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04
월오룰은 가상 현실 게임이다.
당연히 게임을 위해서는 캡슐이 필요하다.
다행이라면 우리 집에도 캡슐이 있다.
“많이 오래된 놈이긴 하지만.”
월오룰을 하겠다고, 당시 모아 두었던 돈이랑 알바비를 더해 무리하게 샀던 녀석이다.
아무래도 가격과 내 수중에 있는 돈으로 사다 보니 최신형은 살 수 없었다.
연식이 있지만 첫 출시 당시까지만 해도 고급형에 보급형으로 만들어진 놈으로 골랐다.
A/S가 편이하고 오래 써도 튼튼할 정도로 잘 버티고 있는 캡슐이긴 하지만, 최신 기종에 비교하자면 상당히 불편한 놈이기도 한 캡슐이다.
이제 사용한 지 9개월 된 놈이고, 예정대로라면 앞으로 5년은 더 버텨 줄 캡슐이다.
“짜식, 오랜만이다. 그래도 네 덕분에 중요 레이드 참가도 몇 번 했지.”
따지고 보면 참으로 귀중한 놈이었다.
6년을 이 녀석과 함께 월오룰의 세상을 모험하고 다녔다.
그만큼 정이 많이 간 녀석이고, 꾸준하게 관리해 주며 남들보다 오랜 기간 사용했다.
중간 중간 고장이라도 날 때면 A/S 기사분이 관리를 참으로 잘했다며 놀라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어찌 보면 이 녀석도 나에겐 가족 같은 놈이다.
“그러니 수명을 다했다는 소릴 들었을 때 그런 기분이 들었지.”
이 녀석의 사망 선고를 들었을 당시 나는 당장 게임을 못 해서 짜증나거나 열 받은 게 아니라 허탈하면서도 뭔가 짠한 마음이 가득했으니까.
아무튼 시작하자.
나는 캡슐에 누웠다.
우웅 하고 캡슐이 작동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큭큭큭. 이랬었나?”
뭐라 할까.
3년 만에 만난 녀석이라 그런지 어색한데 이놈이 이렇게 우렁찬 소리를 낸다는 기억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뭔가 옛날로 돌아온 감각이라 그런지 가물가물한 게 참으로 우스웠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시야가 검은색으로 물들었다가 다시 환한 빛과 함께 밝아졌다.
[Welcome to the World of Ruler]
눈앞에 떠오르는 선명한 문구와 함께 그 아래 존재하는 내 캐릭터가 보였다.
Lv.100 시저.
“캬…… 절로 감탄이 흘러나오는구나…….”
내가 감탄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일단 첫 번째로 무려 9년 월오룰의 메인 화면이다.
이때 당시만 해도 엄청난 현실감과 압도적인 연출로 사람들의 흥분을 이끌었던 월오룰이다.
하나 나는 무려 9년 이후의 게임을 즐기다 온 상황.
몇 번의 업데이트와 각종 패치로 인해 훨씬 더 좋은 환경에서 플레이하던 나다.
당연히 그 차이가 선명하게 느껴질 정도다.
“화면도 화면이지만…… 저 초라한 내 캐릭터 봐…… 눈물이 다 나오려고 하네.”
무려 9년 전 캐릭터.
거기에 검은 손 길드의 지원을 받기 전이자 작업장에서 뒹굴던 캐릭터다.
내 캐릭터의 레벨은 100.
채굴장에 일하는 만큼, 제대로 된 장비는 없다. 지금 가지고 있는 장비를 판다고 해서 돈도 안되는 캐릭터다.
지금 게임이 오픈하고 1년이 지난 시점을 기준으로 치자면 중간 계층에 속하는 레벨이라 보면 된다.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최상위권이 550레벨 언저리라고 기억한다.
지금 중간 계층이라 하면 한창 사냥터에서 열심히 레벨을 올려 장비 맞춰 가며 상위권의 도약을 위해 열심히 사냥터에서 죽어라 구르는 이들이며, 거기서 나오는 희귀 아이템으로 짭짤한 이익을 얻을 시기다.
“그런 일은 잘 없지만.”
당연하지만 수익을 내는 자들보다 손해를 보는 이들이 많은 게 정상이다.
밀려드는 몬스터를 상대로 아무리 파티 플레이를 한다고 하더라도 각종 소모품은 물론이고, 수리비가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오죽하면 돈 잡아먹는 게임이라 불리겠어. 모든 게 돈이 필요한데.”
소모품의 구매와 수리비는 전부 돈이다.
이 당시에는 하루는 소모품 재료를 캐러 다니고 하루는 소모품을 만들고, 하루는 사냥하는 방식으로 3일의 루틴을 만들어 사냥 중이었다.
