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4화
episode(20) 신과 함께#13
오딘의 거처를 나와,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날개가 이리저리 찢기고 지팡이가 반쯤은 부서진 아탈로스와 보르트몰트였다. 수많은 <아스가르드> 성좌를 상대로 굳건하게 버티는 그들.
이미 한계에 다다른 몸으로도 죽지 않고 살아있었다.
“형, 가자. 저들이 죽기 전에.”
이민혁이 고개를 끄덕이자, 곧바로 축지를 사용한 뒤 아탈로스와 보르트몰트의 뒤편으로 이동했다.
“둘 다 고생했다.”
“고생은 무슨. 크하핫.”
“생각보다 빨리 왔군, 네놈들 상태도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는데?”
“뭐, 쉽게 끝날 리는 없으니까.”
“다들 긴장해. 아직 끝난 거 아니야. 오딘이 죽은 걸 알면 저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덤벼들 거야. 그리고….”
“그놈이 남아있지.”
오딘과 요툰을 포함해 로키와 펜리르까지 <아스가르드> 내에서는 강함으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이들을 넷이나 잡아냈다.
당연히 그 과정이 쉬운 것은 아니었지만, 우리는 결국 해내었고. 나아가 수십만의 병력과 최후의 전쟁을 벌여야만 했다. 지휘관을 잃고, 갈 곳이 없는 <아스가르드>의 성좌들은 지금부터 목숨을 걸 테니까.
어서 빨리 토르를 잡아내고 일행들이 돌아와 주기를 바랄 뿐이었다.
파앗!
초속 재생으로 스킬들의 쿨타임이 다시 돌자, 나는 곧바로 모든 버프 스킬을 사용했다.
이제 기사회생 같은 스킬은 없다. 죽으면 정말로 모든 것이 끝장나는 순간. 긴장감에 온몸이 부르르 떨려왔다.
“모두…. 죽지 말자고. 우리의 목표가 코앞이니까.”
“말해 뭐하냐아! 간다아!!!!”
아탈로스는 아직 건재함을 보이듯 성좌들을 향해 달려들었고. 보르트몰트 또한 한숨을 내쉬며 아탈로스를 엄호했다.
“형.”
“응, 가자! 안아!!”
이민혁과의 전투는 이미 전 우주에서 수없이 많이 치렀었다. 패턴이며 어떤 스킬을 사용하는지까지. 따라서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기에는 적절한 파트너였다.
콰콰콰쾅!!!!
* * *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거친 숨을 몰아쉬는 우리 넷은 동시에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직도 절반도 줄이지 못한 병력에 넷 모두의 입에서 한숨이 터져 나왔다.
아탈로스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 새끼들, 원래 이렇게 많았나?”
“아니, 우리가 너무 극단적으로 싸우고 있어서 그렇네.”
보르트몰트의 말에 인상을 찌푸리는 아탈로스.
“후, 아직 절반을 줄이지 못했다고? 한참이구먼.”
이미 쓰러져도 이상할 게 없는 아탈로스였다. 하늘을 날 수는 있어도 날개가 잘려 나가 한쪽뿐인 룡. 더 이상 용언 마법도 브레스도 뿜어낼 힘이 남아있지 않은 룡이었다.
이민혁은 그런 아탈로스를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어냈다. 엘릭서 4개를 꺼내 들어 우리에게 하나씩 건네며.
“마지막 엘릭서야. 우리가 죽기 전에 토르를 잡아내고 한민성들이 오기를 바라야 해.”
“으하하핫. 우리가 죽기는 왜 죽냐! 나 아탈로스 님이 있는데! 우오오오오!! 회복된다!!”
“……저놈이 제일 먼저 죽겠군.”
절체절명의 상황에도 장난기를 버리지 않는 모습에 나를 포함한 이민혁과 보르트몰트도 힘을 낼 수 있었다.
파멸의 브레스
쿠와아아아아!!
새까만 브레스가 <아스가르드>의 성좌들을 향해 쏟아지며 전투는 다시 시작되었다.
그럴싸한 지휘관은 없었지만, 오딘의 아내 프리가를 포함해 발두르, 헤임달등 강한 축의 성좌들이 공격을 받아내기 시작했다.
“위대한 <아스가르드>를 위하여!!”
프리가는 병력 전체에 성흔을 사용하며, 사기를 끌어 올렸다. 전투력과 회복력이 상당히 상승하는 성흔이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조용하게 입을 열었다.
“형, 이대로는 안 돼. 내가 전력을 다해 수를 줄일 테니, 그놈이 나타나거든 형이….”
