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화
#20
게임을 종료한 후 개운하게 씻고 나왔다.
“오늘은 뭘 해 먹을까.”
저녁 메뉴를 고르기 위해서 냉장고 안을 들여다보던 나는 코를 강하게 자극하는 신 김치의 향에 나도 모르게 홀렸다.
그래 오늘은 김치찌개나 한 그릇 하자.
메뉴가 정해지자 그다음부터는 일사천리였다.
뚝딱 김치찌개를 한 냄비 끓여내고는 허전한 식탁 위를 채워 줄 계란말이까지 끝내자 도어록이 해제되는 소리가 들렸다.
“다녀왔습니다.”
“어서 와. 저녁 준비도 다 했으니 얼른 앉아.”
“오! 김치찌개. 향 좋다.”
방금 문을 열고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피곤하던 효진이의 얼굴이 조금이나 밝게 펴졌다.
가방을 내려 두고는 손을 씻고 서둘러 식탁으로 향하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미소를 피웠다.
“잘 먹겠습니다.”
우리 남매의 합창과 함께 식사가 시작되었다.
조용히 식사에 집중하던 중에 나는 문뜩 생각났다.
“밥 먹고 운동 다녀올게.”
생각해 보니 운동을 시작했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운동하러 나가면 최소 두어 시간은 비워야 하니 미리 말해 주는 걸 깜박했다.
“응. 조심히 다녀와.”
“그래. 집 잘 보고. 공부 열심히 하고.”
“내가 애야? 잘 하니깐 걱정 마.”
“내 눈에는 아직 애야.”
내 말에 어이없다는 얼굴로 잠깐 바라보는 동생이다.
그러더니 마침 재밌는 게 생각났다는 표정으로 변하더니 나를 향해 한마디 툭 던졌다.
“응애. 효진이는 애기예요.”
“…….”
나는 그 자리에서 아무런 말도 못 하고 굳었다.
뭐지.
이걸 어떻게 반응해야 하지?
이게 요즘 고딩들이 하는 밈인가?
혼란스럽다.
“…….”
내가 멍하니 있으니 효진이의 얼굴이 붉게 물들어 갔다.
스스로 하고도 부끄러운가 보다.
하물며 내가 아무런 반응도 안 해 주니 민망함은 두 배가 되겠지.
“잘 먹었습니다.”
순식간에 밥그릇을 비워낸 효진이가 싱크대에 넣어 두고는 그대로 후다닥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 모든 것은 응애 어쩌고 하고 난 다음으로 1분 안에 일어났다.
“쩝…….”
나는 입맛을 다셨다.
아까웠다.
방금 그 장면을 영상으로 남겨 두었으면 평생을 두고 놀려먹을 수 있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안타까웠다.
뭐 어쩌겠는가, 이미 지나간 일인걸.
나는 다시 숟가락을 움직여 다시 밥을 먹었다.
“큭큭.”
아무리 생각해도 방금 내 동생은 너무나도 귀여웠고 재밌었다.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웃음을 참아 가며 밥을 먹었다.
* * *
식사를 끝내고 뒷정리를 마치고 가볍게 뛰어 주며 헬스장에 도착과 동시에 나는 그대로 숨이 턱하고 막혀 버렸다.
“커억!”
묵직한 충격과 함께 한순간 시야가 캄캄해졌다.
그 뒤로 진하게 풍겨 오는 진한 땀 냄새에 코가 막혀 버렸다.
무슨 상황인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얼른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발버둥 치려는 찰나에 내 귀로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었다.
“효성 회원님!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그제야 지금 나를 숨 막히게 하는 자의 정체를 알았다.
다름 아닌 헬스장 관장이었다.
‘후…… 큰 걱정 안 해도 되는구나.’
지금 반응을 보아하니 대충 알 것 같았다.
그리고 내 예상이 맞았다는 듯 옆에서 형수님이 다가와 나에게 고맙다며 인사하셨다.
“정말로 효성 회원님에겐 뭐라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어요. 병원에 가 보니 놀랍게도 혈액암 초기라고 하네요. 아주 초기에 발견해서 지금부터 잘 관리 받고 약으로 치료할 수 있다고 하네요.”
“다행입니다.”
정말 다행이다.
내 예상대로 이 시기가 초기 증상이 나왔던 그 시기가 맞았다.
이때 병원을 갔으면 진작 발견하고 치료가 가능했을 형수님인데, 그냥 피곤한가 보다 싶어 내버려 두다 병이 커지셨다.
하나 그것은 회귀 전의 미래.
지금은 병원을 다녀왔기에 다행히 병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약물 치료와 관리만으로 충분히 회복할 수 있다니 정말로 다행이다.
“정말……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관장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가고 있었다.
눈이 새빨간 걸 보니, 이마 한바탕 울기도 했나 보다.
