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3화
#73
“그럼 시작해 볼까요?”
나는 천천히 앞으로 걸었다.
얼마 걷지 않아 이곳으로 들어오는 입구인 듯 밝은 빛이 뿜어져 나오는 곳이 보였다.
그곳을 넘어가자 눈앞에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다.
“이거…… 확실히 난이도가 매우 어려움이 맞는데요?”
내 말에 동의한다는 채팅이 줄지어 올라왔다.
지금 나와 시청자들이 보고 있는 정면은 사냥의 의욕을 떨어뜨리는 모습이었다.
일단 내가 있는 곳은 절벽 위다.
정면에는 산으로 둘려 있었는데 내가 서 있는 곳에 있는 외길을 통과하고 나면 분지 형태로 만들어진 사냥터를 볼 수 있었다.
대충 보아도 백 마리는 되어 보이는 메뚜기가 바글바글했고, 내가 서 있는 반대편에는 이곳 인던의 공략 조건인 여왕 메뚜기와 엄청난 양의 알이 보였다.
일단 여기가 뻥 뚫린 분지 형태의 사냥터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내가 힘든데, 문제는 많은 수의 메뚜기가 문제다.
[변이 메뚜기 Lv.90]
눈앞의 메뚜기는 놀랍게도 평범한 메뚜기가 아니라 변이된 메뚜기.
기다란 뒷다리와 중간다리를 이용해 사람처럼 서 있었고, 남은 두 개의 앞발을 팔처럼 이용해 움직이는 메뚜기였다.
그것을 본 시청자들이 열심히 채팅으로 떠들었다.
-와…… 살다 살다 메뚜기가 사람처럼 행동하는 것은 처음보네.
-뭔데 저 협동 정신은?
-집이라도 만드나 본데요? 중간중간 움막 같은 게 보이네요.
└응, 잘 가. 곧 마을에서 보겠네.
-그것보다 몬스터 레벨이 90이네요. 징글징글하다.
└역시 월오룰. 쉬운 던전이 아니네.
모두가 새로운 사냥터에 대한 감상을 늘어놓았다.
벌써 내가 공략에 실패할 것을 예상하는 글들도 틈틈이 보였다.
저 채팅을 보고 있자니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시저 님은 걱정 없어요? 왜 웃으시지?
내가 웃는 걸 발견한 누군가의 채팅에 나는 웃으며 말했다.
“아, 혹시나 하고 준비했는데…… 꽤 도움이 될 것 같아서요.”
나는 인벤토리 창에서 스크롤을 하나 꺼내 들었다.
어떤 스크롤인지 설명은 하지 않았다.
그전에 준비해야 할 게 있다.
“팅고가 정면에서 몰려오는 놈들을 상대로 버티고, 범이가 마무리하는 식으로 싸워. 힘들거나 무리다 싶으면 뒤로 물러나면서 적당히 싸워.”
내 말에 팅고와 범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지금까지 말 한마디 없이 묵묵히 나를 따라오던 루이즈를 바라봤다.
“루이즈는 어쩔래?”
“그냥 구경이나 하고 있어야지. 나는 물리적인 힘을 발휘할 수 없는걸.”
어깨를 으쓱하며 어쩔 수 없다는 얼굴의 루이즈.
그녀의 등장에 잠시나마 조용하던 채팅창이 불타올랐다.
-와! 소환수임? 대화가 가능하네?
-뭔데 소환수가 저리 예쁨? 님 뭐임?
-아! 이오지 광산에서 봤었는데. NPC가 아니었다고?
-대박! 이건 대박이지!
-아니 다른 건 참을 수 있다고 하지만 눈앞에 존재는 해명해야 하는 거 아냐?
└해
└명
└해
처음에는 의문이 가득하던 채팅창이 나에게 해명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정말로 이번에는 단합하고 그 질문에 대답을 듣겠다는 듯 계속해서 올라오는 해명해라는 채팅에 나는 양손을 들었다.
“좋습니다. 설명해 드리죠.”
나는 루이즈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쪽을 보고 자기소개 해 봐.”
“아무것도 없는데? 내 소개를 하라고?”
의아하다는 얼굴의 루이즈.
나는 대충이나마 설명 해 주었다.
지금 우리를 보고 있는 사람이 있다며, 플레이어이며 인간이라는 설명과 함께 방송이라는 것에 대해 짤막하게 설명했다.
‘이걸 말한다고 AI가 이해할까?’
그런 의문이 들었다.
과연 AI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싶은 마음이지만, 일단 설명을 마쳤다.
“으흠. 간단하게 말하자면 주인님을 따르는 자들이 지켜보고 있다는 게 아닌가?”
“뭐, 그런 셈이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말하니 루이즈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내가 가리킨 방향을 보며 외쳤다.
“들어라. 인간이여. 나는 마계의 위대한 마족이자 살아 있는 자의 영혼을 수확하는 루이즈라 한다.”
