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읽은 소설의 주인공이 성좌였다-199화 (199/206)

제199화

episode(20) 신과 함께#8

이번 성운전은 당연한 말이지만, 우리 <패러독스>의 필패나 다름없다. 그런데도 137군단을 진격시킨 이유는 간단하다. 어부지리를 노리는 <아스가르드>를 끌어내기 위함.

<아스가르드>는 동맹을 맺은 세 곳의 성운을 견제하고 우리는 모든 성운을 견제한다. 그러나 남은 세 곳의 성운은 <패러독스>와 <아스가르드>를 견제하기에, 이 상황을 잘만 이용한다면 <아스가르드>를 포함해 그 기세를 반쯤 줄일 수 있어서였다.

이번 전투에서 균형이 한쪽으로 치우친다면, <아스가르드>는 양측 모두에게 피해를 줄 수 있으니,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상황.

물론, 137군단과 한민성 일행들이 힘을 써줘야 했기에, 위험성은 높은 작전이었다.

나는 그 틈을 노려 <안락국>본진을 친다. 이것이 계획의 핵심이었다.

형인 이민혁만 부활해 준다면 그 강함은 나와 한민성보다 월등하기에, 나아가 곤륜산의 동료들까지 합세한다면 <아스가르드>도 무리 없이 이길 수 있었다.

“잘 할 수 있겠냐?”

단도직입적인 물음에 한민성은 인상을 찌푸렸다.

“불안하면 네놈이 하지 그랬나?”

“싸우는 건 양보해줄게. 친동생인 내가 형을 구하는 게 모양새가 더 이쁘지 않겠냐?”

“헛소리하는군. 네놈이 갈 그곳은 <안락국>에서도 최중심지다. 결코 안전하지는 않을 테지.”

한민성의 말에 쓰게 웃었다. 사실, 그의 말대로 가장 위험한 것을 꼽으라면 홀로 성운 내부로 침입해야 하는 내가 가장 위험했다.

“잘 부탁한다. 137군단도 이제 우리 동료들이야, 그들을 버리는 짓은….”

“알고 있다. 크로노스 그놈은 제법 마음에 들더군.”

한민성이 사람을 마음에 들어 한다니, 지나가는 개가 웃겠다.

대략적인 계획을 숙지한 우리는 각자가 향하는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 * *

<안락국>

한국 신화에 등장하는 신의 나라로 제우스와 같은 주신급으로는 환인, 석가, 상제가 있다.

물론, 137군단과 한민성 일행들이 싸우는 최전선에는 환인과 해모수가 자리를 맡고 있었고.

<아스가르드>의 최전선에는 석가와 상제가, 동맹이라지만 만약을 대비한 <왕가>, <타카마가하라>의 최전선에는 대별왕과 환웅이 자리를 잡고 있다.

따라서 내가 신경 쓸 인물은 크게 소별왕 뿐이었으며, 제우스와 같은 주신 급이 아닌 이상 크게 신경 쓸 것은 없다.

이곳은.

이미 약해질 대로 약해진 <안락국>은 빈집이나 다름없었으니.

정령화와 악귀화를 제외한 버프를 모조리 사용한 후, 주변의 기운을 느끼기 시작했다.

빈집이라 할지여도 이곳은 성운의 중심지. 성좌들이 엄청난 수를 형성하고 있었다.

“형의 영혼은 분명히 그곳에 있을 텐데.”

예상이 가는 장소는 한 곳이었다. 봉인을 위한 장소로 쓰이기도 했지만, 그곳에서 싸운다면 <안락국> 성좌들은 <올림포스>와도 대적할 수 있는 곳이었다.

신단수(神壇樹)

성운, <안락국>이 키우는 아니, 키운다는 표현이 맞을까?

모신다는 것이 더 옳은 말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안락국>이 키우는 신성한 나무로 이와 비슷한 예로 <아스가르드>의 ‘이그드라실’이 존재한다.

물론, 전력의 강화가 이루어지는 그곳에서 전투를 벌일 생각은 없지만.

“저쪽이군.”

성인의 기운에 느껴지는 방향으로 몸을 돌려 냈다.

그리 멀지 않은 장소에서 신비한 기운이 넘실거리는 것은 단 한 곳으로 분명히 그곳에 ‘신단수’가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니, 성운 정도 되는 놈들이 이렇게 쉽게 자신들에게 중요한 곳을 노출 시킬 리는 없다.

화안금정과 칠정안을 발동한 뒤.

스아아아.

신단수의 기운을 느낀 방향을 바라보았다.

“역시….”

비슷한 기운이 느껴졌지만, 이질적인 기운이 휩싸인 장소로 자칫하면 함정에 빠져들 뻔한 곳이었다. 저곳은 신단수가 아닌, <안락국>에서 운명과 행운을 맡은 ‘감은 장아기’가 인위적으로 만든 장소였다.