“아닙니다. 저야말로 두 분에게 괜한 불쾌감을 드린 건 아닌지 죄송했었는데…… 정말로 다행입니다.”
그런 내 말 때문인지 오히려 화들짝 놀라며 손사래를 치는 관장님과 형수님이었다.
“아닙니다. 이렇게 효성 회원님 덕분에 병을 알아차렸는걸요.”
“맞습니다. 정말 효성 회원님이 아니었으면 아내가 크게 아플 뻔했습니다. 심하면 백혈병은 물론이고 무슨 암으로 변하게 될지 모를 것을 미리 알아차린 것이 아닙니까! 그렇게 말씀하시면 오히려 저희가 더 섭섭합니다.”
다행히 두 사람은 내 참견은 기분 나빠하지 않는다고 했다.
하물며 이렇게 좋은 결과를 얻게 된 것이 전부 내 덕이라며 감사하다고 인사해 주었다.
그런 나에게 두 사람은 오히려 무언가를 주려고 한다.
“이 은혜를 어떻게 보답해 드려야 할지 아내와 진지하게 고민해 보았습니다.”
“맞아요. 정말 뭐라도 그리고 싶은데 뭘 해 드려야 할지 고민이에요.”
둘은 나를 보며 뭘 줘야 할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평생 회원권이라도 드려야 하지 않겠어?”
“그건 당연한 거죠. 그것 말고 다른 게 뭐 없을까요?”
“흠…… 그러네. 뭐가 있을까?”
나야 평생 회원권만 해도 충분히 감사한 데 그것 말고도 더 주려 한다.
저 두 분의 성격을 알고 있는 나다.
이러다가 전 재산이라도 꺼내 들 것 같은 분위기라 나는 얼른 말렸다.
“그렇다면 받고 싶은 게 있습니다.”
내 말에 두 사람은 잘 되었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런 둘에게 나는 말했다.
“앞으로 형님 동생 하며 지내고 싶습니다.”
“허?”
“어머!”
전혀 생각지도 못한 부탁이라 그런지 두 분의 반응이 웃겼다.
회귀 전에는 볼 수 없던 그런 두 사람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나왔다.
“하하. 그렇게 말씀하시니 알겠습니다. 아니 알겠네. 효성.”
“잘 부탁해요. 태선이 형.”
나는 관장님. 아니 태선이 형과 악수했다.
아마 당장은 조금 어색하겠지.
하나 형님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 나고, 앞으로도 잘 지내고 싶은 나니 금세 친해질 수 있을 것이다.
“자, 그럼 운동을 시작할까? 이야기한다고 시간을 허비했으니 그만큼 열심히 해야지.”
보통 사람이라면 이런 날에 기뻐해도 모자란데 굳이 운동을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말에 질색할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형님의 성격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대답은 정해져 있다.
“잘 부탁드립니다. 형님!”
“오우! 나만 믿으라고!”
우리는 내 어깨를 감싸고는 운동 기구가 있는 방향으로 안내하는 형님이었다.
나 또한 기대된다는 듯 웃으며 뒤따랐다.
그런 우리 둘을 바라보는 형수님의 말씀이 들렸다.
“에효…… 뭔가 피곤해질 것 같은 감이 드네…….”
아닙니다. 형수님.
그런 일은 없을 거예요.
아마도…….
형수님의 말을 듣지 못한 형님은 신난 듯 거울 앞으로 나를 데려가 운동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하나 더! 하나만 더! 아직 하나 더! 더 할 수 있으니 하나 더! 내 동생이니 하나 더!”
계속해서 하나 더를 외치는 형님이었고, 나는 끝까지 따라갔다.
그리고 나는 오랜만에 지옥을 맛봤다.
* * *
띠리리리리!
내 귀를 때리는 알람 소리에 손을 뻗어 끄려 했다.
“크억!”
하나 팔을 움직이자마자 밀려오는 근육통에 나도 모르게 고통에 찬 신음을 흘렸다.
옆구리에서 팔까지 밀려오는 고통은 정말이지 끔찍하다 못해 자연스럽게 알람 소리를 꺼야 한다는 의지를 포기하게 했다.
“아냐, 정신 차려.”
이럴 때가 아니다.
아침밥도 먹어야 하고, 효진이 학교도 보내야 하고, 오늘 인던도 돌아야 한다.
레전더리 직업을 얻은 바로 다음 날부터 이렇게 허무하게 날릴 생각은 없다.
“어제 한잔하자는 거 안 가길 잘했지. 만약 다녀왔으면 알람 소리도 듣지 못했을 거야.”
아무래도 헬스장 관장인 태선이 형이다 보니 술을 드시는 날이 그리 많지 않다.
형님의 생일, 형수님의 생일, 결혼기념일 정도? 그게 아니면 아주 기분이 좋은 날 가끔 드시는 형님이다.
그리고 한번 마셨다 하면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듯 엄청나게 드시는 형님이다.
