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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소설의 주인공이 성좌였다-196화 (196/206)

제196화

episode(20) 신과 함께#5

일전에 보았던, 인자한 미소를 짓는 이는 없었다. 편안해 보이던 그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갑옷과 투구로 착용했다. 한 손에는 금빛의 신기인 벼락을, 반대 손에는 이지스의 방패를 들고 있었다.

그런 제우스의 등 뒤로 엄청난 숫자의 군대가 그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마치, 이곳을 지나치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 그들은 나와 헤르메스를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제우스는 위엄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 너희를 아끼고,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았거늘…. 어찌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려 하느냐.”

괜한 도발을 해볼까 생각했지만, 헤르메스가 나를 제지하며 앞으로 나섰다.

“아버지, 이제 저희에게 그 자리를 물려주시지요. 모두 지쳤습니다.”

“헤르메스야, 네놈이 진정 미친 것이냐? 감히!!”

분노로 일갈하는 제우스의 모습에 흠칫 온몸을 부르르 떨던 헤르메스. 본능적인 공포는 이런 것이다. 헤르메스가 아무리 강해져도 제우스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이것은 각인된 공포였다.

“아버지…!!!”

“내 손으로 자식을 죽이는 것은, 슬픈 일이구나. <올림포스> 전원 듣거라.”

쿵! 쿵! 쿵! 쿵!

<올림포스> 전체에 북소리가 울려 퍼지며.

“배신자를 처단하라!!!”

<올림포스>를 위하여!!!

하늘은 곧 검은 먹구름으로 바뀌어, 금방이라도 벼락을 떨궈낼 듯 울부짖기 시작했다.

“정신 차리세요. 지금 와서 포기할 겁니까?”

“그, 그래도…. 이만한 숫자는….”

계속해서 기운을 감지하던 나였기에 알 수 있었다. <올림포스> 대 우리 둘이 아닌, 이미 내 동료들과 여왕이 움직였다는 것을.

“이제 오네요.”

“뭐, 뭐?”

반쯤은 포기한 헤르메스가 고개를 들어 올렸고.

“멈추어라!!”

우리를 향해 돌진하던 <올림포스>의 군대들도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그들이 멈춘 이유는 나와 헤르메스 때문이 아니었다.

<올림포스>에 비하지는 못할지라도 전 우주에서 성운 전을 승리로 이끈 역전의 용사들. 그들은 한명 한명이 성좌에 버금가는 강함을 지녔으며.

“제우스는 내가 상대하겠다.”

내부의 용사 한민성은 그 힘이 최상위급 성좌에 버금갈 정도로 강한 사내였다. 그가 직접 나서지 않은 것은 이민혁을 구하기 위해서였지, 싸우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그 때문에 나를 기다린 것.

비로소 울분을 터트리고 싸울 수 있는 것이었다.

김희연이 말했다.

“안아, 괜찮니?”

“응, 누나. 타이밍 딱이네.”

“그분도 오실 거야.”

“응?”

알 수 없는 김희연의 시선을 따라 움직이자, 엄청난 군세와 함께 그 중심에 본 적이 있던 사내가 다가오고 있었다.

설마….

“게이트를 부수면서 그 영혼은 진체로 돌아갔을 거야.”

“영혼으로 게이트를 유지하고 있던 건가…?”

“응, 민혁 씨의 카르마도 큰 도움이 됐지만, 결국 저분이 없었으면 지금까지 버티는 건 무리였겠지.”

제우스는 급격히 표정이 변해갔다. 당장, 포세이돈을 영멸시킬 만한 존재와 12주신 중 한 명인 아들을 죽일 기회였거늘, 눈앞에 찢어 죽여도 모자랄 놈의 군세가 하나둘씩 모이고 있었기 때문.

전 우주에서 성운 전을 승리로 이끈 성좌, ‘재미로 삶을 반복 하는 자’의 동료들. 그 숫자는 <올림포스>에 비할 수는 없었지만, 만만히 볼 자들이 아니었으며.

‘재미로 삶을 반복 하는 자’를 도와 성운 전을 끝낸 이들. 덕분에 전 우주에서의 기억을 가지고 지금도 우리를 도우려고 <올림포스>와 맞서는 성운, <안락국>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어이, 인간!! 잘 있었느냐!!”

“대단하군, ‘천왕랑’을 부활시키고 여기까지 오다니.”

“이제는 나도 인정해야겠군.”

한 사람을 중심으로 해와 달, 삼족오가 있었다.

“전우의 형제여, 기억은 모두 돌아왔는가?”

해동의 천왕랑

성좌, ‘재미로 삶을 반복 하는 자’를 도와 EX+등급의 게이트를 유지한 자로 그의 진명은 ‘해모수’였다. 이미 모든 기억을 되찾았기에, 알 수 있었다.

