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01
2030년.
World of Ruler
줄여서 WoR.
한국어로는 월드 오브 룰러, 즉 월오룰이라 불리는 가상 현실 게임이 한국에서 개발되었다.
단순하게 하나의 게임이 발매되었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게임 홍보를 위한 30초짜리 영상은 여타의 게임과 다르다는 것을 증명했다.
압도적인 현실감.
화려하고 강렬한 전투 신.
거기에 무수한 플레이어들이 힘을 합쳐 거대한 보스를 무너뜨리는 모습.
고작 30초의 홍보 영상임에도 그 어떤 영화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도 임팩트가 강했다.
“진짜 멋있다. 정말 당장이라도 해 보고 싶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던 내가 무심코 홍보 영상에 빠져들어 중얼거렸다.
단순히 영상에만 매료된 것이 아니다.
직접 저 게임 속에 들어가 플레이해 보고 싶다는 욕구가 마구 생겨났다.
월오룰 속이라면 나도 주인공이 될 수 있을 것 같았고, 게임 속 세상을 탐험하고 있는 내 모습이 자연스럽게 그려질 정도였다.
계산을 기다리고 있는 손님도 그 홍보 영상에 빠져들었는지 멍하니 그것을 바라보았을 정도니 홍보 영상의 임팩트는 말로 설명할 수 없었다.
그때 나와 손님이 느낌 감정은 둘만의 감정이 아니었다.
홍보 영상을 본 다른 게임의 유저는 물론이고, 게임을 직접 하진 않지만 너튜브를 통해서 게임을 시청하는 시청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월오룰이라는 게임이 서둘러 개발을 마치고 얼른 세상에 나타나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홍보 영상이 나오고 3개월 뒤 정식으로 오픈 서비스를 시작하기로 한 날이 찾아왔다.
모두가 기다려 왔던 순간이다.
당연히 게임은 대박 아니, 초대박이었다.
“와씨 X나 지리네!”
보는 순간 내 입에서 튀어나온 말.
혼자서 여동생을 부양해야 하는 입장만 아니었다면, 당장이라도 뛰어들고 싶을 정도로 엄청난 게임이었다.
당시의 나는 편의점 알바생이었는데, 그 당시 캡슐은 상당히 고가의 물건이었다.
평범한 직장인이라면 신용 카드를 이용해서 할부라도 해서 살 수 있겠지만, 평범한 알바생인 나에게는 신용 카드를 발급받는 것조차도 힘들다.
“아 월오룰 마렵다…….”
사려면 살 수 있겠지만, 당장 생계를 생각하면 참아야 한다.
이렇게 너튜브 영상으로 보기만 해야 했던 입장인 게 안타까울 만큼 진짜 끝장났다.
어쨌든, 월오룰이라는 게임 이 발매되고 세상에 큰 변화가 찾아왔다.
어느 정도였냐고?
-전설 오브 전설 훼이커. 월오룰로 이적! 프로 게이머 최초 100억대 연봉의 프로 게이머 탄생.
-악동 길드 마스터 젝슨! 보스 레이드 솔플 클리어! 게임 방송 역사상 처음으로 터진 만 달러 후원.
-플레이어 ‘카밀라’ 세계 최초로 100레벨을 달성하다. 캐릭터의 가치는 10억 달러.
게임만 잘해도 확실히 돈을 벌 수 있는 시대.
심지어 저런 슈퍼스타들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방구석 폐인이었던 내가 이제는 백만장자!
-수험 공부보다 월오룰 공부가 인생의 도움이 되었다!
-아무런 재능이 없다고 생각했던 내가 게임 속 재능러.
평범한 사람이라 생각했던 자들이 게임 속에서 남들 못지않은 돈과 명성을 쌓을 수 있었다.
단순히 게임을 넘어서 직장이라 할 수 있는 시대가 찾아온 것이다.
나도 학창 시절에 게임 좀 한다고 들었던 입장이다.
어린 동생을 부양하느라 학교와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던 나였지만, 시간이 날 때마다 게임을 즐겼다.
가끔 학교 친구들과 pc방이라도 찾아가 내기를 하면 언제나 1등은 내 차지였고, 친구들도 어렵게 잡는 보스를 쉽사리 클리어 할 정도로 게임에 재능이 있던 나다.
“나도 할 수 있을까?”
홍보 영상을 보면서 나는 고민했다.
매일같이 올라오는 월오룰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몸이 달아오를 것 같았고, 게임에 재능이 있다는 소릴 들어왔던 나다.
상당히 피곤하겠지만 편의점 알바와 병행을 하더라도 저 게임을 해서 돈을 벌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일단 한번 해 보고 결정해도 나쁘지 않아.”
그래. 계속 머릿속에 맴도는 월오룰이라는 녀석이다.
