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0화
#40
니베라 남작이 눈을 뜨고는 가장 먼저 한 것은 다름 아닌 허리춤에 차고 있는 검을 뽑는 것이었다.
스르르릉.
날카로운 쇳소리에 나도 모르게 한발 뒤로 물러났다.
단순히 검을 뽑은 것도 무섭다.
근데 문제는 거기에 니베라 남작이 뿜어내는 기운이었다.
내 몸에 있는 솜털이 쭈뼛쭈뼛 서 올랐다.
순간 나는 방어하기 위해 팅고를 부르거나 아니면 이대로 도망쳐야 할지 두가지 갈등이 떠올랐다.
툭.
그런 나의 어깨에 볼드모드의 손이 올라왔다.
반사적으로 그의 얼굴을 바라본 나였고, 도리도리 고개를 젓는 볼드모드의 모습에 나는 긴장하던 것을 풀었다.
지금 내가 본 볼드모드의 얼굴에는 긴장이나 공포가 아니라 순수하게 즐기는 그리고 뿌듯한 미소를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치 제자의 성취를 축하해 주는 스승의 얼굴.
그것을 본 나는 굳이 이 자리에서 내가 도망치거나 긴장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사이 니베라 남작은 ‘스읍’하고 크게 숨을 들이 쉬더니 그대로 검을 앞으로 뻗었다.
그곳엔 모든 검을 들고 있는 자들이라면 꿈꾼다는 경지이자 소드 마스터임을 상징하는 오러 블레이드가 뿜어져 나왔다.
우우우웅.
그것을 본 미리엘 장로와 볼드모드가 축하해 줬다.
“축하드립니다. 어머니께서도 대륙을 구원할 형제님의 앞길을 축하드릴 것입니다.”
“허허허. 폐하에게 얼른 보고 드려야겠어. 아주 기뻐하실 것이네. 니베라 가문에 복이 찾아왔어.”
두 사람의 진심 어린 축하에 니베라 남작은 오러 블레이드를 거두고 검집에 검을 돌려놓은 뒤 조용히 흐느끼고 있었다.
조금씩 떨려오는 그의 어깨가 조용히 울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고, 떨고 있는 손과 다리는 그간의 노력의 끝에 도달한 소드 마스터의 경지를 힘껏 느끼는 듯 보였다.
“가, 감사합니다.”
니베라 남작의 반쯤 울음 섞인 목소리에 미리엘 장로와 볼드모드는 얼굴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
“이 좋은 날에 울면 어떻게 하는가? 크게 웃으며 기뻐하게.”
“맞습니다. 그간 니베라 남작님의 고생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입니다. 어서 어깨를 펴고 당당한 모습을 보이시죠.”
두 사람의 격려 덕분일까.
다시 고개를 든 니베라 남작의 얼굴은 당당하다 못해 패기가 넘치는 얼굴로 변해 있었다.
소드 마스터.
오러 블레이드는 뿜어내며 검의 길을 걷는 자에게 있어서 유일무이한 경지다.
소드 마스터가 뿜어내는 오러 블레이드는 오직 오러 블레이드를 뽑아내는 소드 마스터만이 상대할 수 있다.
이제 니베라 남작의 앞에는 더 이상의 적수가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그런 그의 시선이 나에게로 머물렀다.
“뭐라 고마움을 표해야 할지 모르겠군. 플레이어 시저.”
눈을 뜬 니베라 남작이 나를 바라보며 그렇게 말했다.
나는 덤덤한 얼굴로 대답했다.
“한 발 나아가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겉으로는 정말로 덤덤하며 그리고 진심을 담은 축하의 말을 건넸다.
하지만 속마음은 달랐다.
두근두근.
저 고마움을 표할 물건이 무엇일지 홀로 상상하며 기대했다.
그래도 명색이 한 영지의 영주이자 남작의 작위를 가진 귀족이다.
하물며 이제는 소드 마스터가 아닌가?
당연히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을 주더라도 소드 마스터로 인도한 자네에게 입은 은혜를 갚을 수가 없군.”
“아닙니다. 이것으로 마왕 세지아르의 야망을 무너뜨릴 수 있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하하하. 그런 것이 아니네. 이것은 무인으로서 그리고 한 영지의 영주로서 자네에게 많이 감사하고 있어.”
니베라 남작이 자리에 앉으며 나에게 설명을 해 주었다.
이곳 니베라 남작의 성에 있는 고블린 부족은 영주의 입장에서 상당히 거슬리는 존재였다.
날이 따뜻한 시기면 몰라도 추운 겨울만 되면 마을을 습격해 약탈을 하거나, 사람들을 죽이는 듯 수많은 피해를 입히는 것이 고블린 부족이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토벌을 했지만, 고블린 족장의 그림자조차도 구경 못했던 니베라 남작의 병사들이었고, 죽여도 죽여도 늘어나는 고블린의 숫자에 질려하던 찰나였다.
‘게임 설정 상 그런 게 있긴 하지.’