그런 것 치곤 내 레벨이 중간쯤이라는 것은 확실히 재능이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 짓도 길드 들어가고 나서부터는 하지 않았지만…….”
검은 손 길드에서 지원해 주는 물품이 있었기에 3일짜리 루틴은 완전히 사라졌다.
“아! 이럴 시간이 없지.”
추억에 잠기는 건 나중에 해도 된다.
내가 급하게 월오룰에 접속한 이유가 있다.
다름 아닌 눈앞에 추억이 가득한 캐릭터를 삭제해야 한다.
[캐릭터를 삭제하시겠습니까?]
Yes or No.
갑작스럽게 캐릭터 삭제를 왜 하냐고 묻는다면 이건 월오룰의 시스템 때문이다.
월오룰은 계정 하나당 한 캐릭만 생성이 가능한 게임이다.
“쩝…… 막상 지우려니 진짜 아깝네.”
새로운 캐릭터를 생성하기 전에 지금까지 키웠던 전사 캐릭터를 삭제해야지만 새로운 캐릭터를 키울 수 있다.
지금 기준으론 작업장에서 고생하며 남는 시간에 짬짬이 키웠던 캐릭터이자, 미래를 따지면 내가 검은 손 길드의 개국 공신과 고기 방패 역할을 하던 캐릭터다.
여기에 캐릭터 삭제를 하면 다시 레벨 1로 돌아간다.
앞으로 보일 고생길이 녹녹하지 않다는 것도 잘 안다.
추억 가득한 물건을 쉽게 버리지 못하듯, 나 또한 이 캐릭터를 쉽게 지울 수가 없었다.
“그래도 지금은 달라!”
원래라면 추억 가득한 물건을 쉽사리 버리지 못하고 또 창고 한쪽 구석에 치워 두겠지만, 지금은 다르다.
캐릭터를 새롭게 생성하고, 레전더리 등급의 직업을 얻는 것이 옳은 선택이다.
다시 레벨 1부터 시작하겠지만, 내 머릿속의 미래 정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키운다면 레벨링은 쉽게 할 수 있다.
거기에 레전더리 아이템 독식까지 한다.
앞으로 이어질 미래를 생각하면 이게 정답이다.
더 나은 미래. 그리고 나와 동생 효진이의 미래를 위해 나는 크게 외쳤다.
“사랑했다. 시저 잘 가라!”
나의 외침과 함께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캐릭터 ‘시저’를 삭제합니다.]
-완전한 삭제까지는 대기 시간이 필요로 합니다.
월오룰은 사용자의 무분별한 캐릭터 삭제를 막기 위해 한 가지 시스템으로 막아 둔 것이 있다.
캐릭터를 삭제하고 대기 시간이 주어지는데, 무려 24시간의 대기 시간이다.
“후…… 내일 낮까지는 그냥 죽치고 기다려야 하네…….”
꽤 지루한 시간이 될 것 같았다.
무려 9년을 특별한 날을 제외하고 매일 해 왔던 게임이다.
그런 게임을 온종일 아무것도 안 하고 기다리자니 속이 타들어 갔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시스템 창에 나도 모르게 소리쳤다.
[1주년 이벤트로 대기 시간이 반으로 줄어듭니다.]
-12시간 후 캐릭터 생성이 가능합니다.
“아싸! 개꿀!”
그래 오늘은 1주년 이벤트를 시작하는 날이다.
운이 따라 준다.
* * *
캡슐에서 나온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았다.
휘이이잉!
우렁찬 펜 소리가 ‘나 지금 작동 중’이라며 우렁차게 외쳤다.
“어후…… 이때 컴퓨터도 이랬어?”
컴퓨터도 이 정도 수준일 줄 몰랐다.
하긴 이 녀석도 최소 5년은 넘은 물건이니 이게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
첫 알바비를 받아서 산 이 컴퓨터도 오랜 시간 동안 많은 고생을 해 온 물건이다.
이 컴퓨터는 첫 알바비로 산 물건이다.
“그렇기에 소중했지.”
첫 아르바이트로 산 놈이라 그런지 아무래도 정이 많이 가는 놈이긴 하다.
처음 그 돈으로 나나 효진이 옷이나 사 입을까 하던 나였다.
하지만 컴퓨터가 있으므로 좋은 점이 훨씬 많았기에 과감히 질렀다.
“인터넷이 발달한 정보화 시대에 컴퓨터는 필수지.”
특히 인터넷 강국인 대한민국에서 컴퓨터가 있고 없음 차이는 컸다.
처음 살 때는 구인 구직을 위한 용도로 구입했다.
아무래도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길거리나 인력 사무소에서 찾는 일자리보다 인터넷으로 찾는 것이 훨씬 빨랐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컴퓨터 게임만한 게 없지.”
