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읽은 소설의 주인공이 성좌였다-201화 (201/206)

제201화

episode(20) 신과 함께#10

한민성의 첫 마디는 좌중을 당혹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그도 그럴 게 배신했다는 감정에 분노와 복수심을 뿜어내던 이들이 이곳에 있는 이들의 절반이었다.

137군단은 사연이 있으려니 하겠지만 한민성 일행들은 아니었다. 나를 포함해 형과 같이 <안락국>과 등을 맞대고 싸운 동료들이었으니까.

“너 지금 뭐라고….”

한민성은 나를 힐끔 쳐다보는가 싶더니, 이내 고개를 돌려 냈다.

“그들은, 자신들을 희생함으로써 <안락국>의 의지를 우리에게 맡긴 것이다. 그 때문에 <아스가르>를 불러낸 시점에 우리를 돌려보낸 것이다.”

의지라니? 말은 그럴싸하다. 설령 그 말이 맞다고는 해도 그동안의 행적은….

아니, 사실은 애써 외면하려 한 걸지도 모른다. 전 우주에서부터 우리와 함께 싸우고 결국은 최후의 성운이 된 <안락국> 그런 곳이 이번 우주까지 이어진 것.

그 결과 함께 하면서도 자신들은 앞으로 나아가질 못하는 것을 깨닫고 자신들의 희생을 발판으로 우리들의 길을 빛나게 닦아 놓은 것이라고.

이 말들이 사실이라면.

이민혁은 조금은 씁쓸한 표정을 지어내고 있었고 한민성은 그런 이민혁을 잠시 바라보더니 시선을 돌려 냈다.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을 거라는 건, 알고 있다. 두 가지만 알고 있으면 된다. 그들은 우리를 위해 희생했고 나아가 <패러독스>가 제 2의 <안락국>이 되기를 바란다고.”

“……”

한민성의 말이 맞았다면, 이민혁도 조금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형은 신단수에 영혼이 묶여있었을 테니, 그들의 의지는 알기 싫어도 알고 있었을 테지.

“형.”

나지막하게 부른 목소리에 반응한 이민혁이 입을 열었다.

“그들은 날 묶고 있었던 게 아니야.”

“그렇다면….”

“카르마가 부족해, 영혼의 유지를 할 수 없었을 때. 그들은 내 영혼을 수거해 카르마를 제공했지.”

“……”

“그들이 아니었다면, 게이트의 봉인을 풀고 육체를 얻었어도 결국, 내가 눈을 뜨는 일은 없었을 테지.”

“이민혁의 말이 맞다. 좋든 싫든 그들은 우리를 도왔다는 거지. 희생할 생각을 처음부터 가지고 있었을 테고.”

“민성이 말이 맞아. 천왕랑의 행동도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우릴 도운 거니까.”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어떻게 답하는 게 옳았던 걸까? 아니, 그들을 위해 분노하고 복수를 다짐해야 했을까.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생각에 잠긴 내게 한민성이 말했다.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

해야 할 일.

사실, 목표는 이미 이루었다. 여기서 무엇을 더 해야만 했던 걸까.

단순하게 궁금한 것.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한민성과 이민혁을 한 번씩 바라보며 물었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지?”

“……멍청한 놈. 네놈 형에게 물어봐라.”

몸을 휙 돌려 자리를 벗어나는 한민성.

이민혁은 그런 한민성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희미하게 웃었다.

“안아, 전 우주에서 나 홀로 희생했다면 너와 민지를 포함한 모두는 게이트에서 영원토록 살아갔을 거야.”

“……그렇지.”

“내 동생들은 그걸 거절했고, 나는 다시 눈을 뜰 수 있었지.”

“설마….”

“맞아, 우리는 우리의 삶을 되찾을 거야.”

이민혁이 하는 말은 간단했다. 자신이나 혹은 누군가의 희생으로 이루어진 삶이 아닌, 오롯이 우리 자신들의 삶을 되찾자는 말.

막연한 소리였지만, 오히려 목표는 확실해지는 나였다.

“형은 지금부터 뭘 할 건데?”

단순한 물음이었다. 현 상황에 남은 성운은 분명히 존재한다. <안락국>은 이미 멸해가는 과정의 끝에 서 있었고 <타카마가하라>와 <왕가> 그리고 <아스가르드> 당연한 말이지만 <아스가르드>는 현재 우리의 전력으로도 그 강함에 비견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성좌를 보유하고 있었다.

