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화
#25
에튜 니베라 남작의 성.
이곳은 월오룰을 플레이하는 유저가 처음으로 방문하게 되는 첫 번째 도시이자 마을이다.
“오오! 드디어 월오룰의 세상을 구경하게 되는구나.”
“크…… 성벽 봐. 옛날엔 저기에 의지하고 살았다는 거 아냐?”
“판타지 세상 속이라 사방으로 배설물이 가득하다는 책을 읽었는데 게임 속은 다르네.”
“어후, 그것까지 재연했으면 코를 막고 다녔어야 할걸?”
“하긴, 그건 그래.”
“이 세상에 진짜 살아보고 싶다. 뭔가 로망이 있어.”
마을에 들어서는 사람들은 저마다 가지고 있는 판타지 세상 속의 지식이라든가, 상식을 가지고 이곳 세상과 비교하며 주변을 둘러본다.
누군가는 책으로 누군가는 영화 속이나 소설 속으로만 상상하며 그려 왔던 판타지 세상이다.
그런 곳을 직접 몸으로 생생히 느낄 수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월오룰이라는 게임을 시작하길 잘했다고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런 그들이 도시에 들어서면 볼 수 있는 것은 튜토리얼 마을이었던 한센 마을과 다르게 수많은 건물과 그곳에서 물건을 팔고 있는 NPC다.
진짜 판타지 세상 속 마을에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듯 각종 채소와 과일을 팔고 있는 상인들을 시작으로 요리를 만들어서 팔고 있는 식당을 볼 수 있다.
주점으로 보이는 곳에는 대낮부터 술을 마시고 있는 NPC들이 왁자지껄하게 떠들고 있었다.
대로에는 갑옷을 입고 무장한 경비병이 수상한 일은 없는지 주변을 감시하며 다니고 있었으며, 꼬마 NPC들은 그런 경비병의 눈치를 보며 숨어 있다가 경비병이 사라지자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며 즐거워하고 있다.
게임 속이라는 것은 인식하고 있지 않는다면 정말로 판타지 세상 속에 떨어진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상당히 잘 표현되어 있는 곳이 바로 월오룰의 세상 속이다.
“그럼, 가지.”
“아, 용병 길드 말이지.”
“거기서 용병패를 만들어서 일거리를 구한다고 하더군.”
“크…… 진짜 판타지 세상이야. 게임 잘 만들었네.”
“그러게 이런 고퀄까지 세세하게 만들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시작의 가도를 타고 니베라 남작의 성으로 들어온 유저들은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마을 한가운데 있는 용병 길드로 향하는 것이다.
월오룰에서 활동하는 플레이어들은 대부분 용병 길드에 등록되어 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용병패를 얻기 위함이다.
이 용병패는 두 가지 용도로 사용된다.
일단 첫 번째는 용병 길드에 속해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으로 용병패가 있다면 용병 길드에서 의뢰를 받을 수 있다.
소소한 심부름부터 몬스터 사냥까지 다양한 의뢰를 받을 수 있는데, 이것이 플레이어의 주머니를 든든하게 만들어 주는 좋은 퀘스트다.
그리고 또 하나는 다름 아닌 이 세상의 신분증이자 통행증이라 할 수 있었다.
용병패가 있음으로 이곳 니베라 남작의 성에 있는 마을에서 편하게 다닐 수 있으며 다음 사냥터가 있는 영지로도 넘어갈 수 있다.
플레이어라면 꼭 한번은 들러야 하는 곳이 다름 아닌 용병 길드다.
그런 용병 길드를 향하는 플레이어는 지금까지 들뜬 모습은 없어지고 저마다 각오를 한 듯, 그리고 무언가를 준비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후…….”
“긴장하지 말고, 침착하게 하면 된다.”
“회사 면접 볼 때보다 더 떨리네.”
“청심환이라도 하나 먹고 들어올 걸 그랬나?”
홀로 중얼거리며 용병 길드로 향하는 그들이 이토록 긴장하는 이유가 있다.
바로 용병 길드 앞에는 이렇게 용병패를 발급받으러 오는 플레이어를 기다리는 자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다름 아닌 월오룰의 수많은 길드에서 파견 나온 스카우터들이다.
이제 막 직업을 얻고 월오룰을 시작하는 뉴비 중에서 쓸 만한 인재가 없는지 눈으로 확인하고 영입하기 위해서 대기하고 있는 이들이다.
그들의 경우 이곳에서 대기하기 위해 레벨 업을 포기하고 이곳 니베라 남작의 성에서 머무는 이들인데, 이미 월오룰이 서비스한 지 1년이 넘은 지금의 시점에 그들은 전문가의 눈이 되었다.
“요즘 쓸 만한 인재가 없어.”
“그러게 말이야. 길드장은 자꾸 어디서 데려오라고 난리를 치는데 있어야 데려가지.”
“그래도 그쪽 길드에선 이번엔 신인 하나 제대로 데려왔다면서요.”
“아, 국가 대표 선수 출신인데 생각보다 재능이 있더라고요. 계약금만큼만 벌어 줘도 다행이죠.”
