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4화
#54
효진이를 학교 보내고 난 아침.
보통이라면 벌써 게임에 접속할 나지만, 오늘은 다른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 일은 다름 아닌 내 전용 채널을 만드는 것이다.
이건 어제 잠들기 전에 연락 온 편집자인 비기너 님의 연락 때문이었다.
[시저 님, 영상을 주셔야 편집을 하는데요?]
저 문자 한 통에 얼마나 많은 식은땀을 흘렸던가.
생각해 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었다. 내가 영상을 보내야 편집을 할 게 아닌가? 그걸 위한 계약이었다.
근데 내가 영상을 보내지 않았으니 할 게 없던 것.
내가 라이브 방송이라도 한다면 모르겠지만, 그런 걸 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서둘러 게임 접속 전에 만들고 있는 중이다.
“일단 생성 끝.”
내 전용 채널은 몇 번의 클릭으로 만들어졌다.
지금 만든 채널은 월오룰의 홈페이지를 이용한 커뮤니티의 채널로 월오룰의 계정만 있다면 누구든지 생성할 수 있다.
단순 몇 번의 클릭으로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손쉬웠는데, 마지막으로 채널 관리자로 편집자인 비기너 님을 등록하는 것으로 마무리 지을 수 있다.
나는 즉시 비기너 님에게 문자를 보냈다.
[채널 생성과 관리자 권한 드렸습니다.]
문자를 보내고 휴대폰을 책상 위로 올리기 무섭게 답장이 왔다.
[확인했습니다.]
가장 급한 불은 껐다.
이제 다음 잔불을 치워낼 시간이다.
[영상은 지금 보내고 있습니다.]
지금 내가 보내고 있는 영상은 두 개다.
하나는 고블린 부락에서 있었던 영상과 블러드 스네이크를 사냥한 영상 두 개다.
아무래도 최근 있었던 사냥 중에서 가장 임팩트 있는 영상이라면 그 두 개밖에 없었다.
하물며 고블린 부락에서 범이가 냥냥 펀치를 날리는 영상이 이미 인터넷에 있다.
범이의 팬 카페에 등록되어 있는 영상으로 비기너 님이 영상을 올리는 순간, 그곳에 있는 영상은 지워질 예정이다.
아무튼 세세한 건 어제 이야기해 뒀으니 비기너 님이 알아서 하실 것이다.
그와 동시에 생각에 잠겼다.
“영상은 이삼 일에 하나는 올라와야 한다. 다음 영상을 준비해야 한다는 소린데…….”
아무래도 평범한 사냥 영상보다는 특별한 재미가 필요하다. 그걸 위해서 지금 머리를 굴리는 중이다.
“소환사니까, 그만큼 편한 모습을 보여야겠지?”
남들보다 특별한 소환사라는 것을 보여 줘야 한다.
사실 이미 내 직업부터가 특별하다.
레전더리 직업인 서머너 킹이니까. 거기에 상태창을 공개한다? 아마 엄청난 시기와 질투가 쏟아지며 당장 PK 걸려도 할 말이 없다.
“물론 내가 다 쓸어 버리겠지만.”
어지간한 레벨의 유저가 아닌 이상 내 상대는 되지도 않을 것이다.
이게 중요한 게 아니다.
“영상의 콘셉트라.”
아무래도 당장 떠오르는 것은 하나다.
팅고와 범이를 앞세우고 나는 뒤에서 잠이나 자는 영상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위험하지 않겠냐고? 그건 그것 또한 재미가 있지 않을까?
적어도 남들과는 다른 영상으로 시청자를 모아야 하는 지금의 시점에는 어울리기도 할 것 같다.
“그래. 그렇게 하자.”
아무래도 오늘은 사냥도 사냥이지만 영상을 찍기 위한 작업을 해야겠다.
그런 생각에 빠져 있자, 영상의 전송이 끝났고, 확인했다는 문자가 도착했다.
[혹시, 신경 써야 할 부분이라든가, 올리지 말아야 할 것이 있을까요?]
딱히 없는 거 같다.
사실 지금 가장 많은 조회 수를 뽑아낼 영상이 있긴 하다.
