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화
#26
신성 교단.
신 ‘아이샤’를 믿음을 바탕으로 두고 있는 이곳 브리타니아 대륙에서 믿고 있는 유일한 종교 시설이다.
단순히 종교 시설이면 끝날 이야기겠지만, 월오룰을 플레이하는 유저들에게 있어서는 상당히 중요한 곳이라 할 수 있다.
첫 번째로 신성 교단은 월오룰을 플레이하는 유저 중 가장 중요한 자원이자,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인 힐러, 즉 사제라는 직업을 육성해 주는 유일한 곳이다.
힐러가 어떤 존재인가.
파티에서 회복을 담당하는 존재로 레이드의 성공 여부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존재다.
아 물론 힐러만 있다고 해서 클리어가 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아군을 치유하는 역할은 유일하게 사제라는 직업만이 가능했다.
당연히 초창기에는 사제라는 직업을 가진 유저들은 우대를 받았다.
오픈 당시 워낙 화려한 스킬과 압도적인 전투 연출을 보여 준 홍보 영상 때문인지, 전투 직업을 선택하는 이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덕분에 힐러의 부재는 수많은 유저들을 사망으로 내몰았다.
‘난리도 아니었지.’
그때 당시 나는 월오룰의 작업업장 아르바이트를 하던 시기였다.
짬나는 시간에 조금씩 캐릭터를 육성하며 게임 자체를 즐기며 돈을 벌던 시절이다.
그런 나와 다르게 월오룰에 목숨을 걸고 미친 듯이 게임을 하던 이들의 말을 들어 보면 정말이지 끔찍한 수준이라고 한다.
사냥하다가 체력 포션이라도 떨어지면 다른 사람을 죽여서 빼앗은 일은 기본이고, 안전한 곳에서 사냥하고 있으면 여러 명이 몰려와 그 자리에서 죽이고 자리를 빼앗는 일도 허다하다고 했다.
하물며 힐러라도 나타나면 서로 데려가기 위해서 싸우는 일도 허다했다니 그야말로 무법지대나 다름없는 수준이라고 한다.
어휴.
그때 당시 듣는 것만으로 심장이 쫄렸다.
작업장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어서 다행이지 만약 그들과 같이 게임했다면 상당히 피곤했지 않을까 싶었다.
그나마 지금은 그러한 일은 없다고 한다.
힐러의 부재로 인해 신규 유저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전부 사제라는 직업을 골랐기 때문이었다.
하물며 사제라는 직업은 얻기도 쉬웠다.
그저 신성 교단의 지부에 찾아가 사제가 되고 싶다고 하면 전직이 가능한 직업이다.
거기에 원래라면 신 ‘아이샤’의 믿음과 신성 교단의 교리에 나와 있는 것을 지키며 살아가야 늘어나는 신성력이다.
하나 유저들에게는 그저 레벨 업을 통해 신성력을 키울 수 있으니 육성에 어려움도 없었다.
다만 마땅한 전투 스킬이 없는 사제이기에 파티 사냥을 지양해야 하지만, 그래도 이 사제라는 직업은 여전히 파티에서 1순위로 모셔 가는 직업이었다.
아무튼 그런 신성 교단의 지부인데, 여기서 조금 특별한 것이 하나 있다.
다름 아닌 지부마다 나름 규모가 다른 것인데, 보통 유저가 거쳐 가는 작은 규모의 마을 같은 경우엔 평범한 건물에 신성 교단의 지부가 있다.
하나 도시급 이상이나 제국 수도의 경우엔 그곳의 크기만큼 웅장한 신전을 볼 수 있다.
당장 이곳 리베라 남작령의 신전만 해도 상당한 규모의 신전이 만들어져 있다.
신전의 모습의 경우 그리스 로마에 나오는 신전과 상당히 흡사한데, 겉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신성함이 느껴지는 그런 건물이다.
그런 건물을 내가 왜 언급하냐고?
놀랍게도 내가 지금 그 신전에 들어가고 있으니까.
[플레이어 최초로 신성 교단의 신전에 입장했습니다.]
-업적 ‘신성 교단의 손님’을 획득했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10 추가됩니다.
-신성 교단의 인물들과 호감도가 상승합니다.
-환수 ‘범이’가 소환수 창으로 역 소환 됩니다.
신전에 들어온 것만으로도 이렇게 업적을 얻지 않았는가?
무려 모든 능력치 +10을 비롯해서 신성 교단의 인물들과 호감도가 상승했다.
당장 나와 함께 하고 있던 신성 교단의 NPC들의 얼굴만 해도 조금 전까지 나를 약간이나 못마땅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는데, 지금은 아무런 표정을 보이지 않았다.
예로 들자면 불편한 손님에서 그냥 손님으로 바뀐 정도.
방금까지 불편한 시선에 움츠러들었던 내 몸을 조금이나마 펼 수 있었다.
‘범이라도 있었으면 덜 움츠러들 텐데.’
왠지 모르겠지만 신전에 들어옴과 동시에 범이는 소환수창으로 돌아가 버렸다.