“부럽습니다. 그 선수를 노리고 저희도 접근했는데 퇴짜 맞았거든요.”
“하하. 길드장의 능력이 생각보다 좋더라구요.”
이미 그곳에서 함께한 지 몇 달이 넘은 스카우터들이기에 잘 아는 사이가 된 그들이다.
친하다면 친한 사이. 지금이야 친하게 굴며 대화를 나누고 있지만, 조금이라도 괜찮아 보이는 신인이 나타나면 그 자리에서 서로를 미친 듯이 헐뜯고 실랑이를 하는 그들이다.
결국 그들이 보일 수 있는 것은 실적뿐이기에 이곳에서 오랫동안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사실 이제 막 게임을 시작한 뉴비들을 살펴봐야 그들의 주목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은 그리 많지 않다.
최소 레어 등급 이상의 직업이라든가, 그게 아니면 전혀 듣도 보도 못한 직업 정도뿐이다.
이곳을 찾는 플레이어 중에 99%는 직업을 말하는 순간 걸러지는 정도다.
그럼에도 플레이어들은 한 줄기의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스카우터들에게 얼굴을 비춘다.
게임을 전문으로 하는 길드원이 아니더라도 서포터라도 뽑히기 위해서 말이다.
그만큼 길드에서 해 주는 지원과 월급이 상당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플레이어들이다.
“오늘도 걸렀네.”
“에효. 접속 기록만 안 남으면 벌써 로그아웃하고 한 잔 걸치는데.”
“그러게 말입니다. 이런 거 보면 너무 철저해서 힘들어요.”
“그래도 우리는 거의 공무원 아닙니까? 땡 하면 퇴근할 수 있는 걸로 만족해야죠.”
스카우터들은 오늘도 공쳤다며 포기하고 대충 시간이나 때우려 했다.
그런 스카우터들 중에서 검은 손 길드에서 파견 나온 사람은 갑작스럽게 눈에 띄는 한 플레이어를 볼 수 있었다.
품에 고양이를 데리고 있는 유저였는데, 이상하게 자꾸만 시선이 갔다.
‘시저라……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영입하려 했던 유저의 이름이 시저라고 했는데…… 아니겠지?’
며칠 전.
그 한 유저를 영입하려고 했었다.
처음 발견은 월오룰 작업장에서 일하는 모습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그런 작업자구나 싶었는데, 자신도 모르게 잠깐 지켜본 결과 다른 이들과 다르게 요령을 피우면서도 자신의 할 일을 착착 해내는 신비한 작업자였다.
그래서 몰래 뒤를 따라가 지켜보았고, 솔직히 말해 상당히 놀라 했던 그였다.
‘확실히 게임 센스가 있었지. 거기에 공략법을 찾아내는 능력 또한 뛰어났고.’
홀로 몬스터를 상대하는데 아무런 거리낌 없이 공격하는 것은 물론이고, 단 한 번의 공격을 허용하지 않고 압도적으로 사냥하는 모습을 말이다.
간혹 새로운 몬스터를 만났을 때 모습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철저하게 해부하고 난 다음에 여유롭게 죽이는 모습을 보곤 신선한 충격을 받았었다.
그래서 그를 영입하기 위해 상부에 보고를 올렸다.
비록 직업은 노멀 등급의 흔하디흔한 방패 전사였지만, 적어도 재능 하나만큼은 남다른 유저였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상부에서 허락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며칠을 설득해 겨우 승낙을 받았을 땐 더 이상 그 유저를 볼 수 없었다.
작업장의 사장 말로는 다른 일을 시작한다고 했다.
그를 놓친 것이 얼마나 안타까웠는지 며칠을 쓰린 속을 달랬다.
근데 그런 유저와 같은 닉네임을 쓰는 유저가 나타났다?
‘에이 아니겠지.’
월오룰이 오픈한 지 1년이 넘은 시점이다.
아무리 노멀 등급의 방패 전사라고 하지만 그동안 키워왔던 것을 생각하면 차라리 그대로 키우는 게 정답이다.
월오룰 초창기부터 쌓아 온 업적이라든가 아이템을 생각하면 말이다.
‘회귀 트럭에라도 치이지 않는다면 말이지.’
그는 스스로 생각하면서도 어이없는지 혼자 실실 웃었다.
이내 고개를 흔들며 머릿속에서 그 시저라는 유저의 정보를 지웠다.
이미 지나간 일이니 말이다.
* * *
니베라 남작의 성에 들어온 나는 용병패를 발급받기 위해 용병 길드로 향했다.
“냐앙~.”
내 품에 안겨 있는 범이가 편안해서 그런 것인지 식빵을 굽는 자세를 하고는 밑으로 쳐진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기분 좋은 울음소리를 내었다.
귀여운 녀석.
정말이지 애교가 많은 소환수다.
이렇게까지 애교가 많을까 싶을 정도로 애교를 잘 피우는데, 아마 니베라 성에 들어오기 전에 잔뜩 먹여 주었던 토끼 고기 때문인 것 같았다.
