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9화
#69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진짜야?”
아니, 그도 그런 것이 정말로 협곡에 등장하는 챔피언인 가직스와 모습이 똑같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족 보행은 물론이고, 팔을 달린 거대한 낫과 등 뒤에 있는 날개, 어깨의 가시까지 너무나도 흡사했다.
[가직스 Lv.100]
하물며 이름까지.
이 정도면 저작권에 걸리는 게 아닐까 싶다.
뭐, 월오룰이면 저작권을 사들였겠지. 그러고도 남을 돈을 벌었으니까. 그렇다면 나중에 다른 챔피언도 나오는 거 아냐?
개인적으론 아라가 좋던데, 구미호를 기반으로 만든 챔프라 그런지 너무 매력적이고 말이야.
거기에 아주 놀라운 점은 다름 아닌 정예 몬스터가 아니라 필드 보스 몬스터였다.
붉은색의 선명한 이름표가 그것을 증명해 주었다.
여기 필드 보스의 정체를 잘 몰랐음에도 워낙 괜찮은 소환수라기에 포획하려 했는데, 가직스인 걸 보니 더욱 탐났다.
비록 생긴 건 좀 그렇지만 그래도 따지고 보면 추억도 있는 몬스터가 아닌가?
그렇기에 나는 가직스를 좀 더 바라보았다.
-필드 보스 몬스터 ‘가직스’의 개체값을 분석합니다.
-개체 값은 0%입니다.
“에라.”
개똥이다.
그것도 최악의 똥이라 할 수 있는 0%의 개체값.
앞으로 미래가 없는 녀석이긴 하다.
홀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 가직스가 허공으로 도약했다.
순식간에 내가 소환수로 만든 메뚜기가 있는 곳으로 향하더니 양손에 달린 거대한 낫이자 팔을 휘둘러 썰어 내기 시작했다.
서서서걱.
한 번에 세 마리의 메뚜기가 그대로 반으로 갈라지며 초록색의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캬락! 캬악!”
그런 동족을 향해 공격해 오는 메뚜기를 향해 마치 경고하듯이 포효하는 가직스였다.
하나 메뚜기들은 내 통제 아래 있다.
아무리 위협하는 포효를 날린다고 한들 꿈쩍도 하지 않고 동족을 향해 거침없이 아가리를 벌리고 씹어 삼킬 뿐이었다.
“캬락!”
가직스는 분노를 표출하며 동족에게 이빨을 내밀고 있는 메뚜기를 향해 도약하며 하나씩 죽여 갔다.
“캬, 그래도 필드 보스 몬스터구나. 강하네.”
정말로 가직스는 강했다.
삼백 마리가 넘는 내 소환수의 숫자를 줄여가는 속도는 내가 포획으로 숫자를 늘리는 것보다 빨랐고, 범이와 팅고, 나까지 함께 메뚜기를 사냥하는 속도보다도 빨랐다.
저 팔의 낫은 장식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 엄청난 위력을 뿜어내었다.
“슬슬. 더 이상 줄어들면 위험하지.”
나는 검을 뽑았다. 그러고는 가직스가 있는 방향으로 그대로 쏜살같이 뛰어 들어갔다.
캉!
내가 휘두른 검을 한쪽 팔로 막아 내는 가직스였다.
“캬락!”
“그래도 보스 몬스터라고 한가락 하네? 이걸 막았어?”
너무나도 쉽사리 내 검을 막은 가직스를 보며 나는 슬쩍 웃었다.
그런 나와 다르게 가직스는 살짝 겁에 질린 듯한 모습이다.
방금까지 자신의 몸집을 부풀리려는 듯 활짝 펼친 날개는 서서히 접혀 들어갔고, 한발 뒤로 물러났다.
거기에 메뚜기 몬스터와 다르게 작은 입에서 흘러내리고 있던 침이 더 많이 나오기 시작했다.
“어쩔까나? 죽일까 포획할까?”
조금 고민이다.
