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소환수가 너무 강함-9화 (9/275)

제9화

#09

캡슐이 동작함과 동시에 검게 물들었던 시야가 밝아왔다.

[Welcome to the World of Ruler]

“후…… 그래 반갑다.”

저 문구야말로 내가 10년간을 지겹도록 보아 왔던 문구다.

작업장 아르바이트를 비롯해 검은 손 길드에 들어가 개국 공신이 될 때도 보았고, 2군으로 내려갈 때는 물론이고, 마지막으로 회귀 트럭에 치이기 전까지 말이다.

어떻게 보면 거 문구야말로 언제까지나 내 곁을 지켜 준 파트너란 느낌이 강하다.

별다른 일이 없다면, 앞으로 최소 9년은 더 볼 문구다.

눈앞에 나타난 캐릭터 선택창은 텅 비어 있었다.

어제 내 손으로 직접 캐릭터를 지웠다.

자연스럽게 캐릭터 생성 창으로 향하는 손이다.

“아마…… 캐릭터 생성 전에 오프닝 영상부터 흘러나오겠지?”

이 영상이야말로 진짜 월오룰의 세상에 들어왔음을 증명하는 영상이다.

거기에 간접적으로 영상의 생동감을 경험할 수 있다.

파아아아앗!

눈앞에 환한 빛이 한 번 더 강렬하게 일어났다.

“시작하는군.”

저것이 바로 영상의 시작임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환한 빛으로 인해 저절로 눈이 감기게 되었고, 이내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나는 넓은 황무지 한복판을 공중에서 바라보게 되었다.

그와 동시에 고막을 때리는 웅장한 소리가 들렸다.

-100년 전.

-평화롭던 브리타니아 대륙을 몬스터가 가득한 세상으로 만든 자가 있으니.

[그 이름 하여 마왕 세지아르.]

엄청난 소리와 함께 황야 한가운데 우뚝 나타난 마왕의 모습이었다.

전형적인 악마의 모습에 휘양 찬란한 갑옷과 함께 거대한 몸을 선보이는 마왕이었다.

“포스 쩌네.”

멀리 하늘에서 바라보고 있음에도 찌릿찌릿한 기운이 전신을 때렸다.

거기에 엄청난 힘의 압박이라고 해야 할지 그게 아니면 존재 자체의 위엄인지 주변의 공기가 무거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 내 기분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프닝 영상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마왕 세지아르는 중간계, 즉 브리타이나 대륙의 수많은 몬스터와 규합해 인간을 향해 파멸의 길을 선도했다.

그와 동시에 마왕의 등 뒤로 수많은 마계의 생명체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냈다.

기괴하기 생긴 생명체부터, 인간의 모습과 흡사한 마족과 월오룰의 게임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몬스터의 상위 계체의 모습을 갖춘 몬스터들이었다.

“다 아는 얼굴이구먼.”

정말이다.

저기 있는 마왕의 부하 중에서 대부분 내가 아는 몬스터다.

몇 놈은 인던의 보스 몬스터이고, 몇 놈은 사냥터의 필드 보스 몬스터로 등장하기도 한다.

일부는 다른 유저가 사냥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본 적이 있는 놈들이다.

내가 회귀했으니 이렇게나 알고 있는 것이지, 지금 이 시점의 월오룰엔 오프닝 영상에 등장하는 마왕군의 부하가 보스 몬스터로 나타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아주 극히 소수일 뿐이었다.

몇 몬스터 때문에 옛 추억이 떠올라 아련해지려는 찰나에 오프닝 영상의 마왕군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브리타이나 대륙의 수많은 국가는 하나둘씩 마왕과 마왕군의 힘 앞에 차례로 무너졌다.

-대륙의 중심에서 자리 잡고 있던 거대한 제국 바스티아 제국은 고작 나흘 만에 황성이 쓰러졌다.

-다른 중소 국가는 하루를 버티질 못했고, 바람에 먼지가 쓸리듯 그저 쓰러질 뿐이었다.

오프닝 영상은 정말로 마왕군이 대륙의 국가들을 무너뜨리는 모습을 생동감 있게 보여 주었다.

수많은 몬스터들이 성벽을 둘러싸고 공성전을 하는 모습은 물론이고, 잔인하게 사람을 죽이는 모습을 보여 준다.

피가 사방으로 튀고, 살점이 덕지덕지 붙은 성벽을 넘어 찬란하고 거대한 황궁을 무너뜨리며 건물 곳곳에서 비명이 울려 펴졌다.

