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2화
#42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향하는 길.
출퇴근을 하는 직장인과 마찬가지로 등하교를 위해 매일 걷는 길을 거니는 효진이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길이자 한평생을 살아온 집으로 향하는 길은 익숙하다 못해 눈을 감고 걸으라면 갈 수 있을 정도로 친숙한 길이다.
‘그렇다고 진짜 눈을 감고 걸을 순 없잖아?’
홀로 그런 생각을 하며 쿡쿡하고 웃었다.
그녀의 가녀린 어깨가 살짝 떨리며 흩날리는 검은색의 머리카락에 주변에 지나던 남학생이 가던 길을 멈추고 바라보게 만들었다.
“예쁘다.”
“쟤, 그 애 아냐?”
“세화여고 투 톱 중 하나 한효진?”
“아, 그 애구나. 어쩐지…… 소문이 부족한데? 겁나 예뻐.”
“꿈도 꾸지마라. 쟤 좋다고 따라다니는 남자만 수십 명이고 단 한 명도 성공하지 못한 철벽녀니까.”
“누가 뭐래. 예뻐서 본다는데.”
남학생들의 대화에 효진이는 가던 걸음을 조금 빠르게 걸었다.
그녀의 걸음걸이가 빨라진 이유는 하나였다.
‘부끄럽게…….’
저들이 하는 대화는 주변에 있는 누구라도 들릴 정도로 크게 말하고 있었다.
당연히 효진이도 들었고, 그 대화에 귀가 살짝 빨개졌을 정도로 부끄러웠다.
부스럭.
그와 동시에 손에 쥐고 있던 봉투를 가슴으로 들어 올려 품에 안았다.
그녀의 손에 들려 있는 봉투에는 참고서가 들어가 있었다.
평소라면 가격 때문에 사지 않았던 고가의 참고서였다.
‘아니 사실 사려 했었어.’
그간 받은 용돈을 쪼개고 쪼개어 사려 했던 참고서였다.
근데 어떻게 안 걸까?
갑자기 서슴없이 용돈과 함께 참고서를 사고도 남을 돈을 준 오빠였다.
덕분에 무리하지 않고 참고서를 샀고, 그간 모았던 돈은 평소 친하게 지내는 친구인 영은이와 함께 떡볶이를 사먹었다.
효진이에게서 유일한 친구는 영은이다.
모든 것을 털어 놓고 친하게 지낼 수 있는 친구이자, 서로의 가정사도 알고 있을 정도로 친한 짱친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영은이와 떡볶이를 먹고 가볍게 쇼핑을 즐기고 집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헤헤헤. 얼른 보고 싶다.’
지금 보고 싶은 것은 지금 품에 안겨 있는 참고서.
영은이에게 몇 번 빌려서 쓴 적이 있었던 효진이다.
그때마다 조심스럽게 다뤘던 그 녀석이고 빌려 볼 때마다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몇 번이나 했었다.
영은이는 저는 다시 사면 되니 가지라고 몇 번을 말했지만, 효진이는 그러지 않았다.
적어도 영은이라는 유일한 친구를 잃고 싶지 않기에 무엇 하나 그녀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던 효진이다.
그런 효진이의 행동이 영은이에겐 섭섭할 때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둘은 서로의 감정에 대해서 확실하게 말하고 의견을 주고받았기에 지금처럼 친한 친구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영은이가 있었으면 저 애들도 찍소리도 못 하고 도망쳤겠지.’
소극적인 효진이와 다르게 영은이는 기가 강하다.
방금 남학생의 말을 들었다면 그 자리에서 호통은 물론이고 남학생들의 기를 죽였을 것이다.
그게 영은이의 매력이다.
그렇다고 영은이가 부족한 건 아니다.
방금 남학생이 말했던 투 톱 중 하나가 영은이니까.
다만 효진이와 성격이 정반대라는 것 하나뿐이다.
만약 영은이가 있었으면 하는 상상에 절로 미소가 피어오르는 효진이다.
바삐 걸어가던 효진이가 갑작스럽게 걸음을 멈췄다.
그 이유는 저 멀리 떨어져 있는 한 여자 아이의 울음이었다.
“후에에엥. 엄마! 아빠!”
대략 유치원에서 막 초등학교 입학했을 정도의 나이로 보이는 어린 아이였다.
땅바닥에 주저앉아 서럽게 울고 있었다.
엄마와 아빠를 찾았다.
그리고 그 모습은 자신의 어릴 적 모습을 떠올리게 만드는 모습이었다.
도리도리.
효진이는 머리를 흔들었다.
어릴 때 효진이 또한 눈앞에 저 아이처럼 바닥에 주저앉아 엄마와 아빠를 찾던 시절이 있었다.
분명 아침에 학교를 등교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손을 흔들어 주었던 모습이 마지막이라 생각도 못했던 그저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의 이야기다.
‘그런 나에게 왕자님은 아니지만…… 유일한 히어로가 있었지.’
어린 효진이에게 부모님 다음으로 대단한 사람이 있었다.
