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화
#23
범이가 뽑아 온 레전더리 스킬.
마안.
이건 상당히 놀라운 일이다.
아니 이건 미쳤다.
“설마하니 해피의 스킬을 뺏어 올 줄이야.”
이 마안이라는 스킬은 놀랍게도 훗날 소환사 랭킹 2위이자, 세계 랭킹 9위의 엘리스라는 닉네임을 쓰는 소환사의 소환수인 해피가 사용하던 스킬이다.
엘리스란 유저의 등장은 당시 소환사 직업군의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월오룰이 서비스한 지 4년 차에 박진성이라는 레전더리 직업이 나오기 전까지 유일하게 가장 높은 등급인 유니크 등급의 소환사 직업인 스피릿(Spirit) 이라는 직업은 가졌던 유저이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캐릭터를 생성한 시기는 월오룰이 서비스 한지 2년 차, 즉 지금 시점이다.
앞으로 두 달만 있으면 그녀의 개인 방송 채널이 개설될 것인데, 첫 등장부터 그녀는 수많은 시청자에게 많은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원래 유명한 연예인이었으니까.”
그녀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가수다.
개인 SNS 팔로우 수만 해도 백만이 넘어가는 유명인인데, 엄청난 미모와 함께 신이 내려 주었다는 목소리를 가졌다는 평을 받을 정도로 유명한 가수다.
그런 그녀가 월오룰에서 스피릿이라는 유니크 등급의 직업을 얻었고, 그녀가 부리는 네 마리의 정령까지 합쳐지니 그녀의 신비로움이 더해진 것이다.
처음 그녀의 등장에 사람들의 반응은 불타올랐다.
안 그래도 유명한 가수이자 신의 축복을 받았다는 그녀가 유니크 등급의 직업을 얻었으니 말이다.
거기에 그녀의 주력 스킬은 전부 노래와 연관된 것들이며, 아군의 능력을 키워 주는 버프 역할이었다.
“오죽하면 게임 속에서 부른 노래로 앨범이 제작되었겠어.”
그 정도로 노래가 좋았다.
아무튼 그런 버프 능력을 전부 자신의 소환수인 정령들에게 덕지덕지 발라 주니 사냥에 있어서 어려움 하나 없이 쭉쭉 성장하게 되는 그녀다.
그런 그녀의 정령 중에 최상급 땅의 정령인 소환수인 해피의 주력 스킬 중 하나가 지금 범이가 익힌 마안이라는 스킬이다.
“개 사기지.”
마안의 스킬의 효과는 다름 아닌 마비.
강렬한 눈빛을 뿜어내어 적을 마비시키는 CC기란 소리다.
거기에 스킬의 레벨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마비시키는 시간이 길어지며 쿨 타임까지 줄어드니 이 얼마나 좋은 스킬인지는 설명이 필요가 없다.
“범이 스킬창.”
스킬창.
몸통 박치기( Lv1) 물어뜯기( Lv1) 할퀴기( Lv1) 마안( Lv1)
어우야.
벌써 범이의 스킬이 네 개나 되었다.
앞에 배운 스킬이야 노멀 등급의 스킬이다.
나는 마안이라는 스킬을 눌러 상세 정보를 확인했다.
<마안 Lv1>
등급: 레전더리
액티브 스킬
-강렬한 눈빛을 뿜어 눈앞의 모든 적을 2초간 마비시킨다.
재사용 대기 시간: 30분
소모MP: 100
크.
영롱하네.
다른 스킬과 다르게 내 눈에서만큼은 황금빛으로 빛나 보였다.
그도 그런 것이 적을 무려 2초나 마비시키는 엄청난 스킬이 아닌가? 하물며 단일 타깃도 아니고 눈앞에 있는 모든 적, 즉 광범위 스킬이다.
이 스킬 하나로 위험한 상황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찬스를 만들어 낼 수도 있고, 잠깐의 시간을 벌어 대규모 공격을 준비하는 시간도 벌 수 있다.
30분에 한 번씩 여러 가지 범위로 다양하게 쓸 수 있는 아주 훌륭한 스킬이다.
“잘했어. 범이가 최고다. 정말 최고야!”
나는 서둘러 인벤토리에 들어가 있던 토끼 고기를 꺼내 범이에게 물려 주었다.
