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4화
episode(20) 신과 함께#3
클리어되었다는 시스템 로그와 함께, 현계로 나온 뒤.
“큭…!!”
갑작스레 심장에 고통이 밀려들었다. 잠깐 안 보인 것이 궁금했던 것인지….
나오자마자 고통을 주었다는 건, 제우스가 나를 부르고 있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그렇다는 건, 두 가지 가능성이 있었다. <대륙>과의 전쟁에서 지휘관을 잡아낸 공로를 치하한다던가, 갑자기 사라진 것이 궁금했을 테지.
물론, 내가 생각하는 것은 전자였다. 제우스 본인의 번개가 박혀있다는 건 반란을 꾀할 수 없다는 소리고. 나아가 게이트에서 나오자마자 고통을 주었다는 건 심장에 박힌 번개가 그 기능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를 확인했을 가능성이 크다.
빌어먹을 새끼.
전 우주에서도 형인 이민혁을 꽤 귀찮게 했던 기억이 떠오르자,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아니, 아직이다. 일단 번개부터 제거해야 해.
침착함을 유지하며 오룡거를 소환해내며.
“지금 가겠습니다.”
제우스의 기운이 느껴지는 방향으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제우스라면 듣고 있겠지.
* * *
오룡거에 올라타 곧바로 <올림포스> 내부로 들어서자, 이전과 같이 경비병이 막아서지는 않았다. 이미 <대륙>의 지휘관을 잡아내고 더욱 강해졌다는 것이 퍼졌을 테지.
제우스를 만나러 이동하는 길에, 광활한 <올림포스>의 내부가 눈에 보였다. 곧 사라질 것들이 이렇게 장황하고 아름다워도 되는 걸까. 싶던 찰나.
“여! 왔냐!?”
허공에서 장난기가 가득한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헤르메스?
시선을 돌린 곳에는 헤르메스가 허공에 떠 있었고, 뭐가 그렇게도 좋은지 헤실헤실 웃으며 내게 다가왔다.
“볼일은 잘 마쳤냐?”
“덕분에요. <대륙>은요?”
“계획대로지. 이미 최전선은 무너졌고 2차에 이어 3차 침공이 이루어질 거다. 아버지께서 올바른 선택을 했다며 아주 좋아하시던데?”
“그렇겠죠. 단기간에 승패를 결정지을 정도로 <대륙>은 약한 성운이 아니니까요.”
“일단, 가자.”
헤르메스와 나눈 대화는 얼핏 보면 <올림포스>의 승패를 걱정하고 <대륙>과의 전쟁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나누는 것이었지만, 숨은 속내는 서로 간 눈치를 챌 수 있었다.
볼일을 다 마쳤다는 건, 번개를 제거할 순간이 다가왔다는 것이며 아버지께서 좋아하시더라는 말은 제우스는 나를 의심하지 않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이었다.
희미한 미소를 지어낸 나와 헤르메스. 동시에 지팡이를 조작해 순식간에 제우스의 거처로 이동했다.
파앗!
일전에도 보았지만, <올림포스> 내에서 가장 웅장한 곳을 뽑으라면 당연하게도 제우스의 신전이었다. 멸망이 시작되지 않았으면 와보지도 존재 자체도 몰랐을 것을.
뭐, 곧 사라지겠지만.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제우스의 신전으로 들어서자, 이미 제우스가 옥좌에 걸터앉아 나를 맞이했다.
“오오, 왔는가?”
몹시도 즐거워 보이는 표정을 짓는 제우스. 말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그러니까, 라이벌 성운을 곧 제거할 수 있다는 생각에 신이 난 것 같았다.
내 손에 죽을 날이 멀지 않았으면서도.
“소식은 들었습니다. <대륙>의 1진영을 격파하셨다고.”
“으하하핫, 그렇다. 자네 덕이지. 포세이돈과 헤라의 반대가 있었으면서, 밀어붙인 내 선택이 들어맞은 것이지.”
최상위급 주신이어서 그런지, 성좌들의 진명을 거리낌 없이 말하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면서 여전히 그 위상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오른 주먹을 심장에 가져다 대며 말했다.
“그렇습니까? <올림포스>를 위해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처음엔 이용하고 버릴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137군단을 맡기자마자 단 한 명의 사상자 없이 <대륙>의 지휘관을 잡아냈다는 것에 놀라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이대로 자네를 보내는 건, 내가 허락지 않는다.”
