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화
#08
오랜만에 맞은 효진이의 강력한 펀치에 잠깐 정신이 아찔했다.
하나 만종원 형님의 레시피로 만들어진 소불고기를 떠올리며 참아 내었다.
‘소, 소고기를 살려야 해……’
다른 것도 아니고 소고기다.
다른 고기였으면 당연히…… 똑같이 살렸다.
고기니까.
‘암. 고기는 소중하지.’
하물며 지금 이 시기엔 알려지지 않은 레시피로 만든 것이다.
한입 먹고 깜짝 놀랄 효진이의 얼굴을 생각해서라도 움직여야 했다.
어떻게든 복부에 느껴지는 고통을 이겨 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둘러 사악한 불에 사정없이 익어 가는 소불고기를 구원해 식탁 위에 올리자 가방을 내려 두고 손을 씻고 식탁에 앉은 효진이다.
“잘 먹겠습니다.”
그 말과 함께 식탁 위에 있는 사진 속 부모님을 한번 보고는 젓가락으로 소불고기 한 점 먹는 효진이다.
“어?!”
한입 먹고 화들짝 놀라 한다.
큭큭큭. 예상했던 그 반응이군.
암 만종원 형님의 레시피는 인정 또 인정이다.
놀라는 모습이 얼마나 귀여운지 두 눈이 아니라 사진이라도 찍고 싶었다.
하나 생각으로만 끝내야지 휴대폰을 들었다간 또 한 번 강력한 펀치 한 방이 나를 기다린다는 것은 이미 몸이 알고 있다.
그러니 그냥 눈으로 감상하자.
귀엽네.
내 동생.
“맛있어?”
내 물음에 효진이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만족하는 듯 말했다.
“웬일이야. 고기반찬인 것도 놀라운데 이렇게 맛있을 줄이야.”
뭐래.
누가 들으면 고기반찬 못 먹고 자란 애처럼 무섭게 말하고 그래.
우리가 검소하게 살았지만, 고기반찬이 전혀 없는 건 아니거늘.
뭔가 반성하게 만드는 말이다.
“앞으로는 매일 고기반찬 해 줄게.”
“웃기셔. 월급날도 아닌데 무리하고 그래. 나 고기 별로 좋아하지 않아.”
어휴 말 한마디도 어쩜 저리 착할까.
내가 무리할까 봐 걱정해서 하는 말이다.
고기 안 좋아하기는 무슨 지금도 젓가락을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는 게 눈에 뻔히 보이는데 말이야.
착하디착한 동생을 위해 머리라도 쓰다듬어 줄까 싶어 손을 뻗었다.
탁!
“거기까지.”
정확하게 내 손을 쳐내는 효진이다.
머리만 똑똑한 게 아니라 운동 신경도 좋다는 것을 증명하듯 빠르고 신속한 손놀림이다.
거기에 살짝 노려보는 눈빛이 매섭다.
“큭큭큭. 알았어. 천천히 먹어. 아직 많이 남았으니까.”
“그래.”
퉁명스러운 말투에 비해 열심히 움직이는 젓가락을 보며 나도 젓가락을 들어 소불고기 한 점 먹었다.
크…… 맛있네.
회귀했지만, 내 실력은 여전하네.
그리고 만종원 형님 감사합니다.
형님의 레시피는 최고예요.
나와 효진이가 만족하는 식사였다.
식사가 끝나자 설거지는 효진이가 했다.
귀에 꽂혀 있는 이어폰을 보니 뭔가 듣고 있는 모양인데, 아마 인터넷 강의일 것이다.
1분 1초도 허투로 쓰지 않는 동생의 성격을 생각하면 괜히 공부를 잘하는 게 아니다.
‘그러고 보니 저 옷도 많이 낡았네.’
입고 있는 옷만이 아니다.
사실상 따지고 보면 우리 남매의 검소함 때문에 어지간한 것은 전부 낡은 거다.
한창 예쁘게 꾸밀 나이에 저러고 있는 모습이 마음이 짠하다.
나중에 공무원 시험을 볼 때는 또 얼마나 고생을 했는가?
시험 준비로 인해 공부만 해도 모자랄 시간에 생활비와 학비를 벌겠다고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던 동생이다.
지금 생각도 마음이 짠하다.
‘이번에는 절대 그렇게 안 둘 거다.’
절대 그런 미래를 만들 생각이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부 내가 더 잘하면 된다.
순수하게 내 노력으로 모든 걸 극복할 수 있다.
“뭘 그렇게 봐?”
나를 바라보는 동생의 얼굴이 퉁명스럽다.
설거지를 끝내고 식탁에 앉아서 강의를 보다 나에게 묻는 거다.
