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7화
#67
‘특이점? 이해도? 퀘스트?’
모두지 이해가 안 되는 시스템창이다.
일단 다시 차근차근 짚어 보자.
일단 먼저 특이점이다. 이건 한 번 본 적이 있는 녀석이다.
‘블러드 스네이크.’
다 자라지 못한 그 녀석을 잡았을 때 떠 올랐던 시스템창에도 저 특이점이라는 것을 봤었다.
그렇다면 뭔가 메인 시나리오와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닐까 싶지만, 시스템창에 그러한 문구가 없는 것을 보면 또 그런 건 아닌가 보다.
그런 것은 둘째 치자. 아니, 세 가지 문제 중에 제일 마지막으로 치자.
‘이해도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가?’
내가 회귀자라는 것 말이다.
내 머릿속엔 10년간의 노하우가 새겨져 있다. 그 때문에 이해도가 높아졌지 않았을까 한다.
하물며 지금의 나는 전보다 젊어지지 않았나? 그 덕분에 피지컬부터 달라졌고, 스텟 또한 회귀 전보다 우월하다. 아니, 우월해질 예정이다.
그로 인해 변화가 찾아왔지 않았을까 싶었고,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스킬창을 열어 보았다.
[가로 베기 Lv.2]
등급 : 유니크
엑티브 스킬
-적을 향해 가로 베기를 사용한다.
-스킬 레벨이 올라갈수록 정확도와 대미지가 상승한다.
대미지 상승 220%, 정확도 220%
재사용 대기 시간 : 10초
소모MP : 100
‘미, 미친. 진짜네.’
정확하게 내가 회귀하기 전에 보았던 스킬창에 있던 것과 똑같았다.
전혀 한 치의 오차도 없고, 내가 회귀 전에 죽어라 훈련을 통해서 올려 두었던 네 가지 스킬인 가로 베기, 세로 베기, 찌르기, 오러의 스킬 레벨과 숙련도가 말이다.
믿기지 않은 상황.
이게 진짜라면 나는 당장에라도 엄청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단순히 계산해 보자.
지금 찌르기를 할 경우 대미지 상승은 220%. 여기에 오러를 씌워 사용한다면 추가로 200% 상승한다.
찌르기를 해도 지금의 내가 아무 곳이나 공격하겠는가? 당연히 약점 포착으로 표시되어 있는 곳을 향해 찌를 것이고 추가로 10배의 대미지를 준다.
개사기지.
아니. 이건 쫌. 몬스터가 불쌍할 정도잖아?
물론 그 불쌍한 몬스터는 지금 내가 있는 곳에 몬스터다.
어지간하면 다 한 방에 보낼 수 있다는 소리고, 세 가지의 스킬을 돌려서 잘 사용만 한다면 적어도 1분에 대여섯 마리는 그냥 죽일 수 있다는 소리다.
물론 여기 사냥터면 스킬의 도움 없이 오러만 씌워도 그냥 죽일 것이다.
물론 중반부터는 몬스터의 피 통이 무지막지하게 늘어난다.
나보다도 훨씬 스킬 레벨이 높고 강력한 스텟을 바탕으로 사냥하는 랭커들도 한 방에 죽이지 못하는 수준으로 변하니 불쌍하다는 생각은 저쪽으로 치워내도 된다.
‘퀘스트를 완료할 경우…… 서브 직업이 생길 수 있다는 건가?’
놀랍게도 지금 NPC 킨지를 찾아갈 경우, 서브 직업을 얻을 수 있는 퀘스트가 발생했다.
문제는 이 NPC 킨지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다는 것이다.
분명 서브 직업을 주는 퀘스트를 줄 정도로 대단한 NPC인데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은 어딘가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에 숨어 지낸다거나, 신분을 속이고 살고 있다는 소리다.
혹시 하는 마음에 직원에게 물었다.
“혹시 킨지라는 사람을 알고 계십니까?”
