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6화
#56
모든 사냥터의 독식.
월오룰의 방대한 세상이자 드넓은 브리타니아 대륙의 모든 사냥터를 장악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근데 메시아 길드는 그것을 해 냈다.
정확하게는 메시아 길드를 따르는 수많은 유저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그들의 뜻을 따른 것이다.
모든 사냥터에 길드원을 배치해 새로운 유저의 사냥을 돕거나 안전한 사냥터에서 사냥하도록 말이다.
당연히 평범한 유저에겐 그들의 도움이 사냥에 있어서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안전까지 책임져 주니 고마울 뿐이다.
거기에 무상이니 더욱더 말이다.
메시아 길드는 그들을 도와주며 단 한마디만 할 뿐이었다.
“정말 감사하시면 길드에 후원이라도 해 주시면 됩니다. 그 돈은 모든 유저들을 도와 드리는 데 쓰입니다.”
그 말에 도움을 받은 유저는 사냥터마다 있는 메시아 길드의 지부에 후원금을 넣는다.
자, 생각해 봐라.
한두 명이 아니라 일억의 유저가 1골드씩만 후원해도 1억 골드다.
회귀 당시 월오룰의 플레이어 숫자는 30억 명이었다.
그중에 절반가량이 메시아 길드의 광신도니 15억 명이 1골드씩 후원해도 15억 골드다.
그 돈은 전부 메시아 길드를 운영하는 데 쓰이게 되었고, 그 돈으로 사냥터를 서서히 장악한 것이다.
“그래. 그게 결국 지들이 노른자 땅은 다 가져가게 된 거지.”
메시아 길드는 안전한 사냥터로 유저를 몰았고, 대신 지들은 위험한 사냥터이자 몬스터가 많이 나오며 정예 몬스터나 필드 보스 몬스터를 만나기 쉬운 곳을 사냥했다.
거기에 철저한 길드원의 관리 속에 정예 몬스터와 필도 보스 몬스터는 건드리지도 못하게 만들었고, 저들끼리 사냥하며 아이템도 독식했다.
특히 신규 사냥터가 나타날 경우엔 길드원의 최정예 멤버를 데리고 가 장악해 버리는 것도 서슴없이 해 댔다.
한마디로 자기들끼리 다 해 먹으려고 그러는 거다.
월오룰 오픈 7년 차부터 장악한 사냥터. 그리고 다른 길드에서 그들의 속셈을 알아차린 것은 오픈한 지 9년 차가 되었을 무렵이다.
다른 길드에서 아무리 항의하고 그들의 독점을 막으려고 해도 늦었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니 나도 몇 번 당했네.”
메시아 길드놈들에게 당한 적이 있다.
정확하겐 사냥터에서 밀려났다.
메시아 길드의 도움 없이 사냥하겠다며 주변을 돌며 사냥하는데, 메시아 길드 놈들은 사람을 풀어 우리가 사냥할 몬스터에게 선공을 가해 우선권을 가져가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 놈들과 함께 한다? 어림없는 소리.
오히려 나는 생각한다.
“서머너 킹의 힘으로 놈들이 사냥터를 장악하지 못하게 만들어 주지. 아니 그냥 생태계를 파괴해야겠어.”
딱히 그때의 일 때문에 복수하려는 것은 아니다.
월오룰은 오픈 월드의 무수한 이야기를 그려낼 수 있는 세상이다. 그런 곳을 놈들이 좌지우지하게 만들 생각은 없다.
“얼른 커야겠네.”
나는 바닥에 떨어진 밥알을 치워내고 새 숟가락을 가져와 밥을 퍼먹었다.
절대 체하지 않기 위해 꼭꼭 씹어 삼키며 먹었다.
딸깍, 딸깍.
그와 동시에 블러드 스네이크 영상을 잠시 지켜보았다.
“확실히 실력이 좋네.”
하나의 시점밖에 없는 영상이다.
단순하게 사냥하는 모습만 보자면 상당히 지루했을지도 모를 영상을 적절한 편집과 거기에 어울리는 BGM으로 커버했다.
덕분에 보는 나도 손에 힘이 들어가며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질 정도였다.
냥집사들 길드 마스터 덕분에 좋은 편집자를 얻은 것 같았다.
“나중에 뭐라도 보답해 드려야겠네.”
사냥하다가 나오는 아이템 같은 거 말이다.
아니다. 그냥 범이와 잠깐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오히려 만족할지 모르겠다.
그건 천천히 생각해 보면 되고, 나는 아래 달린 댓글을 보았다.
-X친? 이거 어디서 나오는 몬스터임?
└와, 장난 아니네. 뱀이 뭐 저리 큼.
└뭐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비명을 지르는데 듣는 것만으로 소름이 돋네요.
└아니, 이게 무슨 일이죠? 같은 소환사인데 너무 차이 나는데요?
└저만 그렇게 생각하는 거 아니네요. 소환수가 너무 강해요.
└저 작은 고양이가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스킬 쓰는 거 보세요. 내 소환수는 안 저러거든요?
└스킬을 하나 익히는 데도 걸리는 시간이 얼마인데 몇 개야 세 개의 스킬을 번갈아 가면서 쓰네.