“그냥. 우리 동생 사랑스러워서.”
“우웩…… 오늘따라 왜 이래? 어디 아파?”
질색하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말하는 효진이다.
그럼에도 두 눈동자만큼은 요동치는 것이 보였는데, 말은 저렇게 해도 내가 진짜 아플까 봐 걱정하는 얼굴이다.
‘저걸 알아차리는데 오래 걸렸지.’
내가 2년 뒤쯤에 심하게 감기에 걸렸을 때 나를 간호해 주는 효진이를 봤을 때 알아차렸다.
말은 그렇게 해도 얼마나 나를 걱정하고 있는지를 말이다.
지금에는 미묘한 효진이의 반응 하나하나 다 알고 있다.
가족이니까.
내 하나뿐인 가족이니까.
그러니 안심시켜 주자.
“아프긴. 내가 어디 아픈 거 봤니? 나는 걱정하지 말고 너나 건강 챙겨요.”
“아직 젊어서 괜찮거든. 오빠랑 다르거든?”
“그래. 부럽다. 10대.”
나는 소파에서 일어나 지갑을 열었다.
“용돈이야. 필요한데 써.”
배춧잎 열 장을 꺼내 들며 효진이에게 주었다.
당황하는 얼굴의 동생이 뭐라 하려는 순간 내가 먼저 선수 쳤다.
“이걸로 내 걸 산다거나, 장을 봐 온다거나 하면 혼낼 거다. 오직 너를 위해 네가 필요한 걸 사라고 주는 거야.”
“…….”
아무런 말 없이 그저 망한 얼굴로 바라보는 효진이다.
아마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으로 가득하겠지.
보통 이런 용돈을 주는 건 보통 효진이의 생일 때가 전부였으니까.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건 아닌지 걱정하는 듯 얼굴로 변하려고 한다.
‘이때다!’
나는 지금의 효진이의 빈틈을 놓치지 않고 바로 손을 뻗었다.
“착한 동생에게 주는 선물이니깐 잘 써요.”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말하는 나였다.
효진이는 내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것을 싫어한다.
애 취급하는 것 같아서 싫다고 하는데, 어릴 땐 그렇게 좋아하더니 나이를 먹으니 거부한다.
이건 나름 내가 효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고마움이자 칭찬의 표현인데 말이다.
가끔 이렇게 뇌물(?)을 먹이며 하는 방법밖에 없다.
“자, 잘 쓸게.”
잠시나마 머리를 쓰다듬던 내 손을 슬쩍 밀어내며 말하는 효진이다.
아까와 다르게 재빠르게 내 손을 치워내는 것이 아니라 슬며시 밀어낸다.
얼굴에 살짝 피어 있는 미소와 귀가 살짝 붉어진 것을 보니 부끄럽기도 한가 보다.
그런 동생에게 말했다.
“항상 고마워.”
아마 이 시절의 나라면 이런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름 남자고 한 집안의 가장이라 생각했다.
고작 저 몇 마디가 부끄러워서 말 못 했던 나였다.
하나 나중에 알았다.
저 한마디가.
작은 표현이.
먼저 행동하는 것.
이런 것들이 모여 가족의 신뢰가 생긴다는 것을 말이다.
“나, 나도 고마워. 오빠.”
내 말에 화답하는 효진이다.
우리 남매는 그렇게나마 미소와 함께 잠시 바라보았다.
‘앞으로도 저 미소가 언제나 가득할 수 있게 노력하자.’
또 한 번 다짐하게 만들어 주는 효진이의 미소다.
정말 노력할 거다.
두 번 다시 후회하지 않게 최선을 다할 거다.
그게 우리 남매를 위함이자 하늘에 계신 아버지 어머니를 위함이다.
나는 홀로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 * *
다음 날 아침.
이른 아침부터 일찍 일어난 나다.
“잠을 잘 수가 있어야지…….”
밤새도록 심장이 두근거려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대망의 오늘이다.
다시 월오룰을 레벨 1부터 시작하는 날이자, 레전더리 직업을 얻기 위한 시작의 날이란 소리다.
잠을 자는 중에 몇 번을 깬 건지 생각도 나지 않는다.
두근두근.
이봐라.
이 미친놈의 심장은 밤새도록 나를 괴롭힌 것도 모자라 아직까지 이러고 있다.
환장할 노릇이다.
아마 게임이라도 접속했다간, 그 자리에서 터지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될 정도다.
“후…… 어쩌겠냐. 준비해야지.”
몸이 이렇게 기대하는데 어쩌겠나.
얼른 달래줘야지.
침대에서 일어난 나는 캡슐이 있는 방향이 아닌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갔다.