잠깐 생각에 잠긴 직원이었고, 그의 대답은 ‘모른다.’였다. 거기에 옆에 카운터를 보고 있는 마법사도 모른다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이곳 튜벨란 백작령의 사람은 아니라는 소리다.
발로 열심히 뛰어다니며 찾아야 할 것 같았다.
나는 시스템창을 전부 끈 후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생각하던 것을 멈췄다.
“지부장님께서 찾으십니다.”
이제 볼드모드의 퀘스트를 완료할 시간이다.
* * *
지부장이 있는 방에 들어간 순간 나는 그 자리에서 굳을 수밖에 없었다.
“어서 오게 플레이어 시저. 이곳 지부장을 맡고 있는 헬켄이네.”
다름 아닌 눈앞의 지부장. 헬켄 때문이다.
일단 침착하게 인사했다.
“플레이어 시저입니다.”
내 인사를 받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옆에 다소곳하게 앉아 있는 한 여인을 소개해 주었다.
“이쪽은 튜벨란 백작가의 줄리엣 님이시네.”
“반가워요.”
“플레이어 시저입니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레이디 줄리엣.”
나는 정중하게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 숙여 인사했다.
이건 뭐 어디서 누가 알려 준 건 아니고, 이제 귀족들을 자주 만날 것 같아서 인터넷에 찾아보곤 슬쩍 따라 해 본 거다.
“어머. 재밌으신 분이네요.”
“감사합니다.”
다행히 마음에 들었는지 살짝 미소를 짓는 줄리엣이다.
‘쩝, 큰일이네. 줄리엣을 만난 건 좋은데 하필 헬켄이 있네.’
내가 상당히 난감한 것은 다름 아닌 헬켄의 존재 때문이다.
지금이야 이곳 마탑의 지부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헬켄이지만, 실상은 마신교에 몸을 담고 있는 배신자 중 하나다.
이것으로 대충 짐작 가는 것이 하나 있는데, 다름 아닌 이곳 튜벨란 백작이 마족에게 영혼을 팔고 마족을 강림시킬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준 사람이 눈앞에 헬켄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퀘스트 완료를 눈앞에 두고 해결하지 못하겠군.’
평범한 유저였다면 아마 퀘스트 완료를 위해 물건을 넘겼을 것이다.
헬켄게엔 블러드 스네이크에게서 얻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구슬’은 물론이고 줄리엣에게 로미오의 편지를 말이다.
하지만 나는 다르다.
미래 지식이 있기에 둘에게 퀘스트 아이템을 넘기지 못한다.
줄리엣은 단둘이 있을 때 줄 수 있겠지만, 헬켄에겐 그 무엇도 넘길 수 없다.
“그래, 무슨 일인가? 안 그래도 자네에 관한 이야기는 볼드모드 님에게 들어서 알고 있네. 필요한 지원이 있다면 뭐든 받으라고 하더군.”
“그렇습니까?”
“그렇네. 필요한 게 있거든 뭐든 부탁하게나.”
원래라면 퀘스트 템을 주고 하하허허 하며 끝날 이야기지만, 나는 어쩔 수 없이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를 틀었다.
“이곳에 말썽을 피우는 몬스터가 불에 상당히 약하다고 들었습니다. 혹시 화염 관련 스크롤 몇 장 얻을 수 있는지요?”
“어디에 쓰려고 하나?”
“보스 몬스터를 만났을 때 사용하려 합니다. 대신 만나지 못했을 경우 반납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한다면 챙겨 주지.”
그러면서 책상 위에 있던 스크롤 뭉치를 나에게 주었다.
-스킬 ‘파이어 볼’이 담겨 있는 스크롤을 획득했습니다.
시스템창의 알림과 함께 정확하게 열 장의 스크롤이 인벤토리로 들어왔다.
“감사합니다.”
스크롤을 받은 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쩝, 완전 최악은 면한 건가.’
적어도 나름의 이득을 보긴 했다.
이 스크롤 열 장의 값어치를 따지면, 대략 오백 골드에 달한다.
아무래도 소모품인 데다가 파이어 볼이면 이곳에선 상당히 강력한 스킬로 대우받으니 꽤 쓸 만한 걸 얻어 간다.