“냥~ 냥~.”
내 칭찬과 함께 토끼 고기를 내주자 기분이 좋아진 범이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먹기 시작했다.
덩치가 커진 탓인지 아니면 원래 식성이 좋은지 순식간에 하나를 먹어 치웠다.
먹는 모습도 시원시원한 게 마음에 들어 하나가 아니라 두 개를 더 꺼내 범이에게 주었다.
“자, 범이는 좋은 거 뽑았고, 이젠 내 차례인가?”
후…….
범이가 좋은 스킬을 얻어 기분이 좋았던 것도 잠시 이제 내 스킬을 뽑아야 할 시간이 되니 다시 긴장감이 몰려왔다.
내가 스킬 뽑기 권을 사용한 게 수십 번이다.
그때마다 단 한 번도 유니크 이상의 스킬을 뽑아 본 적이 없다.
제일 좋은 게 레어.
그것마저도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레어 등급의 스킬이 내가 가졌던 최고 좋은 스킬이었다.
“지금은 아니다.”
운빨X망겜에서 항상 운이 없던 나였지만, 지금은 다르다.
새롭게 캐릭터를 키운 것은 물론이고, 거기에 이번에는 직업마저도 레전더리 직업이다.
운이 터진 상황에 스킬은 똥이 나온다? 그럴 리가 없다
분명 스킬도 좋은 걸 얻을 것이다.
난 그렇게 생각한다.
“스킬 뽑기 권 사용.”
나의 외침에 시스템 창이 응답했다.
[스킬 뽑기 권을 사용했습니다.]
또 한 번 백 개의 무지갯빛 구슬이 나타났다.
영롱하면서도 장관인 모습에 나는 허공을 바라보며 간절히 기도했다.
‘제발…… 레어 이상. 레전더리도 안 바랍니다. 레어 이상만 주세요.’
좋은 걸 얻겠다는 생각도 잠시다.
그동안 최악의 스킬만 뽑아냈던 나였기에 레어 이상만 뽑아도 괜찮다며 홀로 위안하며 간절하게 기도했다.
잠시나마 기도와 함께 나는 하나의 구슬을 바라보며 천천히 다가갔다.
그리곤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고르려고 할 때였다.
“냥!”
“왜. 범이야?”
갑작스럽게 다가온 범이가 내 다리를 물고는 가지 말라는 듯 뒤로 당기기 시작했다.
범이의 행동 때문에 나는 가던 길을 멈추었다.
그러자 범이는 마치 나에게 따라오라는 듯 고개를 몇 번 휘휘 움직이더니 한 구슬 아래에서 나를 향해 울었다.
“냐앙!”
마치 나보고 지금 이 구슬을 고르라는 듯 외치는 범이다.
“그게 좋은 거야?”
“냥!”
내 물음에 맞는다는 듯 우는 범이다.
“흠…….”
아무래도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선택하려는 것을 막고는 나에게 구슬을 추천해 주는 범이다.
회귀 전까지 내가 뽑았던 것이 전부 꽝이었던 나다.
그런 운이 없는 나와 다르게 범이는 방금 전 스스로 레전더리 스킬을 뽑아내지 않았는가? 이러다 보니 범이가 추천해 주는 게 끌릴 수밖에 없었다.
다만 저걸 뽑고 실망하는 모습을 범이이게 보여 주고 싶지 않다는 것과 나도 모르게 범이에게 화를 낼까 봐 걱정하게 된다.
“냐앙!”
그런 고민하는 나에게 범이는 얼른 고르라며 재촉할 뿐이었다.
“그래. 범이의 선택을 믿자.”
그래 이렇게 된 거 범이를 믿자.
우리 범이는 절대 나에게 나쁜 걸 줄 애가 아니다.
그리고 이번에 뽑은 스킬이 꽝이라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아직 뽑을 기회는 많다.
10레벨을 달성할 때마다 주는 뽑기 권이고, 내가 기본으로 월오룰에 투자할 금액으로 필요한 스킬을 사도 된다.
그러니 누굴 탓할 필요 없다.
내 선택이다.
나는 범이가 추천해 준 구슬을 골랐다.
[스킬을 선택했습니다.]
-스킬을 익혔습니다.