“내 생각이 너와 같다면 좋겠지만…. 가장 위협이 되는 존재.”

“<아스가르드>를 치자는 거지.”

“맞아. <왕가>와 <타카마가하라>는 저들끼리 치고받느라 정신이 없을 거야.”

“그렇다는 건, 그 틈을 타서 <아스가르드>를 멸하고 남은 두 성운을 한 번에 집어삼키자는 말이지?”

“맞아.”

내가 생각한 것도 형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말처럼 쉽다면 좋겠지만, 형도 알다시피 우리 전력으로는 얼마나 긴 시간이 걸릴지, 얼마나 많은 이들이 죽어 나갈지….”

이민혁은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이내 나를 바라보며 씩 웃었다.

“너, 전 우주에서의 기억들이 전부 돌아왔다고 했지?”

“응. 완벽히는 아니어도 대부분은 생각나지.”

“그럼 전 우주에서 성운, <대륙>을 무너트릴 때를 생각해봐.”

이민혁의 말에 기억을 되살리기 시작했다. 그 기억은 멀고도 가깝게 느껴졌지만 바로 어제 일처럼 선명했다.

“각개격파를 하자는 거야?”

“맞아, 우리가 전력으로 부딪혀도 그들의 병력은 따라잡을 수 없어. 그렇다는 건, 전력을 분산시켜 지휘관들을 잡아내는 게 이번 전쟁의 핵심이 되겠지.”

“결국, 나와 형 그리고 한민성의 역할이 중요한 거네.”

“그렇긴 하지만….”

이민혁의 시선이 크로노스를 향했다.

“형, 크로노스는 아직 힘을 되찾지 못했어. 금방 위험에 노출되고 말 텐데.”

“아아, 걱정하지 마. 내가 그를 바라본 건 희생시키기 위함이 아니니까.”

“……?”

시선을 느낀 크로노스가 다가와 물었다.

“시킬 것이 있으면 편히 말하게. 자네는 우리 수장의 형제니.”

“하하, 그렇게 말해주면 나야 고맙지.”

“그래서, 내게 무엇을?”

크로노스의 말에 이민혁이 한쪽 눈을 감으며 말했다.

“간단해, 전투는 나와 안이가 할 테니 크로노스 당신은 그들을 유인해주었으면 하는데.”

“유인…?”

“간단해. <아스가르드>최전선에는 ‘토르’라는 놈이 지휘관을 맡고 있을 거야. 제우스에 버금가는 놈이지만 그에 비하면 아직 어린놈이지.”

“이름은 들어봤네, 아들놈과 같은 전격을 다룬다지.”

“그놈은 성격이 불같아서, 도발에 약한 놈이야. 그건 안이 너도 알고 있지?”

“응, 꽤 고생했지. 제우스만큼은 아니어도 꽤 강한 놈이었으니까.”

이민혁은 작전을 상세히 나와 크로노스에게 전했다. 간단한 방법이면서도 아군이 제때 반응해주지 않는다면 크로노스와 137군단이 위험할 정도의 작전.

하지만 성공만 해준다면 <아스가르드>의 전력을 깎아냄과 동시에 나아가 그들의 수장 오딘마저 잡아낼 가능성이 생긴다. 그렇다면 훗날 <왕가>와 <타카마가하라>는 걱정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우리는 최후의 성운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작전은 간단했다. 크로노스가 토르를 유인하고 한민성이 그 옆을 친다. 전장의 싸움이 시작되는 순간, 나와 이민혁은 별동대를 이끌고 <아스가르드>의 후방을 친다는 것이었다.

물론…. 토르 하나만 처치한다고 <아스가르드>의 전력이 말도 안 되게 감소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토르 자체만 놓고 본다면 오딘의 자손으로 빈틈은 만들어내기엔 충분했다.

“작전은 전부 숙지했지?”

“뭐, 숙지할 게 있나? 유인하면 싸우고 그 틈에 후방을 치는 것뿐인데. 그런데.”

“응?”

나는 이민혁을 향해 조금 의아한 듯한 눈빛을 보냈다.

“형, 힘은 돌아온 거야?”

“아아, 그걸 걱정하는 거면 괜찮아.”

“괜찮다고?”

“응, 내 수식언이 뭐냐?”

“재미로 삶을 반복….”

아?