아마 한잔했다면 오늘 내 일정도 전부 꼬여 버렸을 것이다.
“끙차. 일어나자.”
나는 겨우 다시 의지를 끌어올려 겨우 일어났다.
요란하게 울리는 알람 소리를 끄고 겨우 방문을 열고 나가자 놀랍게도 어제 먹었던 김치찌개의 냄새가 풍겨 왔다.
보글보글.
가스레인지에 끓고 있는 김치찌개였다.
식탁에는 두 사람이 먹을 밥과 간단한 반찬이 올려져 있었다.
이걸 준비할 사람은 이 집에서 딱 두 명뿐이다.
내가 아니니 동생이 한 것이다.
“일어났어?”
어느새 학교 갈 준비를 모두 마친 효진이가 방문을 열고 나왔다.
손에 들고 있던 것을 나를 향해 던졌다.
“이따 뿌려.”
“땡큐.”
내게 준 물건은 다름 아닌 파스.
어제 운동하고 녹초가 되어 돌아온 나를 본 효진이다.
내가 일찍 일어나질 못할 걸 알고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이렇게 미리 준비해 둔 것이다.
에구 기특한 것.
어찌 이런 동생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겠는가?
나는 칭찬해 주고 싶어서 손을 뻗었다.
“큭…….”
근육통으로 인해 팔을 뻗는 것조차 고통스러웠다.
인상을 쓰고 힘들어하는 내 모습을 바라보던 효진이는 한심하다는 얼굴로 나를 보며 말했다.
“그냥 밥이나 드세요.”
“쳇.”
칭찬해 주는 것을 포기하고 식탁에 앉았다.
“잘 먹겠습니다.”
잘 움직이지 않는 팔을 가지고 천천히 식사했다.
효진이는 이미 식사를 마쳤는지 방에서 가방을 메고 나왔다.
“다녀올게.”
“그래, 차 조심하고.”
“내가 앤가?”
그 말에 나는 재빠르게 대답했다.
“어젠 애기라더니 오늘은 아니야?”
짓궂은 내 말에 효진이는 얼굴이 시뻘게지더니 그대로 문을 열고는 나가 버렸다.
쾅!
어이쿠야.
문 떨어지겠다.
큭큭큭. 당분간은 이걸로 효진이 실컷 놀려야지.
아무래도 마음에 드는 무기가 하나 생겼다.
식사를 마친 나는 잠깐 소화를 시켜 줄 겸 설거지를 마치곤 앉아서 파스를 뿌렸다.
시원하면서도 뜨거운 파스의 효과에 점차 고통이 줄어드는 것을 느꼈다.
“후, 살 것 같다.”
아까와 달리 살 것 같으니 이제 할 일은 하나다.
“그럼 접속해 볼까?”
나는 캡슐로 향했다.
* * *
[Welcome to the World of Ruler]
게임 접속을 알리는 환영의 문구와 함께 시야가 검게 물들었다가 밝아진다.
“후, 그럼 일단 정비부터 할까?”
지금 내 인벤토리에 있는 금액은 20골드.
이것은 튜토리얼을 마치면 얻을 수 있는 금액이다.
이걸로 무엇을 하냐면 하나 정해져 있다.
“바로 당장 쓸 무기를 구입하는 거지.”
마을의 입구에 있는 대장간에서 무기를 구매하는 것이다.
그곳에는 값이 싼 무기부터 비싼 무기는 물론이고 방어구까지 전부 구매할 수 있는 대장간이다.
그리고 튜토리얼로 장비의 해체와 강화를 하는 방법을 알려 주는 곳이기도 하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아무튼, 중요한 것은 그곳에서 20골드로 무기 하나를 구매할 수 있다.
대충 다음 사냥터까지 쓸 수 있는 무기.
내가 짜 둔 성장 루트에서도 이곳에서 무기를 구매해서 사용하게 되어 있다.
그러니 그곳에서 구매하면 된다.
당연히 구매할 무기는 검이다.
왜냐고?
내가 9년 동안 해 왔던 것이 전사다.
가장 손에 익숙하고 몸에 익숙한 직업이라는 소리다.
“아마, 내가 나설 일은 적지 않을까?”
사실상 범이 혼자서도 충분히 사냥이 가능할 것이다.
우리 범이의 스텟을 생각해 봐라.
거의 40레벨에 육박하는 스탯을 가지고 있다.
아마 그 인던에서 혼자 다 씹어 먹고도 남을 것이다.
“아차. 범이.”
나는 범이를 소환했다.
“범이 소환.”
내 부름과 동시에 바닥에 빛이 일어나더니 범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냐앙~!”
나는 범이에게 손을 뻗어 품에 안아 줬다.
어휴 우리 귀여운 범이.
너만 믿어요.
나는 범이의 머리를 긁어 주며 대장간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