다행이 눈앞의 어린 소녀에게도 그런 존재가 있었다.
“뚝! 오빠가 있잖아!”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소녀보다는 조금 큰 남자 아이가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아직 그 남자 아이도 어리다는 것은 마찬가지.
어떻게 할지 몰라 주변 눈치를 보는 남자아이였다.
‘큭큭. 이런 거 보면 오빠는 참 대단해.’
눈앞의 남매의 모습에 효진이는 절로 떠오르는 히어로가 있었다.
그가 했던 것이 떠올라 두 남매를 향해 다가가가 말을 걸었다.
“말로만 하는 게 아니라 동생을 일으켜 세워서 울음이 멈추길 토닥여 주어야지.”
효진이가 옆에 무릎을 접고 눈높이를 맞추며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남자 아이가 버럭 하고 외쳤다.
“그러려고 했다고!”
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진짜 동생을 일으켜 세우더니 손수 먼지를 털어 주고는 동생을 품에 안고는 조용히 속삭였다.
“착하다. 착하다. 착하지 내 동생.”
남자 아이의 말에 효진이는 쿡하고 웃었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 어색한 얼굴과 어찌할지 몰라 허공을 젓고 있는 손이 너무나도 귀여웠다.
그런 남자 아이의 손을 붙잡고는 살살 등을 두드리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효진이었다.
남자 아이는 어색해하더니 어느새 자연스럽게 동생을 달래고 있었다.
마치 효진이의 어릴 적 히어로인 오빠와 같은 모습으로 말이다.
“딸! 아들!”
저 멀리서 들려오는 어른의 목소리를 듣고는 효진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린 시절 효진이와 다르게 눈앞의 두 남매에게는 부모님이 있었다.
남매를 품에 안은 아빠의 안도의 한숨과 걱정하던 것을 덜어낸 엄마의 얼굴에는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같이 있어 줬던 것을 알았던 것일까.
눈앞의 남매의 부모님이 효진이를 향해 인사했다.
꾸벅.
효진이도 그에 맞춰 인사했다.
이제는 헤어질 시간.
“예쁜 언니 빠이빠이!”
어린 소녀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과 함께 해맑은 미소로 손을 흔들었다.
“빠이빠이.”
효진이도 그런 소녀의 손에 맞춰 흔들어 줬다.
남자 아이는 효진이를 향해 쪼르르 달려오더니 치맛자락을 붙잡고는 흔들었다.
뭔가 할 말이 있는 얼굴.
효진이는 다시 쪼그려 앉아 시선을 마주했다.
“감사합니다. 누나.”
쪽!
감사의 인사와 함께 볼에 뽀뽀하고는 부끄럽다는 그대로 달려가는 남자 아이였다.
이 상황에 오히려 당황한 것은 효진이다.
설마하니 감사의 인사로 뽀뽀를 받을 줄이야.
“잘가.”
놀랐지만, 그래도 남매를 향해 손을 흔들어 주는 효진이었다.
어느새 시야에서 멀어진 남매와 어두컴컴해진 하늘을 보며 화들짝 놀라 했다.
“얼른 가야지.”
평소보다 늦은 시간.
어릴 적 히어로가 혹시나 걱정할까 봐 서둘러 집으로 향하는 효진이었다.
어릴적 기분을 느끼게 해 준 남매에 절로 미소가 피어올랐다.
평소보다 기분이 좋아진 효진이가 도어록의 비밀 번호를 누르고 집으로 들어가는 순간 코끝을 스치는 향기를 느꼈다.
“치킨?”
이 기름진 냄새는 치킨에서만 느낄 수 있는 냄새였다.
그리고 집으로 들어간 순간 효진이는 오랜만에 이마에 힘줄이 솟아올랐다.
“왔어? 얼른 먹자. 치킨 식을까 봐 걱정이었어.”
기뻐하며 앉아 있는 어릴 적 히어로가 신난 듯이 기뻐하며 말했다.
하지만 효진이는 기뻐할 수가 없었다.
“이, 이…….”
너무 화가나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상황.
하지만 어릴 적 히어로는 그것도 모르고 웃으며 말했다.
“4!”
이쯤이면 맞고 싶어 한 듯한 대사.
오랜만에 주먹을 쥔 효진이는 그대로 눈앞의 어릴 적 히어로를 향해 휘둘렀다.
“사치도 적당히 해!”
퍼억.
묵직한 타격음의 끝에는 쓰러진 어릴 적 히어로가 있었다.
“오늘도 묵직하군…… 샌드 스콜피온의 일격 급이야.”
“하…….”
어릴 적 히어로는 없다.
이제는 오직 게임에 미쳐 있는 그리고 오늘은 과도한 사치를 부린 멍청한 오빠뿐이다.
* * *
“그래서 이게 무슨 상황이지?”
효진이의 날카로운 눈빛에 나는 살짝 기가 죽었다.
그도 그런 것이 지금 내가 저질러 놓은 상황 때문에 뭐라 변명조차도 할 수 없었다.