-유니크 스킬 ‘눈높이 교육’을 익혔습니다.
-처음으로 유니크 스킬을 익혔습니다.
-업적 ‘유니크 스킬 보유자’를 획득했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5 추가됩니다.
“헐?”
나는 그 자리에서 굳어 버릴 수밖에 없었다.
아니, 방금 내가 뭘 본 거지? 유니크? 진짜 유니크 등급의 스킬이라고!
회귀하기 전의 10년 동안 레어 하나 먹었던 운빨X망 유저였던 내가 회귀하니 처음부터 유니크 등급의 스킬을 먹었다고!!!
“큭…… 큭큭…….”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아니 이 웃음은 즐거움의 웃음이 아니다 허탈함의 웃음이지.
하 인생…….
아니다. 굳이 이런 거로 슬퍼할 게 아니다. 기뻐해야지. 암 기뻐해야지.
“어…… 어라. 나 어째서 눈물이…….”
나도 모르게 나오는 눈물에 손으로 그 눈물을 치워냈다.
“냐앙~.”
그런 나를 위해서 범이가 슬쩍 애교를 부리기 시작한다.
그래. 이제부터 꽃길이잖아.
나는 그렇게 위로하며 잠시나마 마음을 추슬렀다.
“후!”
진정된 마음을 추스른 나는 이제 확인할 시간이 되었다.
바로 이번에 얻은 유니크 스킬의 정체를 말이다.
“일단 내가 알고 있는 지식에 저런 스킬은 없단 말이야.”
내가 가지고 있는 정보 중에서 저런 스킬은 없다.
설사 있다 하더라도 자신의 모든 밑천을 다 보이는 멍청한 유저는 없거니와 길드에서도 자신의 비장의 스킬 한두 개 정도는 감춰 두라고 말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러니 누군가 가지고 있는 스킬이지만, 사용하지 않았던 스킬이 아닐까 싶었다.
정확한 확인을 위해서는 스킬의 상세 정보를 확인해야 한다.
<눈높이 교육 Lv1>
등급: 유니크
엑티브 스킬
-자신보다 격이 낮은 상대를 교육하는 데 사용하는 스킬이다.
-몬스터에게 사용 시 모든 능력치 20% 하락.
-유저에게 사용 시 모든 능력치 10%하락.
-포획 스킬과 함께 사용 시 포획률 20% 상승.
-유지 시간 10분.
재사용 대기 시간: 60분.
소모MP: 100
어라? 이거 아무래도 개 사기 스킬을 얻은 것 같다.
하물며 지금 내가 있는 곳이 어딘가? 인스턴스 던전의 안.
이 끝에는 보스 몬스터가 기다리고 있다.
그런 보스 몬스터를 향해 교육을 시전 한 상태로 쓰면 능력치가 하락한 상태로 싸울 수 있는 게 아닌가?
그렇게만 된다면 이번 보스 몬스터는 아주 쉬운 상대가 된다.
“근데 격이라…….”
격이라는 단어가 걸리긴 하지만, 저게 뭔지 대충은 알 것 같다.
나는 서머너 킹.
왕이라는 격을 가진 자이며 레전더리 등급의 직업의 격을 갖춘 남자다.
하물며 저 단어를 보았을 때 딱 떠오르는 것이 있지 않은가? 이거 한번 써 볼 수 있겠는걸.
벌써 이 인던의 끝에 있을 보스 몬스터와의 만남이 기대된다.
“그럼 얼른 가 보자.”
“냥!”
얼른 스킬을 써 보고 싶다는 마음에 서둘러 움직였다.
* * *
육식 토끼를 상대하며 전진하던 나와 범이다.
얼마나 들어왔는지 모를 정도로 깊숙하게 들어왔다.
언제 끝나나 싶었는데, 갑자기 토끼 굴의 내부가 넓어지기 시작하더니 다섯 마리의 육식 토끼와 커다란 문을 발견했다.
“오! 보스 방이네.”
보스가 있는 곳과 철저하게 분리해 주는 문을 발견한 나는 조금 더 힘을 내었고, 남아 있는 육식 토끼를 전부 처리했을 때였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소환수 ‘범이’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정확하게 15레벨을 달성했다.
“확실히 좋네. 경험치 두 배 보너스는.”