아마 신전에 들어온 탓이겠지. 범이의 턱이라도 긁어 주고 있음 심리적으로 안심이 될 건데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불편한 마음으로 들어간 신전이었고, 몇 개의 문을 열고 들어가니 거대한 예배당이라 부를 만한 곳에 도착했다.
“오!”
그와 동시에 나는 감탄했다.
예배당 끝에 있는 한 석상을 보며 말이다.
“신 아이샤 님의 석상입니다. 어떻습니까?”
지금 나에게 질문한 것은 밖에서 나를 보고 신전으로 데려오라 했던 그 노신관이었다.
이곳으로 오기까지 단 한마디도 없던 그가 드디어 처음으로 입을 열고 질문을 한 것이다.
나는 여기서 느낌이 왔다.
‘살짝 퀘스트의 냄새가 나는데?’
월오룰 경력 10년 차인 나의 심장이 간질간질 신호를 보내왔다. 이건 분명 퀘스트와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말이다.
괜히 짬밥이 있는 게 아니다.
그래서 나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처음 신 아이샤의 동상을 보았을 때 처음으로 머릿속에 든 것은 ‘아름답다’였다.
사람의 크기로 비율은 낮춘다면 작은 얼굴에 뚜렷한 이목구비를 가진 전형적인 미인의 얼굴이었다. 양손을 가지런히 모아 가슴께에 두었는데, 누군가를 위한 기도를 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 그런지 경건하기까지 했다.
지금의 내 감정은 정답이 아닐 터. 그렇다면 그에 맞는 답을 찾아내야 한다.
‘신성 교단이니 신앙심이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자애롭다 해야 하나?’
당장 떠오르는 단어가 몇 가지 있지만, 그건 전부 겉치레에 가까운 말.
잠깐이나마 빠르게 고민했던 나지만, 결국 마땅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냥 느낌 그대로를 말하려다가 찰나의 순간에 떠오른 신성 교단의 교리 중에 있던 한 줄의 문구였다.
나의 아이들아. 그 죄악을 미워하지 말고 받아들여라.
그 문구에 걸맞은 대답을 했다.
“모든 것을 포옹하고 계신 어머니와 같은 모습으로 보입니다.”
“맞습니다.”
정말로 내가 한 말이 정답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NPC 미리엘 장로가 질문의 대답에 매우 흡족합니다.]
-NPC 미리엘 장로의 호감도가 최고치가 되었습니다.
어우야. 한 방에 최대치라니.
표정의 변화가 없기에 적당한 대답을 했나 싶었는데, 저리 흡족해하실 줄이야.
아무래도 내가 말한 대답이 너무나도 완벽했나 보다.
크. 여기서도 회귀 빨을 보이네.
회귀 만세.
“신성 교단의 미리엘 장로라 합니다.”
“플레이어 시저라고 합니다.”
우리는 인사와 함께 가장 가까운 의자에 앉았다.
그곳은 신 아이샤의 석상이 바로 앞에 있는 곳이었다.
“죄악의 힘을 느꼈습니다. 맞습니까?”
“무슨 뜻인지 모르겠습니다.”
안 그래도 그게 궁금하다.
죄악의 힘이란 게 뭔데?
왜 날 신전 안으로 데리고 온 건데?
오히려 내 쪽이 더 궁금해 미칠 것 같다.
“7대 죄악이 뭔지 아십니까?”
“교만, 시기, 분노, 나태, 탐욕, 식탐, 색욕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중 식탐의 죄악의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놀랍다.
내가 죄악의 힘을 가지고 있다.
그것도 식탐을 말이다.
근데 여기서 한 가지 짐작이 가는 물건이 있긴 하다.
바로 식탐의 목걸이.
나는 그 자리에서 목걸이를 풀어 손에 쥐며 물었다.
“이것입니까?”
하나 노신관은 나를 보며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그러니 내 가슴을 쿡 하고 찌르는 노신관이다.
“여기에 있습니다.”
놀랍게도 노신관의 손에는 인벤토리에 잠들어 있어야 할 ‘정체 모를 알’이 쥐어져 있었다.
* * *
신전 밖으로 나온 나는 머리가 멍했다.
“하하하…….”
헛웃음만이 나오는 상황이다.
그 뒤로 미리엘 장로와 대화는 끝이 났다.
다만 변한 것이 있다면 퀘스트가 생성되었다.
[퀘스트가 생성되었습니다.]
[미리엘 장로의 부탁]
난이도: 어려움.
제한: 없음.
내용: 고블린 부락을 쓰러뜨리고 죄악의 힘이 숨겨진 물건이 있는지 조사하라.
보상: 연계 퀘스트.
특이 사항: 강제 퀘스트입니다. 거절할 수 없습니다.
이거 봐라. 참으로 어이가 없지 않은가?
강제로 퀘스트를 던져 주지 않았는가? 그것도 강제 퀘스트다. 강제.
현실 세계였으면 바로 노동부 신고했어. 계약서도 없이 그냥 일을 시키고 말이야.
어! 보상 구려 봐라. 절대 안 참는다.