식탁에는 무려 치킨 네 마리가 어서 먹어 달라는 듯 멋진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바삭한 튀김옷을 자랑 하는 프라이드치킨과 붉은색의 하려한 옷을 걸치고 달콤함을 느껴 보라는 듯 다소곳이 대기 중인 양념 치킨.
짭조름한 간장의 맛을 알려 주겠노라 선언하시는 간장 치킨과, 한국인이라면 누구라도 거절할 수 없는 알싸하며 매콤한 맛을 알려 주는 갈릭 치킨까지.
총 네 마리의 치킨을 보며 한심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효진이다.
“오랜만에 한 탕 했거든.”
제대로 한 건 했지.
무려 2천만 원이나 벌었으니까.
사실 번 돈에 비하면 상당히 조촐한 느낌이긴 하다.
회귀 전이었다면 당장 소고기 집으로 달려가 소주 한잔 걸쳤을 텐데. 아직 미성년자인 효진이를 생각하면 이게 최선이다.
“하…….”
짙은 한숨.
거기에 나를 바라보는 눈빛은 오빠가 아니라 철없는 남동생을 바라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그럼에도 숨길 수 없는 것이 하나 있었는데, 다름 아닌 살짝 설려 있는 입가의 작은 미소였다.
사실 나는 효진이에게 월오룰에 대한 이야기를 그다지 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효진이가 관심이 없어 보이는 것은 물론이고, 지금은 수험생인 동생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하지 않았다고 해야 할까?
거기에 대학생이 되고부터는 얼굴 보는 것도 일주일에 겨우 한두 번이다.
공부에 아르바이트에 녹초가 된 효진이를 두고 게임 이야기나 할 바보 같은 사람이 되고 싶진 않았다.
‘근데 나중엔 그게 아니었지.’
나중에 좀 더 나이가 들었을 때 둘이서 한잔 하며 했던 이야기가 있었다.
조금은 이야기를 해 달라고. 적어도 오빠가 뭐 하고 있는지는 알고 싶다며 그저 게임만 하는 오빠가 아니라 조금은 같이 공감할 수 있게 가벼운 이야기는 해 달라고 말이다.
그 뒤로는 간간히 월오룰의 이야기를 들려줬던 나다.
생각해 보니 회귀하고 난 다음에는 아직 효진이에게 아무런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았다.
그래서 미안하다.
나를 신경 써 주는 동생이지만, 그런 동생을 배려하지 못한 내가 바보다.
“실은…….”
나는 조용히 아르바이트를 그만두는 것으로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이야기가 시작하면서 우리 앞에 있는 치킨 네 마리는 따른 속도로 줄어 갔다.
거기에 효진이의 손에는 콜라가, 나는 맥주가 들려 있었다.
이야기를 시작함과 동시에 관장님인 태선이 형에게 동생하고 시간을 보낸다고 오늘 운동은 쉬겠다며 정중하게 죄송하다고 문자를 보냈다.
형님 동생 하며 지내기로 하고 대충이나마 가정사를 알고 있는 태선이 형은 오히려 잘했다며 운동도 중요하지만 가족과의 시간은 무엇보다 소중하다며 재밌게 보내라고 답장해 주셨다.
이런 거 보면 형님도 참 따뜻한 분이다.
그래서 내가 회귀 전에도 형님을 따른 것이고, 지금도 형님으로 모시는 것이다.
이런 따뜻한 감정을 느끼게 해 주는 몇 안 되는 소중한 사람이다.
아. 형수님은 조금 골치 아픈 느낌으로 바라보시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렇게 효진이에게 월오룰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새롭게 시작하기를 결정. 레전더리 직업을 얻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을 때는 야무지게 들고 있던 닭다리가 식탁 위로 툭하고 떨어졌을 정도로 놀라 했다.
거기에 소환수로 얻은 범이의 사진을 휴대폰으로 보여 줄 때는 사랑스럽다는 듯 바라보았다.
“진짜 키우고 싶게 생겼다.”
“정말 현실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긴 해.”
그 뒤로 이어지는 간략한 일들과 오늘 한탕 한 것까지 이야기를 해 주었다.
내가 번 돈이 얼마인지는 굳이 이야기하지 않았다.
대신 깜짝 놀랄 만한 선물이 떠올랐다.
“이번 주말에 오빠랑 데이트할까?”
“오호! 진짜 한탕 제대로 하셨나 봐? 데이트 신청을 하고 말이야.”
“그럼, 뭐 먹고 싶어.”
“그때까지 고민해 볼게.”
그렇게 우리 남매는 주말에 약속을 잡고서야 식탁에서 일어났다.
치킨 네 마리와 전투한 흔적이 처절하게 남아 있는 식탁이다.
식어 있는 이 치킨을 걱정할 필욘 없다.
내일 다 볶음밥으로 해 먹음 되니까. 그리고 하루 정도는 식어도 충분히 맛있는 치킨이니까.
뒷정리를 마치고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침대에 누운 나는 조용히 한마디 중얼거리고는 그대로 참을 청했다.
내일은 내일의 꿀이 있기를…….
이게 요즘 내 신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