나도 사람인지라 스트레스를 받는다.
만병의 근원이라 불리는 스트레스다.
쌓아 둬서 좋을 것이 아니라 풀어 줘야 하는데, 나는 주로 컴퓨터 게임을 이용해 스트레스를 풀었다.
“피지컬이 좋은 편이었으니까.”
게임에 재능이 있는 편인 나였기에 피지컬이 좋은 편이었다.
하물며 그때 당시 게임을 보자면 리그 오브 전설이라든가, 검은 서바이벌이라든가, 검은 영혼이라는 게임 같은 것을 주로 했었다.
“그중에 검은 영혼이 가장 힘들긴 했지…….”
검은 영혼이라는 게임에 대해서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지금 하라면 못할 것 같다.
그만큼 힘들었거든.
아무튼 당시 주로 하던 게임이 리그 오브 전설인데, 아무래도 학교 친구들과 어울려서 함께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이 하게 되었다.
“큭큭큭. 게임이 뭐라고 그렇게 흥분하면서까지 했는지…… 지금 생각하면 웃기네.”
게임 한판 한판에 목숨을 걸며 하던 그 시절의 나였다.
팀 보이스를 통해 팀원끼리 대화를 나누었는데, 주로 오더를 내리던 입장이라 큰소리치는 경우가 많았다.
몇 번은 싸우기도 했지만, 그 시절의 싸움이라 해 봐야 다음 날이면 풀릴 싸움 같은 것이다.
“애들은 잘 지내려나?”
아무래도 삶이 바쁘다 보니 자연스럽게 연락은 하지 않게 되었다.
가장 친했던 친구라고 하면 한창 리그 오브 전설에서 합을 맞추던 네 명의 친구가 있다.
서로 바빠도 살아 있다는 생존 메시지 정도는 보내곤 한다.
“한번 날 잡아서 봐야겠네.”
이전의 내 삶은 오직 게임과 효진이가 전부였다.
나를 위해 무엇 하나 해 준 것 없는 그런 삶이다.
이번만큼은 조금은 나에게도 시간을 투자해 줄 생각이다.
“연애도 해 보고 말이야.”
이전 삶과 같이 악착같이 게임에만 죽어라 매달려 살지 않을 거다.
두근두근한 연애라든가, 남들처럼 좋은 것 맛있는 것도 찾아 먹어 볼 생각이다.
삭막하기만 한 삶이 아니라 즐길 수 있는 건 즐길 생각이다.
“후, 그럼 새로운 삶을 위해 시작해 볼까?”
내가 이 고물 컴퓨터 앞에 앉은 이유가 있다.
바로 내 머릿속에 있는 미래 정보를 정리하기 위함이다.
나는 천재가 아니다.
지금이야 기억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나중에는 까먹을 수가 있다.
그러니 생각났을 때 미리미리 적어 둬야 한다.
“후회할 일은 많이 해 봤잖아?”
이미 충분히 나는 후회를 많이 해 봤다.
이런 내가 얼마나 가여웠으면 신이 또 한 번의 기회를 주겠는가?
전부 다 기록할 거다.
그리고 그것을 전부 독식할 것이고, 내가 다 차지할 거다.
내가 잘되면 효진이도 고생 안 시키고 되고 대학도 편하게 다닐 수 있게 해 줄 거다.
당장 효진이가 필요한 참고서부터 깡그리 다 사야겠다.
“후후. 기뻐해 주겠지.”
아마 처음엔 낭비하며 뭐라 하다가도 나중엔 고맙다고 잘 쓸 효진이다.
참고서를 넘어서 좋은 학원까지 보내야 하니 어떻게든 떠오르는 것을 전부 기록해야 한다.
일단 가장 먼저 정리할 목록은 내 머릿속에 있는 월오룰의 직업에 대한 것이다.
“자, 일단 상위 랭커 직업부터 한번 다 적어 보자고.”
나는 컴퓨터에 메모장을 켜서는 기억하고 있던 상위 랭커들의 직업을 생각나는 대로 전부 써 보았다.
랭커라 해서 그들의 직업이나 모든 정보가 밝혀지진 않는다.
그러니 적당히 밝혀진 정보가 있는 유저들을 전부 정리했다.
“얘랑 얘는 템빨이니 지우고.”
그중에 몇몇은 직업이 아니라 아이템 하나로 랭커에 들었다.
워낙 사기 급 아이템이라 다른 누가 들어도 랭커가 될 수 있을 거란 평을 받는 아이템을 가지고 랭커가 된 이들은 제외다.
“아, 그렇다고 완전히 기억에서 지울 필욘 없지.”
그 아이템을 가지고 있는 유저에 대한 것을 지울 뿐이지, 레전더리 아이템은 기억해 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