그에 반면 신단수는 맑은 기운들만 느껴지는 것이, 감은 장아기가 만든 장소의 정반대 편에 자리 잡고 있었다. 수많은 성좌의 기운과 함께.

“누굴 속이려고.”

몸을 돌려 축지를 사용하려는 찰나.

촤아아!!!

채앵-!!!

폭포와 같은 물이 나를 덮치고, 그 틈에 거대한 화살촉이 나를 향해 날려져 왔다.

이미 전 우주에서도 등을 맞대고 싸운 적이 있던 이들로 그 강함은 헤르메스나 현시점의 크로노스와 비슷할 것이다.

“옛 동료인데도 무자비하군. 하백, 주몽.”

하얀 백발을 기다랗게 늘어트리곤, 흡사 신령과도 같은 모습의 하백. 옛 고구려를 세우고 ‘해동의 천왕랑’인 해모수의 아들로 전해지는 주몽.

“오랜만이군.”

“어찌, 이곳으로 온 것이냐!!”

침착하게 대응하는 주몽과는 달리, 하백은 나를 향해 일갈했다.

두 사람의 말과 함께 분노가 치솟을 뻔한 걸 참아내며.

“하백, 네놈은 여전하구나. <안락국>의 망령 같은 놈이….”

“뭐라!!”

“우리 형이 아니었으면, <안락국>은 전 우주를 비롯해 살아남지 못했을 거 아닌가? 망령이 아니면 뭐지?”

“이놈이….”

“단순하게 생각해도 여러 번의 우주가 이어지면서도 너희 <안락국>은 최후의 성운이 된 적이 단 한 번도 없지. 고작, 현계의 인간이나 이용해 기생충처럼 살아가는 것들이.!!”

하백의 눈이 뒤집혀 허공에 엄청난 양의 물을 소환했다. 하지만.

“그만하게 하백, 우리 둘이 덤벼도 이길 수 있을지 미지수네.”

“크흠….”

주몽의 제지에 하백은 금세 물을 거둬들였다.

“자네의 말이 맞는군, 지금은 주신들을 위해 조금이나마 시간을 끌어야 하니.”

“<패러독스>를 끝내면 주신들은 금방 돌아올 테니, 그때까지만 힘써보세.”

두 사람의 대화를 가만히 지켜보자, 할 말이 없어진 나였다. 금방이라도 137군단을 비롯해 한민성 일행을 끝낼 수 있다는 말들. 조금 짜증이 난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금세 무표정하게 그들을 바라보았다.

“개소리를 되게 자연스럽게들 하시네.”

“……”

“입이 험하군. 역시, 현계의 인간들이란.”

“현계인인 우리가 아니었다면, 진즉에 죽고 성운 전의 승리도 맛보지 못했을 것들이 잘도…. 형을 비하하는구나.”

스스스스.

등 뒤로 여섯 자루의 검이 소환되었다. 금방이라도 적을 찔러 죽이겠다며 웅웅거리는 검들.

“네놈들은 여기가 무덤이다. 그리고, 다음 우주에서 <안락국>의 성좌들은….”

쐐애애애!!!

여섯 자루의 검이 공기를 가르며 하백과 주몽에게 쏟아졌다.

“하찮게 바라보던 인간으로 태어나, 그 고통을 온전히 느낄 거다.”

여섯 자루의 검이 정신없이 몰아치자, 하백은 물을 소환하고 주몽은 거리를 벌려 제 몸만 한 활을 소환했다.

<안락국>에서도 상위에 속하는 강자들이었지만, 어쩐지 무섭지는 않았다.

이곳에 형의 영혼이 잠들어 있어서였을까.

[정령화 LV.MAX]

파앗!

푸른 정령의 기운이 전신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경계를 늦추지 않는 하백과 주몽이었지만.

“이미, 늦었다.”

여섯 자루의 검 중, 두 자루가 어느새 양손에 쥐어져 있었고.

서걱, 서걱.

축지를 사용해 단숨에 두 성좌를 베어냈다.

“이, 이럴 수가…!!”

“네 이노옴!!!!”

상반신과 하반신이 분리된 하백.

더 이상 활시위를 당길 수 없게 두 팔이 잘린 주몽.

단숨에 베어낼 정도로 강함의 격차가 확실했으니.

“성운전은 네놈들 힘으로 이겨온 것이 아니다. 빌어먹을 새끼들아.”

나지막하게 울리는 음성과 함께 네 자루의 검은 두 성좌를 흔적도 없이 찢어발겼다. 외마디의 비명도 없이.

하지만….

속이 시원할 거로 생각한 것과는 달리, 과거의 동료들이어서 그런지 조금은 쓰게 웃는 나였다.

