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1화
#71
메뚜기 사냥터에 입성한 지 닷새 흘렀다.
“후…… 어마어마하네.”
저 멀리 눈앞에 펼쳐진 들판 위에 뛰어다니는 내 소환수를 바라보며 멍하니 품에 안겨 있는 범이의 목덜미를 긁어 주었다.
“그릉, 그르릉.”
범이는 품에 안겨 기분 좋은 울음소리를 냈다.
세상 편해 보이는 자세는 물론이고, 얼굴에는 한가득 졸음이 가득하다.
요 며칠은 내 품에 안겨서 한 발짝도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 범이와 나, 그리고 눈앞에 소환수를 번갈아 보던 루이즈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참…… 보면 볼수록 어이가 없네. 서머너 킹.”
평소라면 장난을 치거나 주변 구경을 하며 보내는 루이즈다.
내 소환수가 활약하는 모습을 처음 보았을 때는 놀라움만이 가득했지만, 이제는 약간의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나도…… 내 힘의 무서움을 느끼고 있어.”
사실 나도 조금은 무섭다.
내가 벌인 짓으로 인해 지금 눈앞에는 엄청난 일이 일어나고 있으니 말이다.
“몇 마리지?”
나도 모르게 소환수창을 확인했고, 그곳에는 무려 서른 마리의 가직스가 당당하게 등록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서른 마리. 그럼 뭐 해. 성장도 못 하고, 진화도 못 하는 애들이라 여기 벗어나면 쓸모없는걸.”
물론 그건 상위 사냥터에 갔을 때 해당하는 일이다.
지금 이곳은 완전히 가직스의 놀이터나 다름없는 수준.
서른 마리의 가직스는 눈앞에 있는 메뚜기를 향해 양팔을 들어 마구 썰고 다녔다.
가직스의 팔이 한 번 휘둘러질 때마다 메뚜기는 두세 마리씩 죽어 갔고, 연이어 올라오는 시스템창 덕분에 한쪽 눈이 어지러울 정도였다.
지금 가직스의 엄청난 화력을 앞세워 많은 양의 경험치를 획득하는 중이었고, 얼마 전에 40레벨을 찍었던 나였는데, 벌써 60레벨을 앞두고 있었다.
“상태창.”
이름 : 시저
직업 : 서머너 킹(레전더리)
업적 : 필드 몬스터를 포획한 자 외 29
레벨 : Lv.59
스텟 : 근력65(+164) 민첩60(+164) 체력65(+164) 지식60(+164) 지혜60(+164) 통솔력MAX
Hp : 22,900 MP : 22,400
쭉쭉 커 가는 내 스텟을 보면 절로 배가 불러온다.
오죽하면 정말로 현실에서 먹는 양이 줄어들고 있을 정도로 소식하고 있다.
그 이유가 요즘 하도 꿀을 빨아 월오룰을 플레이하면서도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인 소모가 크지 않다 보니 절로 양이 줄어든 거다.
건강이 나쁘다거나 어디 아픈 건 아니다.
아무튼, 첫날 입성과 함께 40레벨을 달성하고 그 후로 나흘이 흐른 지금 무려 19레벨이나 달성한 덕분에 스킬 뽑기 권을 더 얻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뽑기 권을 사용했고, 구슬에서 나온 스킬은 놀랍게도 새로운 스킬이었다.
[소환수 관찰 Lv.1]
등급 : 유니크
액티브 스킬
-소환수 관찰하는 데 사용되는 스킬이다.
-지정한 소환수의 고유 기술을 알려 준다.
재사용 대기 시간 : 60분
소모MP : 1,000
오랜만에 등장한 유니크 스킬이며, 나에게 너무나도 유용한 스킬이었다.
그 증거를 지금 보여 주겠다.
“1호부터 30호까지. 가시 방출!”
“캬락!”
내 명령에 응답하듯이 가직스가 우렁차게 소리쳤고, 몸을 살짝 웅크리더니 어깨에 있는 가시를 분출, 아니, 발사했다.
파바바바박!
서른 마리의 가직스가 뿜어내는 가시는 주변에 있던 메뚜기의 몸통을 꿰뚫어 버렸다.
얼마나 강한 힘인지, 한 마리가 아니라 서너 마리는 거뜬하게 꿰뚫어 버리는 가시였고, 순식간에 메뚜기의 시체로 길이 만들어졌다.
“크…… 좋아. 다시 가시가 생성될 때까지 사냥!”
“캬락!”
내 명령에 다시 움직이는 가직스였다.
가시로 인해 근처에 있던 메뚜기는 전부 학살된 상황, 가직스는 도약을 통해 살아 있는 메뚜기가 있는 곳으로 날아갔고, 다시 양팔을 휘둘러 메뚜기를 사냥하기 시작했다.
“후후후. 이 맛이지.”
내가 직접 사냥을 하면서 손맛을 즐기는 것 또한 좋지만, 이렇게 개꿀 빨면서 사냥하는 맛 또한 일품이다.
홀로 방금 들어온 다량의 경험치를 바라보며 즐거워했다.
