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6화
episode(20) 신과 함께#15(완결)
전투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수르트의 힘에 <아스가르드>는 멸망을 금치 못했으며, 망자들을 무로 되돌림과 동시에 수르트는 저 자신의 힘에 집어삼켜져 스스로 목숨을 잃었다.
전승에 따르면 ‘라그나로크’를 일으킨 수르트는 곧 자신의 힘에 스스로 불타 죽었으니. 이것이 바로 수르트는 죽이는 방법이었다.
자멸할 때까지 버텨내는 것.
<아스가르드>가 멸망하며, 성운 전의 기세는 우리 쪽으로 기울었고. <왕가>와 <타카마가하라>는 양쪽이 함께 무너지며 결국, 성운 전은 우리들의 승리로 끝이 났다.
<패러독스>의 거점으로 모여든 모든 이들은 마치 축제라도 벌이듯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그렇게 웃고 지내며 축제를 벌이기를 수일.
기다렸던 관리자 A가 모습을 드러냈다.
[역시, 해냈군.]
“왜 바로 오지 않은 겁니까?”
[글쎄, 그 정도 고생했으면 했으면 잠시 쉬어야 하지 않겠나?]
“배려에 감사합니다, 아담.”
아담 그러니까 관리자 A는 쓰게 웃으며 나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정말 그 방법을 사용할 생각인가?]
“네, 그 방법 말고는 모두를 살릴 방법이 없으니까요.”
[힘든 길이 될걸세.]
“힘들지 않은 적은 없었어요.”
[큭큭, 그렇군.]
“당신과의 약속은 꼭 지키겠습니다.”
[아아, 이제는 자네들을 믿네. 조금 더 기다리는 것쯤이야.]
“그럼…. 하루만 시간을 주십시오.”
[알겠네.]
관리자가 사라지며, 어느새 주변으로 모여든 동료들. 모두의 시선을 알고 있다. 관리자의 등장에 또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 아닌가 걱정하는 거겠지.
나는 모두를 향해 형과 짜두었던 계획과 앞으로 어떻게 될지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했다.
결국, 이 모든 전쟁은 한 명의 ‘창조신’을 만들어내기 위한 과정. 전 우주에서의 최후의 1인 즉, 창조신이 된 이민혁의 부재로 현 우주가 시작된 것이다.
그러니까, 다음 우주를 시작하려면 현 우주의 ‘창조신’의 자리를 채워야 한다. 누군가는 그 자리를 맡아야 했기에, 형인 이민혁은 영혼을 봉인한 것이었지만….
현 우주에서 내가 봉인될 생각은 없었다. 이미 정해둔 이는 있었으니.
스아아아아.
영혼 소환으로 윤문과 이재신 그리고 화룡까지 모두 소환했다.
“윤문, 할 수 있겠냐?”
“물론이지, 뭐 내가 지은 죄를 참회한다 생각하면 그만이니.”
“기나긴 시간이 될 거야. 인간들이 태어나려면 그만큼 오랜 시간이 흘러야 하니까.”
“상관없다. 덕분에 강해졌고, 덕분에 내 벌을 다 받을 수 있게 되었는데, 무엇이 겁나겠나.”
“……그럼 부탁한다.”
“오우!”
다음으로 해야 할 것은 간단했다. 가야 할 인원과 남을 인원 그러니까, 게이트에 봉인될 인원들을 선별하는 것이었다.
지금 우리와 함께 다음 우주로 이어진다면, 나와 임아린이 그랬던 것처럼 환생해야 했고 그렇지 않다면, 이민혁이 그런 것처럼 게이트 속에 봉인되어 살아가야 했다.
이 두 가지 방법이 아니라면 모두를 살릴 방법은 없기에.
“대신, 환생하면 기억은 보존될 겁니다. 관리자 A가 힘써주기로 했거든요.”
“이 많은 인원이…. 가능하겠냐, 막내야?”
“네. 관리자 A뿐 아니라, 저희가 그동안 모아온 카르마 전부를 사용할 겁니다.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니, 그 힘은 지금보다 형편없겠지만…. 기억이 있다는 건 그 힘을 회복하는 것에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그 모든 위험 부담을 안고서라도 같이 가실 분은 이쪽. 게이트에서 우리가 문을 열기를 기다릴 분들은 이쪽으로….”
다시 싸워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지만, 우리는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그렇기 위한 환생이니.
사람들은 제각각 위치를 나누어 움직였다. 대부분이 같이 싸우기 위해 환생을 택했다면, 그렇지 않은 인원들도 있었으니. 그들을 미워할 필요는 없었다.
그들 모두 지금까지 고생해 주었으니.
“좋습니다. 그럼…. 이쪽 인원들은 모두 환생과 함께 다음 우주에서 멸망을 맞이할 겁니다. 다시 만날 수도 있고 못 만날 수도 있지만…. 함께 한다면 반드시 길을 찾아내겠지요.”