니베라 남작의 성에 들어간 것만 해도 월오룰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거기에 니베라 남작이 소드 마스터가 된 것까지 올린다면 순식간에 백만 조회 수는 쉽게 넘기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아직 그걸 공개하기는 뭔가 꺼려진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지금 보낸 두 영상이다.
[없습니다.]
짤막하게 대답한 나와 달리 장문의 문자가 도착했다.
[영상을 보니 기본 카메라로 찍힌 영상 같네요. 기왕이면 월오룰 홈페이지에 파는 추가 카메라를 구입하시는 걸 추천 드려요. 다양한 각도에서 촬영할 수 있어서 편집할 때 더욱 현실감과 리얼리티를 제공해 주거든요.]
거기에 추가로 무엇을 구매해야 하고, 어떻게 세팅하는 것까지 친절하게 알려 주는 비기너 님이었다.
“크…… 최고네.”
문자에 적혀 있는 대로만 했더니 순식간에 내 통장에 있던 돈이 빠져나갔다.
와. 단숨에 삼십만 원이 훌쩍 사라졌네.
이거 완전 요물이네, 요물이야.
시키는 대로 할 때는 몰랐지만, 문자로 결제 내역을 보자니 절로 손이 떨려 왔다.
이게 필요한 투자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어쩔 수 없이 떨려 오는 것이다.
“후…… 괜찮아. 얼마 전에 더 많이 벌었잖아. 당연한 투자야.”
애써 나를 위로하며 조용히 방금까지 결제하던 창을 전부 껐다.
자, 그럼 이제 게임을 시작할 시간이다.
그리고 이번에 구매한 카메라의 설정을 마무리해야 하고, 그 영상의 퀄리티도 확인해야 한다.
만약. 내가 쓴 돈의 값어치를 못 하는 수준이라면 바로 환불해야지.
나는 컴퓨터에서 일어나 그대로 캡슐 속으로 들어갔다.
* * *
이오지 광산 삼 일 차.
여전히 미궁 속에 머물고 있다.
“벌써 지겨워지려 하네.”
이 미궁 속을 헤맨 지, 벌써 3일째다.
고작 3일 만에 이런 소릴 하는 것도 웃긴 일이긴 하나 어쩔 수 없다.
매일 똑같은 광경을 보고 지낸다고 해도, 드넓은 들판이나 숲속, 혹은 사막과 같은 곳은 주변에 변화라도 감지하니 지낼 만하다.
하지만 지금 이곳은 동굴 속.
야광석의 빛을 의지해 벽과 길만 보이는 이곳에서는 쉽게 지루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근데 어찌할 방법이 없다.
이 지루함을 참고 견뎌 내야지만 레벨 업은 물론이고 퀘스트와 인던으로 향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나저나…… 그 서브 퀘스트는 진행이 안 되네.”
지금 나는 이리엘이 준 서브 퀘스트의 진행도를 확인하고 있었다.
[이오지 광산에서 사라진 형제자매들의 흔적을 전해 줘라 0/10]
꽤 깊숙한 곳까지 들어왔는데 아직 아무런 흔적도 발견하지 못한 게 놀랍다.
퀘스트 난이도가 어려움이라 그 몬스터가 강한가 싶었는데, 이건 그냥 찾질 못해서 어려운 거다.
“뭐, 아직 오늘이랑 내일이 있으니까.”
내가 생각하고 내린 기준으로 따지면 아직 이틀이라는 시간이 있다.
곧 찾을 거다. 요즘 내 운이 트이는 기분이니 아마 그럴 거다.
“범이, 팅고 소환.”
내 부름에 범이와 팅고가 나타났다.
“잠깐 나 보호하고 있어 봐.”
둘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는 설정 창을 이용해 카메라 세팅을 했다.
월오룰의 기본 카메라는 내 캐릭터를 기준으로 정면을 촬영하는 것이 전부다.
그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비기너 님이 결재를 통해 카메라를 추가하는 것은 물론이고 영상의 퀄리티를 위해 더 좋은 환경으로 촬영할 수 있는 장비를 알려 준 것이다.
