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읽은 소설의 주인공이 성좌였다-193화 (193/206)

제193화

episode(20) 신과 함께#2

한민성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싱긋 웃는 김혜연.

“민성 씨는 그 오랜 세월 너를 기다렸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지?”

“당연하지.”

단 한순간도 걱정한 적은 없었다.

자기 대신 나와 동생이 환생할 때도 직접 형을 구할 수 없다는 것에 크게 낙심했었으니.

티격태격하면서도 형을 얼마나 믿고 따르는지는 곁에서 본 나이기에 알 수 있었다.

한민성은 공중에서 스킬을 사용하는가 싶더니, 하늘 전체에 울려 퍼지듯 입을 열었다. 그것은 무림의 ‘사자후’와 같은 스킬로 내공을 사용한 음공과도 같은 것이었다. 조금 다르게 사용하면 이런 식도 사용이 가능한 것이었다.

[들리는가?]

한민성은 침착하게 말을 시작했다.

[그 오랜 세월, 우리는 기다리고 인내했다. 그 결과, 우리가 기다렸던 이가 이곳에 왔고, 우리를 구제했던 ‘이민혁’을 구할 순간이 도래했다.]

아무도 듣지 않는 것 같았지만, 한민성의 목소리는 게이트 전체에 울려 퍼지듯 번져나갔다. 사람들이 어떤 표정일지, 어떤 마음일지는 당장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없었지만….

김희연의 거처에 모여 연회를 벌이는 이들은 모두가 비장한 눈빛으로 한민성의 말을 경청했다.

[한 가지만 말하겠다. 네놈들의 목숨은 누구에게 구원받은 거지? 나는 ‘이민혁’을 구하러 갈 것이다. 오기 싫다면 오지 않아도 좋다. 하지만…!!]

콰앙!!!

한민성이 하얀 성검을 꺼내 들어 전방에 보이는 거대한 산 하나를 갈라내며 말했다.

[우리가 ‘이민혁’ 덕분에 살아갈 수 있었듯, ‘이민혁’ 또한 우리 덕에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을 다잡은 이들은 김희연의 거처로 모여라.]

확실히 말은 잘하지 못하는 한민성이었지만, 나름대로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함이었음은 잘 알고 있었다. 누구보다 형을 구하고 싶은 그였기에.

한민성은 내게 이동해 말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다. 오지 않는다면 평화에 찌들어 목숨을 유지하고 싶은 자들뿐이겠지.”

“넌, 괜찮겠냐?”

“무엇을 말하는 거지?”

“그 힘을 사용해서 게이트를 부순다면….”

“……”

한민성은 말이 없었다.

당연한 소리지만, 이 게이트의 등급은 EX+였다. 이만한 게이트를 부순다는 것은 엄청난 ‘카르마’가 필요하다는 것. 지금, 이 순간만을 기다려왔을 테지만 힘의 사용은 말처럼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네놈이 신경 쓸 것은 아니다. 이민혁을 구하는 것에나 신경 써라.”

“말하는 것 하고는…. 갑자기 차정우가 보고 싶네.”

한민성은 제 할 일이 끝났다며, 금세 등을 돌려 자리를 벗어났고.

“안아, 밖에 상황은 어때?”

김희연만이 내 곁에서 상황을 물어왔다.

“나쁘지 않아. 당장 말할 수는 없지만….”

“걱정하지 마. 이곳은 ‘해동의 천왕랑’ 덕분에 외부와 차단되어 있으니까.”

“아….”

외부와 단절된 공간이라. 그렇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내 동료들의 이야기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은 당연했고, 제우스와 관련된 것도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될 테니.

“간단하게 말하자면, 이제야 이곳에 도달했지만, 그전까지는 제우스에게 당했었어. 심장에 번개가 박혀있지….”

“그놈은 전 우주나 지금이나 다를 것이 없구나. 제 자식들한테도 그러더니….”

“그것만이 안심할 수 있었을 테니까. 자신도 아버지를 죽이고 <올림포스>를 장악했듯, 똑같이 당하는 것을 걱정하는 거겠지.”

“방법은 있는 거지? 응, 당연하지.”

김희연은 안심했다는 듯, 숨을 크게 내쉬며 나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그 표정에서 느껴지는 건, 안쓰러움이었다.