그와 동시에 저번에 나에게 보여 주었던 거만한 자세를 취했다.
양손은 허리에 올라갔으며 당당하게 내미는 가슴과 하늘 높을 줄 모르는 턱 끝까지.
거만하고 멋있어 보이는 모습이 아니라 여전히 귀엽기만 루이즈였다.
실제로 채팅창에서도 불타올랐다.
-오! 여왕님인 건가?
└엉엉. 날 가져요! 여왕님.
└제 영혼도 수확해 주세요!
여왕님을 외치며 찬양하는 채팅이 줄지어 올라올 때 루이즈의 고개가 정상적으로 돌아왔다. 거기에 허리에 올라가 있던 양손은 천천히 내게 다가왔고, 어느새 백 허그 자세로 내 곁에 달라붙어 한마디 더 했다.
“지금은 주인님이 시키는 것을 할 수밖에 없는 신세니라. 무. 엇. 이. 든. 할 수밖에 없지. 훗.”
순간 나는 보았다.
비록 내 얼굴 옆에 붙어 있는 루이즈의 얼굴이라 내 두 눈으로 보진 못했지만, 방송에 송출 되는 화면으로 보았다.
관능적이며 섹시한 그 미소를 말이다.
당연히 채팅창은 불타올랐다.
-무. 엇. 이. 든?
-야발 개 부러워!
-아…… 왜 눈물이 나지?
-하…… 누군 소환수랑 꽁냥꽁냥 거릴 수 있네.
-소환사 키울까? 저런 존재랑 계약할 수 있다고? 이건 못 참잖아!
-운영자 어디 있어? 여기 이상한 버그 쓰는 거 같습니다. (절대 부러워서 그러는 거 아님!)
└저도 신고 합니다. 저얼대 부러워서 그러는 거 아닙니다.
└넌 내가 죽인다. 꼭 죽인다. 부러워서 죽인다.
└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
아주 난리가 난 채팅창이었다.
보통 일도 아니다.
이제 내 눈으로 채팅을 절대 볼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올라갔다.
슬쩍 눈을 돌려 시청자 숫자를 보니 벌써 오만 명이 넘는 인원이 내 방송을 보고 있었다.
첫 라이브 방송에서 오만 명이라니.
겉으로 멀쩡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상당히 떨렸다.
생각도 못 한 엄청난 인원이라 절로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사고 치면 X된다.’
거기에 데뷔 방송이 아닌가?
이 기회를 잘 살려야 한다는 생각에 나는 정신을 차리려 노력했다.
그리고 루이즈를 향한 모든 이들의 관심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1호, 2호 소환.”
내 부름에 가직스 두 마리가 나타났다.
“캬락!”
“캬캬락!”
가장 먼저 포획했던 가직스와 두 번째 포획했던 가직스.
이제는 아주 충실하게 내 명령을 잘 따른다.
바로 적을 향해 도약해 사냥하라 명령하기 전에 내가 먼저 할 게 있다.
“파괴의 가호.”
-스킬 ‘파괴의 가호’를 사용했습니다.
-모든 파티원과 소환수의 공격력을 32% 상승시킵니다.
사냥 전 도핑과 버프는 필수지.
도핑할 게 없으니 버프라도 걸어 줘야 한다.
“가서 마구 날뛰어!”
그 말에 두 마리의 카직스가 그 자리에서 도약했다.
순식간에 눈으로 보기 힘들 정도의 높이까지 뛰어 오른 두 마리의 가직스가 바닥으로 착지하려는 순간이었다.
“1호, 2호. 가시 방출!”
“캬!”
“락!”
내 말에 가직스 두 마리가 그대로 어깨에 있던 가시를 방출했다.
-소환수 ‘1호, 2호’가 고유 스킬 ‘가시 방출’을 사용했습니다.
피슝!
허공을 가르고 하늘에서 떨어지는 가시가 그대로 변이 메뚜기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푸푸욱푹!
순식간에 발사된 네 개의 가시에 꿰뚫려 죽었다.
-소환수 ‘1호’가 변이 메뚜기를 사냥했습니다.
-경험치 150을 획득했습니다.
-식탐의 목걸이의 효과로 추가 경험치 450을 획득합니다.
-최초 발견 보너스로 추가 경험치 150을 획득합니다.
-소환수 ‘2호’가 변이 메뚜기를 사냥했습니다.
-경험치 150을 획득했습니다.
-식탐의 목걸이의 효과로 추가 경험치 450을 획득합니다.
-최초 발견 보너스로 추가 경험치 150을 획득합니다.
최초 발견에 식탐의 목걸이 효과까지. 아주 그냥 경험치가 너무나도 달달하다 못해 이가 아릴 정도다.
아무래도 여기서 레벨 한두 개는 그냥 올릴 것 같다.
“가자, 얘들아.”
“충!”
“냐앙!”
범이와 팅고를 데리고 그대로 변이 메뚜기가 몰려오는 외길을 향해 달렸다.