아까 문자를 생각해 나는 카메라를 추가적으로 설치했다.
“나를 기준으로 네 방향과…… 범이 세 개, 팅고 세 개, 그리고 전체적인 그림을 위한 천장 세팅까지…….”
무려 10개의 카메라.
그것도 한 대당 3만 원이나 하는 물건으로 30만 원이 훌쩍 사라지게 만든 것이다.
카메라 세팅은 또한 월오룰의 설정창에서 등록만 해 주면 되는 일이라 작업은 클릭 몇 번으로 끝난다.
그래서 무서운 거다. 손가락 몇 번만 움직이면 돈이 우르르 나가니까.
나도 모르게 통장이 텅장이 되어 버리거든.
세팅을 마치고선 정상적으로 카메라가 움직이고 있는지 주변을 살펴보았다.
“오호, 진짜 보이긴 하네.”
우리 셋을 주변으로 허공에 떠 있는 카메라 열 대를 볼 수 있었다.
신비한 마음에 나는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거나 방향을 바꿔 보기도 했는데, 카메라는 알아서 척척 내가 움직인 방향대로 따라오고 있었다.
구입 당시 설명을 보니, 몬스터나 주변 지형지물에 타격을 받지 않으며 절대 깨지지 않는 카메라기이에 설정 후에 신경을 꺼도 된다고 한다.
거기에 실시간으로 촬영하고 있는 장면을 찍고 있는 창도 볼 수 있으니 3만 원이라는 가격치고는 상당히 성능이 좋은 물건이기도 하다.
“자, 그럼 이제 남은 건 내 채널에 올릴 영상을 촬영하는 것뿐이네.”
그럼 어디 한번 사냥을 시작해 볼까.
* * *
팅고와 범이는 내 눈앞에서 한창 전투 중이었다.
“끼에륵!”
팅고의 포효였다. 평범한 포효가 아니다.
-소환수 ‘팅고’가 스킬 ‘포효’를 사용했습니다.
-포효에 노출된 코볼트 광부가 공포에 질립니다.
처음에는 무기에 붙어 있는 스킬이었지만, 이제는 홉 고블린 워리어가 된 팅고가 그냥 쓸 수 있는 스킬을 사용했다.
“낑낑…….”
방금까지 우리를 향해 죽일 듯이 달려들었던 코볼트 광부 녀석들이 팅고의 스킬에 위축된 듯, 낑낑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런 코볼트 광부를 향해 팅고는 들고 있는 무기를 휘둘렀다.
부우우웅!
허공을 찢어발기는 소리와 함께 휘둘러지는 무기는 다름 아닌 코볼트 간수에게 얻은 전리품.
팅고의 손에서 휘둘러지는 무기는 코볼트 광부를 사냥하는 것이 아니라, 박살 내는 중이었다.
퍼어억!
코볼트의 머리통이 그 자리에서 두부가 으깨지듯 박살이 나 버렸고, 몸뚱이는 바닥으로 허물어졌다.
“끼륵! 끼에륵!”
코볼트 간수에게 얻은 무기가 원래 자신의 무기인 듯 팅고에게 너무나 잘 어울렸다.
거기에 손에서 느껴지는 타격감이 마음에 들었는지, 한 마리를 사냥할 때마다 기분 좋은 소리를 내뱉는 모습이 귀엽게 느껴질 정도였다.
“냐앙!”
범이의 울음소리.
팅고가 처리한 코볼트 광부 옆에 있는 또 하나의 코볼트 광부를 향해 빠르게 접근한 범이가 그대로 지면을 박차고 점프했다.
“컹! 컹!”
코블린 광부는 그런 범이를 향해 들고 있던 곡괭이를 머리 위로 들어 올려 범이를 찍어 버리겠다는 의지를 뿜어내며 휘둘렀다.
부우웅, 콱!
하지만 코볼트 광부의 곡괭이질은 애꿎은 바닥을 뚫었다.
범이는 허공에서 몸을 비틀어 곡괭이를 피하고는 훤히 보이는 코볼트의 머리통을 향해 그대로 앙증맞은 앞발을 내밀었다.
