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읽은 소설의 주인공이 성좌였다-205화 (205/206)

제205화

episode(20) 신과 함께#14

죽고 죽이는 전투가 벌어진 지도 벌써 3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나를 포함해 이민혁, 한민성 그리고 아탈로스와 보르트몰트는 이미 한계에 다다른 시점. 더 이상 버프를 사용한다거나 회복할 수 있는 스킬은 없었다.

“헉…. 허억….”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도, 눈앞의 적들을 찢어발겼으나 저것들은 언데드나 마찬가지였다. 죽여도 그 끝을 모르고 계속해서 진격해왔으니. 이미 <아스가르드>의 성좌들은 전멸하다시피 죽어 나갔고 우리도 그 피해는 적지 않았다.

전 우주에서는 <안락국>을 포함해 더 많은 인원이 함께 싸웠었다. 따라서 <아스가르드>를 몰락시키고 나아가 수르트를 잠재울 수 있었다. 그런데….

“형, 이대로라면 우리도 전멸이야.”

“그렇겠지, 수르트는 평범한 방법으로는 못 죽이니까.”

온몸에 피 칠갑을 하곤 숨을 헐떡이는 이민혁. 그가 아무리 전 우주의 최강자라 할지라도 그 오랜 시간을 환생하여 ‘카르마’만을 쌓아왔다. 그렇다는 건, 이미 약해져도 한참은 약해졌다는 소리였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은 나오지 않는 상황에, 희생한 자들을 두고 자리를 이탈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한다면 그동안의 죽음은 누구를 위한 것이란 말인가.

“내가 어떻게든 해볼게.”

“안아…!!”

나를 부르는 형의 음성을 무시한 채로, 수르트를 향해 날아갔다. 크기만 해도 엄청난 차이가 있었기에 수르트 앞에선 인간과 개미만큼이나 크나큰 차이가 존재했다.

하지만.

이제는 버프의 효력도 떨어진 내가 할 수 있는 건, 계속해서 공격하고 또 공격하는 것뿐이었다. 더 이상 <패러독스>가 137군단이 그리고 형과 동료들이 죽는 것을 보기 싫었으니.

신검을 손에 쥐어 다섯 자루의 검 끝을 수르트에게 향했다. 이전만큼의 공격력은 없겠지만.

쿠르릉, 콰아앙!!

파천 만뢰공을 시작으로 태극혜검의 공격식, 홍염을 가득 뿜어냈다.

콰콰쾅!!!!

엄청난 충격에 몸을 휘청이는 수르트였으나, 금세 정신을 차리곤 화염의 검을 내게 휘둘렀다.

“하찮은 벌레 놈이!!!”

촤악!

너무나 거대한 크기였기 때문에 베어진 것보다는 무언가에 부딪힌 충격이 더욱 강했다.

콰앙!

곧바로 지상으로 추락하며, 흐릿해지는 시야에 정신을 못 차리는 나였다. 버프가 존재했다면 수르트와 싸워도 버텨낼 수 있었건만, 지금은 제우스도 이기질 못할 것이 분명했다.

제기랄….

바닥에 처박혀 수르트의 행동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화염의 검에 죽어 나가는 성좌들과 우리 <패러독스> 그나마 한민성과 형이 버텨주고는 있었지만, 더는 한계였다.

한민성도 토르의 부대에서 큰 힘을 사용한 것이 분명했고. 형인 이민혁도 남은 카르마가 존재하지 않을 테니, 그렇게 된다면 형을 잃을 수도 있었다.

방법은 계속해서 떠오르질 않았고.

촤악!! 화륵!!

수르트가 휘두른 화염의 검에 계속해서 죽어 나갈 뿐이었다. 이어서 수르트가 소환해낸 수백만에 달하는 망자들이 그 기세를 놓치지 않고 달려드는 순간.

어? 이 기운….

무언가 익숙한 기운이 수르트의 등 뒤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것도 엄청난 속도를 보이며.

이민혁과 한민성도 무언가를 느꼈는지, 내 곁으로 이동했다.

“……<왕가>와 <타카마가하라>의 전쟁이 끝난 것인가?”

“아, 아니. 틀려 이들은 성좌만큼 강한 힘을 지녔지만, 그 결이 다른데…?”

정확하게 파악이 되지 않는 힘은 상당한 수였다. 망자들만큼 수백만에 달하는 힘은 아니었지만, 개개인이 중위급 성좌와 맞먹는 힘을 지니고 있었고 나아가 주신 급에 다다른 이들도 존재했다.

무언가 익숙하지만, 알 수 없는 기운이었다. 무섭다는 생각보다 그립다는 생각이 더욱더 강한 이들.

