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읽은 소설의 주인공이 성좌였다-203화 (203/206)

제203화

episode(20) 신과 함께#12

죽는다? 그것이 두려웠다면, 지금까지 살아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수많은 전투를 이겨내고 지금까지 온 내게 죽음은 또 하나의 길일 뿐, 두렵지는 않았다.

분노한 오딘은 슬레이프니르를 움직여 나를 향해 움직였다. 거대한 몸집이니만큼 크기가 웅장했지만, 그 속도는 모든 버프를 사용했음에도 더욱 빠른 속도를 선보이고 있었다.

까앙-!!!

내 주변을 둥글게 돌며, 궁니르를 사용한 찌르기. 전형적인 원 패턴이었지만, 속도에서 뒤처진 나였기에 공격을 막아내는 것에 급급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언령에 반응하는 여섯 자루의 검이 궁니르를 막아내고 있었다.

챙, 챙챙!!!

저 말부터 어떻게 해야겠어…!!

발이 여덟 개라는 것은 하나의 다리만 다쳐도 그 기능이 감퇴할 것이다. 그렇다면….

“신검.”

척.

허공에 도는 여섯 자루의 검 중, 신검을 손에 쥐어 스킬을 사용했다. 고작해야 여덟 개의 다리 중 하나의 다리를 잘라내는 것이지만.

신마인 만큼 평범한 무기로는 상처를 입힐 수 없었다.

하지만.

신검이라면 가능했다. 환생을 시키는 것도 지옥에 보내는 것도 아닌, 그 성능을 저하시키는 것뿐. 그 정도라면 그다지 어렵지는 않을 것 같았다.

챙, 챙챙!!!

다시 한번 내 목을 노리는 궁니르를 다섯 자루의 검이 막아낸 순간.

[태극혜검(太極慧劍) LV.MAX]

신검을 사용해 허공에 태극의 진을 그리자, 마력으로 만들어져 눈에 보이는 태극이 허공에 나타났다. 그것을 중심으로 신검을 뻗어내었다.

“크하핫, 그것도 공격이라고 하는 건가! 느려터진…!!”

오딘의 말이 맞았다.

그 누가 봐도 빠르다고 할 수 없을 정도의 속도. 그러나 그것은 느려 보일 뿐 느린 것이 아니었다. 인지를 넘어섰기에 보기에만 느린 것이었다.

방심한 오딘과 슬레이프니르가 나를 향해 궁니르를 뻗어내려는 순간.

파앙-!!

태극의 진에 닿은 신검이 공기를 터트리며 앞으로 쏘아졌다.

“이, 이건…!!”

당황한 오딘의 표정과 함께 터져나간 공격은 그대로 슬레이프니르의 여덟 다리를 향해 나아갔다.

콰앙!!

엄청난 크기의 슬레이프니르가 바닥을 나뒹굴자, 재빠르게 벗어난 오딘은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감히, 내 애마를!!!”

더욱더 거세지는 오딘의 기운에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아니, 이제는 속도에 밀리지 않겠다는 생각에 희미한 미소까지 지어낼 수 있는 나였다.

“아끼는 말에, 아들까지 잃게 생겼는데. 네놈도 곧 그 길을 따라가게 해주마.”

“기필코, 기필코 네놈의 심장에 궁니르를 박아낼 것이야!!”

“할 수 있다면.”

슬레이프니르를 잃은 오딘은 기동력이 떨어졌다. 당연한 소리지만 늙은 몸으로는 전투에 한계가 있을 것이 분명했으니.

전성기 시절의 오딘이라면 이길 수 없겠지만 현 상황에선 성좌임에도 그 힘이 감퇴해 이기는 것에 큰 무리는 없을 것 같았다.

등 뒤로 신검을 돌려보낸 후, 곧바로 인검을 쥐어 들었다. 오딘 역시 성좌로 기나긴 세월을 살아왔기에, 인간으로 환생시키기 위함이었다.

사실, 성좌들을 인간으로 환생시키든 안 시키든 별다른 이유는 없었지만 내 나름의 복수일 뿐이었다. 우리를 하찮게 보는 성좌들을 다시 인간으로 환생시킴으로써 그들은 다음 우주에서 인간들과 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

즉, 그들의 고통이 곧 나의 행복이나 다름없었다.

“죽어라!!!”

악에 받친 소리를 내지르며 오딘이 움직였고.

“죽는 것이 두렵나?”

서걱.

손에 쥐어진 신검이 오딘에게 상처를 입혀냈다. 그렇다 할 치명상은 아니었지만 데미지가 있었는지, 움직임을 멈춘 오딘.

그런 오딘을 향해 말했다.

“죽음이 두렵다면 인간으로 환생해 다시 한번 그 두려움을 맛봐라.”

사사사삭.