이렇게 된 거 캡슐 방이라도 가서 한번 해 보고 내 재능으로 충분히 할 수 있다면 한번 도전 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알바가 끝나고 곧장 캡슐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캐릭터 생성부터 접속까지 원활하게 흘러갔고, 튜토리얼 마을을 플레이했다.
그리고 난 깨달았다.
“할 수 있다.”
튜토리얼 마을에서도 어버버거리는 유저들을 보곤 내 재능으로 충분히 월오룰을 함으로 돈을 벌 수 있다고 확신이 들었다.
그동안 모아 둔 돈과 알바비를 합쳐 나는 결국 캡슐을 하나 질렀다.
“가즈아!”
우렁찬 기합과 함께 월오룰에 접속한 나였다.
그리고 10년이 흘렀다.
여전히 월오룰은 세상에서 가장 잘나가는 문화 콘텐츠였다.
그 값어치는 여전히 떨어질 줄 몰랐고, 방대한 세계관은 아직도 그 끝을 향해 열심히 달려가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오죽하면 월오룰의 프로 게이머이자, 너튜브 방송인이 초등학생의 장래 희망 1순위가 되었을 정도겠는가?
고심 끝에 캡슐을 샀던 나도 10년째 하고 있다.
방대한 세계관과 수많은 스토리, 거기에 다른 게임에서 느낄 수 없는 만족감을 주는 게임인데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서 목표대로 잘나가는 유저가 됐냐고 물어본다면 이렇게 말해 줄 수 있다.
길드 랭킹 11위에 해당하는 검은 손 길드.
여기까지만 말하고 내 캐릭터 명을 말했으면, 모두가 ‘우와’하며 그 자리에서 박수를 치며 유명한 길드 소속의 길드원이라 열광할 것이다.
월오룰에 존재하는 길드의 숫자만 수십만 개, 그중에서도 랭킹 100위권 안에 속한 길드의 1군에 속하게 된다면 억대 연봉을 우습게 받는 세상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사람 이야기는 끝까지 들어야 하는 법.
그러니 다시 한번 내 소개를 하겠다.
길드 랭킹 11위에 해당하는 검은 손 길드의 2군 소속이자, 1군 파티를 서포트 하는 길드원 시저가 내 소개다.
그냥 간단하게 말하자면, 고기 방패 역할의 길드원이다.
당연히 처음부터 이런 입장이었던 것은 아니다.
길드 가입 당시 나도 정식으로 검은 손 길드의 1군 멤버였다.
게임에 재능이 있어 보인다며 추천으로 들어갔을 정도로 대우가 좋았다.
“죽자 살자 노력했지.”
정말 길드 가입과 동시에 나는 병행하던 아르바이트를 때려치우고 오직 월오룰 하나에만 집중했다.
밤낮이 수시로 뒤바뀌며 제대로 된 식사도 하지 않으며 오직 육성, 또 육성에만 신경을 썼다.
수많은 사냥터를 뒹굴고 직접 몸으로 하나하나 때우며 그때마다 내 재능이 빛을 조금씩 반짝이며 전투에서 승리를 이끌었던 나다.
하나 당시의 나는 세상이 너무 넓다는 것을 몰랐다.
게임을 잘한다고 해도, 결국 평범한 이들보다 조금 나은 실력.
심지어 직업도 특출할 것 없는 평범한 전사다.
거기에 시간이 갈수록 희귀 등급의 직업군이 하나둘씩 나타났고, 거기에 재능이 특출하다 못해 너무나도 찬란하게 빛을 보이는 이들의 등장과 함께 나는 자연스럽게 뒤로 밀려 날 수밖에 없었다.
당시 나는 처음으로 월오룰을 향해 욕을 내뱉었다.
“직업빨X망겜.”
평범한 전사 캐릭터인 나였기에 결국 밀리고 밀리다 못해 2군으로 내려왔고, 지금에는 레이드에서 고기 방패 역할로 소소하게 돈을 벌고 있는 처지가 되어 버렸다.
지금 생각해 보면 짜증 나는 이야기지만, 어쩔 수 있겠는가?
사람 운명이란 게 내 뜻대로 안 되는걸.
그렇다고 길드에서 탈퇴한다? 그건 말도 안 될 일이다.
고기 방패 역할에 2군이지만 길드 혜택이라는 것이 있다.
길드에서 독식하고 있는 사냥터의 원활한 이용.
길드 자체에서 운영하는 대장간의 할인.
각종 포션과 같은 물품 지원.
여기에 대규모 보스 레이드에서 나오는 추가 수당.
이 해택만 해도 무시 못 한다.
고로 벌어들이는 금액은 대략 300만 원 정도.
하나 이것도 무기 수리비와 방어구 유지 값, 소모품을 구입하는 것을 생각하면 평균적으로 내 손에 떨어지는 금액은 대략 200만 원가량이다.