앞으로의 미래성을 따지면 별 쓸모없는 녀석이지만, 원래 계획을 생각하면 포획은 당연하다.
“예정대로 하자.”
예정대로 포획하자.
뭐, 사실 포획이 실패해도 상관은 없다.
그건 그대로 나에게 도움이 되니까.
죽이면 경험치, 포획을 성공해도 반절의 경험치가 들어오니 나쁜 것도 아니다.
“중급 포획.”
-스킬 ‘중급 포획’을 사용했습니다.
-필스 보스 몬스터 ‘가직스’를 포획합니다.
-포획에 실패했습니다.
당연히 첫 번째 시도는 꽝.
하지만 실망하거나 허탈하지 않았다. 지금의 가직스는 체력이 넘치고 나를 향해 적대심을 활활 불태우고 있으니 말이다.
“그럼, 차근차근 공략해 보자고.”
나는 검을 들어 빠르게 가직스의 가슴팍을 향해 찔러 넣었다.
캉!
이번에도 한쪽 팔을 들어 내 검을 튕겨내는 가직스다.
한쪽 팔만 이용하는 것을 보면 근력에 자신이 있어서라기보단 확실히 아직 내 힘을 모르는 것 같다.
“조금 더 강하게 간다고.”
나는 아까보다 팔에 힘을 더 주었고, 그대로 위에서 아래로 휘둘렀다.
카앙!
“캬락!”
가직스의 입에서 비명이 흘러나왔다.
이번에도 멍청하게 한쪽 팔을 들어 막으려던 놈의 낫에 내 검이 파고들어 갔다.
놈의 팔이자 낫은 근력 스텟이 압도적으로 높은 내 힘을 감당하지 못했다.
그 고통에 가직스가 남아 있는 팔을 내 몸을 향해 휘둘렀다.
부웅.
이미 내 동체 시력은 놈의 팔이 움직이기 전에 파악했고, 내 다리는 빠르게 뒤로 물러나게 해 주었다.
그렇다고 그냥 물러날 내가 아니다.
“가로 베기.”
이번에는 스킬을 사용했다.
대신 검을 쥐고 있는 힘은 최소한으로 검이 내 손에서 빠져나가지 않을 정도로 위력을 약화시켰다.
카앙!
“캬락!!”
이번에도 쇠가 부딪치는 소리 이후 가직스의 끔찍한 비명이 들렸다.
그래도 보스 몬스터의 팔이라서 그런지 단번에 베이지는 않고 낫에 막히고 말았다.
그럼에도 위력이 상당하다는 것을 증명하듯 반 정도 잘렸다.
“후, 10년간의 노력이 담긴 스킬인데 이 정도가 아니면 섭섭하지.”
이게 내 근력을 추가하지 않고 순수하게 스킬 위력으로 승부한 힘이다.
그럼에도 이만한 위력을 내는 것은 순수하게 회귀 전에 노력했던 나 자신의 보상이다.
“오러까지도 필요 없겠어. 여긴 내 순수한 근력과 기본 스킬이면 충분한 곳이네.”
보스 몬스터를 상대로 나는 여유가 있다.
압도적인 스텟, 거기에 회귀 전에 성장시켜 두었던 스킬까지 합친 이상 꺼릴 게 없다.
“중급 포획.”
-스킬 ‘중급 포획’을 사용했습니다.
-필스 보스 몬스터 ‘가직스’를 포획합니다.
-포획에 실패했습니다.
이번에도 실패.
하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대신 검을 휘두를 뿐이다.
까앙!
이번에는 양팔을 들어 내 검을 막아 내는 가직스다.
두 번의 교육으로 한 손으로 막아 낼 정도로 무시해서는 안 될 상대라는 것을 느낀 거다.
“좋아. 좋아. 이대로 더 즐겨 보자고.”
나는 즐겁다는 듯 다시 검을 휘둘렀다.
캉! 캉! 캉!
나는 내가 기억하는 검을 펼쳤다.
10년간 세 개의 스킬인 가로 베기, 세로 베기, 찌르기를 기반으로 둔 공격 방법을 멈추지 않고 가직스에게 펼쳤다.