내가 말한 부분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뜻이 무엇인지는 금세 깨달을 수 있었다. 이민혁은 무한히 반복되는 삶을 살며 수없이 많은 경험과 카르마를 쌓았다.

그것이 목숨을 유지하는 유일한 수단이었겠지만, 오히려 다양한 힘을 기르고 경험을 늘린 것은 전 우주에서의 이민혁보다 현재가 더욱 강할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물론, 카르마는 간당간당하겠지만….

“너무 무리하지는 마. 그러다 골로 가면, 형 한 사람 때문에 많은 이들의 고생이 허사가 되는 거니까.”

“짜식, 제법 어른 같은 말도 하고. 많이 컸네?”

“닥치고.”

“그래, 아무튼. 지금부터는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 안이 네 역할이 가장 중요하니까.”

이민혁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137군단을 포함한 모두에게 작전을 일러두었다. 한민성은 그따위 것도 작전이냐며 인상을 찌푸렸지만.

뭐, 결국 들어는 줄 것이다. 애초에 그런 놈이었으니까.

나는 크로노스에게 말했다.

“너무 위험하다 싶으면, 도망쳐도 돼요. 무리해서 희생이니, 충성이니 그런 짓은 하지 마세요. 알겠죠?”

“하하, 알겠네. 걱정하지 말고 자네는 자네의 목적을 이루게나.”

“덕분에 항상 힘이 납니다. 늘 감사하고 있었어요.”

“음?”

갑작스러운 말에 크로노스가 헛기침하며 멀어져갔다. 자식에게 칭찬받은 아버지처럼.

* * *

작전의 준비는 순조로웠다. 모두가 자신들의 무기를 갈고 닦으며 최후의 결전에 대비하였고 나 또한 형인 이민혁과 함께 후방을 칠 준비를 마쳤다.

소수 정예로 짜인 파티에는 전 우주의 최후룡 아탈로스와 이민혁. 그리고 요시키와 유금필과 같이 전 우주의 죽은 자로 보르트몰트라는 사내였다.

현 우주에서는 그 목숨을 잃은 것 같지만, 전 우주에서는 우리에게 큰 힘이 돼주었던 대마법사.

그렇게 최후룡 아탈로스, 대마법사 보르트몰트, 성운의 주신 급의 강함을 상회하는 나와 형 네 명이 <아스가르드>의 후방으로 잠입을 시작했다.

이민혁이 말했다.

“아탈로스, 보르트몰트 시작하자.”

“큭큭, 자네와 함께 싸울 날을 그토록 오래 기다렸건만, 드디어 재미를 보겠군.”

“대장!! 이번엔 내가 지켜줄게!!”

“둘 다 조심해야 해. 이미 싸워 이겼다지만, 결코 약한 이들이 아니니까.”

이민혁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아탈로스와 보르트몰트의 표정은 매우 즐거워 보였다. 그 오래전 형과의 전투에서 서로의 목숨을 지키며 싸웠으니, 그럴 수밖에.

아탈로스와 보르트몰트가 두 가지 마법을 융합하기 시작했다. 용언 마법과 10서클 마법의 조합. 그것은 곧 우리 넷의 몸을 휘감았고, 백 미터 이내로 접근하지 않는 이상 알아차릴 수 없는 은신 마법을 걸었다.

“되었네, 신호는 그때지?”

“137군단과 민성이가 토르와의 전투를 시작했을 때.”

“간단하군.”

<아스가르드>의 후방으로 몸을 움직여 한참을 대기했다. 하루, 이틀. 그렇게 삼 일간 기운을 감지해내며 결정적인 한 방을 날릴 틈을 지켜보는 중이었다.

그 순간.

콰아아앙!!!!

저 먼 곳에서 굉음과 함께 전투가 시작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조용히 형에게 말했다.

“형.”

“응, 준비는 완벽해.”

더욱 정확한 빈틈을 노리고자, 굉음이 났음에도 한참을 더 대기했다. <아스가르드> 내부는 토르의 갑작스러운 진격에 크게 당황하기 시작했고. 우리 넷은 오딘이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몸을 숨기고 있었다.

그 순간.

상당히 젊어 보이면서,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별이 안 될 정도의 사내가 전장을 지휘하며 <아스가르드> 내부는 점점 침착하게 상황을 대처했다.

“형, 저거.”

“응. 그놈이야.”

동시에 그 사내가 누구인 줄 파악한 나와 이민혁은 동시에 말했다.

“로키.”

“장난의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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