을 띄웠다.
[소환수 폭주 Lv.1]
-등급 : 레전더리
-액티브 스킬
-소환수를 폭주시켜 모든 능력치의 다섯 배의 힘을 10분간 발휘한다.
-폭주한 소환수는 이성을 잃습니다.
-폭주가 끝난 소환수는 끝난 시점으로 24시간 동안 소환이 불가능합니다.
-폭주 스킬이 유지 중에 사망 시, 완전히 소멸합니다.
“이건, 쫌…… 그러네.”
스킬 상세 설명을 보니 상당히 어중간한 스킬임은 확실하다.
일단 폭주하게 되면 다섯 배의 능력치가 유지되어 상당히 강해진다. 이것까지만 해도 좋아할 법한데, 아래 있는 스킬 설명을 보게 되니 사용하기 상당히 꺼려지게 되는 스킬이다.
“이성을 잃어, 24시간 소환도 안 돼, 까딱해서 죽으면 완전히 죽어 버려……. 이딴 스킬을 왜 만든 거지?”
아무리 생각해도 장점보다 단점이 더 많은 거 같다.
그럼에도 이 스킬이 레전더리라는 것과 다섯 배의 힘을 발휘한다는 것을 생각해 보자.
음…….
아무리 생각해도 자살 콘텐츠나 사용할 때 어울리는 스킬 같다.
이성을 잃어서 주인인 나에게 덤벼들어 죽일 때 쓰는 콘텐츠 말이다.
“에라…… 모르겠다.”
일단 당분간은 저 스킬은 봉인해 둬야 할 것 같다.
나는 꽝이나 다름없는 스킬을 뽑았으니, 이번에는 팅고의 차례.
“팅고, 스킬 뽑기.”
기왕이면 좋은 스킬이 나와서 내 기분을 풀게 해 줘.
믿습니다. 신 아이샤여!
나의 간절한 기도와 함께 백 개의 구슬 중에서 하나를 골랐다.
-스킬을 선택했습니다.
-스킬을 익혔습니다.
-레어 스킬 ‘방패 강타’를 익혔습니다.
“어! 이거 그 스킬 아냐?”
나는 화들짝 놀라면서 스킬을 확인했다.
[방패 강타 Lv.1]
등급 : 레어
액티브 스킬
-들고 있는 방패에 힘을 실어 강하게 공격한다.
-공격 성공 시 일정 확률로 적을 뒤로 밀쳐낸다.
추가 대미지 30%
뒤로 밀쳐낼 확률 30%
-스킬 레벨이 올라갈수록 제사용 대기 시간이 줄어든다.
재사용 대기 시간 : 10초
소모MP : 100
단순히 스킬 창으로 보았을 때는 그럭저럭 괜찮은 스킬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럼에도 내가 이렇게 격하게 반응하는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회귀 전에 한때 절대자로 군림하던 유저의 스킬이기 때문이다.
“방패 전사 카이져.”
PvE가 아닌 PvP에서 가장 오랫동안 1인자로 군림했던 카이져.
사냥터에서 일어나는 PK가 아닌 투기장이라 불리는 곳에서 방패 하나만으로 절대자의 위치에 올라간 그의 주력 스킬 중 하나다.
물론 그가 절대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다.
다름 아닌 레전더리 아이템인 ‘이시스의 가호’라는 방패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고, 그 아이템의 옵션 중 하나인 ‘재사용 대기 시간 50% 감소’의 효과 때문에 가능했다.
“그리고 그 이시스의 가호가 어디 있는지 잘 알지.”
이시스의 가호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이유는 내가 200레벨 정도 되었을 때 들르는 영지의 한 사건을 해결해 주면 얻을 수 있는 아이템이다.
정확하게는 그 과정에서 봉인되어 있는 이시스의 가호를 얻을 수 있는데, 그 봉인을 풀게 되면 얻는 레전더리 아이템이기도 하다.
아이템을 얻는 과정과 봉인을 푸는 과정까지 옆에서 지켜만 봤던 입장이었던 나기에 기억한다.
아무래도 이건 운명이다.
이시스의 가호를 챙겨 팅고에게 줘야 할 것 같다.
“뭐, 누가 사용하든 안 하든 일단 챙길 생각이었는데 잘됐네.”
이번 기회에 팅고에게 방패를 다루는 방법이라든가, 탱커의 기본 소양을 가르쳐야 할 것 같다.
만능 교육관의 힘이면 충분히 팅고도 익힐 수 있으니 말이다.
어떻게 할지 결정한 나는 팅고에게서 시선을 떼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근데…… 여기가 아닌가?”