└그건 님들이 육성을 잘 못 한 거 아님? 상위권 소환사들 보면 저 정도는 싸우던데.
└소알못 꺼지셈.
└니가 해 보든가. 안 해 봤음 훈수 ㄴㄴ.
-아, 같은 소환사로서 너무 부럽다. 집사는 못 참는데.
└2222
└3333
-고양이도 고양이지만, 저 덩치 큰 고블린도 잘 싸우는데요?
└홉 고블린인가?
└아무튼 다른 고블린보다 덩치도 크고 몸도 좋음. 개 부럽네.
그 아래로 달려 있는 댓글은 처음 본 내용과 비슷했다.
블러드 스네이크의 정체에 대한 호기심. 그리고 어디에서 나타난 몬스터인지.
그리고 무엇보다 같은 소환사 직업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엄청나게 부러워했다.
“후후후. 찬양하라. 서머너 킹!”
내 어깨와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나에 관한 이야기만이 아니라 범이와 팅고에 대한 이야기도 가득했다.
하나같이 내 새끼들을 칭찬하는 글이라 너무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물론 좋은 댓글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결국 소환사. 한계는 명확하죠.
-지금이야 잘 버티고 있다지만 나중에 부들부들 떨면서 죽어라 사냥만 하쥬.
-니가 언제 올라오나 보자. 나 지금 리자드맨이랑 놀고 있다.
└남들 세 배의 시간은 걸릴 듯.
└리자드맨이면 1년. 거기에 성장하는 거 생각하면 더 벌어지네. 못 보겠네.
-평생 내 뒤만 보고 오겠네.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은 물론이고, 나를 깔보는 댓글도 많았다.
“웃기네. 내 특성이 뭔지도 모르니까 이러고 있지.”
성장이 늦을 거라고? 개뿔 금방 따라 주마.
뭐? 뒤만 봐? 니가 내 뒤를 보게 될 거다.
니뽄니모, 데모틱, 자이언트스윙, 왕렁링.
이 네놈은 내가 꼭 밟는다.
군자의 복수는 10년이 지나도 늦지 않다고 했다.
근데 난 군자는 아니거든. 보이면 밟아 줄게.
그와 동시에 나는 이놈들이 바로 부들부들 떨게 만드는 영상을 찍은 것을 떠올렸다.
그 즉시 비기너 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얼마 가지 않아 연결되었고, 가벼운 인사를 하곤 일단 감사의 인사부터 했다.
“영상을 매우 잘 뽑아 주셨습니다. 오히려 너무 감사드릴 정도네요.”
-아니에요. 사냥을 잘해 주셨고, 마침 정면으로 볼 수 있는 시선이 유지되어서 나올 수 있었는걸요. 시저 님이 더 대단하세요. 그런 몬스터를 상대로 당당하게 버티신 모습 말이에요.
“하하하. 아닙니다. 이렇게 영상을 만들어 주신 게 더 대단하시죠.”
우리는 서로에게 칭찬하며 기분 좋은 대화를 잠깐 이어 갔다.
얼굴을 마주하지 않았어도 서로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오늘 찍은 영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오! 원하는 방향이나 방식이 있으세요?
당연하지. 내가 어떤 콘셉트로 찍었는데.
간략하게 설명해 주었다.
-큭큭큭. 재밌는 영상이 나오겠네요. 그리고 댓글에 떠들던 놈들도 부들부들 떨게 보일 정도예요.
내 콘셉트가 마음에 들었는지 조용히 웃는 소리에 나도 슬쩍 웃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아니, 잘해 주실 거라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서비스로 범이의 모습을 찍은 영상도 보내 드릴게요.”
-어머. 보너스네요? 이거 힘낼 수밖에 없네요.
“하하하. 개인으로 소장하셔도 되고, 카페에 올리셔도 됩니다. 편하신 대로 하세요.”
-그럼 카페에 올려야겠네요. 같이 봐야죠.
벌써 범이의 모습을 볼 생각으로 흥분한 그녀를 느낄 수 있었다.
아까보다 말이 빨라졌거든. 그리고 기뻐한 듯한 목소리까지.
진짜 이러다가 범이 특집 방송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데? 일단 팬 카페가 더 성장하면 그때 추진해 보자.
아직은 이르다.
그 뒤로 통화를 끝낸 나는 서둘러 뒷정리를 마치고는 캡슐로 향했다.
[Welcome to the World of Ruler]
콘셉트 영상 찍는 건 끝났다. 이제 남은 건 사냥. 그리고 미궁을 돌파하는 것만 남았다.
“아, 겸사 서브 퀘스트도.”
할 건 해야지.
“범이, 팅고.”
내 부름에 나타난 두 소환수.
잘 쉬었는지 얼굴에 피곤한 기색 하나 없이 생생한 얼굴이었다.
이 둘만 있어도 충분히 사냥은 된다.
앞서 이미 콘셉트 영상을 찍으면서 충분히 증명되었다.
하지만 그걸로 부족하다.
스르릉.
나도 검을 뽑아 들었다.