설마? 아, 아니…. 그럴 리 없을 텐데…!! 천존이 내 말을 들어주었다면 이곳에 존재할 수 없는 이들이었다.

하지만.

내 생각은 곧 선두에 보이는 자로 인해 멈출 수밖에 없었다.

하얀 망투를 두르고 한민성과 같은 플레이트 아머를 입은 사내. 하얀 성검을 쥐곤 인상을 찌푸리는 사내.

차정우.

현 우주의 용사.

차정우는 멀리서 느껴지는 기운에 반응한 것인지, 우리 쪽으로 시선을 잠시 돌려 낸 뒤, 성검을 휘둘러냈다.

서걱!

차정우의 일격이 수르트의 뿔을 잘라내며, 시선을 정확하게 끌어낸 순간. 사자후 스킬을 발동한 차정우가 무심하게 말했다.

[약해빠진 놈. 일어서지 못할 거면 누워있어라. 이 전쟁은 내가 끝내겠다.]

저 자식이…?

더 이상 들려오지 않는 차정우의 목소리. 보이는 것은 홀로 수르트를 상대하며 아름다운 칼부림을 보이는 그였다.

“저놈이군, 네놈이 말한 현 우주의 용사.”

“맞아, 말하는 걸 보니까 어때, 너랑 똑같지? 정이 갈걸?”

“닥쳐라. 농담을 주고받을 여유 따위는 없다.”

“개자식.”

차정우가 아무리 강해졌다고 한들, 혼자서는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억지로 몸을 일으켜 움직이려 할 때였다.

차정우를 선두로 이어지는 기운들은 곧 수르트에게 일격을 가했고.

파앙-!

“저건….”

다이아나와 임해든의 브레스를 시작으로 쏟아지는 공격들은 내가 익숙하게 보았던 것들도 있었다.

진선미의 독, 무림인들의 무공, 김영광의 일격, 김도은의 화살.

안재훈, 키와타 히로시, 우범혁 등 알고 있는 모든 이들의 공격이 수르트를 향했다.

콰앙!!!

거대한 수르트의 몸이 크게 기울기 시작하니, 곧 지상을 향해 엎어졌고. 그 충격에 망자들을 포함해 모든 이들이 사방팔방으로 날려져 갔다.

그제야 우리에게 다가온 이들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나를 말 없이 바라보았다. 그 누구도 입을 여는 이는 없었다. 그저 바라볼 뿐.

한참을 그리운 눈빛을 주고받던 중, 입을 연 것은 나였다.

“어, 어째서 이곳에…. 여러분은….”

“닥쳐라. 누가 네놈 마음대로 기록자가 되겠다고 했나?”

“아니, 난….”

차정우는 버럭 화를 내면서 등을 돌려 냈다.

그들과 얼굴을 못 본 지 20년이나 흘렀다. 즉, 그들을 그 시간 동안 부르지 않은 건, 위험에 드러내지 않고 기록자로 이번 생을 마감하는 것이었다.

천존도 그 부탁을 들어줬기에, 마음 놓을 수 있던 나였다.

그런데….

“안이 씨, 너무 했습니다. 저희 모두가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 생각한 겁니까?”

“……”

“하, 참 내. 진짜 열받아서 한 대 쥐어박고 싶지만, 봐줄게요. 몰골을 보아하니 무리한 것 같은데.”

김도은과 김영광이.

“형님!! 저도 왔습니다!!”

“크, 대왕마마 클라스 오지고.”

안재훈과 키와타 히로시가.

“아저씨, 죽고 싶어요?”

이제는 숙녀가 되어 선녀라 해도 믿을법한 임아린이 서 있었다.

현계에서의 20년은 곤륜산에서 200년. 이들은 200년 동안 수행하여 나를 도우려고 성운 전에 참가한 것이다.

관리자 A가 도와줬겠군.

“아, 아린아….”

임아린이 뾰로통한 표정을 지어내자, 내 뒤에 있던 이민혁이 그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달려가 안아 들고 싶은 마음이 가득해 보였건만, 이제는 기억을 회복하지 못했기에 당장 그리하는 건 무리였다.

이민혁이 조용하게 물었다.

“민지…. 내 동생 민지 맞지…?”

“응, 저 아이가 민지의 환생이야.”

“하…. 하하, 이쁘게 잘 컸네! 내 동생…!!”

이민혁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임아린은 그 모습에 의아한 표정을 지어내면서도 처음 보는 이에게 다가갔다.

“어쩐지, 익숙한…. 아니, 아저씨 괜찮아요? 왜 울고 그래요!”

“아, 아니다. 안이한테 이렇게 많은 동료가 있는 것이 감격스러워서.”