“하하하.”
나는 절로 웃음이 나왔다.
왠지 모르겠다. 검을 붙잡고 공격하는 나 자신이 너무나도 즐겁고 행복하다.
왤까? 회귀 전에는 검을 잡고 사냥하던 나 자신이 별로였다.
아니! 정확하게는 검은 손 길드의 1군에서 활동할 때까지만 해도 나는 즐거웠다.
몇 날 며칠을 분석해 공략법을 찾아내고, 검을 휘두르며 사냥을 하며 끝끝내 공략법대로 공략했을 때 느낀 그 쾌감을 잊지 못했다.
하나 그것도 잠깐이고, 2군으로 내려간 뒤로부터는 내가 휘두르는 검에 즐거움은 없었다.
오직 단 하나.
생존.
오직 생존만을 위해 검을 휘둘렀다.
나와 내 동생의 생존을 위해 휘두르던 검은 즐거움이 아닌 처절한 발악이었고, 그 발악 속에 얻을 수 있던 것은 겨우 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을 품는 것뿐이었다.
“이제는 다르다.”
나는 달라졌다.
신의 기회인지 아니면, 악마에게 영혼을 팔린 것인지 알 수 없다.
하나 나는 또 한 번의 기회를 얻었다.
그리고 그 기회를 최대한으로 살려 지금의 직업을 얻었다.
레전더리 직업. 월오룰 세계관 최강의 직업.
“나는 서머너 킹이다!”
나도 모르게 커다랗게 외쳤다.
쩌렁쩌렁 울리는 나의 커다란 외침에 서로 죽이기 위해 치고받고 싸우던 이곳 사냥터에 정적이 흘렀다.
내가 방금까지 상대하던 가직스의 눈동자가 조금씩 공포로 물들어 가며 서서리 떨기 시작했다.
주변의 메뚜기는 내 주변에서 조금씩 떨어졌다.
그에 반해 내 소환수가 된 메뚜기는 오히려 한 발 더 앞으로 당당하게 움직였다.
조용한 정적 속에서 들려오는 하나의 소리가 있었다.
“냐앙!”
내 말에 동의한다는 듯 소리치는 범이의 울음소리와 함께 시스템창이 또 한 번 정적을 깨트렸다.
-사용자의 의지가 메아리칩니다.
-사용자의 직업인 서머너 킹이 그 메아리에 응답합니다.
-숨겨진 고유 특성 개방 조건을 달성했습니다.
-고유 특성 ‘왕의 위엄’이 개방되었습니다.
-고유 특성이 발동합니다.
-서머너 킹보다 낮은 존재들에게 경외심을 영혼 깊숙이 새깁니다.
줄지어 올라오는 시스템창을 끝으로 내가 다시 정면을 바라보았다.
“아…….”
내 눈앞에는 그 많던 메뚜기는 물론이고 가직스가 고개를 숙이고 자세를 낮춘 상태로 대기했다.
마치 눈앞에 왕을 경배하는 자세로 나를 향하고 있었다.
“냥!”
“충!”
“왕에게 충성을.”
그런 메뚜기 떼와 마찬가지로 기존의 내 소환수인 범이와 팅고, 루이즈까지 나를 향해 무릎을 꿇고 고개 숙이고 있었다.
모두가 나를 향해 경배하는 모습에 나는 조용히 한마디 했다.
“중급 포획.”
-스킬 ‘중급 포획’을 사용했습니다.
-필스 보스 몬스터 ‘가직스’를 포획합니다.
-포획에 성공했습니다.
-플레이어 최초로 필드 보스 몬스터를 포획했습니다.
-업적 ‘필드 몬스터를 포획한 자’를 획득했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10 추가됩니다.
-정예 몬스터를 포획했습니다.
-스킬 ‘중급 포획’의 레벨이 올라갑니다.
-스킬 ‘중급 포획’의 레벨이 올라갑니다.
-스킬 ‘중급 포획’의 레벨이 올라갑니다.