허공을 맴돌던 다섯 자루의 검이 무자비하게 오딘을 갈라내기 시작했다. 이어서 파천 만뢰공의 만 개의 벼락이 하나의 벼락이 되어 오딘의 전신을 강타했으며.

콰쾅!!!!

만 개의 벼락이 하나의 벼락이 되어 떨어진 순간.

서걱.

오딘을 향해 인검을 내리그었다.

그러나 이것이 끝은 아닐 것이다. 전 우주에서도 죽을만한 상처에도 오딘은 일어섰으니. 그가 가진 18가지의 마법에는 ‘치유 마법’도 존재했다.

오딘이 배운 18가지의 마법

이그드라실에 매달려 자기 자신을 제물로 바쳐 얻어낸 지식 중 위대한 열여덟 가지의 마법. 10서클 대마법사인 보르트몰트도 용언 마법을 사용하는 아탈로스도 오딘에게는 한참은 뒤처질 것이다.

그중 오딘의 치유 마법은 육신의 상처와 고통을 낫게 하고 모든 질병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었다. 물론, 그 대가로 전성기를 잃고 노인의 몸을 얻은 거겠지만.

얻은 것이 있다면 잃는 것도 있다.

스스스스.

벼락과 함께 일어난 연기는 오딘의 전신이 보일 정도로 걷혔다.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던 순간.

후웅-

후웅, 후웅!

연기 속에서 오딘의 궁니르 여러 개가 투창 되었다. 단 하나만 존재할 수 있는 궁니르가 여러 개인 것은 간단한 이유로 18가지 마법 중 한 가지를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실체와 같은 환각을 만들어내고 그것에 당한다면 실제와 같은 상처를 주는 힘이었다.

가장 상대하기 까다로운 오딘의 마법 중 하나로 허상임이 분명했음에도 결코 방심해서는 안 되는 실체에 가까운 마법이었다. 심지어 일반적인 무기가 아닌, 신기 그 자체를 여러 개로 만든 것은, 당했을 때 그야말로 치명상을 입을 것이다.

까앙-!!

엄청난 속도로 쇄도한 궁니르가 심장을 향해 날려져 오자, 다섯 자루의 검이 동시에 그것을 막아냈다. 하지만 최상위 성좌가 사용하는 신기인 만큼 그 위력도 대단했기에, 나도 모르게 신음이 터져 나왔다.

“큭…!!”

까앙, 까앙!!

궁니르의 숫자가 계속해서 늘어나는 상황에 가만히 서서 다섯 자루의 검을 믿을 수는 없었다.

재빠르게 몸을 빼내 무작위로 움직였다. 그런데.

오딘의 신기 궁니르의 특성은 상대를 죽이거나, 오딘의 의지로만 멈춰지기에 늘어나는 숫자와 함께 내 심장을 향해 계속해서 쏟아져 왔다.

그 순간.

연기 속에서 튀어나온 오딘은 궁니르를 내게 질러내며 말했다.

“그것 보게, 이 궁니르가 자네의 심장에 박혀들 거라 말하지 않았나?”

푸욱.

기다란 궁니르가 심장에 박혀 들자, 비릿한 무언가가 속에서부터 올라와 입가를 적셔냈다.

방심하거나 오딘을 무시한 것은 아니었다. 이것은 알고 있으면서도 당할 수밖에 없는 오딘의 힘이 강해서라고밖에 할 수 없었다.

“커헉….”

무너지는 신체를 바라보면서 오딘은 웃고 있었다. 마치 최후의 승자는 자신이라는 것처럼.

“안아!!!!”

요툰을 처치한 이민혁이 전신에 상처를 참아내며 내게 달려오고 있었다. 전 우주의 패자(霸者)도 힘을 들여야만 처치할 수 있었는지, 멀쩡해 보이지는 않았다.

흐릿해지는 시야에 보이는 형의 모습은 다급해 보였다. 지친 것은 물론이요, 상처 입은 몸의 상처들. 그런 형이 내게 달려오며 세상을 잃은 표정을 보였다.

형….

텁.

박혀든 궁니르를 뽑아 던지며, 울먹이는 이민혁.

“안아, 안아…. 안아!!!”

궁니르가 뽑힌 자리에 커다란 구멍이 있었다. 그곳에서 멈추지 않고 흘러나오는 검붉은 선혈.

오딘은 이민혁을 향해 비웃듯 말했다.

“네놈이 내 형제를 죽였듯, 나 또한 그리했을 뿐. 너무 슬퍼하지 말거라. 금방 따라가게 해줄 것이니.”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이민혁의 눈이 시뻘겋게 변해가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바쳐 자신을 살린 동생이 눈앞에서 죽는다는 것이 그 무엇보다 두려운 그였다.

“제발…. 제발…. 안아!!”

계속해서 터져 나오는 선혈을 억지로 막아내듯 두 손을 사용해 막아내는 이민혁.

