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화
#30
오우거 조련사 웰리스.
원래 웰리스라는 유저는 소환수 직업 중에서도 유니크 직업인 오우거 조련사라는 직업을 가졌다.
직업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오우거를 포획해야 비로소 완전한 오우거 조련사 직업을 가질 수 있었는데, 그것을 들은 한 길드에서 그를 전폭적으로 서포트, 그리고 육성과 함께 오우거를 포획하기까지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웰리스는 결국 평범한 오우거가 아닌 정예 몬스터인 트윈헤드 오우거를 포획하는데 성공, 그 뒤로 포획한 소환수를 이용해 상위 사냥터를 씹어 먹어 버린 괴물이었다.
물론 하위 사냥터에서 포획한 몬스터가 상위 사냥터에서 활약해 봐야 한계가 분명했고, 그 한계를 넘기 위해서는 노가다나 다름없는 사냥을 통해 어떻게든 레벨을 올려야 하는 것이 소환사의 운명이다.
한때 잠깐 떠들썩했던 그였지만, 결국 레벨 업이라는 벽에 막혀 나중에는 점점 선발대와 격차가 벌어지며 기억 속에서 흐려졌던 인물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니 입이 쓰네.
내가 먼저 업적을 얻어 버리는 바람에 웰리스가 힘들게 되었다.
직업도 오우거 조련사라 오우거로 시작해야 하는데, 거기에 내가 업적을 빼앗으니 육성하는 데 지장도 생겼다.
“거 미안하게 됐수다.”
나는 사과했다.
진짜 진심을 담아서 사과했다.
효력을 생각하면 업적을 얻고 3초 안에 해야 하는데, 뭐 어쩔 수 있는가? 이미 지나간걸.
아무튼!
지금의 나는 홉 고블린을 교육해야 한다.
“자, 그럼 똑같이 따라 한다.”
나는 먼저 검을 들어 힘을 실어 휘두르는 수 있는 방법을 천천히 설명하며 동작으로 보여 주었다.
“해 봐.”
홉 고블린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 자리에서 자세를 잡곤 그대로 대롱을 휘둘렀다.
부우웅!
어랍쇼? 이걸 잘 따라 하네?
놀랍게도 홉 고블린은 내가 한 동작을 정확히 따라 해낸 것이다.
우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몇 번 더 시켜보았는데, 오히려 점점 폼이 좋아지고 있었다.
정예 몬스터답게 똑똑한 홉 고블린이었다.
이게 바로 지식과 지혜 스텟이 다른 고블린들과 다르게 높은 이유가 증명된 것이다.
“좋아, 좋아. 계속해 보자고.”
나는 힘을 실어 공격하는 방법 말고도 다른 기술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단순히 위에서 아래로만 공격하는 방법이 아닌 좌에서 우로 휘두르는 방법을 시작으로 대롱을 곧게 뻗어 찌르는 동작과 그와 동시에 발차기를하는 방법 등을 전부 시켜보았다.
“와…… 뭐야. 왜 이렇게 습득력이 빨라?”
이상하다.
내가 알기론 소환수에게 무언가를 가르치는 것은 상당히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놀랍게도 홉 고블린을 가르치는 것을 전부 쭉쭉 따라하고 있었다.
아무리 만능 교육관이라는 스킬의 효과라고 하지만 이건 홉 고블린이 매우 똑똑하다는 증거기도 하다.
이거. 생각보다 재밌는데?
나는 열심히 땀을 뻘뻘 흘리면서 홉 고블린을 가르치고 있는 중에도 재미있다는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
뭐라 할까. 힘들지만 그만큼 보람이 있다.
거기에 이렇게 성장하는 홉 고블린은 즉시 전력을 넘어서 앞으로 함께할 유용한 전투 요원이 되어 준다.
당장 힘들지만, 그래도 가르치는 보람이 있다는 게 상당히 흥미로웠다.
그와 동시에 떠오른 생각이 있다.
“지금이 적기네.”
내가 처음 이 게임을 시작하면서 돈을 투자하기로 결정했었다.
당장 아직 초보자 딱지를 때지 못한 상황에 여기 니베라 남작의 성 주변의 사냥터에는 돈을 투자할 필요가 없었기에 아직 환전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홉 고블린의 무장을 위해서 킵해두었던 돈을 조금 투자해야 할 것 같다.
적당히 무기라든가 방패 하나 정도? 그쯤이면 충분히 전력을 끌어 올리는데 충분하다.
“좋아. 일단 시간이 남았으니까 계속해 보자고.”
“끼에륵!”
그 뒤로 나는 홉 고블린을 가르치는 데 집중했다.