“우리가 모두 살아남아 함께 할 수 있는 그 길을.”
이민혁의 말과 함께 사람들이 우레와 같은 함성을 내질렀다.
게이트는 이민혁이 해 보았기에, 그에 상승하는 영혼과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 역할을 맡아주는 이는 두 사람.
한민성과 차정우였다.
“두 사람 정말 괜찮겠어?”
“다시 눈을 뜰 텐데 뭐가 걱정이지?”
“현 우주의 용사와 싸워보지 못하는 건 아쉽지만, 다음 우주에서는 가능하겠군.”
“...... 고맙다.”
“꺼져라.”
“말이 많군.”
개자식들.
두 사람의 희생 덕분에 게이트에 봉인하는 것도 해결이 되었다. 그들은 죽는 것이 아니고, 오랜 시간 잠을 자는 것뿐이었다. 다음은 게이트의 봉인을 푼 그 순간.
* * *
계획은 말 그대로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이어졌다. 하루 간 연회를 열어 모든 이들이 즐겁게 보내었고. 나아가 EX+ 등급의 게이트까지 만들어냈다.
첫 번째로 게이트에 먼저 들어가는 이들이 봉인되었고, 차정우와 한민성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그들의 육체를 지키기 위해 다이아나, 아탈로스 그리고 권지훈이 따라 들어갔다.
[준비는 되었는가?]
두 번째로 남은 이들의 환생. 이것은 관리자 A가 알아서 해줄 테니,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모든 카르마를 거둬들이자, 우리에게 남은 수명은 인간 한 사람분의 수명뿐이었다.
그 정도면 충분하지.
[그럼…. 다시 한번 자네들을 기다리겠네.]
아담의 말과 함께 새하얀 빛이 모두를 휘감으려는 순간.
“잠시만요!!!”
“여왕…?”
“인사는 하고 가야죠오!!”
“하하….”
닉스 밤을 개념으로 살아가는 성좌이며, 수식언, ‘검은 날개를 가진 밤의 여왕’
임아린의 배후성으로 전 우주부터 현 우주까지 우리를 도와준 이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그녀는 임아린을 매우 사랑했다.
“아린아, 다음 우주에서도 내가 너의 배후성이 되어 줄게…!!”
“고마워요. 덕분에 강해질 수 있었어요.”
“꼭…. 다시 만나자!!”
“네!!”
밤이 존재하는 한, 그녀는 죽지 않는다. 영원히 반복되는 삶에서 벗어날 수 없는 개념 중 한 명이었다.
임아린과 여왕의 인사가 마지막인 줄 알았건만.
“막내야!! 스승님을 찾았다!!”
아, 맞다.
당나라의 고승을 찾으러 잠시 자리를 벗어난 손오공이었다.
“오오!!! 드디어 너를 보는구나, 제자야!!”
당나라의 고승. 그러니까, 그의 본명은 ‘진강류’ 사람들은 흔히 당삼장 혹은 현장이라 불렀다.
“우릴 두고 어디를 가려는 게냐, 제자야!!”
당삼장은 헐레벌떡 뛰어와 내 옷깃을 붙잡았다.
“막내 제자야, 본디 환생이라 함은 쉽게 할 것이 아니니, #[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
말이 많아도 너무 많은 내 스승. 많은 스승을 만나왔지만 정말로 내가 스승이라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믿는 이였다.
“크하핫, 막내가 말 많은 스승한테 제대로 걸려들었구나!”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손오공의 웃음.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대사형, 같이 안 갈 거요?”
“가서 우리 막내를 도와야지요!”
“크하핫, 다시 막내가 되는 것은 사절이오.”
내 사형들.
모든 것이 그리울 것이고 다시 만나려면 기나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손오공은 환한 미소를 계속해서 지어내며, 내게서 삼장을 떼어냈다.
“어이, 스승. 같이 갈 거지?”
“물론이다, 오공아. 그런데, 스승님께 어이라고 한다면 어이가 없는 건 당연히 나일 테니, 너의 그 말버릇을 고치는 게 좋겠구나. 어이라는 건, 동료나 아랫 사람에게 부르는 말로 내가 너의 스승이지 아랫 사람은 아니지 않니? 오공아, 잘 생각해보면…!#%[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
“아악, 미, 미안!! 스승 미안해 제발 그만…!!”
긴고주를 외운것도 아니면서 고통에 머리를 부여잡는 손오공이었다.
삼장은 그런 손오공에게 말했다.
“가자꾸나. 오공아. 막내 제자를 도와야지.”
“큭큭, 이래야 내 스승이지.”
비로소 환생할 자들이 완벽하게 정해지자, 관리자 A는 다시 한번 하얀 빛을 소환했다.
