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5화
#45
호크가 바삐 움직이길 몇 번.
더 이상 날갯짓을 멈추고 둥지에서 쉬고 있을 무렵에 시스템 창이 반응했다.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보상이 지급됩니다.
그와 동시에 호크가 나를 향해 날아왔다.
부리에 무언가 물려 있는 호크였는데, 그것은 물고서 나에게 다가오더니 내 손바닥 위에 툭하고 떨궜다.
“호크야?”
갑작스런 열쇠에 내가 의문을 품었다.
그런 나에게 따라오라는 듯 까딱 하고 고갯짓하더니 방금까지 블러드 스네이크가 똬리를 틀고 있던 자리로 나를 데려왔다.
쓰윽, 쓰윽.
호크의 가늘고 긴 발에 의해 쓸려나는 흙이었다.
그것을 보다 내가 나섰다.
“내가 할게.”
아무리 호크가 할 수 있다 해도 내가 하는 것이 훨씬 빠르니까.
내가 손을 뻗어 흙을 털어 내었다.
처음에는 흙뿐이라 더 깊숙하게 파야 하는가 싶어 힘을 주어 깊숙하게 손을 찔러 넣었다.
툭.
겨우 손가락 한 마디 정도 들어갔을 무렵에 느껴지는 딱딱한 감촉에 나는 그곳을 중심으로 빠르게 흙을 덜어냈다.
“오!”
그곳엔 자물쇠가 걸려 있는 작은 문이 하나 있었다.
마치 지하세계로 향하는 입구와 같은 느낌인데, 작은 문에 그려져 있는 무늬들이 눈에 들어왔다.
가운데를 중심으로 수많은 동물이 새겨져 있다.
작은 동물인 다람쥐를 닮은 동물을 시작으로 늑대나 소를 닮은 동물과 하늘에는 셀 수 없을 정도의 새들이 빼곡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를 숭배하는 듯한 모습.
그게 아니라면 여기 그려져 있는 수많은 동물들의 주인이라도 있는 듯 모두가 경건한 자세로 있었다.
“여기에 넣어라 이거지.”
나는 열쇠를 꺼내 자물쇠에 넣고 돌렸다.
끼리릭.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듯 소음과 함께 힘겹게 돌아가는 자물쇠였다.
열쇠를 한 바퀴 전부 돌리고서야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는데, 그 순간 ‘쿵’하는 소리가 울렸다.
“냥!”
멀리 떨어진 곳에서 범이가 화들짝 놀라며 꼬리를 뻣뻣하게 세워 부풀리곤 나를 바라보았다.
마치 잠을 잘 자고 있는데 왜 깨웠냐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것이 상당히 매서웠다.
“내가 낸 소리가 아니야.”
나는 억울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범이가 나에게 다가오더니 앞발에 손톱을 세우더니 그대로 자물쇠를 쥐고 있는 내 손을 쿡쿡 찔렀다.
“아야. 이러면 HP 단다니까.”
“냐앙!”
그러든지 말든지라는 울음 소리였다.
나는 따끔한 고통에 자물쇠를 쥐고 있던 손을 땠다.
여전히 노려보고 있는 범이다.
“에효. 내 신세.”
에효 어쩌겠는가. 범이를 달래 줘야지.
그렇다고 지금 손을 뻗어 쓰다듬어 준다거나 하면 안 된다.
저리 날카로울 때는 건드는 것조차도 싫어하는 범이다.
이럴 때는 딱 하나의 방법밖에 없다.
“미안 이거 먹고 화 풀어 줄래?”
나는 토끼 고기 육포를 꺼내 범이에게 내밀었다.
먹을 것에 약한 범이다.
이건 얼마 전에 냥집사들 길드원 덕분에 알게 된 사실이다.
그러니 먹을 걸로 해결해야 한다.
“냐앙!”
어림도 없었다.
오히려 더 노려보는 범이었고, 무슨 뜻인지 알았다.
“그래, 그래.”
나는 인벤토리에서 세 개의 육포를 꺼내 범이에게 내밀었다.
그제야 만족하는 듯 범이는 뻣뻣했던 꼬리에 힘을 풀고는 살랑살랑 흔들며 육포를 받아 하나씩 뜯어 먹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안도하는 나였다.
정말이지 집사 노릇하기 힘드네.
상전이 따로 없다.
이러다가 걷는 것도 거부하시고 하루 종일 품에 안고 다녀야 할 날이 오는 게 아닐까 싶었다.
아니 분명 올 거다.
우리 범이는 그러고도 남는다.
그러니 얼른 소환수를 늘려 범이를 태울 소환수라든가, 나 대신 돌봐 줄 소환수라도 찾아야 할 것 같다.
월오룰엔 수인족이 있거든.