“…….”
아무런 말도 없는 이민혁이었지만, 그의 눈빛만은 살아있었다. 지금으로선 방법이 없었으니. <아스가르드>를 무너트리려면, 결국 그놈을 처치해야만 했다. 그것이 진정한 <아스가르드>의 멸망.
공중에 몸을 띄운 후, 파천 신군의 오의와 태극혜검 그리고 자존심에 사용하지 않았던 <안락국> 성좌인 삼족오의 홍염까지.
동시에 발동한 세 가지 힘에 머릿속이 조금 어지러운 느낌마저 들었다.
상당히 무리인 것이 분명했지만….
“간다.”
파천 만뢰공
태극혜검(太極慧劍)
홍염(紅焰)
만 개의 벼락이 지상의 성좌들을 꿰뚫으며.
콰콰콰쾅!!!!
검붉은 홍염이 모든 것을 불태우며.
화아아아!!
마지막 여섯 자루의 검에서 발동되는 태극혜검 단 하나의 공격식이 지상을 향해 별처럼 쏟아졌다. 진정으로 사용할 수 있는 최강 최대의 공격들이었다.
“무자비하군….”
“하, 저놈 저렇게까지 성장했다니. 제법인데?”
“안아…!!”
이민혁과 아탈로스 그리고 보르트몰트가 치를 딸만 한 파괴력이었다.
한 차례 공격이 쏟아지자, 곧 엄청난 숫자의 성좌들이 죽음을 맞이했고.
쿠구구구구.
동시에 <아스가르드> 전역에 거센 지진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진동이 조금씩 잦아지자, 당황한 성좌들의 발밑에서 무언가 손이 뻗어져 나왔다. 손 하나만으로도 수 십 명의 성좌를 단숨에 죽인 그것.
<아스가르드>의 진정한 재앙이자, 수식언 자체에 ‘파멸’의 힘이 들어있는 자. <아스가르드> 멸망의 주인공인 ‘라그나로크’를 일으킨 장본인이었다.
오딘과 요툰이 죽은 이 시점에 그의 봉인이 해제되었고, <아스가르드>의 멸망을 지켜보던 중 성좌들의 수가 절반으로 줄어든 시점에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것이었다.
수르트
온몸에 화염을 두르고 있는 거인. 화염의 검을 사용하며 모든 것을 불태워버리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그 모든 것에는 자신도 포함되어 있었지만.
“오딘!!!!! 요툰!!! 네놈들의 <아스가르드>를 지워버리겠다!!!”
엄청난 목소리와 함께 온몸을 지하에서 꺼낸 수르트는 그 크기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했다. 우리 중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는 아탈로스 또한 병아리와 같았으니.
수르트는 주변을 둘러보며, 오딘과 요툰이 없는 걸 이미 인식했는지, 프리가와 상위 성좌들을 향해 비릿한 미소를 지어냈다.
“크크크큭, 고작 네깟 놈들로 나를 막으려 하는가?”
“이놈 수르트!!”
발두르
오딘의 둘째 아들로 빛의 신이라 불리는 자.
아버지가 없는 지금이라면 자신이 <아스가르드>를 지키는 것이 옳다며, 프리가를 뿌리치곤 수르트에게 정면으로 섰다.
하지만.
“어딘가에 벌레가 있는 것인가.”
쾅!
“이, 이럴 수가….”
단 한 번 휘두른 화염의 검에 잿더미가 되어 사라지는 발두르였다. 프리가는 그제야 실물로 보는 수르트에 위기감을 느꼈는지, 모든 병력을 향해 외쳤다.
“다들 거리를 벌려, 전열을 재정비하세요!! 토르가 올….”
토르가 올 거라는 그녀의 말은 맞았다. 하지만.
휘익.
허공에서 날려져 온 토르의 몸이 힘없이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아스가르드>로 돌아올 수 있었으나, 이미 사체가 되어버린 토르.
“한민성 나이스.”
모두의 시선이 허공으로 향했다.
“토르라면, 하찮은 벼락을 튕겨내는 이놈을 말하는 건가? 그렇다면 이미 죽었지만.”
토르를 알고 있으면서, 모르는 척하기는.
이미 넝마가 되어 여기저기 다치지 않은 곳이 없는 한민성. 그런데도 쓰러질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이곳에 있는 모두는 쓰러지면 안 되기에.
한민성은 멀찍이 떨어져 있는 우리를 힐끔 쳐다보더니, 말을 이어갔다.