“네놈들이 하찮게 여기는 인간들이 이렇게 정이 많아요. 이 새끼들아.”

지금부터는 만나는 족족 전 우주에서 함께한 동료들과 싸워야 하기에,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지나친 슬픔과 우울감에 정신을 차리지도 못할 테니까.

“해동의 천왕랑은 한민성 네놈에게 맡긴다.”

혼잣말을 조용히 중얼거리며, 축지를 사용했다.

사삭.

* * *

버프와 정령화가 끝나기도 전에, 파죽지세로 몰아붙여 신단수에 도착하자 역시나 그랬듯 이전의 동료들이 나를 반겼다.

오늘이, 소별왕. 심지어 해동의 천왕랑을 모시던 삼족오까지. 수백의 성좌들이 신단수 아래로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해와 달은 이곳에 없나 보네요. 삼족오.”

“네놈과는 싸우고 싶지 않지만…. 어찌 이곳에 온 것이냐.”

“대화가 필요하겠습니까?”

“그렇군…. 미안하네, <안락국>을 위해 자네는 죽어줘야 하네.”

“반대로 생각하시면 편할 겁니다. 형과 우리 <패러독스>를 위해 당신들이 죽을 테니까.”

쿠구구구.

[악귀화 LV.MAX]

이마의 뿔이 솟아나고 등 뒤로 옷을 찢고 나온 날갯죽지가 양쪽으로 생겨났다. 이제는 온전하게 받아들인 힘 덕분인지, 악귀와 정령의 힘은 나를 한층 강하게 만들어 주었다.

거기다 각성의 힘까지 자리 잡으니, 더 이상 상대하지 못할 이는 없을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다들 비키지 않으면, 이곳에서 영원한 죽음에 이를 겁니다. 죽기 싫으면 비키세요.”

마음이 불편한 것은 사실이었다. 따라서 죽일 필요가 없으면 되도록 죽이고 싶지도 않았다.

이민영의 배후성이자, 성좌 ‘사계절을 사랑하는 선녀’가 말했다.

“오랫동안 당신을 지켜보고 응원했습니다. 이쯤하고 물러나시는 게….”

“당신도 똑같은 소리를 하는군요.”

“……”

시선이 신단수로 향했고.

“지금도….”

신단수의 가장 높은 곳에 나무 넝쿨로 묶인 둥그런 구체.

“형이 저기서 나를 부르고 있는데…!!”

만져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민혁. 나의 형인 ‘재미로 삶을 반복하는 자’가 저 조그마한 구체에 잠들어있다는 것을.

“마지막 기횝니다. 물러서세요.”

흉흉하고도 신비한 기운을 뿜어내며, 앞으로 걸어 나갔다.

저벅, 저벅.

그 모습에 겁을 먹고 물러나는 성좌들이었으나, 소별왕 만큼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전 우주에서 형과 내 곁에서 싸운 성좌 중 한 명으로 대별왕과 함께 최후의 최후까지 우리 둘을 지켜주었던 이.

그마저도 자신들의 <안락국>때문이었지만….

이해가 가질 않는 것은 아니었으나, 형을 희생시키고 나아가 <패러독스>를 이용해 다시 한번 성운 전의 승리를 바라는 것이 괘씸했다.

곱게 죽으면 다음 우주에서 조그마한 희망이라도 있었을 것을.

계속해서 나아가자, 가장 먼저 달려든 성좌들은 ‘칠성신’으로 일곱의 성좌였다. 하지만.

“그때도 앞장서 죽더니, 이번에도 변함없구나.”

촤촤촤촤악!!!

여섯 자루의 검은 칠성신을 일순간에 찢어발기며, 무로 되돌렸다. 용광검과 같이 신살의 기운이 담긴 것은 아니었지만, 헤파이스토스가 만들고 이미 모든 기운을 가진 내게 신살같은 기운은 있으나 마나였다.

아니, 오히려 내게 죽는다면 다음 우주에서 성좌로 다시 태어날 수 없었다. 여섯 자루의 검엔 각각 그 기운들이 담겨 어느 것에 베어졌느냐에 따라 다음 생이 결정된다. 관리자 A가 말해준 것 뿐이었지만, 가능성은 아주 없지 않다고 생각했다.

내겐 이 우주를 구성하는 핵심적인 기운들이 자리잡고 있었으니.

사검에 베인다면 지옥으로.

인검에 베인다면 인간으로.

신검에 베인다면 다시 한번 성좌로.

하지만.

내가 이들을 베어 죽이는 것은 오롯이 한 자루의 검이었다.

인검(人劍)

인간에서 성좌가 된 그들이 현계의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 그 기나긴 고통을 다시 느껴보아야 하기에.

“소별왕, 당신이 직접 나서지? 눈앞에서 수하들을 죽음으로 내몰 생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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