“누나, 너무 걱정하지 마. 내 동료들은 곤륜산에 들어가 수행 중이야. 형 덕분에 신선들이 도와줬거든.”

“그들은 민혁 씨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으니까.”

“맞아, 형이 아니었으면 전 우주에서 기록자의 자리는 요마계에 빼앗겼을 테니까.”

“오공 씨는 잘 있는 거니?”

김희연이 말하는 안부는 전 우주에서 있던 일로, 손오공은 형의 동료였다. 지금은 그 기억마저 없는 것 같지만.

“잘 있어. 사제들과 아린이…. 아니, 민지 뒷바라지하느라 정신없는 것 같지만.”

“아린이?”

“이번 우주에서 민지는 내 동생이 아닌, 부모를 잃은 어린아이였어.”

“그것도 운명이었겠지.”

“응. 다들 날 도우려고 곤륜산에서 수행 중이야.”

김희연은 무언가 놓친 것을 깨달았는지,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너…. 설마, 혼자서 성운 전에 참가한 거니?”

“……”

“미쳤어!!”

“방법이 없었어. 그렇지 않으면 동료들은 살아남을 수 없었으니까.”

“그렇게나 성장을 못한 거야?”

“응, 이번 우주는 모두가 고르게 성장한 것이 아니야. 내부의 용사도 내 강함엔 절반도 따라오지 못할 정도지.”

“…….”

차정우는 강하다. 하지만, 모든 각성을 이룬 내 강함에 비하자면 절반도 따라오질 못할 정도였다. 따라서 이번 곤륜산의 수행이 중요한 것이었다.

김희연은 씁쓸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미소를 보였다.

“우리 안이, 정말 고생 많았네. 아무것도 몰랐을 텐데.”

“그러게. 형이 성좌로 내 배후성이 돼 주었을 때는 얼마나 날 굴려댔는데.”

“민혁 씨는 장난기가 많았으니까.”

“아무튼, 이 게이트에 존재하는 동료들과 곤륜산의 동료들이 나왔을 땐, 비로소 성운 전에 승리할 수 있을 거야. 그만이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고.”

내 말에 김희연은 그저 웃기만 할 뿐이었다. 많은 것을 이루기 위해 싸우는 건 나와 형인 이민혁뿐이고 오히려 형의 연인인 김희연은 이곳에서 평화로운 삶을 바랄 것이다.

물론, 형이 없다면 그마저도 할 수 없었으니 지금까지 기다린 거겠지만.

“누나, 우리는 행복해질 거야.”

“그러길 바라야지….”

* * *

“더 이상 오지 않는 건가?”

한민성은 나지막하게 혼잣말을 내뱉었다.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지만, 게이트 내에 존재하는 사람들 수를 생각하면 절반도 되지 않은 숫자였다.

제 말이 먹혀들지 않은 것에 조금 시무룩해진 한민성이었지만, 금세 정신을 차리곤 내게 다가왔다.

“더 기다릴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한민성이 하는 말에 조금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도 상황이 절망적으로 흘러간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김희연의 말에 따라 곤륜산에서 수행 중인 동료들은 내게 많은 힘을 줄 테니까.

“충분해, 이곳에 남고 싶은 이들은 계속해서 살아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지.”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응, 적어도 남은 이들은 우리를 기억해줄 테니까. 역사로, 신화로 계속해서 퍼질 거야.”

“흥, 이민혁 같이 낭만을 말하는군.”

“어쩔 수 없잖아? 난 형의 동생이니까.”

이야기를 끝마치며, 모여든 사람들에게 앞으로의 여정과 누군가는 죽을 수도 있다는 말까지, 많은 말을 해주었다.

그런데도 모여든 사람들의 눈빛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모두가 형에게 도움을 받았거나 목숨을 구제한 자들. 게이트 속에서 오랜 세월을 살았으면 이제는 죽어도 좋겠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죽기 위해 싸우는 자들, 살기 위해 싸우는 자들, 성좌가 되어 영원히 살고 싶은 자들.

각자가 생각하고 움직이는 이유는 달랐지만, 이곳에 모여든 대부분은 어쩌면 그 목표를 이룰 것이다. 나는…. 형과 함께 살아남을 것이니.

한민성에게 말했다.