아무리 주변을 둘러보아도 특별한 무언가는 없다.
메뚜기들이 만든 작은 움막 몇 개와 아직까지 불타고 있는 여왕 메뚜기와 알뿐, 마신교와 관련된 무언가는 보이지 않았다.
“여기가 아닌가……. 하긴 입장할 때부터 별다른 말이 없긴 했지.”
생각해 보면 이오지 광산에서는 입장부터가 마신교와 연관이 있다고 알려왔다.
그때를 생각해 보면 이곳은 별다른 말이 없었다.
평범한 인스턴스 던전.
그것도 경험치 말고는 별 볼 일 없는 그런 인던이라는 말이다.
아무래도 꽝인 것 같다.
뭐, 그래도 경험치는 두둑하게 챙겼으니 다음 인던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였다.
“주인님. 저기 미약하지만 마기가 느껴지는데?”
루이즈가 손가락을 가리키는 방향은 여왕 메뚜기가 불타고 있는 방향이었다.
내 눈으로는 딱히 특별한 것 없어 보이는 절벽이다.
“가 볼까?”
인던을 클리어했다는 포털이 생성되었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니 그곳으로 향했다.
여왕 메뚜기를 지나 조금 앞으로 가니 절벽 아래 흐르는 작은 물길과 함께 그 옆으로 작은 오두막이 있는 것을 발견했고, 굴뚝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저 연기는 누군가 저기에 살고 있고, 그곳에서 살고 있다는 걸 뜻했다.
“오호. 이걸 루이즈가? 마기 스카우터인가?”
“스카우터?”
“아냐. 그런 게 있어.”
루이즈는 마족. 그렇기에 마기에 상당히 익숙한 존재다.
그런 그녀가 마기가 가득한 마계가 아닌 인간계에 오니 미약한 마기에도 반응할 정도로 감각이 뛰어나다는 뜻이다.
마신교 탐지용 소환수라고 생각해야 하나? 이거 아무래도 루이즈의 활용도가 더 생긴 듯하다.
그건 그렇고 저기 오두막에 누군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아무래도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을 정도로 지능이 높지 않은 가직스는 소환수창으로 돌려보냈고, 범이와 팅고, 루이즈와 함께 움직였다.
우리는 순식간에 오두막에 접근했다.
안에서 인기척은 들려오지 않았다. 바깥도 마찬가지였다.
“일단 들어가자.”
조심스럽게 오두막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오두막 내부는 단출했다. 커다란 테이블과 주변을 둘러싼 의자가 전부였고, 테이블 위에는 각종 서류들이 놓여 있었다.
테이블 너머로는 벽난로가 있었는데, 미약한 불씨만이 남아 있는 것을 보아 이곳을 떠난 지 상당히 오랜 시간이 흐른 것 같다.
내부로 들어왔음에도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기에 검을 검집에 넣고는 테이블에 있는 서류에 손을 가져갔다.
-튜벨란 백작령의 숨겨진 던전에서 증거를 수집했습니다.
엄청난 양의 서류 뭉치가 내 인벤토리로 들어왔다.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던 서류의 절반이나 되는 양이 말이다.
“남은 서류는 뭘까?”
남아 있는 서류에 호기심이 생긴 내가 손을 뻗는 순간, 시스템창이 먼저 반응했다.
-퀘스트 아이템을 발견했습니다.
-퀘스트가 생성되었습니다.
[헬켄의 배신을 알려라]
난이도 : 어려움.
제한 : 퀘스트 아이템을 발견한 자
내용 : 마탑 지부장인 헬켄이 인류를 배신하고 마신교에 투항했습니다. 그 증거인 서류를 가지고 마탑에 알리세요.
보상 : 마탑에 있는 스킬 북 선택 권.
뜬금없는 돌발성 퀘스트.
하나 이 퀘스트가 뜬 순간 오히려 미래적으로 보았을 때 상당히 좋은 퀘스트임을 알 수 있었다.
“적어도 마신교에서 골치 아픈 NPC를 미리 처리가 가능하니까.”
나중에 헬켄은 무시무시한 적으로 변한다. 그전에 미리 죽인다면 얼마나 편하겠는가? 이건 무조건 성공해야 하는 퀘스트다.
문제가 하나 있다면 튜벨란 백작령의 마탑 지부장이 헬켄이라는 것이고, 그가 마탑에서 제일 강한 사람이라는 거다.
과연 이 서류를 가지고 그를 제압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아! 그분이 있지.”
생각해 보니 가능하다.
그를 제압할 수 있는 사람이 유일하게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는 다름 아닌 튜벨란 백작.