성장은 나 혼자만이 한 것은 아니다.
-소환수 ‘범이’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55레벨을 달성했습니다.
-소환수 ‘팅고’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59레벨을 달성했습니다.
지금도 이렇게 시스템창으로 둘의 성장을 알려 주었다.
루이즈를 포획하며 다량의 경험치를 먹어서 그런지 나랑 레벨이 같던 범이의 경우, 격차가 생겨 버려 이제 55레벨이며, 팅고 녀석의 경우, 59레벨이다.
이곳 메뚜기 사냥터로 입성하기 전에 우리의 레벨이 30대 후반이었고, 여기서 무려 20레벨 이상을 올려 범이와 팅고 또한 두 번의 뽑기를 했다.
두 번의 뽑기의 결과가 어떻게 되었냐고 묻는다면 난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고 말겠다.
“기대할 만하지.”
내 기대를 한 몸에 받는 소환수는 다름 아닌 팅고다.
“무려 연계하기 좋은 스킬을 익혔으니까.”
레벨이 오르면서 팅고가 얻은 스킬 뽑기 권은 두 개.
먼저 배웠던 일기토 스킬과 함께 연계해서 쓰면 아주 효과가 좋을 두 개의 스킬을 익혔다.
[돌진 Lv.1]
등급 : 레어
액티브 스킬.
-적을 향해 돌진하여 어깨로 적을 공격한다.
-공격 성공 시 일정 확률로 적을 혼란에 빠트린다.
추가 대미지 30%
혼란에 빠진 확률 30%
재사용 대기 시간 : 10분
소모MP : 100
[강타 Lv.1]
등급 : 레어
액티브 스킬.
-순간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 적에게 일격을 날린다.
추가 대미지 100%
재사용 대기 시간 : 10분
소모MP : 100
돌진과 강타.
일기토를 시작으로 적을 도발하며 능력치를 낮춘 다음, 돌진으로 빠르게 접근과 동시에 혼란을 일으키고, 강타로 마무리.
범이에게 있던 원콤트리가 팅고에게도 생긴 것이다.
이걸로 두 마리의 보스 몬스터가 나타나도 무리 없게 잡을 수 있는 수단이 생겼다.
덕분에 내가 구상하고 있는 전투에 다양성이 늘어났으니 앞으로 나타난 적이 불쌍해진다.
“그런 팅고에 비하면 범이는 아쉽지.”
범이의 경우 40레벨을 달성했을 때 뽑은 스킬은 ‘몸통 박치기’였고, 50레벨을 달성했을 때 뽑은 스킬은 ‘물어뜯기’였다.
나쁜 건 아니다.
아니. 오히려 좋은 일이라 생각하면 된다. 덕분에 두 개의 스킬이 레벨만이 아니라 등급까지 올랐으니 말이다.
둘 다 레어 등급의 Lv.4까지 성장했고, 지금부터 열심히 사용해서 숙련도를 올려 Lv.10을 달성하는 순간, 새로운 스킬을 배울 것이니 말이다.
단지 팅고가 배운 것에 비하자면 아쉽다는 것이지 절대 나쁜 건 아니다.
“장기적으로 보면 오히려 기존에 배운 스킬이 많이 나와 주는 게 좋지.”
그만큼 스킬의 위력이라든가, 효율 면에서 상당히 좋아지니까 말이다.
전혀 나쁠 것 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아직 우리의 레벨이 50대라는 것이다.
아직 한참은 더 뽑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홀로 행복 회로를 굴리며 즐거워하고 있을 때 눈앞에 시스템창이자 알림이 떠 올랐다.
띠링띠링.
지금 알람은 다름 아닌 한 시간의 쿨 타임이 끝났다는 것을 알려 주는 알람이었고, 나는 그대로 반지를 끼고 있는 손을 들어 스킬을 사용했다.
“탐지.”
-탐지 스킬을 발동했습니다.
-반경 1km를 탐지합니다.
평소라면 저 문구 다음에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가 떠야 한다.
닷새째 이곳 사냥터에서 특별한 곳을 발견하거나 희귀한 물품 하나 탐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쯤이면 성능을 무시할 수 있겠지만, 적어도 회귀자인 나는 이 반지의 능력을 잘 알기에 꿋꿋하게 믿을 뿐이다.
-탐지에 걸린 것이 있습니다.
-위치를 미니 맵에 표기합니다.
“오! 드디어.”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 알림창이 찾아왔다.
나는 미니 맵을 보고 그 자리로 즉시 달려감과 동시에 팅고를 불렀다.
“팅고! 나 호위해.”
“충!”
저 멀리 메뚜기를 사냥 중이던 팅고가 내 쪽으로 왔다.
가직스의 숫자가 늘어남과 동시에 사냥 대신 내 품에 안겨서 쉬고 있는 범이와 다르게 팅고 녀석은 한결같이 사냥에 열중했다.
가직스가 쓸어 버리고 지나간 자리가 아니라, 다른 방향에서 달려드는 메뚜기를 향해 계속해서 꾸준하게 사냥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팅고 녀석이 늘 한결같아서 참으로 든든하다.