“이곳의 시간 배율은 현계와 같아. 그러니, 앞으로 일주일 뒤에 게이트를 부수고 나와 줘.”

“그동안 네놈 혼자 뭘 하겠다는 거지?”

“심장에 박힌 제우스의 번개부터 제거해야지.”

“멍청하군, 그딴 놈한테 약점이나 잡히다니.”

“후, 넌 모른다, 인마. 아무튼 내 말대로 해줘.”

“……”

말은 하지 않았지만, 한민성이 게이트를 부술 수 있으면서도 지금까지 기다린 이유는 형을 구하기 위해서는 환생한 나와 동생의 힘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그 전부터 게이트를 부수고 나올 수 있었으면서도, 그렇게 되면 형인 이민혁과 ‘해동의 천왕랑’의 계획이 어긋나는 것이니까.

한민성을 향해 말했다.

“그런데…. 난 어떻게 나가냐? 클리어 조건이 있다는 건, 무언가를 행해야 하는 거 아니냐…?”

한민성이 한숨을 길게 내뱉으며 답했다.

“멍청한 놈….”

“뭐라고 했냐.”

“멍청하다고 했다. 이곳에 들어왔을 때 눈치를 당연히 채야 하지 않은가?”

알 수 없는 말만 되풀이하는 한민성을 쥐어박고 싶은 마음이 솟아나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게이트를 부수지 않고서도 나갈 방법을 알기에 조용히 듣기로 마음먹었다.

한민성이 말했다.

“이 게이트는 몬스터도 없고, 테마도 존재하지 않는다. 왜인 줄 아나?”

“그야, 조건 없이 목숨을 유지하기 위한 곳이니까…?”

“그렇다면 클리어 조건은 간단하지 않은가?”

“그러니까 뭘….”

“후…. 게이트 주인의 허가만 있으면 이 게이트는 클리어 된다. 즉, 곧바로 나갈 수 있다는 거지. 물론, 보상 따위는 없지만.”

“아?”

한민성이 하는 말은 간단했다. 시간을 벌기 위한 게이트. 그 게이트기에 주인의 허락만 받으면 자동으로 클리어 돼 밖으로 나갈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런데….

그것을 안다고 해봤자, 이 게이트의 주인은 형인 이민혁이거나, 성좌 ‘해동의 천왕랑’일 가능성이 컸다.

못 나가는 거 아니야…?

한민성은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차기 시작하더니, 경멸의 눈빛을 계속해서 쏘아 보냈다.

“네놈은 멍청한 것인가, 아니면 생각이 없는 것인가?”

“미안한데, 말 돌리지 말고 바로바로 말해주면 안 될까? 안 그래도 쥐어박고 싶은 넌데, 더 패고 싶잖아.”

“이민혁을 구한 다음, 다시는 그런 말을 못 하게 해주지.”

“해보시든지.”

한민성은 여전히 경멸과 멸시에 가까운 눈빛을 내게 보내며.

“게이트를 부술 수 있다는 건, 주인이 누구인지도 금방 알 수 있지 않나?”

설마…?

설마는 곧 현실이 되어 내게 다가왔다. 왜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했을까? 이 게이트에서 형과 ‘해동의 천왕랑’만큼 강한 이가 있다면 당연히 한 사람.

“너냐?”

“당연한 것 아닌가?”

한민성은 더 이상 나와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지, 허공에 시스템을 만지듯 손가락을 이리저리 움직여댔다.

그 모습을 바라본 나는 다급하게 말했다.

“자, 잠깐만!!”

“……?”

귀찮은 듯 인상을 찌푸리는 한민성.

역시, 이놈은 차정우와 형제일 수도….

“일주일, 딱 일주일 뒤에 나와.”

“……”

“제우스의 번개를 치우지 않고서는 자유롭게 행동할 수 없으니까.”

“멍청한 놈, 고작 제우스 따위에게.”

“……”

한민성의 말에 할 말이 없어진 나는 등을 돌렸다.

“아무튼…. 일단 밖에서 보자.”

한민성은 아무런 말없이 허공에 시스템을 만지작거렸다. 그가 어째서 이 게이트의 주인인지, ‘해동의 천왕랑’은 왜 보이지 않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끝이 멀지 않았다는 건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화악!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