-사냥이 아닌 포획이기에 경험치가 절반으로 줄어들어 획득합니다.
-경험치 150을 획득합니다.
-식탐의 목걸이의 효과로 추가 경험치 450을 획득했습니다.
가직스를 포획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업적.
유저 최초로 나는 필드 보스 몬스터를 소환수로 삼았다.
“하하하.”
웃음이 나왔다.
즐거움의 웃음.
그래. 너무 즐겁다. 이게 월오룰을 하는 맛이지.
“가직스 소환.”
내 부름에 나타난 가직스다.
“캬락!”
거칠게 포효하며 나타난 가직스.
그런 놈이 나를 향해 명령을 내려 달라는 듯 이글이글 불타는 눈빛을 보내왔다.
“쓸어 버려.”
“캬라라락!”
여전히 나를 향해 바닥에 엎드려 있는 메뚜기를 향해 이곳의 필드 보스 몬스터인 가직스가 날개를 펼쳐 덩치를 부풀리더니 그대로 양손에 달려 있던 낫을 미친 듯이 휘둘렀다.
가직스의 일격에 메뚜기는 서서히 썰려 나갔고, 메뚜기는 그 자리에서 나의 소중한 경험치가 되어 주었다.
-소환수 ‘이름 없음’이 메뚜기를 사냥했습니다.
-경험치 100을 획득했습니다.
-식탐의 목걸이의 효과로 추가 경험치 300을 획득했습니다.
-소환수 ‘이름 없음’이 메뚜기를 사냥했습니다.
-경험치 100을 획득했습니다.
-식탐의 목걸이의 효과로 추가 경험치 300을 획득했습니다.
줄지어 올라오는 알림창.
여기에 범이와 팅고가 자신들도 질 수 없다는 듯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여전히 엎드려 있는 메뚜기를 향해 저마다 사냥을 시작했다.
-소환수 ‘범이’가 메뚜기를 사냥했습니다.
-경험치 100을 획득했습니다.
-식탐의 목걸이의 효과로 추가 경험치 300을 획득했습니다.
-소환수 ‘팅고’가 메뚜기를 사냥했습니다.
-경험치 100을 획득했습니다.
-식탐의 목걸이의 효과로 추가 경험치 300을 획득했습니다.
쉴 틈 없이 올라오는 알림창에 나는 쥐고 있던 검을 다시 검집에 넣고는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러고 있자니 루이즈가 내 등 뒤에서 살며시 나를 안아 주며 말했다.
“우리 주인님 최고.”
그와 동시에 방금 내 모습이 그 어떤 누구보다도 멋져 보였다며 새삼 반할 것 같다며 내 귀에 속삭이는 루이즈였다.
“그래. 너무 반하지는 말고.”
나는 슬쩍 웃으며 농담했다.
이번에는 루이즈의 진심이 느껴졌기에 나도 미소 지을 수 있었다.
[왕의 위엄Lv.MAX]
등급 : 고유 권능
패시브 스킬.
-특수한 조건이 달성되었을 때 왕의 위엄을 발휘합니다.
-압도적인 힘과 격의 차이를 느꼈을 때 스스로 복종하게 만듭니다.
-왕의 위엄에 노출된 대상은 포획률이 50% 상승합니다.
이번에 얻은 고유 특성이 무엇인지 알려 주는 세 줄의 문구.
생각지도 못하게 얻은 고유 특성이다.
‘숨겨진 고유 특성이라…….’
시스템창은 내가 숨겨진 고유 특성을 개방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번만이 아니라 앞으로도 더 있을지도 모른다는 소리다.
물론 더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게 서너머 킹의 직업을 알려준 제이스의 말에 따르면 계속 진행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 계속해서 나아가면 알게 되리라.
마음을 다잡았다.
눈을 돌려 계속해서 쌓여 가는 경험치를 알리는 시스템창을 바라보았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40레벨을 달성했습니다.
-스킬 뽑기 권이 생성되었습니다.
스킬 뽑기 시간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