니베라 남작의 말대로 이곳 월오룰의 세계관의 몬스터는 겨울, 혹은 추운 기후, 식량을 구하기 힘든 곳의 경우 다른 곳의 몬스터와 다르게 레벨에 비해 강력하거나, 매섭게 공격해 온다.
당연히 유저의 입장에서는 상당이 성가신 일이다.
그만큼 사냥이 힘들고 소모되는 물약의 값이 만만치 않으니 말이다.
대신 이득이라면 그만큼 경험치와 질 좋은 아이템이 나온다는 점이 있지만, 그래도 피하고 싶은 것은 모든 유저의 마음이다.
꿀 빠는 게 최고니까.
그건 내가 더 잘 알고 있다.
언제나 꿀을 찾아 헤매는 한 마리의 꿀벌이 나다.
아무튼.
그런 와중에 내가 고블린 부락을 토벌, 거기에 고블린 족장까지 죽였으니 니베라 남작의 입장에서는 그간 앓던 이가 빠져 나간 기분일 것이다.
“고블린 부락의 토벌에 천골드. 고블린 족장의 목에 천 골드의 현상금이 걸려 있지.”
그러면서 나에게 2천 골드가 담긴 주머니를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이건 충분히 내가 가져야 할 당당한 권리다.
그러니 아무런 거리낌 없이 받을 보상이다.
품에 갈무리하자 자연스럽게 인벤토리에 들어간 골드였다.
지금 벌어들인 골드만 이천 골드.
이것을 현금으로 바꾸면 무려 2천만 원.
지금 내가 회귀하고 일주일 만에 벌어들인 금액이다.
그것도 처음 투자하겠다고 천만 원 쓴 걸 생각하면 순 이익은 천만 원이라는 소리다.
‘와…… 미쳤네.’
하하하. 이거 실환가.
내가 월오룰을 하면서 현금으로 돈을 바꿀 정도로 여유가 있었던가? 아니 없었다.
그런데 난 지금 무려 천만 원이라는 금액이 손에 들어왔다.
진심 이게 현실인가 싶었다.
마치 꿈을 꾸는 듯한 기분을 느끼고 있을 때 니베라 남작이 하나의 물건을 꺼내었다.
“그리고 이것을 받게.”
“이것은?”
테이블 위에 있는 것은 금으로 만들어진 작은 패였다.
패의 가운데는 니베라 남작의 가문을 상징하는 문장인 검을 물고 있는 독수리가 그려져 있었다.
“우리 가문을 뜻하는 패이네. 지금 당장 보답해 줄 수 있는 것이 없어 이것을 주네.”
쩝.
가문을 상징하는 패란다.
과연 이게 보상으로 어울릴까 싶었다.
이게 무엇을 뜻하는지 몰랐기에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다음으로 이어지는 니베라 남작의 말에 나는 입을 떡하니 벌렸다.
“내가 마땅한 보상을 찾기 전에 무언가 바라는 게 있다면 언제든 이 패를 가져다 쓰게. 설사 용암 속으로 뛰어들라고 하더라도 우리 니베라 가문은 자네의 뜻을 딱 한 번 들어주겠네.”
이건 뭐, 치트키 수준의 물건이다.
이 패만 있다면 니베라 남작이 단숨에 내편이 되어서 싸워 준다는 거 아닌가?
그것도 무려 소드 마스터인 니베라 남작이 말이다.
그리고 그것이 정말 진심이자 확실하다는 것을 알리는 시스템창이 떠올랐다.
[니베라 남작가의 은인이 되었습니다.]
-NPC 니베라 남작의 호감도가 최고치가 되었습니다.
-니베라 남작령가와 연관된 곳에서 최고의 대우를 받을 수 있습니다.
-니베라 남작가를 상징하는 패를 받았습니다.
<니베라 남작 가문의 패>
등급: 유니크
내구력: 파괴 불가
니베라 남작 가문의 은인을 뜻하는 패다.
단 한 번 니베라 남작 가문을 움직일 수 있다.
이 기회는 니베라 남작이 전정한 보상을 내려 주기 전까지 유효하다.
-계정 귀속.
[플레이어 최초로 귀족 가문의 은인이 되었습니다.]
-업적 ‘귀족의 은인’을 획득했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10 추가됩니다.
-월오룰의 모든 귀족들의 호감도가 상승합니다.
어…… 음…….
이건 그냥 한마디면 된다.
미쳤네.
정말 이 말 말고는 떠오르는 단어가 없다.
그도 그런 것이 지금 받은 보상을 봐라.
단순한 보상이 아니라 이건 말도 안 되는 엄청난 보상이다.
평범한 NPC도 아니고 한 나라의 귀족이자 소드 마스터를 움직일 수 있는 보상을 받았다.
이것만 있다면 당장 엄청 힘든 사냥터도 편하게 버스를 탈 수 있다는 소리다.
막말로 엄청 레벨이 몬스터지만, 니베라 남작이 편안하게 잡을 수 몬스터가 있는 인던에 들어간다고 봐라.