아마 방송 중이 아니었다면 가직스 서른 마리를 다 풀어서 사냥했을 것이다.
하나 지금은 방송 중이니 적당히 조절을 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은 시청자들에게 팅고, 범이 그리고 내 실력을 어필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시청자들이 우릴 보러 올 테니 말이다.
“끼에륵!”
팅고가 포효했다.
나는 순식간에 변이 메뚜기에게 접근해 거친 포효를 내지른 팅고에게 외쳤다.
“팅고! 돌진!”
“추웅!”
내 명령에 우렁차게 대답한 팅고 녀석이 그대로 눈앞의 변이 메뚜기를 향해 돌진했다.
-소환수 ‘팅고’가 스킬 ‘돌진’을 사용합니다.
두두두두.
땅이 울릴 정도로 거칠게 뛰어간 팅고 녀석이 그대로 한 마리의 변이 메뚜기를 그대로 들이받았다.
쾅!
메뚜기는 엄청난 소리와 함께 그대로 튕겨 나갔다.
그리고 그 자리에 멈춰 선 팅고가 한 손에 검같이 생긴 몽둥이를 다른 한 손엔 방패를 들고 한 번 더 포효했다.
“끼에륵!!”
장판파의 장비가 저런 위협을 보이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박력 있고, 멋진 모습을 보이는 팅고였다.
“귀엽네.”
“그러게.”
그 모습에 루이즈와 내가 슬쩍 웃었다.
사실 요 며칠 팅고 녀석이 살짝 우울해하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 티가 날 정도로 말이다.
내가 계속해서 가직스를 포획하고, 사냥터에 풀어 두니 팅고가 설 자리가 부족해진 것이다.
자연스럽게 사냥에 밀려나게 되었는데, 가끔 가직스가 흘린 메뚜기를 보면 가장 먼저 달려가 사냥하는 팅고였다.
오랜만에 정면에 나서서 사냥하게 되니 신나서 저러는 것을 알고 있기에 나와 루이즈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이었다.
-소환수 ‘팅고’가 변이 메뚜기를 사냥했습니다.
-경험치 150을 획득했습니다.
-식탐의 목걸이의 효과로 추가 경험치 450을 획득합니다.
-최초 발견 보너스로 추가 경험치 150을 획득합니다.
튕겨져 날아간 변이 메뚜기가 죽었다는 시스템창에 다시 정면을 바라봤다.
팅고 녀석이 자리 잡으니 그 뒤를 따라 움직인 범이가 어느새 팅고의 머리 위로 올라가 정면을 향해 점프했다.
그 모습에 나는 지금 시청자들이 바라는 모습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바로 범이에게 명령했다.
“범이. 냥냥 메가톤 펀치!”
“냐앙!”
범이의 앙증맞은 앞발이 그대로 앞을 향해 뻗었다.
-소환수 ‘범이’의 스킬 ‘메가톤 펀치’가 발동되었습니다.
-근력 수치만큼 추가 대미지를 줍니다.
앞발이 앞으로 뻗으니 변이 메뚜기가 좋다고 입을 벌렸다.
그대로 범이를 씹어 삼키겠다는 듯 활짝 벌린 주둥이였고, 그 속으로 그대로 범이가 ‘쏙’ 하고 들어갔다.
만족한다는 듯 입을 닫으려는 변이 메뚜기였지만, 그러하지 못했다.
콰앙!
엄청난 타격음과 동시에 범이가 변이 메뚜기의 몸을 뚫고 나와 우아하게 착지했다.
-소환수 ‘범이’가 변이 메뚜기를 사냥했습니다.
-경험치 150을 획득했습니다.
-식탐의 목걸이의 효과로 추가 경험치 450을 획득합니다.
-최초 발견 보너스로 추가 경험치 150을 획득합니다.
바닥에 착지한 범이는 주변을 휙휙 둘러보더니 변이 메뚜기가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것을 발견하고는 그대로 팅고가 있는 곳으로 부리나케 돌아왔다.
“풉!”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튀어나왔고, 그것을 보았는지 범이가 팅고를 스쳐 지나 그대로 나를 향해 달려와서는 앞발톱을 꺼내 들고는 내 다리에 푸욱 박았다.
“아! 아프다고 범이야! 미안!”
“냐앙!”
범이는 또 한 번 웃으면 가만 안 두겠다는 듯 소리쳤고, 세 번 정도 더 찌르고 나서야 팅고에게 갔다.
순간 나는 채팅창을 바라봤다.
-ㅋㅋㅋ. 뭐 함?
-고양이랑 콩트 하네.
-근데. 고양이 너무 귀엽잖아.
└고양이가 아닙니다. ‘범이’ 님입니다.
└그래, 그래. 범이 귀엽네.
어느새 범이의 매력에 빠진 시청자들이 귀엽다는 말을 연발했다.
이 정도면 성공한 듯하다.
가직스는 내 명령 없이도 잘 싸우고 있으니 남은 건 하나.
이제 내가 움직일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