“이휴…… 이 영상만큼은 몇 년을 보아도 엄청나네.”

어떻게 보면 너무나도 잔인하게 표현하지 않았을까 싶었을 정도로 잘 표현한 영상이다.

오죽하면 처음에는 전체 관람가 영상이 19금 딱지가 붙었겠는가?

당시 처음 보던 나도 너무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하고 멍하니 바라만 보게 되었을 정도니 그 임팩트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물론 회귀한 나지만, 지금도 여전히 이 영상은 나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인간은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

-마지막 남은 최후의 인간들의 땅이자 하나밖에 남지 않은 왕국, 세드릭 왕국에 모여들었다.

-그리고 그때 신의 기적이 일어났다.

-지금까지 숨어 있던 은거 고수들이 하나둘씩 세상 밖으로 나와 마왕군과 처절한 싸움을 시작했다.

-숲에서 숨어만 지내던 숲의 요정들이 활과 정령을 데리고 나타났다.

-땅속의 난쟁이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무기와 방어구를 지급하여 싸워 갔다.

-수인족은 저마다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손톱과 발톱을 꺼내 들었다.

“크…… 이때 외칠 말은 하나뿐이지. 어벤져스! 어쎔블!”

전 세계를 강타했던 최고의 영화에서 흘러나왔던 그 대사가 절로 흘러나왔다.

그때의 전율이 떠오르듯 눈앞의 모습은 너무나도 가슴이 뜨거워졌다.

수많은 이종족과 인간군이 힘을 합쳐 마왕군을 향해 저마다의 무기를 꺼내 들고는 최후의 전쟁을 시작하는 것이다.

-마왕이 중간계에 강림한 지 딱 일 년 만에 마왕이 쓰러졌다.

-마왕이 쓰러지자 뭉쳐 있던 몬스터들은 대륙 곳곳으로 숨어들었고, 마왕의 수하들도 하나둘씩 마계로 돌아갔다.

-마침내 브리타니아 대륙은 평화를 찾았다.

-인간들은 피해 입은 대륙을 조금씩 복구했고, 함께 싸워 온 이종족과 함께 대륙의 발전에 이바지했다.

-그리고 백 년이 흘렀다.

-여전히 브리타이아 대륙은 마왕과의 싸움의 흔적을 치우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가고 있다.

-하나 그들은 모른다.

-여전히 마왕 세지아르가 호시탐탐 중간계를 노리고 있다는 것을.

-영웅이여.

-그대만이 마왕 세지아르를 쓰러뜨릴 수 있으니.

-어서 힘을 길러 마왕을 쓰러뜨리게나.

마지막 멘트와 함께 더 이상 웅장한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아래에 보이는 것은 쓰러진 마왕과 조금씩 대륙을 복원하는 사람들의 모습만이 보였다.

이제 오프닝 영상이 마무리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캐릭터 생성을 하면 된다 생각할 때쯤이었다.

“음?”

갑작스러운 시선이 느껴지기에 나도 모르게 그곳으로 향했다.

내 시선이 멈춘 곳에는 방금까지 쓰러져 죽어 있던 마왕이 멀쩡한 모습을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다.

“큭…….”

마왕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느껴지는 강력한 힘이었다.

마치 무언가가 나를 강하게 짓누르는 압력이 들었고, 내 등줄기에서는 식은땀이 미친 듯이 흘렀다.

거기에 나도 모르게 느껴지는 공포감에 더 이상 시선을 마주하기 벅차다고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

마왕의 입이 열리더니 무어라 말하는 것이었다.

하나 마왕의 말은 내 귀로 들리지 않았다.

느껴지는 것은 마왕이라는 거대한 존재에 대한 공포심뿐이었다.

파아아앗!

마왕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내 눈앞에서 환한 빛이 퍼지더니 어느 순간 나는 캐릭터 선택창으로 돌아와 있었다.

“허억…… 허억…….”

나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가쁜 숨을 골라 쉬었다.

뭐라 할까. 정말 나는 죽는다는 공포를 느낀 것이다.

“미, 미친. 이게 뭐야.”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거기에 이런 현상을 느껴 보았다고 인터넷에 글이 올라온 것도 본 적이 없었다.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원래의 오프닝 영상은 차갑게 식은 마왕의 시체와 인간들이 대륙을 복원하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그런데 마왕이 버젓이 살아나 눈을 마주쳤다? 그것도 엄청난 힘과 함께 공포를 느끼게 해 주며?

이건 듣도 보도 못한 일이었다.