버스가 아니라 고속 열차라도 타는 기분일 것이다.
그런 엄청난 물건을 보상으로 내줬다.
“감사히 받겠습니다.”
혹시나 마음이 바뀔라 얼른 내 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인벤토리에 잘 들어간 것을 세 번이나 확인하고서야 다시 니베라 남작을 바라보았다.
니베라 남작은 만족한다는 얼굴이었다.
우리 둘은 서로 마주 보며 웃었다.
“자, 그럼 다시 이 두 늙은이와의 대화를 마저 해 볼까?”
그러고 보니 갑작스럽게 소드 마스터가 된 니베라 남작 때문에 대화가 끊어졌었다.
원래는 볼드모드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그럼 앞서 한 이야기를 이어자가면 말이네. 죄악의 힘 대신 주선의 힘에 대해서 연구하고 있는 것이 우리 마탑이네.”
“그리고 그 연구를 도와 드리고 있는 것이 신성 교단이지요.”
볼드모드의 이야기를 거드는 미리엘 장로였다.
“주선의 힘에 대해 연구하던 과정에 하나 알아낸 것이 있네. 그것은 다름 아닌 죄악의 힘을 가진 이가 주선의 힘을 가진 자와 싸우게 된다는 운명이네.”
“그 운명은 어머니신 신 아이샤 님의 예언입니다.”
어라?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죄악의 힘을 가진 자가 주선의 힘을 가진 자와 싸운다고?
이거 아무래도 상당히 이상하다.
지금 죄악의 힘을 모우고 있는 것은 나다.
서머너 킹의 특성인 환수계에서 얻어 온 알이 그 죄악의 힘을 흡수한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모우고 있는데, 그런 나와 싸우는 적이 있다는 소리가 아닌가.
“수년간 이어지는 연구지만 별다른 진척이 없었네. 그런 와중에 미리엘 장로님 앞에 자네가 나타난 것이지.”
“죄악의 힘을 품은 플레이어가 말입니다.”
그러면서 둘은 나를 바라보았다.
아니 정확하게는 내가 아니라 인벤토리에 있는 알을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이것을 말씀하시는 거군요.”
나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알’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죄악의 힘을 품은 분노의 반지도 꺼내 테이블에 올렸다.
그와 동시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알이 반응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알과 분노의 반지가 공명합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알이 분노의 반지에 봉인된 힘을 흡수합니다.
-분노의 목걸이의 봉인이 풀립니다.
-분노의 일격 스킬 사용 후 페널티가 변경 됩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알이 흡수한 힘에 만족합니다.
-알을 부화하기 위한 두 번째 조건을 충족했습니다.
-부화도가 14% 상승합니다.
-총 28%가 되었습니다.
-두 번째 조건을 충족했기에 세 번째 조건이 공개됩니다.
-듀스델 백작령을 위기로 몰고 있는 곳을 찾아가십쇼.
어라? 듀스델 백작령?
그곳이라면 지금 레벨에서 갈 수 있는 수준의 사냥터가 아닌데?
지금 내 레벨로는 비빌 수 없는 사냥터이자 앞으로 두 개의 마을을 지나야지만 갈 수 있는 사냥터가 바로 듀스델 백작령이다.
내가 잠시 시스템 창에 정신을 집중하려 했지만, 그러지 못하고 눈앞의 있는 미리엘 장로와 볼드모드의 말에 시선이 절로 움직였다.
“놀랍군. 죄악의 힘을 품은 알이라니.”
“저도 놀라했습니다. 하물며 저 알을 발견했을 때 고블린 부락에 죄악의 힘이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둘이서 머리를 맞대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알’에 대해서 조사를 하는 것이었다.
나도 이 알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기에 시스템 창의 내용보다는 두 사람의 대화에 집중했다.
볼드모드는 마법을 이용해 알을 조사했고, 미리엘 장로는 신성력을 이용해 조사했다.
10분간 이어지는 두 사람의 조사에도 아무런 반응은커녕 미동조차 하지 않은 알이었다.
“혹시 플레이어인 자네에게는 뭔가 다른 게 보이는가?”
볼드모드의 말에 나는 시스템 창의 일부 내용을 읊어 주었다.
“듀스델 백작령으로 향하라는 말뿐입니다.”
나의 말에 그 둘의 얼굴이 급격하게 굳어 갔다.
아무런 말이 없어진 미리엘 장로는 조용히 가슴에 성호를 긋더니 기도했다.
그런 미리엘 장로와 다르게 볼드모드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하필…… 언데드가 출몰한 지역이라니…….”
“네? 언데드요?”
내가 알기론 듀스델 백작령은 언데드가 출몰하는 지역이 아니었다.
아름다운 호수를 끼고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호구 너머에 있는 늪지대에 있는 리자드맨이 출몰하는 곳이었다.
“그러네. 방금 연락이 왔네. 언데드가 출몰했다고.”
회귀 전 내가 알던 월오룰의 세상과 달라진 현재의 월오룰의 세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