그는 나와 형과는 형제와도 같은 자였다는걸.

“오랜만에 봅니다, 형님.”

“인사는 저 번개 놈부터 처치하고 하지.”

고개를 끄덕인 순간, 제우스는 지금까지 해볼 만하다는 듯 기운을 한껏 방출했다. 그러나 이곳에 모인 성운, <안락국>과 게이트를 부수고 나온 한민성들은 이미 죽음을 불사한 상황이기에, 크게 개의치 않아 했다.

한민성이 말했다.

“이미, 죽인 놈을 또 죽이는 건데, 뭐 이렇게까지 장황할 필요가 있나?”

“없지. 네가 할래? 내가 할까?”

“오랜만에 몸 좀 풀어야겠군.”

한민성의 말을 들었는지, 제우스의 안면은 터질 듯이 새빨개져 있었다. 분노와 손에든 신기의 영향으로 붉어져 있던 것.

제우스는 허공에 몸을 띄워 신기를 하늘 높이 뽑아 들었다.

그리고.

“오너라, <올림포스>여. 그대들의 심장을 이곳에 희생하라.”

제우스의 나지막한 말이 허공에 울려 퍼졌고.

다시 한번 들리기 시작한 북소리는 더욱더 거대한 소리로 변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중, 헤르메스가 분하다는 듯 말했다.

“제기랄, 아직 심장에 박힌 번개를 제거하지 못했는데…!!”

“걱정하지 마세요. 오히려 상황은 좋습니다.”

“응…? 왜지?”

“그야….”

모든 <올림포스>의 성좌들이 모여들자, 그 군세는 <안락국>과 한민성들을 합쳐도 절반에 미치지 못했다. 그야말로 숫자에 무너지게 될 판이었다.

하지만.

휘황찬란하고 빛만이 전부였던 <올림포스> 내부가 어두컴컴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어둠은 서서히 모든 것을 집어삼키며 다가왔고.

“어머, 이러면 싸울 수 없으니.”

번쩍!

여인의 목소리와 함께 어둠은 사라지고 말았다.

“제가 너무 늦게 왔나요?”

“아니요, 기가 막혔습니다.”

여왕은 싱긋 웃으며, <올림포스> 전체에 자신의 힘을 과시했다. 모든 것을 무로 만드는 힘. 제우스가 모든 이들에게 박아두었던 번개가 한순간에 으스러져 사라졌다.

그것은 곧 혁명의 불꽃이 피어오르는 순간이었다.

“이, 이럴 수가…!! 여왕이여!! 어째서 당신이 개입하는가!!!”

제우스의 일갈에도 여왕은 싱긋 웃을 뿐, 무시로 일관했다.

“대답은 안 해주는 겁니까?”

“재수 없는 이랑은 나누고 싶은 대화 따위는 없답니다. 후훗.”

지극히 여왕다운 말이었다. 그녀의 진명은 ‘닉스’로 태초에 어둠이라는 개념이 잡힌 것은 그녀의 힘으로 시작된 것이었다. 그 힘을 두려워한 제우스는 형제들과 함께 개념들을 봉인했고.

그 결과, 모든 개념들이 비로소 봉인에서 깨어난 것이다. 비록 도움을 주는 이는 현시점에 닉스뿐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닉스의 성흔에 번개는 사라졌고, 그것을 느낀 헤르메스는 <올림포스>를 향해 울부짖듯 말했다.

“형제들이여, 드디어 아버지를 몰아낼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억압된 자유를 되찾고 신 <올림포스>를 위하여, 싸웁시다!!!!”

헤르메스의 외침에 제우스는 콧방귀를 뀌었다.

이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제우스의 등 뒤로 엄청난 숫자의 군세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

그 군세엔 137군단도 포함돼 있었으며, 12주신 중 대부분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이럴 수가…. 어찌….”

헤르메스는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는 제우스에게 말했다.

“아버지, 당신의 세대는 이제 끝났습니다. 새로운 이들이 <올림포스>를 이끌 테죠. 당신이 억압한 자유는 우리 스스로 되찾을 겁니다.”

“이놈, 헤르메스으!!!!!”

비로소 적과 아군이 나뉘게 되었다.

진심으로 제우스를 따르는 <올림포스>의 군세들, 테메테르와 헤라만이 그 곁에 머물렀으며. 혁명을 원하는 이들로는 주로 다음 세대를 잇는 아테네, 아폴론, 아레스. 아르테미스, 아프로디테, 헤파이스토스, 디오니소스 등이 있었다.

포세이돈이 죽은 시점에 제우스의 형제는 지옥을 다스리는 하데스뿐이었지만, 지옥에 거주하는 이들은 성운 전에 별 관심이 없던 탓에 참전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제우스와 구 <올림포스>를 상대하는 건, 신 <올림포스>와 <안락국> 그리고 한민성 일행들과 제우스 이전 세대를 담당했던 크로노스의 137군단까지였다.