나는 형을 향해 조용하게 말했다.

“쿨럭…. 나, 나는 안 죽어. 그러니까, 울지 말고 적을 똑바로 봐.”

가까스로 한쪽 눈을 감아내며 말하는 모습에 이민혁은 의아하면서도 다급한 표정을 지어냈다.

털썩.

그렇게 눈을 감은 뒤, 이민혁의 음성과 함께 정신을 잃었다.

“빌어먹을 새끼, 반드시 찢어 발겨주마….”

* * *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을까. 아니, 시간이 지나기는 했을까? 두 눈을 뜨자, 흐릿해진 시야가 원래대로 돌아오면서 형과 오딘이 서로를 죽일 듯 공격하는 모습이 보였다.

스킬, 초속 재생

단 한 번 죽음에서 벗어나 모든 상처를 치유하는 스킬로, 잘려 나간 왼팔마저 치유한 스킬이었다. 죽지 않을 것을 알고 있던 것은 바로 이 스킬의 존재 때문이었다.

형인 이민혁은 몰랐던 것 같지만.

상황을 지켜보니, 전투의 승기는 한쪽으로 치우쳐져 있었다. 이민혁의 강함은 그만큼 대단한 것이었다.

이대로 움직일까? 아니면…. 빈틈을 노리는 것이 좋을 수도.

몸을 움직이지 않고 화안 금정으로만 전투를 바라보았다. 분노에 휩싸인 이민혁의 공격이 계속되자, 빈틈을 보이는 오딘.

조심스럽게 다섯 자루의 검을 움직였다. 전투가 한창 진행 중이기에 오딘이 신경을 쓸 여력은 없었다. 지금 당장에도 형의 공격은 멈추지 않고 계속되었으니까.

결정적인 한 방을 기다리는 이민혁.

“죽어!!!”

꽈앙-!!

형의 주먹이 오딘을 향해 나아가자, 겨우 공격을 막아낸 오딘은 거리를 벌려내 거친 숨을 내쉬었다.

“헉…. 허억…. 현계인 주제에, 감히!!”

“닥쳐. 그 현계인에 죽는 건 네놈이니까.”

저벅, 저벅.

천천히 오딘을 향해 걸어가는 이민혁. 그 강한 주신인 오딘조차 죽는다는 것은 두려웠는지, 조금씩 뒷걸음질 치는 중이었다.

거리는 계속해서 가까워졌고.

찌이이잉-

주먹에 마력을 실어낸 이민혁이 주먹을 뻗어내려는 순간.

푹, 푸욱, 푹푹푹.

등에서 꽂힌 다섯 자루의 검날이 오딘을 뚫고 나왔다.

“컥…. 이, 이건….”

갑작스러운 공격에 당황한 오딘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냈고.

“이 검들은…. 서, 설마….”

오딘이 상황을 파악하게 둘 시간은 없다. 이것이 곧 기회이며 오딘을 환생시킬 유일한 순간이니, 그가 치유 마법을 전개하기 전에 끝장내야 했다.

스킬, 축지를 사용해 오딘의 등 뒤로 움직이자 눈치를 챈 이민혁이 동시에 오딘을 향해 달려들었다.

퍼억!!

마력에 둘러싸인, 주먹이 오딘의 복부를 뚫어냈고.

앞을 봐야 할지, 뒤를 봐야 할지 정신을 못 차리던 순간에 인검을 휘둘렀다.

서걱.

“마, 말도 안 된다…. 이….”

털썩.

포물선을 그리고 떨어진 오딘의 머리통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이로써 <아스가르드>는 상위급 성좌들을 잃으며 점점 무너질 것이다.

아니, 이미 무너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안아!!”

오딘의 죽음을 확인한 이민혁이 내게 달려왔다. 모든 상처가 치유돼 가슴에 뚫린 상처도 말끔히 사라진 나였다.

“내가 말했잖아. 안 죽는다고.”

“하, 간 떨어지는 줄 알았네!! 이 미친놈아, 그런 스킬이 있었으면 미리 말이라도 해주던가!!”

“한민성이나 형도 있을 텐데, 내가 없을까 봐?”

“후…. 젠장맞을 놈.”

이민혁은 사체가 된 오딘에게 발걸음을 옮겼다.

“이건 쓸만하니까 당장은 내가 써야겠다.”

“그렇네, 신기가 없는 형한테는 유용하겠어.”

“그렇지?”

오딘의 손에 쥐어진 궁니르를 뺏어 제 손에 쥔 이민혁.

“아직 싸울 수 있지?”

“물론이지, 어서 가자. 지금쯤이면 위험해진 이들도 있을 거야.”

재빠르게 자리를 벗어난 나와 형은 전쟁을 수습하기 위해, 동료들을 살리기 위해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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