제우스의 번개가 주변에 번쩍! 내려치더니, 내 주변에 박혀 들었다. 금빛을 휘황찬란하게 뽐내며 닿은 주변이 모두 검게 그을린 것이 가지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신기, 왕좌의 번개
헤파이토스가 제우스의 피와 살을 매개체로 만든 것으로 닿는 모든 것을 재로 만들어낼 수 있는 파괴력이 강한 신기였다. 이 신기는 당연하지만, 번개를 다룰 수 있는 성좌여도 제우스 정도의 강함을 보이지 않으면 줘도 쓰지 못하는 제한이 상당한 것.
“당장, 내 신기를 건네어 <올림포스> 전체의 지휘를 맡기고 싶다만…. 그것은 아무리 강한 현계인이라도 무리겠지.”
“맞습니다. 감히, ‘신들의 왕권’의 신기를 사용하겠습니까?”
“으하하핫, 좋구나. 그래, 원하는 것을 말해 보라.”
제우스는 무엇이든 들어줄 생각으로 호탕하게 웃었다.
헤르메스를 힐끗 쳐다보자, 제 아버지를 속였다는 것이 즐거운지 어깨를 으쓱이며 슬쩍 웃어 보였다.
알아서 하라는 건가.
“감히, ‘신들의 왕권’께 아룁니다.”
“그래, 말해 보라. 무엇이든 들어줄 테니.”
신기 창고를 개방하여 모든 신기를 다룰 수 있는 허가를 내려달라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미 헤파이스토스가 신기를 제작 중이었고. 제우스의 신기를 다룰 수 없는 것처럼 내 것이 아닌 신기는 그 힘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한 가지.
“감히 하찮은 현계인인 제가, 암브로시아(Ambrosia)를 원해도 되겠습니까?”
“……!?”
제우스는 흠칫 놀라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표정을 풀어냈다.
암브로시아
<올림포스>에 신들이 마시는 물, ‘넥타르’가 있다면 음식으로는 ‘암브로시아’가 있다. 내려져 오는 전승만 놓고 보자면 이것을 섭취하면 불사(不死)의 신체를 가질 수 있다는 것. 그러나 전승은 전승일 뿐, 그런 기능은 없다.
다만, 강해진 신체와 능력을 갈무리해 주어 더 확실하게 그 기운을 자리 잡을 수 있게 돕는 음식이었다.
생긴 것은 일반적인 사과에 금칠한 것처럼 ‘황금 사과’의 외형을 가지고 있지만 이제 막 각성을 이룬 내게는 꼭 필요한 것 중 한 가지였다.
넥타르까지 얻어내면 좋으련만, 그건 안 되겠지.
제우스는 잠시 고민하더니, 헤르메스를 불러들였다.
“아들아, 암브로시아는 충분히 있느냐?”
“네, 아버지. 성운 전이 한참이라 생산을 멈추었지만, 저희 12 주신이 먹을 수 있는 양은 충분합니다.”
“그렇군, 네 생각은 어떠하느냐.”
“감히 아뢰건데….”
헤르메스는 제우스의 의심을 조금도 만들어두고 싶지 않았는지, 애써 안된다는 말과 함께 나를 향해 윽박지르기 시작했다.
“하찮은 현계인이 어찌, 신들의 것을 탐내는가!!”
이놈 이거, 연기 한 번 하더니 맛 들였나?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헤르메스의 연기를 받아내자, 제우스는 헤르메스에게 말했다.
“그만.”
“네, 아버지.”
제우스의 제지에 헤르메스가 고개를 숙이며 제우스의 옆에 섰고.
“그래, 내가 먹을 분량을 하나씩 건네주면 되겠느냐?”
하나씩…? 설마.
“말해 보라, 그대는 성운 전에서 그 활약을 보였으니. 자격은 충분하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전 고작 현계의 인간인데….”
“상관없다. 12 주신 그 누구도 이루지 못한 것을 현계인이 이루었다. 그것만으로 자격은 충분할 터.”
“감사합니다. ‘신들의 왕권’이여…!!”
넙죽 엎드려 고개를 푹 숙여내자, 헤르메스를 시켜 ‘넥타르’와 ‘암브로시아’를 가져오게 했다. <올림포스> 내부에선 어떤 곳이든 갈 수 있는 그였기에 오래 기다릴 필요는 없었다.