* * *
다음 날.
게임에 접속한 나는 가장 먼저 범이를 소환했다.
“냐앙!”
우렁찬 울음소리와 함께 등장하는 범이를 품에 안고는 목을 긁어 주었다.
그르릉거리는 소리와 함께 기분 좋아하는 범이를 보며 나는 마을에 있는 대장간으로 향했다.
“일단 쇼핑부터 해 볼까.”
원래라면 어제 해야 했을 쇼핑이다.
하나 홉 고블린을 가르치면서 나도 모르게 그 재미에 취해 만능 교육관의 스킬의 효과가 없음에도 계속해서 홉 고블린을 가르치는 데 집중했다.
그래. 저게 문제다.
홉 고블린을 가르치는 것이 재밌다 못해 신나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거기에만 열중해 버린 탓이다.
당연히 저녁은 효진이가 차렸고, 헬스장은 무려 30분이나 늦었다.
“덕분에 원래 하던 코스가 아니라 지옥 코스로 바뀌었지…….”
30분이나 늦은 만큼 더욱 확실하게 조져 주는 태선이 형이었다.
덕분에 집에 갈 땐 거의 기어서 가다시피 했는데, 오늘 아침에도 어김없이 전신에 파스 냄새가 그득했다.
“이러다가 캡슐 안에 파스 냄새로 가득한 거 아냐?”
심이 걱정 된다.
나중에 자기 전에 캡슐 열어 두고 환기해야 할 듯하다.
아무튼 어제 홉 고블린을 교육한 것은 매우 만족스러웠다.
“정말 놀라울 정도로 말이지.”
정말이다.
얼마나 놀랐는지, 실전을 위해 1: 1대련으로 나를 공격해 보라며 홉 고블린을 테스트했다.
사실 나와 1: 1로 싸운다는 것 자체가 사실상 무조건 내가 이길 수밖에 없는 조건이긴 하다.
내가 누군가? 무려 10년 동안 전사 캐릭터를 키워왔던 사람이 나다.
그 시간 동안 쌓인 노하우는 절대 무시할 수준이 아니다.
그러니 홉 고블린과의 대련에서도 내가 우위를 점할 수밖에 없다는 소리다.
하나 홉 고블린은 대련하는 동안 단 한 번도 포기하지 않고 나를 향해 자신의 열정을 보여 주었다.
내 검에 의해 공격이 막혀도 어떻게든 다른 곳을 공격하기 위해 몸을 놀리는 것은 물론이고, 빈틈을 찾아내기 위해 직접 몸을 아끼지 않고 오히려 몸을 사리지 않고 덤벼드는 투지에 감동 받을 정도였다.
테스트 결과는 합격.
어제 하루를 투자해 교육을 한 홉 고블린은 내가 원했던 이상으로 강력해졌다.
“그러니 선물을 하나 해 줘야지.”
눈부신 성장을 한 홉 고블린에게 선물을 할 생각이다.
뭐, 딴 건 아니고 날이 제대로 선 검과 가벼운 가죽 갑옷 정도 말이다.
“다해서 200골드네.”
나는 돈을 지불하려다가 멈칫했다.
와, 가격이 어마어마하긴 하네.
검 한 자루와 가죽 갑옷 한 벌의 가격이 200골드다.
1골드 당 만 원의 가치를 가지고 있으니 한국 돈으로 이백만 원이나 하는 물건이라는 소리다.
‘이백만 원이면 고기가 몇 근이야? 그리고 효진이 학원비라든가, 교제 등등.’
순식간에 내 머리를 스쳐 가는 여러 가지 것들이 떠올랐다.
아마 스쳐간 것들이 이백만 원의 값어치로는 훨씬 좋은 것들일 것이다.
하나 이 돈은 내가 게임에 투자하기로 마음먹었던 돈의 일부다.
홉 고블린에게 투자하는 것이 곧 내게 투자하는 것과 같기에 두 눈을 딱 감고서 200골드를 꺼내 들었다.
덜덜덜.
머리는 괜찮다고 하지만, 몸은 그렇지 않은가 보다.
내 손이 이렇게 덜덜 떨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 내 맘도 모르고 NPC는 매정하게 돈을 받아 갔다.
아무리 내가 호감도를 10%나 먹고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결재 앞에서는 NPC도 매정해지는 법이다.
제길.
이렇게까지 투자하는 데 좀만 맘에 안 들기만 해 봐라.
그 자리에서 경험치로 만들어 버릴 테니까.
진심이다.
아무튼 그렇게 홉 고블린에게 줄 무구를 인벤토리에 넣어 고블린 사냥터가 있는 성문으로 향했고, 깊숙한 곳에 가서야 홉 고블린을 소환했다.