“그렇죠? 우리 아저씨 인기 많거든요.”

임아린의 말에 쓰게 웃는 이민혁.

그나저나 이제는 내가 할머니라 불러도 될법한 나이 차이인 것을, 아직도 아저씨라 부르는 임아린이었다.

그리고.

저 뒤편에서 차정우와 한민성이 서로를 바라보며, 무언가를 느꼈는지 서로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의미였을까.

“다들 이곳에 오시느라 고생했어요. 그런데, 어떻게 여기까지 올 생각을….”

“간단해요! 관리자 A와 천존께서 도와줬거든요.”

“어떻게….”

“제 포탈을 이런 식으로 사용할 수 있게요.”

파앗!

임아린은 허공에 손짓하여 포탈을 만들어냈다.

그곳에서 모습을 보이는 네 사람은 포탈 속에서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사, 사형들…?”

손오공과.

“이놈 잘 있었느냐!?”

사오정, 저팔계, 백룡이.

“사제, 오랜만에 보는군.”

“우리는 오랜만이지만 막내 사제는 오랜만이 아닙니다. 둘째 사형.”

“오오옷!!! 드디어 막내 탈출인가!!!”

어처구니가 없어 허탈한 웃음만 터져 나왔다.

아무리 천존과 관리자가 도왔다 해도 이곳을 이어버리다니….

“아, 물론 일시적인 힘이라 이게 끝이에요. 오공 아저씨와 천존 아저씨가 한 약속 덕분에 힘을 사용해주신 거라….”

이어지는 임아린의 설명은 간단했다. 기록자들의 전생을 승리로 끝낼 수 있게 요괴 진영을 배신한 손오공. 그 행동으로 천존과 한가지 약속을 했으며, 그 약속은 제 스승을 찾으러 나갈 수 있게 해달라는 것.

천존 정도 되는 이에겐 적절한 카르마만 사용하면 되는 것이니, 손해를 보는 장사는 아니었을 것이다.

손오공이 물었다.

“스승님은 어디 계시냐, 막내야.”

“<대륙>에 숨어계실 겁니다. 전투에 특화된 분이 아니시니….”

“고생했다. 지금부터는 우리에게 맡겨라.”

당나라의 고승은 살아있을 것이다. 전 우주에서도 그랬듯 그는 전투에 특화된 성좌가 아니었으니, 아마도 <대륙>의 어딘가에 결계를 치고 죽을 날을 기다리고 있을 테지.

곧바로 스승을 찾지 않았다며 화를 내지 않는 손오공의 모습이 의아했지만, 긁어 부스럼을 만들지 않기 위해 말을 아꼈다.

“아저씨!!!”

이제는 어른이 되어버린 이민영이 갑작스레 내게 달려왔고.

사사사삭.

선법과 성흔을 섞어 다친 이들을 광범위하게 치료하기 시작했다. 이민영과 이민영의 배후성인 오늘이가 함께하는 치유식이었다.

“많이 컸구나.”

“헤헷, 고생 좀 했죠. 우리 아빠는 무사하죠?”

“당연하지. 내가 살아있으면, 그들도 영원히 살아있는 거니까.”

“후! 아저씨랑 아빠가 얼마나 보고 싶었다고요!!”

“미안하다.”

기어가는 목소리에 누군가 등짝을 크게 후려쳤다.

짝!!

“다시는 안 놓칠 거야, 망할 인간 같으니.”

“선미 씨.”

“흥, 전부 끝내고 그때 보자고요.”

“그래요.”

그들에겐 200년, 나에겐 20년 해후를 풀 것이 산더미처럼 많이 있었지만, 지금 당장은 무리였다.

눈앞에 수르트를 비롯해 <아스가르드>의 성좌들이 살아있었으니까.

한민성과 차정우가 동시에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멍청한 소리 그만하고 일어나라.”

“이제는 내가 더 강할 것이다. 네놈이 나를 엄호해라.”

“두 사람은…. 뭐, 현생, 전생 같은 존재가 아니었을까….”

“닥쳐라.”

“닥쳐라.”

“그래, 닥쳐야지.”

한결같은 두 사람의 모습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몸을 일으켜 여섯 자루의 검을 등 뒤로 띄워낸 후.

파앗!!!

이민영과 오늘이 덕분에 버프를 사용할 수 있었다. 다시 한번 강해지자, 곤륜산에 있던 일행들의 표정이 변하기 시작했다.

“대박…. 우리도 200년을 수행했는데.”

“안이 씨, 역시 괴물이셨군요!!”

김도은과 김영광을 시작으로 저마다 한마디씩 거들었다. 당장, 한 사람 한 사람의 말을 귀담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갑시다. 우리 마지막 전투를 끝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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