“아무리 그래도 지킬 건 지켜야지.”
뭐라 할까.
이건 내 오랜 습관이자, 내가 게임만 하면서도 체력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라 할 수 있다.
다름 아닌 아침밥.
“한국인은 밥심이지!”
아무리 바빠도 나는 아침밥을 챙겨 먹는 습관을 들였다.
아무래도 막노동을 비롯해서 각종 아르바이트를 전진하고 다니던 나다.
그러다 보니 끼니 먹을 시간이 불균형했는데, 몸이 망가지는 것을 보호하고자 아침밥만큼은 꼬박꼬박 챙겨 먹었던 나다.
월오룰을 시작해서도 마찬가지다.
검은 손 길드에서 활약할 당시는 물론이고 회귀 트럭에 치였던 그날도 나는 아침밥은 꼬박 챙겨 먹었다.
아침부터 든든하게 챙겨 먹는 것으로 하루가 든든해지니 말이다.
“나만이 아니라 효진이에게도 좋은 일이었지.”
온종일 공부하는 동생에게도 든든한 아침 식사는 하루의 집중력을 좌지우지할 정도다.
그것은 직접 몸으로 겪은 효진이고, 그 뒤로는 나와 함께 아침 식사를 챙겼다.
아무튼 어제 먹고 남았던 소불고기를 비롯해 계란프라이까지 후딱 만들어 한 상 차려 두자 어느새 학교 갈 준비를 마치고 의자에 앉은 동생이다.
“잘 먹겠습니다.”
아직 시간이 여유가 있는지 천천히 꼭꼭 씹어 먹는 모습을 보며 나 또한 수저를 들었다.
그와 동시에 오늘 스케줄을 짰다.
‘일단 접속과 동시에 캐릭터 생성하고 즐기다가…… 내일부터 다닐 헬스장 등록 겸 장보러 나가면 되겠군.’
내가 헬스장을 등록하는 이유는 하나다.
9년간 검은 손 길드에서 활동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 중 하나가 바로 체력이다.
게임 속 캐릭터의 체력 스탯이 아니라 그 게임을 플레이하는 사람의 체력 말이다.
‘이래 봬도 내가 한 체력 했지.’
나는 검은 손 길드에서도 내로라하는 정예 멤버 중에서도 가장 체력이 좋았다.
어느 정도로 좋냐고 묻는다면 가장 오랫동안 접속한 시간이 무려 37시간을 버티고 꾸준하게 사냥을 했을 정도였다.
평균적인 일반 사람들이 6시간 정도의 플레이 타임이 나온다.
길드에서 꾸준하게 관리받은 1군 정예 멤버가 12시간을 플레이한다.
근데 나는 일반인에 비해 6배, 관리 받는 이들에 비해 3배 이상의 플레이 타임을 뽑아 낼 수 있다.
‘하루 종일도 할 수 있어.’
그때 내가 하던 대사였다.
옛날 유명했던 영화의 주인공이 하던 대사를 했던 것인데, 당시 길드원들은 모두 나를 향해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상당히 부끄러운 대사다.
하루 종일은 개뿔.
37시간을 사냥하고 이틀을 곯아떨어졌으니 어찌 보면 손해였다.
어지간하면 그런 무식한 짓은 하지 않기고 다짐했던 날이기도 하다.
진짜 개 손해였거든.
아무튼 이 체력이 받쳐 줘야 게임도 오래 할 수 있다.
검은 손 길드에 있을 때는 길드에서 만들어 준 스케줄과 지정해 준 헬스장에서 꾸준하게 데이터가 보내졌었다.
‘이번에는 내가 관리해야겠네.’
아무래도 전문가보단 부족하겠지만, 어깨너머로 배운 지식이 있다.
그것만 잘 활용해도 지금보다 좋은 체력을 유지하는 데 문제는 없을 거다.
뭐, 나중에 잘 나가게 되면 전문가를 따로 고용해도 되는 일이다.
걱정은 없다.
“학교 다녀올게.”
밥 먹으며 스케줄을 짜고 있는 사이에 식사를 마친 효진이가 문밖을 나서면서 나에게 인사했다.
“잘 다녀와. 차 조심하고.”
문밖을 나서는 동생을 배웅했다.
찰칵. 띠로리리.
현관문이 잠기는 소리와 함께 이제 이 집에는 혼자가 되었다.
나는 시원하게 한번 기지개를 켜 주었다.
“으갸갸갸갸!”
그와 동시에 내 볼을 양손으로 살짝 때렸다.
짝! 짝! 짝!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두근거리는 심장과 함께 나지막이 말했다.
“시작해 볼까!”
내 방에 있는 캡슐을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