아마 가능할 거다.
그렇게 육포를 먹고 있는 범이를 바라보며 앞으로 일어난 암담한 미래를 어떻게든 황금빛으로 만들기 위해 머리를 굴리고 있을 무렵이었다.
-봉인을 푼 것이 자네인가?
어디선가 들려온 목소리.
하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이곳에 사람의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나와 팅고뿐이다.
하물며 팅고는 아직 말을 유창하게 못한다.
그러니 환청이겠거니 생각하며 넘어갔고, 다시 끔 어떤 존재를 포획해야 내가 편해질 수 있을까 고민했다.
툭, 툭.
누군가 어깨를 두드렸다.
범이는 눈앞에서 육포를 뜯고 있다.
팅고는 조금 더 떨어진 곳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으니 남은 것은 호크다.
“호크야. 형 바쁘거든.”
진짜 바쁘다고 내 생존을 위한 일이니까.
툭툭.
그럼에도 계속해서 어깨를 두드린다.
“호크!”
내가 버럭 소리쳤다.
그러나 호크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삐익?”
놀랍게도 호크는 어느새 둥지로 돌아가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응?”
나는 화들짝 놀랐다.
등 뒤에서 알 수 없는 기운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강한 압박은 물론이고, 지금까지 느껴 보지 못한 강한 기운을 말이다.
나는 천천히 뻣뻣해진 목을 억지로 움직여 뒤를 돌아보았다.
-이제 보는군.
그곳엔 투명한 몸을 가지고 있는 존재가 있었다.
“모, 몬스터?!”
그도 그런 것이 눈앞에 있는 투명한 존재는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즉시 나는 사냥, 혹은 내 몸을 방어하기 위해 서둘러 검을 뽑아 들었다.
내가 공격하려는 것이라 생각한 것인지, 팅고와 범이도 서둘러 내 쪽으로 달려왔다.
그러자 눈앞의 투명한 존재가 다급하게 외쳤다.
-아니네. 난 몬스터가 아니네.
그와 동시에 머리를 쓰고 있던 로브를 벗더니 나를 향해 외쳤다.
-나는 위대한 비스트 마스터. 비에르네. 적이 아니니 얼른 무기를 내려놓게!
그제야 나는 눈에 들어온 유령의 이름을 볼 수 있었다.
[NPC 비에르 Lv999]
그제야 알았다.
눈앞에 있는 존재는 몬스터가 아니라 NPC라는걸.
그리고 내가 절대 이길 수 없는 엄청난 레벨의 강자라는 걸 말이다.
* * *
한바탕 소란이 일어났다.
팅고가 유령을 향해 검을 휘둘려는 것을 급하게 말렸고, 범이에게는 토끼 육포를 하나 더 던져 주는 것으로 말릴 수 있었다.
다시 조용해진 두 소환수를 뒤로 물러나게 하고는 정면을 바라보며 사과했다.
“흠, 흠. 죄송합니다.”
-아니네. 그럴 수 있지.
다행이도 내 사과를 받아 주는 NPC였다.
어색해진 분위기.
뭔가 해야 할 일이 있지만, 나 때문에 할 수 없게 된 이 분위기가 상당히 낯설었다.
‘근데…… 어떻게 된 거지?’
아무래도 범이 때문에 어떻게 된 것이지 알 수가 없다.
다만 짐작이 가는 것이 있다면, 방금 내가 자물쇠를 풀었던 곳에 문이 열렸다는 점이고 그곳에서 눈앞의 NPC가 나왔다는 게 맞을 거다.
근데 좀 놀랍긴 하다.
어지간하면 이렇게 등장하는 NPC는 뭔가 임팩트라든가 등장과 동시에 빛이라도 뿜어져 나와야 하는 거 아닌가?
근데 눈앞에 NPC는 특별한 NPC라기보단 별다른 것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몬스터 취급을 받아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스펙터라든가 레이스 같은 유령 몬스터가 등장하는 월오룰이다.
내가 순간 착각해도 이상하지 않다는 소리다.
자네 눈을 보니 내가 이러고 있는 것에 의문을 품고 있는 것 같군.
“맞습니다.”
뭐 사실이니 맞다 할뿐이다.
오히려 먼저 입을 열어 줘서 고마울 따름이다.
후, 원래 멋있게 등장하며 내 모든 것을 전수해 주려 했거늘…….
뭔가 원래의 계획대로 풀리지 않았다며 씁쓸한 얼굴의 NPC였다.
뭐가 이리 감정이 풍부한지, 정말로 NPC가 맞는지 의심이 된다.
축 처진 어깨는 물론이고, 얼굴에는 억울함이 가득했다.
이쯤이면 내가 더 미안해지는 기분이다.