아오. 썅.
이걸 어디다 하소연할 때도 없고 참으로 억울하다.
“일단…… 퀘스트 해야지.”
그래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원래 하려고 했던 퀘스트가 아닌가? 어차피 할 퀘스트다.
차라리 연계 퀘스트를 받을 수 있으니 오히려 더 좋은 거다.
암 좋은 게 좋은 거다.
“범이 소환.”
일단 먼저 범이를 소환해 품안에 안았다.
범이는 자고 있었던 것인지 여전히 잠에 취해 있는 얼굴로 나를 끔뻑끔뻑 쳐다보고 있었다.
마치 볼일은 이제 다 끝냤냐라고 묻는 얼굴이기에 대답해 주었다.
“이제 고블린 포획하러 가자. 도와줄 거지?”
“냐앙~.”
우렁차게 대답하는 듯한 범이지만, 아직 잠이 덜 깬 것인지 듣는 사람의 입장에선 살짝 힘이 빠지는 울음소리였다.
그마저도 이젠 귀엽다.
이거 완전 범이가 새로운 가족같이 느껴지네.
효진이도 보면 참으로 좋아할 텐데. 아쉽네.
고3 수험생을 고양이 한 마리 보여 주겠다고 월오룰을 하러 할 순 없다.
차라리 영상으로나마 보여 주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가자고, 고블린 부락이 있는 방향으로.”
나는 니베라 남작령의 세 개의 성문 중 동남쪽으로 향해 있는 성문을 통과했다.
* * *
고블린 사냥터에 입성한 나는 범이를 바닥에 내리고는 빠르게 고블린을 찾아 나섰다.
“후…… 일단 숫자부터 늘려볼까?”
고블린 부락을 무너뜨리는 데 필요한 것은 다름 아닌 소환수. 그것도 이곳 사냥터에 서식하고 있는 고블린을 포획해야 한다.
지금 이곳에 도착한 나는 계획이 변경 되었다.
처음 이곳에 올 때는 그저 단순하게 수많은 고블린을 포획한 뒤, 고블린 부락에 밀어 넣어 대충 컨트롤하면서 나와 범이가 직접 날뛰는 게 첫 번째 계획이었다.
“하지만 수정될 수밖에 없지.”
하나 그 계획은 단 하나의 스킬로 인해 변경되었다.
스킬은 다름 아닌 거대 육식 토끼를 사냥하고 얻은 레전더리 스킬 ‘만능 교육관’이라는 이름의 스킬이다.
<만능 교육관 Lv1>
엑티브 스킬
-스킬 사용 시 10분간 지정한 대상을 교육할 수 있습니다.
-지정한 대상은 평소보다 사용자가 내리는 명령을 잘 이해하며 빠르게 습득합니다.
-교육을 거듭할수록 대상의 지능이 상승합니다.
-교육을 거듭할수록 충성도가 올라갑니다.
-레벨이 올라갈수록 유지시간이 길어지며 재사용 시간은 줄어듭니다.
재사용 대기 시간: 30분.
스킬을 익히고 좀 더 상세한 설명을 봤을 때 나는 감탄했다.
단순히 교육을 하는 게 아니었다.
이 교육을 통해 내가 가르치는 존재는 지능과 함께 충성도가 올라간다.
이것은 소환사에게 있어서 엄청난 메리트가 있는 스킬이다.
생각해 봐라.
내가 교육한 소환수의 지능이 상승한다? 이것은 내가 가르친 것을 단순히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능동적으로 움직인다는 소리다.
한마디로 생각이란 걸 조금이라도 하게 된다는 것이고, 그것은 전투 시에 빛을 발할 것이다.
거기에 충성도도 올라간다.
내가 계약을 해지하지 않는 이상 계약이 파기될 일이 없다는 것은 충성도라는 시스템을 잠깐이나마 무시해도 된다는 소리다.
이러니 첫 번째 계획이 파기되고 두 번째 계획이 생겨난 것이다.
“일명 꿀 빨기.”
두 번째 계획은 이렇다.
고블린을 포획, 만능 교육관 스킬을 통해 고블린을 교육한다.
재사용 대기 시간, 즉 스킬의 쿨 타임이 돌 동안 실전에 투입시킨다.
이것은 몇 번 반복해, 내가 일일이 명령하지 않아도 자율적으로 적을 향해 공격하는 모습을 보이는 순간, 바로 고블린 부락을 향한다.
이게 내 두 번째 계획이다.
크, 얼마나 완벽한가?
그동안 나는 뒤에서 뒷짐 지고 구경만 해도 된다.
얼마나 재밌겠는가? 세계 3대 구경 중 가장 꿀잼이라는 싸움 구경을 볼 수 있는데 말이다.
꼭 팝콘을 미리 준비해 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킬을 익힘으로 추가로 업적 또한 얻었다.
‘레전더리 스킬을 보유한 자’라는 업적으로 무려 올스텟 10개를 올려 주는 업적을 말이다.
얻을 것은 전부 얻었으니 이제 그 얻은 스킬을 써 볼 시간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