인사는 충분히 했다.
각자가 다른 장소에서 시작할 테니, 곧바로 볼 수는 없겠지만 이들은 한명 한명이 환생자로 모든 기억을 하고 있을 것이다. 즉, 알아서들 위기를 헤치고 이 자리까지 올 테니,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파앗!
번쩍이는 빛에 휘감긴 나와 모두는 그대로 아득히 먼 곳을 향해 눈을 감아냈다. 관리자 A의 힘이라면 성좌인 그들은 다시 한번 같은 이로 태어나 처음부터 강해질 것이다.
돌원숭이가 선법을 배우고.
필마온이라는 말단 직을 맡을 것이며.
제천대성이 되어 천계를 들쑤시고.
다시 한번 삼장과 만나 미션을 완수할 것이다.
그렇게 투전승불이 되어 나를 돕겠지.
사형들, 부디 살아남기를….
이민혁과 임아린은 다시 한번 내 가족이 되어 줄 것이다.
함께 동고동락하며, 멸망을 맞이하고.
같이 싸워 이겨 지금 이 자리에 도달할 것이다.
다시 한번 동료들과 생사를 함께 하며.
다시 만납시다, 여러분….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새까만 시야와 함께 홀로 마음을 정리하고 내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들이 듣지 못할지언정, 내 마음이 늘 같다면 알아줄 것이다.
* * *
여러 번 반복되는 삶이 이어졌다.
공룡, 개미, 모기, 인간 등 많은 삶을 후회 없이 살았다.
매 순간을 열심히 살았으며, 매 순간을 즐겨냈다.
‘재미로 삶을 반복하는 자’와 같이 카르마를 쌓았고.
그 삶이 곧 나의 인생이 되었다.
그리고.
비로소 인간으로 태어나 멸망(滅亡)의 순간이 도래했다.
“형, 아린아.”
“다시 시작이네.”
“아저…. 아니, 오빠들!! 똑바로 안 하면 죽을 줄 알아!! 오공 아저씨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
“습관이 이렇게 무서워요.”
민지보다는 아린이라는 이름이 더 이쁘다며, 이제는 ‘이아린’으로 사는 동생이었다. 물론, 부모님은 민지라 지었지만.
동생의 일갈과 함께 멸망이 시작되었고.
시스템 로그가 다시 한번 우리 눈앞에 나타났다.
[멸망이 시작됩니다.]
[모든 성좌(星座)가 현계(顯界)를 주시합니다.]
[시스템의 각성이 시작됩니다.]
반가우면서 이 모든 것을 시작한다는 것이 조금은 두려운 나였다.
텁.
눈치를 챈 형과 동생이 내 어깨에 손을 올려내었고.
“됐거든, 도은 씨와 영광 씨부터 찾아야 해. 알아서들 찾아오겠지만.”
“하, 드디어 보는구나. 언니랑 아저씨….”
“누가 보면 너는 할머니를 떠나 조상신 아니냐?”
“닥쳐, 혼나고 싶어?”
금세 마력을 집중시켜, 겁을 주는 이아린.
모든 기억이 잔류하는 그녀라면, 현시점에 선법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눈에 띄지 않는 것이 우리 목적을 위해서 더 안전하겠지만.
어련히 알아서 하겠지.
[성좌, ‘당나라의 고승’이 인사합니다.]
[성좌, ‘사계절을 사랑하는 선녀’가 당신을 향해 방긋 웃습니다.]
[성좌, ‘세 개의 발을 가진 까마귀’가 당신을 응원합니다.]
[성좌, ‘검은 날개를 가진 밤의 여왕’이 흐느껴 웁니다.]
[성좌, ‘긴고아를 벗은 원숭이’가 당신을 향해 엄지를 치켜듭니다.]
[성좌, ‘먹어도 배고픈 돼지’가 당신과 만날 날을 기다립니다.]
[성좌, ‘지능을 빼앗긴 물귀신’이 당신에게 배후성 계약을 원합니다.]
[성좌, ‘말의 모습이 더 편한 룡’이 당신에게 ‘성흔’을 하사합니다.]
이제는 함께 하는 겁니까? 스승, 사형들? 그나저나, 벌써 성흔을 주면 어쩝니까, 막내 사형…. 미친 겁니까?
이제는 혼자가 아닌, 형, 동생과 함께.
그리고 온전한 기억이 있는 성좌들의 응원과 함께.
우리는 계속해서 나아갔다.
이들 모두가 주인공이고.
이들 모두가 환생자이며.
이들 모두가 우주의 패자(霸者)이자, 역사다.
계속해서 살아남아, 우리는 결국 함께 살아갈 것이다.
멸망(滅亡)이 존재하지 않는 평화로운 세상에서.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