서로를 마주 보며 이를 가는 양쪽 군세가 부딪히려는 순간, 나는 앞으로 나서 입을 열었다.

“성좌, ‘재미로 삶을 반복하는 자’를 위해서….”

나지막하게 울려 퍼지는 말에 우리 측 진영은 형을 애도하듯, 조용하게 번져나갔다. 다시 한번 <올림포스>를 무너트리기 위해서.

* * *

전쟁의 승기는 당연하지만, 우리 측에 있었다. 대부분의 성좌가 이탈한 탓에, 제우스 홀로는 버거웠을 것이다. 제 아내는 이미 죽음을 맞이했고 심장에 번개가 없음에도 제우스를 따르는 군세들은 모두 소멸한 뒤였다.

오른팔은 잘려 나가고 피눈물을 흘리며, 끝까지 쓰러지지 않은 제우스.

헤르메스는 그런 제우스를 향해 안쓰러운 듯 말을 걸었다.

“아버지…. 이쯤 하시지요. 남은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제우스는 허탈한 마음이 드는 듯, 자기 신기인 방패와 번개를 바닥에 떨어트렸다. 멍하니 하늘만을 바라보며.

“모든 것이 <올림포스>를 지키기 위함이었거늘, 나는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가.”

“아버지….”

헤르메스 뒤로 성좌들이 모여들었다. 그들 대부분이 제우스의 자식으로 12 주신의 자리를 꿰차고 있던 이들이었다.

제우스는 어떤 기척을 찾아내었는지, 저 먼 곳으로 시선을 돌려 내었다.

“아버지, 당신도 <올림포스>를 지키기 위함이었소?”

제우스의 물음에 답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당사자는 알고 있었다. 자신을 향한 물음이라는 것을.

침묵으로 일관하는 크로노스는 말없이 제우스를 바라보았다.

“당신과 내 운명은 ‘자식에게 죽는 것’이었지…. 그것을 그대로 따르기 싫어 살려놓았건만, 결국 나는 운명을 따라가는군.”

제우스는 허탈한 듯한 웃음을 내보이며, 눈을 감았다. 당장 쓰러지지도 누군가의 공격을 받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대로 두어도 소멸할 것이 분명했다.

헤르메스를 포함한 차세대 성좌들은 그를 향해 고개를 숙여냈고.

쿵!

오른 주먹을 심장에 치는 것으로 제우스의 죽음을 애도했다.

그 거대하고 웅장한 전장의 북소리보다, 단 한 번 심장을 치는 소리가 더욱더 여운을 남기며.

이제는 헤어져야 할 시간이 도래했다. 그 전에, 헤르메스와 137군단과 한 자리에 모여들었다.

“동맹은 여기까지군요.”

“하핫,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아버지까지 인간으로 환생시키며 내게 남은 카르마는 얼마 없지만…. 다음 우주에서의 <올림포스>는 우리가 이끌겠지.”

“이번 우주는 포기하는 겁니까?”

“뭐, 네 강함을 직접 확인했는데, 굳이 덤벼들어 뭐하냐?”

씁쓸한 표정을 짓는 헤르메스였지만, 무언가 후련해 보였다. 자신들에게도 가능성이 생겨서였을까? 아니, 사실 그는 알고 있을 것이다. 제우스를 포함한 최상위 성좌의 부재는 성운 전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을.

고개를 끄덕이자, 헤르메스는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어내며 자리를 벗어났다.

다음은….

크로노스는 팔짱을 낀 채, 나를 지긋이 바라보고 있었다.

“자네는 결국, 137군단을 단 한 명도 죽이지 않았군.”

“뭐, 상황이 좋게 풀렸으니까요. 그래도 제우스와 싸우면서 많은 이들이 다쳤습니다. 남은 성운들은 분열된 <올림포스>와는 달리 만만은 적들이 아니겠죠.”

“그렇지. 자네는 어찌할 생각이지?”

“일단 형을 부활 시키고 모든 성운 전을 승리로 이끌 겁니다.”

“그렇군….”

크로노스는 무언가 할 말이 있어 보였다.

“더 할 말이 있는 겁니까? 이젠 137군단과 함께 독자적인 성운을 만들어도 될 텐데요.”

“……”

침묵을 유지하면서도 그 눈에는 강한 의지가 깃들어 보였다.

크로노스는 헛기침하며, 내게 말했다.

“크흠, 큼!! 자, 자네를….”

“뭐라고요?”

너무 작은 목소리에 되묻자, 크로노스의 안면이 선홍빛으로 물들더니 입을 열었다.

“자, 자네와 같이 가도 되겠는가…? 137군단의 군단장은 자네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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