재수 없을 때는 100만 원이 손에 쥐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 직업을 계속 유지하고 있는 이유가 있다.
첫 번째로 내 나이가 벌써 32살이다.
이 나이에 새로운 직장을 구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하물며 나는 동생을 부양한다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일자리로 뛰어들었다.
이런 내가 새로운 직장을 구한다? 아마 주변 사람에게 32살에 고졸이 그런 소리를 하면 아마 하나같이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볼 것이다.
“나라도 그러겠다.”
이제 와서 새로운 직장을 구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두 번째는 길드 개편에 대한 것이다.
현재 2군까지 운영하고 있는 검은 손 길드다.
하나 점차 늘어나는 길드원 때문에 3군까지 만들 예정이라고 하니, 길드 개편이 이뤄지면 2군을 넘어서 3군까지 늘어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내 활동의 폭이 넓어지니 수당 또한 늘어날 예정이다.
“다 믿을 말은 못되지만.”
사실 길드 개편에 관한 이야기는 몇 년 전부터 나온 이야기라 그리 믿을 만한 정보는 아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비록 수입은 일반 직장인에 비하면 적은 편이긴 하나, 하나밖에 없는 동생을 데리고 사는 내 처지에서 새롭게 직장을 구하고 다시 일을 시작한다는 것조차 어려운 일이었다.
지이잉. 지이잉.
진동을 토하는 휴대폰을 보자 그곳에 적혀 있는 글씨를 읽었다.
“하나뿐인 내 가족 사랑하는 동생.”
조금 민망하지만 입으로 이런 소리를 내뱉을 만큼 내 여동생은 내게 있어 하나뿐인 소중한 보물이다.
처음에는 이 말을 했을 당시에 나는 얼굴이 상당히 붉게 물들 수밖에 없었다.
상당히 부끄러웠으니까.
그럼에도 나는 이 말을 항상 내 동생에게 해 주었다.
내게 가족이라곤 여동생 하나뿐이다.
어릴 적, 부모님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의지할 친척이라도 있었으면 좋았겠으나 친인척이 없는 우리 가족이었기에 세상에 남은 것은 나와 여동생 단둘뿐이었다.
믿고 의지하고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다.
밖에 나가서 이런 말 하면 시스콘이냐고 들을지 모르겠지만, 정말이지 내 동생은 착하고 예쁘고 사랑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어릴 적 부모님의 사랑을 받으며 자라지 못했음에도 나와 단둘의 생활에 전혀 불만을 품거나 투정을 부리지도 않고 삐뚤어지지도 않았다.
오히려 집 안에 할 일이 있다면 나보다도 먼저 나서서 할 정도였고, 가끔씩은 피곤해하는 나를 위해 그 작은 손으로 어깨도 주물러 주며 피로를 풀어 주었다.
동생의 따뜻한 마음 때문일까 내 삶의 원동력이자 근원이기도 한 내 동생이다.
지금 전화 온 이유도 알 것 같다.
생각해 보니 오늘은 여동생의 공무원 시험 합격자 발표 날.
떨리는 마음에 내가 통화 버튼을 눌렀고, 휴대폰 너머로 동생의 기뻐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나 합격했어!
분명 휴대폰 너머의 목소리임에도 기뻐하는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질 정도였다.
“축하해! 그동안 고생 많았어. 효진아.”
정말이지 진심을 담아 나도 모르게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외쳤다.
그동안 효진이가 얼마나 고생했는가? 공무원이 되어 우리 집을 먹여 살려 보겠다며 몇 년을 죽어라 공부만 했던 동생이다.
한창 예쁠 나이에 친구랑 즐겁게 수다 떨며 보내도 모자라고 남자친구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도 부족할 시간에도 죽어라 공부만 했던 효진이다.
그동안의 고생을 보답받는 최고의 한마디.
바로 합격이라는 두 글자였다.
-응. 오빠도 고생 많았어…… 꼭 내가 보답할게. 흑흑.
“이 좋은 날 왜 울고 그러니. 이따 집에서 보자.”
나는 휴대폰을 내려놓으며 진심으로 기뻐했다.
“역시. 이런 날에는 소고기지!”
축하를 위해 가장 좋은 것이 뭐라고 물어본다면 나는 당연히 소고기를 외치겠다.
치킨이나 삼겹살도 좋겠지만, 효진이가 가장 좋아하는 고기가 뭐냐고 묻는다면 소고기다.
케이크도 사고 오랜만에 소주도 한잔하면 좋을 것 같았다.
“이제 나만 잘하면 되네.”
게임쟁이 인생이 어디까지 갈지는 모르겠다만, 그대로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 볼 생각이다.
마음의 짐이라 할 수 있는 동생이 잘 되었으니 이제 나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