내 소개를 하지. 내 이름은 비에르. 소환수 중에서도 동물과 교감하며 살아가는 존재네.
“플레이어 시저입니다.”
간단한 소개가 끝나자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NPC였다.
-나는 동물과 교감하며 함께 성장해가는 직업인 비스트 마스터라는 직업을 가진 자네.
-계약에 성공한 소환수의 영혼을 내 몸에 불러 그 능력을 사용하는 ‘서먼 스피릿’이라는 기술을 가지고 전투에 임한다네.
-그것 말고도 각종 기술로 나와 소환수를 성장시키며 강해질 수 있네.
-비스트 마스터가 되지 않겠는가?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내 눈앞에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NPC 비에르에게 ‘비스트 마스터’의 직업의 제의받았습니다.]
현재 직업은 ‘서머너 킹’입니다.
전직 하시겠습니까?
YES or NO
어? 여기서 갑자기 이게 뜬다고?
아니 그게 아니라 여기가 놀랍게도 숨겨진 직업을 얻을 수 있는 곳이라고!
이건 전혀 생각지 못했다.
월오룰의 직업은 중간에 환승이 가능하다.
그 말은 즉 내가 평범한 노멀 등급의 전사를 키우다가 레어나 유니크 등급의 전사로 전직이 가능하다는 소리다.
뿐만이 아니라 전사가 마법사로, 마법사가 궁수로 등 완전히 계열이 다른 직업으로 전직이 가능하기도 하다.
단 하나의 조건이 있다.
특정 NPC의 권유여야 한다.
흔히 마을에서 볼 수 있는 기본 직업을 주는 NPC가 아니라 지금의 나처럼 특정한 퀘스트나 만남을 통해 만나는 NPC 말이다.
‘무협으로 치면 기연을 얻는 것과 마찬가지지.’
당연히 월오룰의 유저들은 저마다 이런 기연을 얻고자 한다.
그럼 더 강해지고, 돈을 더 벌 수 있으니 말이다.
당연한 욕심이다.
‘물론 함정이 숨어 있지’
기연이라고 하면 다 좋을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월오룰은 그리 친절하고 만만한 게임이 아니다.
바로 그 기연 또한 복불복.
기연을 얻어 직업이 바뀌었다고 무조건 올라가는 게 아니라는 소리.
유니크 등급이 한순간에 노멀 직업으로 바뀌기도 한다.
한 때 유니크 직업인 ‘스피어 마스터’란 직업을 가진 유저가 있었다.
창을 전문으로 다루며 공수 만능 캐릭터로 이름을 알린 자가 있다.
당연히 길드에서 엄청난 지원과 인기를 한 몸에 받던 유저였지만, 그의 인기는 전직과 함께 단숨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NPC의 제안으로 전직. 그리고 전직한 직업은 놀랍게도 네크로멘서 계열의 시체를 전문으로 다루는 직업이었다.
창을 전문으로 다루는 직업답게 모든 스텟이 근력과 민첩에 투자되어 있던 그가 뜬금없이 마법사 계열로 변한 것이다.
당연히 그의 지식과 지혜 스텟은 현저하게 낮았다.
단숨에 나락으로 떨어진 그였다.
그 유저 말고도 수많은 유저들이 전직과 함께 나락으로 떨어진 경우가 많았다.
기연이라고 다 좋은 건 아니라는 소리다.
자, 그런데 나는 조금 상황이 다르지.
난 레전더리 직업이다.
이미 소환수 직업군에서 가장 최강의 직업이란 소리다.
눈앞의 NPC가 직업을 제안했지만, 안 봐도 뻔하다.
최소 레어 이상, 높아 봐야 유니크다.
내 직업이 훨씬 좋다.
이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 대답은 거절이다.
“죄송합니다. 비에르 님.”
내 말에 눈앞의 NPC 비에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대답이 상당히 마음에 안 들었다는 뜻, 거기에 은연히 뿜어내는 기운까지 심기를 거스르는 대답이라는 뜻이다.
거기에 시스템 창 또한 위험을 알렸다.
[NPC 비에르의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NPC 비에르의 호감도가 대폭 떨어집니다.
-호감도가 너무 하락되었습니다.
-NPC 비에르와 적대 관계로 변경됩니다.
말 한마디에 바로 적대 관계가 되었다.
점점 끌어 올리는 기운에 조금 있으면 내가 죽을 수도 있기에 다급하게 말했다.
“제가 서머너 킹이기에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내 외침에 방금까지 기세를 뿜어내던 NPC 비에르의 기세가 뚝 하고 멈췄다.
그러고는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왕이시여!
대뜸 나를 향해 넙죽 절을 올리는 비에르.
그리고 황당한 얼굴로 변하는 나.
아저씨 왜 이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