“쩝, 뭐지. 괜히 찝찝해지게 말이야.”

괜스레 마음이 찝찝해진다.

뭔가 엮인 것 같은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냉정하게 생각하면 시스템 오류로 인한 버그 현상은 아닐까 싶었다.

“아무런 일도 아니겠지. 일단 게임 업체에 버그 발견 신고는 하고 보자.”

월오룰인 라온 소프트는 버그에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한다.

작은 버그라도 발견하게 되면 라온 소프트는 그만한 보상을 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한 유저의 경우, 인던에서 일어난 버그를 제보하고 유니크 장비 하나를 받았을 정도니 얼마나 신경을 많이 쓰는지 알 수 있다.

“그래 놓곤 서머너 킹이랑 pk 관련으로는 입을 꾹 다물고 있으니. 에잉 쯧.”

아무리 생각해도 개발 업체인 ‘라온 소프트’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아무튼 나는 그 자리에서 버그 제보 서류를 금방 작성하곤 그 자리에서 캐릭터 생성에 들어갔다.

“뭐 사실 캐릭터 생성이라 해 봐야 커스터 마이징이랑 닉네임을 정하는 게 전부지만.”

번거롭게 커스터 마이징에 시간을 투자할 생각은 없다.

그 시간에 한 마리의 몬스터라도 더 사냥해야지.

그렇기에 닉네임을 입력. 그리고 생성 버튼을 눌렀다.

[캐릭터 [시저]가 생성되었습니다.]

-지금부터 게임에 접속합니다.

이제 진짜 월오룰의 세상으로 들어갔다.

* * *

월오룰은 기본적으로 수많은 직업을 가질 수 있는 오픈 월드를 기반으로 한 게임이다.

직업의 숫자를 셀 수 없는 것이 정말로 온갖 직업을 가질 수 있는 것이 월오룰이다.

어떤 플레이어는 브리타니아 대륙의 거상이 되어 보겠다고 상단을 운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누구는 귀족의 작위를 얻어 보겠다고 노력하는 유저가 있다.

또 어떤 유저는 자신이 심마니라며 산속 필드를 돌아다니며 희귀한 약초를 캐기도 했고, 다른 유저는 이 세상에 진정한 농부라며 땅을 사들여 농사지으며 즐기는 유저까지 있다.

“누구라도 꿈꾸는 직업을 할 수 있다는 메리트는 엄청나지.”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유저를 끌어모을 수 있는 엄청난 기술이다.

하물며 나는 9년 후의 미래를 알고 있지 않는가?

정말 거상이 되겠다고 노력한 유저는 꽤 이름 있는 상단의 주인이 되었고, 귀족의 작위를 얻은 인물은 정말로 귀족이 되어 영지를 하사받기도 했다.

“진짜 놀랐지.”

정말로 꿈을 이뤘으니까.

당시에 나는 상당히 부러워했다.

그때의 나는 고기 방패 신세로 전락했으니 말이다.

누구보다 찬란하게 빛을 낼 거라 생각했던 나와 다르게 성공한 그들을 보며 얼마나 부러워했는지 모른다.

이젠 다르다.

나도 충분히 그들과 같이 찬란하다 못해 더욱 빛이 날 테니까.

이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게임에 완전히 접속했다는 것을 알리듯 천천히 눈을 뜨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휴, 정말 오랜만이네 한센 마을.”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은 한센 마을이라 해서 월오룰에 접속한 초보자들을 위해 이것저것 알려 주는 튜토리얼 마을이라 보면 된다.

한센 마을은 정말로 중세 판타지 세상의 작은 마을이라 보면 된다.

촌장의 집을 중심으로 거주지가 펼쳐지고 목책으로 둘러싸여 있는 마을이다.

마을 입구 부근에 있는 각종 시설물은 대장간이라든가, 잡화상점, 물약 상점이 있다.

이 마을에서 유저들은 기본적인 시스템을 배운다.

기본적인 조작법, 사냥하는 방법, 그리고 사냥감에서 얻을 수 있는 물건을 얻는 방법까지 모든 것이 친절하게 하나하나 알려 주는 마을이다.

이곳 튜토리얼 마을을 스킵 할 수 있다.

사실 이곳 튜토리얼 마을은 하든 안 하든 상관없는 선택 사항이다.

“사실 귀찮은 것도 있지. 어지간한 게임을 해 본 유저라면 기본적으로 알고 있는 시스템이니까.”

만약 회귀하지 않은 나였다면 이곳을 스킵할지 말지 상당한 고민을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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