“냥냥!”
우렁찬 울음소리와 함께 뻗은 앞발에 코볼트 광부의 머리통이 박살 난 것도 모자라 그대로 벽을 향해 날아가 버렸다.
쿵.
벽에 부딪힌 코볼트 광부는 그저 바닥으로 추락할 뿐 더 이상의 움직임은 없었다.
한 마리씩 거뜬하게 사냥을 마친 범이와 팅고의 모습을 보며 나는 바닥에 옆으로 누운 상태로 정면을 바라보며 말했다.
“흐아아암. 사냥 참 쉽죠?”
콘셉트 ‘진정한 눕방 사냥이자 소환사는 이렇게 사냥합니다.’ 편의 썸네일의 완성이었다.
* * *
그시각, 월오룰의 커뮤니티를 살펴보는 이들 중에서 한 사람의 글이 올라왔다.
-그 유저 어떻게 됨? 어디 길드가 낚아 감?
└누구 말하는 거지?
└유저가 한두 명이냐? 전 세계 인구 중에 월오룰을 하는 사람이 몇인데.
└몇 명인데?
└나도 몰라.
누군가 장난치는 듯한 글임에도 순식간에 댓글이 달릴 정도로 월오룰의 커뮤니티의 화력은 상당했다.
방금 글을 올린 사람은 다시 글을 올려 이제 막 불씨가 올라온 곳에 기름을 부었다.
-그, 레전더리 스킬 뽑기 권 받아 간 집사 말하는 거임. 그 뒤로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음.
장작은 너무나도 불이 잘 붙었다.
-안 그래도 그 뒤로 소식이 없긴 함.
-대형 길드에서 붙잡아 갔으면 벌써 홍보했을 텐데.
└하긴 저라도 엄청 홍보 때릴 듯.
└그게 아니더라도 계약금 뽑아내려고 길드에서도 홍보 엄청 하죠.
└계약의 규모가 달랐을 듯. 레전더리 스킬만 두 갠데.
└하나도 부러운데 두 개라니 너무 부럽다.
-근데 놀랍게도 아직 아무 데도 홍보는커녕 어디랑 계약했다는 소식도 없음.
-상위 길드가 무능한 것도 아닌데 아직 계약 못한 거 보면 신비함.
└그게 아니면 유저가 배 째라는 식으로 계약금 엄청나게 불렀든가.
└나도 이게 더 신빙성이 있음.
└하긴 나라도 누울 듯.
-다른 무엇보다 집사인 게 더 부러움.
└저도 소환사인데 고양이 구경도 못 했습니다.
└고양이 비슷한 몬스터는 봄. 샤벨 타이거라고.
└미친 그걸 어찌 포획함? 그전에 먹힐 듯.
└ㅇㄱㄹㅇ. ㅋㅋㅋ
-커뮤니티 모든 글 정독하는데 추가 소식 없음요.
└님 삶은 있나요?
게시글에 순식간에 조회수가 삼십만이 넘어갔고, 댓글이 5백 개가 돌파할 정도로 모두가 궁금해하는 순간, 링크가 걸린 글 하나가 새로 올라왔다.
-모두가 궁금해하는 그 유저 개인 채널 엶. 영상도 두 개 있음. 둘 다 개 쩖.
링크를 타고 들어간 사람들은 빠르게 채널로 접속.
그리고 썸네일만 봐도 상당한 퀄리티가 느껴졌다.
10분간의 짧은 영상.
하나 사람들은 그 영상을 보며 놀라 했고, 가장 처음 달린 댓글에 모두가 공감했다.
-와…… 월오룰에서 집사하려면 저 정도는 돼야 하나 보네요…….
시저가 블러드 스네이크를 상대로 버티는 영상엔 순식간에 수많은 사람이 몰렸다.
그리고 처음 보는 몬스터와 그걸 상대하는 시저의 모습에 그들은 할 말을 잃고 멍하니 시청할 수밖에 없었다.
특별한 스킬 하나 없이 검 하나로 어그로 관리하는 영상은 순식간에 조회 수가 폭발했다.
시저의 개인 채널이 시청자들에게 알려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