“자, 12 주신은 신경 쓰지 말고 원하는 바를 이루거라. 앞으로도 지켜보겠다.”
“<올림포스>를 위하여!!”
내 외침과 함께 흐뭇한 미소를 짓던 제우스는 금세 자리에서 사라졌다. 모든 행동이 연기임은 헤르메스도 마찬가지였지만 상황이 생각보다 잘 풀리는 것에 온몸에 소름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형, 얼마 안 남았어…!!
헤르메스는 넥타르와 암브로시아를 하나씩 건네며 말했다.
“한 번에 먹게?”
“그럼 한 달간 나눠 먹습니까? 양도 적은데.”
“크하핫. 알겠다. 나는 준비를 하마.”
“기회는 단 한 번입니다.”
“성운 전에 이기는 방법 말이지?”
헤르메스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말하는 성운 전은 비로소 신 <올림포스>를 위한 길로 배신의 준비를 말하는 것이었다. 제우스가 보고 듣기에 돌려 말한 것일 뿐.
그제야 헤르메스는 비장한 표정을 지어냈다.
넥타르와 암브로시아를 한입에 섭취하자, 몸의 변화는 서서히 일어났다. 어지럽던 기운들이 자리를 되찾아 가듯, 온몸이 따듯해졌다.
내 것이 아닌 것들이 내 것이 되는 듯한 그런 기분.
시간을 들여 각성의 힘을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 옳았지만, 편법이 있다면 그 방법을 사용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었다.
* * *
벌써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헤파이스토스에게 신기까지 건네받았다. 아주 만족스러운 여섯 자루의 검. 마치 나를 위한 신기라고 보아도 무방했다.
어검술, 심검을 이용해 자유자재로 검을 움직이는 내게, 여섯 자루의 검과 이제는 왼팔까지 생긴 두 팔까지 보다 능동적인 전투가 가능할 것 같은 생각마저 들었다.
“이제 때가 되었습니다.”
“넥타르랑 암브로시아는 쓸만했냐?”
“물론입니다. 덕분에 상당한 기운이 제 것이 되었죠.”
“크하핫, 어디 한번 뒤집어볼까!!”
헤르메스는 허공에 지팡이를 휘둘러 다시 한번 ‘검은 날개를 가진 밤의 여왕’에게 이동했다. 여전히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이 우리를 반겨냈고.
“준비는 모두 끝마쳤나요?”
여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이제 첫걸음을 내디딜 수 있겠습니다.”
“그럼, 시간이 없으니 두 분 먼저 제거해드리죠.”
고개를 끄덕이자, 여왕의 성흔이 발현되며 나와 헤르메스의 전신을 휘감았다. 모든 것을 무(無)로 돌리는 힘이자, 여왕만이 사용할 수 있는 성흔. 공격도, 방어도 심지어 <올림포스>의 수장인 제우스의 힘까지.
그녀의 힘은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이질적이었다.
파앗-!
심장 주변이 따끔거리며, 무언가 터져나가는 소리가 들려왔고.
헤르메스와 나는 동시에 심장을 부여잡으며 말했다.
“이, 이게 가능하구나…. 아버지의 힘은 절대적이라 생각했는데…!!!”
“잘되었군요. 이제 이곳을 벗어나면 당신이 배신했다는 건 제우스가 알게 될 겁니다.”
“나 뿐이냐? 너도 마찬가지야 인마.”
“아.”
헤르메스의 말이 맞았다. 이곳은 여왕의 사유지로 아무런 것도 볼 수도, 듣지도 못하는 곳이었지만 이곳을 벗어나면 말 그대로 제우스는 분노할 것이다.
나와 헤르메스가 동시에 심장에 박힌 번개를 제거했으니.
헤르메스가 말했다.
“여왕이 이곳 외에서 힘을 쓸 수 있는 건, 세 주신 그러니까 아버지의 형제 중 한 명이 영멸해야 해.”
“당장 가능성이 큰 건, 그 성좌뿐이겠죠.”
“할 수 있겠냐?”
“물론이죠.”
이제 곧 게이트에 있던 한민성들이 성운 전에 도달한다면, 그들은 내 힘이 되어 싸워줄 것이다. 가장 먼저 취해야 할 행동은 제우스 삼 형제 중, 한 명을 제거하는 것.
그로 인해 여왕의 봉인을 푸는 것이 가장 처음으로 해야 할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