“그럼 저도 가 보겠어요. 그 건에 대해서는 잘 부탁드리겠어요.”
“믿고 맡겨 주십쇼. 이 헬켄, 한 입으로 두말하는 남자가 아닙니다.”
그래. 두말이 아니라 세 말 이상 하지.
절대 두말로 끝날 사람이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나다. 그럼에도 내색은 하지 않았다.
“그럼 살펴 가시게. 줄리엣 님은 다음에 뵙겠습니다.”
그렇게 줄리엣과 함께 지부장의 방을 나왔다.
‘찬스다.’
아마 지금이 아니면 다신 기회가 없을 것이다.
내가 말을 걸려는 순간에 더욱 빠르게 줄리엣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시저 님, 혹시 한 가지 부탁을 드려도 될까요?”
“네?”
“이것을 로미오에게 전해 주셨으면 해서요.”
그녀의 손에 편지가 들려 있었고, 그것을 본 순간 시스템창이 반응했다.
-퀘스트가 생성되었습니다.
[줄리엣의 부탁]
난이도 : 보통.
내용 : 줄리엣이 쓴 편지를 줄리엣에게 전달하라.
보상 : 줄리엣의 특별한 보상.
“아…….”
이래서 둘이 커플인가 보다.
생각하는 게 똑같네. 그리고 하는 행동도.
나는 슬쩍 미소 지으며 인벤토리에 있던 로미오의 편지를 꺼냈다.
“로미오 님이 전달하신 편집니다. 꼭 혼자 계실 때 보셔야 합니다.”
“아…….”
그녀의 황금빛 눈망울에서 물이 차오르더니 그대로 주르륵 흘러내렸다.
“이 편지는 제가 가지고 있다가 로미오 님을 만나면 드리겠습니다.”
내 말에 아무런 대답도 못 하고 고개만 끄덕이는 그녀였다.
그런 그녀의 손을 붙잡아 문 앞의 마차까지 조심스럽게 에스코트해 주었고, 마차에 타는 그녀의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짠하네.’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으면 편지 한 통에 저렇게 눈물을 흘릴까.
하물며 회귀 전에 그녀의 한 서린 눈물과 넋두리와 함께 죽어 간 영상을 생각하면 더욱더 슬펐다.
하지만 그건 회귀 전. 이제 그런 비극은 다시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무렵에 마차가 떠났고, 이제 나도 움직여야겠다 생각했을 때였다.
웅성웅성.
시끌시끌.
그제야 들려오는 주변 소리에 나는 무슨 일인가 싶어 정면을 바라보았을 때였다.
“파이어 길드에서 왔습니다. 시간 괜찮으십니까?”
“시저 님, 저희 길드는 어떻습니까?”
“저의 길드에서는 100% 시저 님을 위해 모든 것을 관리해 줄 전문가를 섭외…….”
“상위 0.1% 길드의 도움을 받아 보시겠습니까? 단숨에 랭커가 될 수 있습니다.”
“조건을 말씀하신다면 전부 다 들어 드리겠습니다. 한 번만이라도 대화를 합시다.”
순식간에 내 주변으로 길드 스카우터들이 몰려들었다.
그들의 목적은 단 하나. 오직 나를 스카우트하기 위해 서로 경쟁 중이었다.
“내가 먼저야!”
“그래, 먼저 가라. 기왕이면 아주 가 버려.”
“뭐, 이 자식이?”
“이 자식? 네가 내 부모냐?”
“싸우려면 저기 가서 싸우세요. 품격 떨어지게 말이야.”
“그런 너는 품격이 높아서 애를 노예 계약서로 작성시켰냐?”
“아니, 이러깁니까? 폭로전 들어가자 이거예요?”
“그래, 가자. 누가 이기나 보자.”
개판 오 분 전.
어디를 가더라도 여기보다 심각한 곳은 없을 것이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상위 랭커 길드에 속해 있는 스카우터들이다.