“전원, <아스가르드>와 화염 거인을 멸하라.”
[패러독스!! 패러독스를 위하여!!!]
엄청난 숫자의 목소리가 동시에 들리며, 한민성 뒤로 생성된 포탈 너머로 137단을 비롯해 전 우주의 현계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누구 하나 멀쩡해 보이는 이는 없었지만, 모두의 눈빛은 오롯이 승리만을 바라고 있는 듯.
성검을 치켜든 한민성이 검기를 사방에 날려대며 공격을 개시하자, 진정한 <패러독스>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후, 한숨 돌리겠군.”
“긴장해야 해. 수르트 저놈은 아군과 적군을 가리지 않으니까.”
“음.”
“더럽게 크군.”
상황이 한결 나아졌다는 생각에 여유를 부리며 눈앞에 성좌들을 단숨에 줄여나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놈들!! 내 먹잇감을 빼앗으려 하느냐!!!”
쿠콰아아앙!!!
화염의 검이 <패러독스>를 향해 움직였고.
“큭…!!”
한민성이 가까스로 그 검을 막아냈지만, 주변으로 퍼지는 화염과 그 강력함에 바닥에 처박히고 말았다.
콰앙!!!
그 소리가 얼마나 큰 것인지, 땅을 울려댔다.
한민성은 먼지 구덩이를 벗어나 재빠르게 수르트를 향해 움직였다.
까앙-!!!
“빌어먹을, 네놈들도 도와라!!!”
제 공격만으로는 수르트를 처치할 수 없다는 건 단 한 번의 부딪힘으로 알았을 것이다. 따라서 한민성의 외침은 우리 네 사람을 동시에 움직이게 했다.
“웬일로 저놈이 자존심을 안 부린담?”
“크큭. 그러게.”
촤악!
나와 아탈로스의 말소리를 들었는지, 단숨에 검기를 날리는 한민성이었다. 죽이기 위한 검기가 아니기에, 쉽게 피해내기는 했지만.
저 무식한 놈 같으니라고.
한민성의 검기를 피해내며, 수르트와 정면으로 선 우리는 남은 힘을 쥐어 짜냈다. 이미 한계에 다다른 몸이었지만 엘릭서를 먹어 어느 정도는 버텨낼 수 있었으니.
“다들, 정신 똑바로 차려라.”
“너나 잘해 인마.”
“우리 마지막이 될 수도 있겠군.”
“아니, 새로운 시작이야.”
모두가 한 디씩 내 던지며 수르트를 향해 달려들었다. 검은 브레스를 시작으로 보르트몰트의 마법과 한민성의 검격. 궁니르를 사용하는 이민혁 그리고 여섯 자루의 검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나의 공격이었다.
“큭…!! 이놈들이…!!”
공격은 차근차근 먹혀들었다. 수르트의 한쪽 무릎마저 꿇게 할 정도로 맹공이었다. 그런데.
“이, 내가 네 놈들 따위에 죽을 것 같으냐!! 자, 오너라 망자들이여!!!”
수르트가 허공에 소리치자, 곧 거대한 포탈이 생겨났다.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새까만 포탈이.
“모든 것을 멸하거라, 지옥의 망자들이여.”
파앗!
포탈을 넘어선 것은 수백만에 다다른 해골 병사들이었다. 아니, 저것들이 해골 병사로 칭하는 것이 올바른 말이었을까. 화염에 휩싸인 해골들은 성좌들에 버금가는 실력을 지니고 우리를 향해 정렬하기 시작했다.
망자(亡者)
이미 <아스가르드>에서 사체를 겉모습만 되살려낸 좀비와 같은 자들이었다. 그러나 그 공격력은 수르트의 힘을 받아 개개인이 중위급 성좌에 버금가는 실력자들이었다.
심지어 그중에는 우리 손에 죽은 요툰과 오딘마저 있을 테니, 그야말로 <아스가르드> 재앙(災殃)의 시작이었다.
같은 편은 아닐지언정, <아스가르드>의 전 병력은 수르트와 망자들을 향해 자리를 잡았으며. 한민성과 이민혁이 눈짓을 주고받자, 그 옆으로 <패러독스>와 137군단이 자리를 잡아냈다.
공통의 적이 있다면, 굳이 싸울 필요가 없다는 걸 프리가 자신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번뿐입니다. 저것들을 죽이면 다음은 그대들이니.”
“알아서 해라.”
한민성의 무심한 말을 시작으로 <아스가르드>의 멸망 ‘라그나로크’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