사실 그게 아니더라도 애교가 많은 게 맞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렇게 범이를 안고 용병 길드로 향하는 길이었다.
‘그곳은 여전하겠지.’
용병 길드 앞에 수많은 스카우터들이 대기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물론 나랑 관련 없는 일이다.
왜냐고?
길드에 들어갈 이유가 없으니까.
이미 나는 레전더리 직업인 서머너 킹이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그런 내가 굳이 길드에 들어가서 그들의 감시와 가까운 관리를 받으며 성장한다? 말도 안 될 일이다.
하물며 지금의 그 어떤 길드보다 내가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다.
‘오히려 내가 정보를 공유해야 할 정도란 소리지.’
내가 더 손해다.
그러니 지금 주변에 있는 유저들처럼 그들에게 잘 보이겠다는 생각 따위는 없다.
그저 빨리 용병패를 발급 받고 정체 모를 알의 두 번째 부화 조건을 충족시키고 싶었다.
아 그러고 보니.
‘이거 그 가설이 진짜 맞는 건가?’
문뜩 떠오른 것인데 회귀 전에 처음 뇌전 법사 놈의 식탐의 목걸이를 보곤 7대 죄악을 모티브로 한 아이템이 있지 않을 까였다.
그 의견이 세워지는 데는 식탐의 목걸이 하나 때문은 아니었다.
배상아가 사용하는 분노의 반지도 한몫했다.
그것만으로 끝이 아니었다.
“신성 교단의 교리에 나와 있는 문구가 그 의견에 힘을 실어 주었지.”
월오룰의 무대인 이곳 브리타이나 대륙에서 유일하게 신을 모시는 교단이자 대륙의 단 하나뿐인 신성 교단의 교리의 첫 장에 있는 문구 말이다.
문구의 내용은 이러했다.
[대륙의 위기가 찾아왔을 때 일곱의 죄악의 힘이 합쳐지니.]
-그 죄악의 힘은 세상을 구원해 줄 유일한 희망이 될 것이니.
-나의 아이들아. 그 죄악을 미워하지 말고 받아들여라.
이 문구가 신성 교단의 교리에 나와 있다.
신성 교단의 교리의 경우, 유저들의 직업 중에 신성 교단과 연관되어 있는 직업을 가진 이들에게는 한 권씩 배부되는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세 가지 근거를 바탕으로 각 길드나 유저가 힘을 합쳐 죄악에 연관된 아이템을 찾아 나섰다.
혹여나 죄악의 힘을 모두 가졌을 때 얻을 수 있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지 않을지, 그게 아니면 중립적인 입장에서 유저와 지내는 신성 교단과 인연을 쌓을 수 있지 않을까 했다.
둘 중 하나만 얻어걸려도 엄청난 이득을 볼 수 있으니 말이다.
“문제는 그 이상 발견을 못 했지.”
하나 놀랍게도 더 이상 죄악의 이름이 들어간 아이템은 발견되지 않았다.
가설이 세워진 것은 월오룰의 서비스가 오픈한지 5년 차였고, 사람들이 포기하게 된 것은 9년 차가 넘었을 시기다.
4년이라는 시간을 투자한 것에 비해 얻은 것이 없으니 다들 손을 떼기 시작한 것이다.
몇 유저들은 끝까지 찾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정말로 내가 회귀 트럭에 치이기 전까지 더 이상의 소식은 없었다.
“근데, 나는 조금 다르지.”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정체를 알 수 없는 알이 나를 유도하고 있는 곳이 죄악의 이름이 붙은 아이템이 있는 곳은 아닐까 싶었다.
물론 우연일 수도 있다.
그저 레전더리 아이템을 흡수한 것은 아닐까 생각도 들었지만, 그 반지가 봉인되어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또 아닐 수도 있다.
그러니 자세한 것은 고블린 부락 너머의 숨겨진 인던 속의 아이템을 먹어 보면 된다.
분노의 반지라 예상하고 있지만, 혹시 모른다.
다른 물건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후후후.”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남들이 모르는 퀘스트를 진행하고 있다는 이 느낌은 너무나도 기분이 좋았다.
하물며 내가 가진 모든 지식을 털어도 볼 수 없는 퀘스트가 아닌가?
안 그래도 재밌는 게임에 추가적으로 흥미 요소가 더 있으니 재미는 두 배 이상이다.
홀로 좋아하며 용병 길드를 향해 가고 있었다.
이제 신성 교단의 이곳 지부인 신전 너머에 있을 용병 길드였고, 막 신전 앞을 통과하려 할 때였다.
“잠깐!”
갑작스런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그곳엔 하얀 로브를 입고 있는 노인이 나를 향해 경악한 얼굴로 외쳤다.
“죄악의 힘이 느껴진다. 저분을 모셔라!”
노인의 외침에 그곳에 있는 신성 교단의 NPC들이 일제히 나를 향해 다가왔다.
아니.
NPC 양반들아 무섭게 왜 이러세요?
그리고 죄악의 힘은 뭔데?
나는 영문도 모른 채 일단 NPC들에게 끌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