평소라면 유저들을 앞에다 두고 한껏 거만을 떨며 무시하는 듯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도 그런 것이 스카우터들을 거치지 않고서는 길드에 접촉하기란 하늘에 별 따기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걸 알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유저들에게 거만하게 행동할 수 있으며, 간혹 특별한 직업이나 스킬을 가진 자들이 나타났을 때만 무거운 엉덩이를 들고 일어난다.
그런 그들이 지금 나라는 존재 때문에 그 무거운 엉덩이를 들고 여기까지 찾아와서 영입하려고 생난리를 피우고 있다.
그리고 저 스카우터들이 난리 치는 모습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와……. 개 부럽네. 몇 명이야?”
“저 사람이 그 사람이지? 그 소환사?”
“그런 거 같은데? 오늘은 고양이가 안 보이네?”
“난 정예 몬스터가 부러운데. 어떻게 잡았지? 아니, 그전에 정예 몬스터 만나는 것도 힘들잖아!”
“어제 올라온 영상 봤어? 완전 개꿀 빨던데.”
“진짜 누워서 사냥이 뭔지 보여 줬지.”
“그거 때문에 지금 소환사 직업 붐이 불잖아.”
“아니지. 그건 범이 님 때문이지. 다 범이 님의 은총이야.”
“확! 한번 찔러 봐?”
“하긴 이번에 돈 좀 벌었을 텐데 한번 털 만하지 않냐?”
“분명 좋은 직업이겠지?”
저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에 나는 등줄기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다.
그도 그런 것이, 부러워하는 이들의 사이에 들려오는 나를 향한 적대심을 뿜어내는 이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하. 그래 이게 월오룰이지.’
PK의 자유가 있는 게임, 월오룰.
이거 진짜 앞으로는 조심 좀 해야겠다. 사냥터에서 언제 뒤에서 찔려도 이상하지 않게 되었다.
아무튼 사람들의 과도한 관심을 받고 있는 나는 여기서 빠져나갈 방법을 생각했다.
사실 뭐 별거 없다.
그냥 정면으로 뚫고 지나가면 된다. 내 스텟이 압도적으로 높으니까.
그전에 내 입장은 밝혀야지.
“저는 길드에 들어갈 생각은 없으니 두 번 다시 찾아오시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내 말에 귀를 기울이는 자는 없다.
그들은 막무가내로 내 옷자락이라도 붙잡겠다는 듯 나를 향해 다가오려 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검을 뽑았다. 그러곤 바로 스킬을 중첩시켰다.
‘파괴의 가호, 오러,’
-스킬 ‘파괴의 가호’를 사용했습니다.
-모든 파티원과 소환수의 공격력을 30% 상승시킵니다.
-스킬 ‘오러’를 사용했습니다.
-공격력을 200% 상승시킵니다.
오러 스킬의 경우 레어 등급에 레벨도 최대치인 10레벨이다.
스킬 레벨당 10% 상승이니 지금 200% 상승의 효과를 가지고 있다.
지금만 해도 230%의 공격력 상승인데, 여기서 끝날 내가 아니다.
‘가로 베기.’
나는 가로 베기 스킬을 이용해 공격력을 추가로 220% 상승 시켜 정확하게 바닥을 향해 그었다.
콰가가강!
도합 450% 상승한 내 스킬로 인해 순식간에 바닥이 쩌억하고 갈라지다 못해 박살이 났다.
“꿀꺽.”
누군가의 침 삼키는 소리. 침묵 속에서 그 소리는 너무나도 크게 들려왔다.
이제야 충분히 내 말을 들을 것 같았기에 한마디 했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하겠습니다. 길드에 들어갈 생각이 없으니 두 번 다시 찾아오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이 말을 한다고 들을 저들이 아니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충분히 이해했을 거다. 날 건드리면 이렇게 될 거라는 뜻이자 PK범들에게 날리는 경고 메시지다.
“그럼 이만.”
나는 그대로 사냥터로 향하는 성문으로 향했다.
내 뒤로는 적막만이 흐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