그런 팅고와 함께 미니 맵에 표기된 곳에 도착했다.
딱히 별다른 것이라곤 없는 평범한 들판이다.
눈에 띄는 게 하나 있다면 낮게 쌓여 있는 돌탑 정도다.
“여긴가 보네.”
나는 그 돌탑을 발로 툭하고 찼다.
-숨겨진 인스턴스 던전을 찾았습니다.
[인스턴스 던전 ‘메뚜기 둥지’]
-최초 발견입니다.
-최초 발견 보너스가 적용됩니다.
-사냥 시 얻는 경험치가 두 배가 됩니다.
-아이템 드랍율이 두 배가 됩니다.
“아! 이거다.”
이걸 보는 순간 나는 번뜩이는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이걸로 첫 방송을 하는 것을 말이다.
“누구도 이렇게 깊숙하게 들어오지 못했지. 거기에 최초 인던 발견까지. 어그로 요소는 다 있구먼.”
여기에 나의 강력함을 어필도 할 수 있다.
물론 가직스 전부를 다 보여 주면 안 된다. 적당히 다섯 마리 정도 보여 줘야지.
너무 많이 보여 주면 회귀 전에 서머너 킹처럼 너프 먹을지 모르잖아? 물론 너프를 먹어도 강력했지만 말이야.
아무튼 이 생각에 나는 서둘러 연락을 취했다.
앞으로 두 시간 뒤에 라이브 방송을 하겠다고 말이다.
* * *
그 시각.
시저의 연락을 받은 비기너, 즉 이지은은 화들짝 놀랐다.
“드, 드디어!”
이곳은 이지은이 마련한 한 사무실.
단순히 시저의 편집자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편집과 라이브 방송을 위해 마련한 사무실이었다.
덕분에 초기 자금이 엄청나게 들어갔다.
사무실 임대료부터, 각종 방송에 필요한 장비까지.
모아 둔 돈으로 부족해 대출까지 받은 상황이라 상당한 무리를 했다.
하나 그녀는 이 모든 것이 투자이며, 자신의 의뢰주이자 유일한 고객인 시저만을 위한 투자기도 하다.
그녀가 생각하기에 절대 시저는 성공할 수밖에 없는 아주 멋진 보석이니 말이다.
편집을 위해 받은 풀 영상만 봐도 알 수 있다. 적어도 이 사람은 여타의 다른 플레이어와 다르다는 것을 말이다.
혼자만의 힘으론 부족하기에 평소 알고 지내던 지인들의 소개를 통해 추천 받은 사람 중에서 실력과 인품을 겸비한 이들로 네 사람을 뽑았다.
면접으로 뽑은 네 명과 함께 사무실을 차리고, 어제 겨우 짐 정리가 끝난 상황이었다.
갑작스러운 이지은의 말에 네 명의 남녀가 방금까지 뚫어지라 바라보고 있던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고는 이지은에게 향했다.
방금까지 놀란 얼굴의 그녀가 차분한 얼굴로 변하더니 한마디 했다.
“시저 님이 방송하신답니다.”
그녀의 말에 방금까지 엉덩이를 붙이고 있던 네 사람이 그대로 일어났다.
드르르르륵.
네 개의 의자가 뒤로 밀려나면서 일으키는 소음에 모두가 인상을 찌푸릴 법도 하지만, 그러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대와 흥분, 그리고 설렘이 가득한 눈으로 바뀌었다.
팀장인 한지훈이 손뼉을 쳤다.
“자! 이제 저희의 실력을 보여 줄 시간입니다. 모두 준비하시죠.”
“네, 팀장님.”
“기다려 왔습니다.”
“BGM 확보도 다 해 뒀습니다.”
모두가 의욕을 불태웠다.
그 모습에 이지은이 말했다.
“오늘 첫 라이브를 무사히 마친다면 두 개의 선택지를 드리겠습니다. 골라 보시죠.”
뭘까 하는 얼굴의 네 사람을 바라보며 이지은이 말했다.
“첫 번째는 회식, 두 번째는 내일 휴무입니다. 어떤 걸 선택하시겠어요?”
둘 다 좋은 선택지라는 것을 알고 있는지 팀장 한지훈이 외쳤다.
“회식은 자유 참가, 휴무는 전부 참가 어떻습니까?”
그 말에 모두가 기뻐했다.
아마 직장인이라면 누구라도 기뻐할 선택지를 당당하게 외치는 한지훈을 향해 팀원 모두가 엄지손가락을 척하고 꺼내 들었다.
이지은 또한 멋진 선택이라며 박수와 함께 모두가 자신의 자리로 향했다.
“시저 님의 화려한 데뷔를 위해. 그리고 범이 님의 최고의 모습을 위해.”
그녀의 말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참고로 여기 있는 다섯 모두가 범이의 팬클럽에 가입되어 있는 회원들이다.
그게 입사 조건 중 하나였다는 건 이지은만 아는 비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