생각보다 레벨을 많이 올렸다.
그 덕분에 무려 다섯 개의 레벨을 올렸으니 매우 만족스럽다.
“상태창.”
이름: 시저
직업: 서머너 킹(레전더리)
업적: 유니크 스킬 보유자 외11
레벨: Lv15
스텟: 근력20(+62) 민첩15(+62) 체력20(+62) 지식15(+62) 지혜15(+62) 통솔력MAX
Hp: 8200 Mp: 7700
여전히 강렬한 내 상태창을 바라보니 참으로 기분이 좋다.
아직 니베라 남작의 성이 있는 마을에 가지 않고 튜토리얼 마을을 졸업한 유저라 생각지 못하는 수준의 스텟이다.
“다음 사냥터 두 개는 건너뛰고 바로 고블린 부락을 소탕하면 되겠네.”
사냥터를 건너뛰어도 문제가 없을 정도로 강력한 나와 범이다.
막말로 니베라 남작의 성이 아니라 다음 사냥터로 넘어가도 문제가 없는 수준이라 더 정확한 것은 인던을 나가고 난 다음에 생각해도 문제는 없다.
“그럼 가 볼까?”
“냥!”
범이의 울음소리를 신호로 나는 길을 막고 있는 커다란 문을 힘차게 열었다.
드르르르륵! 쾅!
그냥 가볍게 연다는 것이 워낙 근력 스텟이 높아서일까 그대로 문이 벌컥 열리더니 그대로 큰 소리와 함께 벽에 부딪혔다.
그래서일까 문 너머의 보스 방안에서는 아주 커다란 소리가 들려왔다.
“쿠이잌!”
지금까지 만났던 육식 토끼와 비슷한 울음소리지만 거기에서 들려오는 묵직한 괴성이었다.
그 괴성의 주인은 놀랍게도 바닥에 누워 있었는데, 방금 잠에서 깨어나 짜증이라도 났는지 상당히 거친 숨소리와 함께 붉은 한 쌍의 눈이 나를 향해 고정되어 떨어질 생각을 못 했다.
“미안. 나도 이렇게 될 줄 몰랐지.”
정말이다.
문이 저렇게 튕겨나듯이 열릴 줄은 나도 몰랐다.
아무튼 나 때문에 심기가 많이 불편하신 보스 몬스터이시다.
[거대 육식 토끼 Lv15]
그래도 보스 몬스터라고 상당히 레벨이 높은 편. 이러니 권장 파티 인원이 다섯 명이나 되지.
쿵!
거대 육식 토끼가 두 발로 섰다.
정말로 거대란 호칭이 들어갈 정도 덩치가 컸다.
내가 목을 꺾어 올려다봐야 할 정도였는데, 지금까지 만났던 토끼들과 달리 양손에는 권투 글러브를 끼고 있는 모습이라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기가 불편하신 보스 몬스터는 자세를 잡자마자 나를 향해 주먹을 뻗으려고 했다.
그걸 보고만 있을 내가 아니다.
“범이 마안!”
“냥!”
범이의 눈에서 일순간 빛이 번쩍이더니 주먹을 뻗으려는 보스 몬스터의 동작이 그대로 멈추었다.
[소환수 범이의 스킬 ‘마안’이 발동되었습니다.]
-거대 육식 토끼가 마비에 걸렸습니다.
정상적으로 스킬이 발동되었다는 시스템창이 떠올랐을 때 나는 서둘러 하고 싶었던 그 대사와 함께 보스 몬스터를 향해 스킬을 사용했다.
“엎드려라. 이것이 너와 나의 눈높이 교육이다.”
[스킬 ‘눈높이 교육’을 사용했습니다.]
-격을 비교합니다.
-대상보다 격이 높습니다.
-거대 육식 토끼의 모든 능력치 20% 하락합니다.
-유지시간은 10분입니다.
스킬이 제대로 발동되었다는 것을 증명하듯 시스템창이 떠올랐다.
크…….
아무래도 이 스킬 뽕이 너무 차오르네.
그래도 할 건 해야지.
“범이야. 물어뜯기.”
콰뜩!
살이 뜯기는 섬뜩한 소리와 함께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결국 이곳 인던의 보스 몬스터도 한방에 사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