“끼에륵!”
특유의 울음소리와 함께 등장하는 홉 고블린이었다.
“잘 쉬었지?”
“끼에륵!”
내 말에 우렁차게 대답하는 모습에 나는 흡족한 미소를 띠었다.
그도 그런 것이 어제 하루 교육의 효과인지 홉 고블린의 모습이 눈에 확실하게 보일 정도로 달라졌기 때문이었다.
구부정하던 허리를 꼿꼿하게 펴지고 몸의 근육이 좀 탄탄해진 것은 물론이며 그저 본능과 살육에 미쳐 있던 눈빛이 아니라 잘 훈련 받은 정예 병사의 눈빛을 하고 있었다.
이게 다 어제 종일 교육한 결과물이다.
보는 것만으로도 뿌듯하다.
이게 전부 내 노력으로 만들어진 것이니 더욱더 의미가 남다르다고 해야 할까.
공식적이진 않지만 제자 1호가 눈앞의 홉 고블린이다.
내가 홉 고블린을 투자하게 된 이유 중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는 것이 제자 1호라는 점도 있다.
그리고 그 투자이자 선물을 건네주었다.
“자, 받아라.”
“끼에륵?”
내 말에 의문이 든다는 듯 의아한 목소리를 내뱉은 홉 고블린이었다.
그런 홉 고블린에게 인벤토리에서 꺼낸 가죽 갑옷을 휙휙 던져 주었다.
“께엑?!”
화들짝 놀란 홉 고블린 녀석이 내가 던져 주는 것을 하나씩 받았다.
어디 보자.
장갑 30골드, 신발 30골드, 상의 60골드, 하의 50골드, 투구, 30골드.
어후, 돈 잡아먹는 귀신인가.
주면서도 자연스럽게 계산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본능이다.
씁쓸한 내 얼굴과 다르게 홉 고블린 녀석의 얼굴이 변해 갔다.
“끼에륵…….”
마치 감동한 얼굴.
홉 고블린 녀석의 두 눈엔 눈물이 그렁그렁 매달려 있었고, 숨이 가빠왔는지 콧구멍은 벌렁벌렁하고 있었다.
거기에 내가 준 물건을 받은 양손은 덜덜 떨고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소중하게 품에 안았다.
뭘 이런 걸 가지고 저렇게나 감동받나.
준 내가 민망할 정도네.
이 홉 고블린. 생각보다 감수성이 풍부하네.
이거 진짜 몬스터 맞아? 아니 AI 맞아?
의아하던 중에 나는 문뜩 한 가지 떠올랐다.
“언제까지 홉 고블린, 홉 고블린이라 부를 수 없지.”
나는 생각 난 김에 바로 정했다.
“홉 고블린의 이름을 팅고로 정한다.”
[몬스터 ‘홉 고블린’의 이름을 ‘팅고’로 지어 주었습니다.]
-몬스터 ‘홉 고블린’이 ‘팅고’ 이름을 마음에 들어 합니다.
-충성도가 오릅니다.
“오, 맘에 들었다니 다행이네.”
사실 팅고라는 이름은 내가 고등학교 때 한창 즐겼던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에 나오는 중립 영웅의 이름을 따온 것이다.
뭐 그다지 쓸모 있는 중립 영웅은 아니지만, 뭔가 고블린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영웅이라 그 이름을 쓴 것이다.
단순히 이름을 지어 준 것뿐인데, 눈앞의 홉 고블린, 아니 이제 팅고가 된 녀석이 갑작스럽게 나를 향해 머리를 조아리고는 그대로 절을 하기 시작했다.
“끼에륵! 끼에륵!”
뭘 이리 마음에 들어 하나.
아주 그냥 엎드려서 폭풍 오열을 하고 있는 팅고다.
이러다가 나중에 짝이라도 만들어 주면 이 자리에서 기절하는 거 아냐?
혼자 ‘킥킥’거리며 웃고 있자 눈앞에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홉 고블린 ‘팅고’의 충성도가 100%가 되었습니다.
-레전더리 직업 ‘서머너 킹’의 소환수입니다.
-진정한 서머너 킹이기에 진화 조건에 대한 해답을 알고 있습니다.
-홉 고블린 ‘팅고’의 진화 조건이 공개됩니다.
1. 이름 정하기.
2. 레벨 35 달성.
3. 고블린 족장의 심장 섭취 0/1
어라?
이게 뭐야?
서머너 킹이기에 이걸 알려 준다고?
이건 소환사 직업의 역사에 큰 획을 그어 버리는 사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