지금부터는 제대로 총력전이다. 빠르게, 그리고 확실하게 롸끈하게 미궁을 돌파한다.
“제대로 한번 달려 보자고!”
우리 셋은 미궁을 돌파했다!
* * *
그 시각, 미궁 밖이자 미르지카 자작의 성이 있는 마을에 다섯 명의 남녀가 모여 있다.
“…….”
마을 한구석에 모여 있는 그들은 침묵을 유지했다.
그도 그런 것이.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이라곤 초보자 시절에 입었던 방어구와 기본으로 지급되는 무기, 이게 전부였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PK를 걸다가 역으로 당해 아무런 장비 하나 없이 이렇게 맨몸이나 다름없는 꼴로 마을에 있는 것이었다.
“리더, 진짜 옵니까?”
침묵을 깬 남자가 리더를 바라보며 말했다.
리더인 겔러한은 한숨을 쉬었다.
그 말의 의미가 뭔지 잘 알고 있다.
“조금만 기다려 보게. 연락을 취했으니.”
겔러한을 비롯한 다섯 명의 남녀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한 가지 방법밖에 없었다.
누군가의 지원.
그리고 그것을 위해 겔러한이 한 길드에 연락을 취했고, 그 답변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제길! 이렇게 꼬이다니.’
원래라면 이들의 장비까지 전부 털어 한몫 들고 간부로 들어가기로 되어 있던 길드가 있다.
하지만 지금은 밑천이 털린 상황. 어쩔 수 없이 그는 길드에 연락해 처음 계약과 다른 계약을 하게 되었다.
원래 들어가기로 한 직책보다 한 단계 낮게 들어가는 조건과 함께 이번에 지원해 주는 장비의 대여료로 이번에 얻는 수익 일부를 지불하기로 말이다.
‘제길. 내 돈.’
정확하게는 자신의 돈이 되어야 할 돈을 뜯기면서까지 복수를 해야 하나 싶었다.
하나 이미 수많은 유저를 죽인 그다.
당장 사냥터 입구만 가더라도 자신을 알아볼 유저가 있을 것이며, 복수한다고 달려든다면 아무것도 못 하고 그대로 당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적어도 지금의 선택으로 인해 장비가 생긴다면 다시 역으로 공격할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다.
그렇기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만 했다.
분노로 인해 손이 떨리는 겔러한은 속으로 복수만을 다짐했다.
‘꼭 죽인다!’
그건 겔러한만이 아니라 이 자리에 있는 네 명의 남녀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살아남을 방법은 오직 복수와 함께 잃어버렸던 장비를 되찾는 일이었다.
“여기 있었군.”
갑작스러운 목소리.
다섯 명의 남녀가 화들짝 놀라 목소리가 들려 온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엔 검은색의 로브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깊게 눌러쓴 한 사람이 나타났다.
머리 위에 떠 있는 이름과 레벨로 그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시마이 Lv.150]
겔러한이 그 이름을 보곤 그 자리에서 일어나 반겼다.
“왔군. 내 제안에 수락한 것이라 보면 되는가?”
그 말에 시마이는 홀로 웃으며 대답했다.
“큭큭큭. 패배자 주제에 기고만장하군.”
“뭐야?”
그 말에 겔러한이 인상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무기라도 있었으면 당장에라도 뛰어들고 싶었다. 하지만 인장을 찌푸리는 게 고작이었다.
레벨의 차이도 있거니와 지금은 맨몸이나 다름없으니 싸우면 100% 자신이 질 거란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큭큭큭. 아무것도 없는 패배자가 인상을 써 봐야 하나도 안 무섭다고. 이제는 함께할 사이인데 인상 펴고 이야기하자고.”
재밌다는 듯 아까부터 웃고 있는 시마이가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뭔가 바닥에 떨구는 손짓이었는데, 그때마다 아이템이 하나씩 툭, 툭, 툭 떨어졌다.
놀랍게도 떨어지는 아이템은 코볼트 세트였다. 그것도 무기까지 있는 진짜 풀 세트다.
“혹여나 들고 튈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아. 궁금하면 튀어 봐도 되고. 굳이 내가 힘들게 여기 사냥터까지 내려온 수고를 생각하면 절대 편하지 못할 거야. 게임에서도 현실에서도.”
그의 날카로운 목소리에 그 자리에서 떨어진 장비를 주섬주섬 챙기던 그들의 동작이 순간 멈췄다.
“크흠.”
그나마 겔러한이 분위기를 전환시키기 위해 헛기침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 자리에서 한참을 굳어 있었을지도 몰랐다.
모두가 장비를 챙겨 입은 모습을 본 시마이는 겔러한에게 손짓을 했다.
“지켜보지. 마무리 잘하도록.”
시마이가 손을 들어 어깨를 톡톡 치더니 그대로 등을 돌리고 가 버렸다.
그 모습에 겔러한은 부들부들 떨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런 것이 시마이가 속해 있는 길드는 월오룰에서 알아주는 악명 높은 길드였으니까.
길드명 컬렉터.
아이템부터 플레이어까지 모든 것을 수집한다는 악명 높은 고리대금 길드다.
살아남기 위해서 그들은 무조건 성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