지금쯤이면 수도에서 볼일이 끝나고 영지로 복귀 중일 시기니 데닉크 자작에게 부탁해 퀘스트를 동시에 해결하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둘러 복귀해야겠네.”
아직 레벨 더 올릴 수 있음에도 일단은 퀘스트부터 해결해야겠다.
그러고 나서 다시 사냥터에 입성하면 되니까.
이동하는 시간이 아깝지만, 월오룰의 미래와 퀘스트를 생각하면 그 정도 투자는 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두 가문이 정상적으로 돌아오게 되어 받을 보상도 챙겨야 하고 말이야.”
알아서 두 가문에서 좋은 걸 줄 텐데 그걸 뿌리치고 갈 정도로 매정한 놈은 아니거든. 나란 남자는 주는 건 거절 안 하거든.
그러니 서둘러 이동해야 한다.
“이동은 역시 그것뿐인가?”
나는 서류를 다 챙기고 난 다음에 인던 밖으로 나왔다.
그러곤 가직스 1호를 소환했다.
“야, 등에 날 업고 도약 가능해?”
“캬락!”
내 말에 힘차게 대답하는 1호 놈.
오호, 된다 이거지?
나는 그대로 가직스의 등에 매달렸다.
“1호 크게 도약! 최대한 멀리!”
“캬아아아락!”
가직스가 날개를 활짝 펼치고는 세차게 떨기 시작하더니, 그대로 무릎을 굽히고는 힘차게 도약했다.
“오!”
순식간에 10미터는 훌쩍 넘는 높이까지 뛰어오른 가직스가 천천히 아래로 활강하기 시작했다.
가직스가 단숨에 엄청난 높이로 뛰어 오르자, 이 방법을 유지하면 빠르게 튜벨란 백작의 성문까지 갈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좋아, 쭉쭉 가자고!”
내 명령에 가직스가 쉬지 않고 도약했고, 네 시간 만에 메뚜기 사냥터를 빠져나왔다.
* * *
그 뒤로 네 시간 뒤.
데닉크 자작령의 집무실에는 나를 포함한 네 명의 NPC가 있었다.
처음 도착했을 때까지만 해도 냉기가 풀풀 풍기며 당장에라도 상대편에 앉아 있는 자를 향해 검과 마법을 사용할 듯 노려보고 있었다.
내가 도착하고 서류를 내미는 순간 둘의 모습은 철천지원수가 아니라 서로를 향해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며 사과하는 두 사람이었다.
“내가 잘못했네. 미안하게 되었어. 미르지카 자작.”
“아닙니다. 저야말로 큰 오해로 인해 백작님에게 심려를 끼쳐 죄송합니다.”
“아닐세. 아니야. 우리보다도 아이들이 걱정이지.”
“정말이지…… 아들 녀석의 얼굴을 볼 자신이 없습니다.”
서로의 앙금은 사과 한두 마디로 씻겨 내려갔다.
이로써 두 가문의 오해는 완전히 풀렸다. 이제 남은 것은 두 가문을 힘들게 한 마신교를 처리하는 것뿐이다.
“정말로 감사하네. 플레이어 시저.”
“덕분에 모든 오해가 풀렸네. 정말이지 고마워.”
튜벨란 백작과 미르지카 자작의 감사의 인사.
나는 당연한 일을 했다는 듯 조용히 미소 지으며 말했다.
“제가 한 것이라곤 없습니다. 전부 데닉크 자작님께서 두 분을 걱정하는 마음에서 시작한 일입니다. 감사는 데닉크 자작님이 받으셔야 합니다.”
내 말에 데닉크 자작이 미소를 지었다.
설마하니 내가 이렇게 자신을 띄워 줄 거라 생각도 못 했겠지.
그 증거가 지금 얼굴의 미소다.
“아직 남았습니다. 얼른 마신교를 소탕하고 화해의 술자리를 가지시죠. 모든 비용과 장소는 제가 담당하겠습니다.”
미소와 함께 호탕하게 돈을 쓰는 데닉크 자작.
그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튜벨란 백작과 미르지카 자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서류에 있는 자들부터 처리하세.”
“나는 헬켄부터 처리하겠네.”
두 귀족이 결심하는 순간, 시스템창이 반응했다.
-대규모 이벤트 퀘스트가 생성되었습니다.
[튜벨란 백작령과 미르지카 자작령의 마신교 소탕]
난이도 : 매우 어려움.
제한 : 없음.
내용 : 튜벨란 백작령과 미르지카 자작령에 마신교가 나타났습니다. 그들을 소탕하고 대륙의 평화에 힘써 주세요.
보상 : 차등 보상.
니베라 남작령에 이어 또 한 번 대규모 이벤트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