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읽은 소설의 주인공이 성좌였다-192화 (192/206)

제192화

episode(20) 신과 함께#1

시스템 로그만 봐도 ‘재미로 삶을 반복하는 자’의 게이트라는 것이 눈에 보였다. 처음부터 나를 못살게 굴면서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이. 그러나 무리하게 힘을 사용해 언젠가부터는 보이지 않던 나의 배후성.

형….

비로소 나는 이곳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사실, ‘재미로 삶을 반복하는 자’는 우연히 얻은 수식언일 뿐, 그는 단순한 재미로 삶을 반복한 것이 아니었다.

부족해진 ‘카르마’를 얻어내기 위해 계속해서 다른 생을 반복 한 것일 뿐. 재미가 아닌 살고자 하는 필사적인 것이었다.

“너무 늦었다, 형. 조금만 기다려.”

혼잣말을 나지막하게 중얼거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른 게이트와는 다르게 거대한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고 근처에서 느껴지는 몬스터같은 건 전혀 없었다.

평화롭기만 한 게이트 속.

몸을 움직여, 마을의 중심으로 축지를 사용했다.

사삭.

순식간에 중심지로 이동하자, 주변에는 상점과 집 같은 것들이 질서정연하게 지어져 있었다.

이곳에 이 마을에 그들이 있다. 수백, 수천 년간 게이트 속에 갇혀 나와 형을 기다리는 그들이….

내 생각이 맞았다면, 이곳의 클리어 조건은 누군가와 싸우거나 전쟁을 벌이는 것이 아니다. 이곳은 단순히 전 우주에서 형이 살린 지구의 인간들로 모두가 멸망에서 살아남은 이들이었다.

게이트 속 시간이 멈춘 채로 지금까지 이어온 것이었다. 그러니, 그들도 죽지 않고 살아있을 가능성이 컸다. 나와 형 그리고 동생이 마음을 주고 같이 멸망에 맞서 싸운 가족 같은 이들이.

“오, 김 씨! 이것 좀 들고 가! 채소가 아주 잘 익었어!!”

“으하하핫. 자네 덕에 신선한 채소도 먹고, 매번 고맙네!”

사람들의 사이는 이웃 주민이면서도 사이가 좋아 보였다. 내가 먹지 않으면 주변에게 나누어주었고, 상점이 있다고는 해도 물물교환을 이루며 서로가 필요한 것들을 얻어냈다.

그 모습에, 눈가가 촉촉해지는 것이 전 우주에서의 기억들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이곳을 벗어나기 전만 해도 이 정도로 성장한 마을은 아니었다. 무에서 시작된 나라를 개척한 것이었다.

[성인(聖人)의 기운 LV.MAX]

곧바로 스킬을 사용해, 주변 모든 것들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 있구나…. 있어!! 그들이 살아있다!!

몸을 움직이려는 찰나.

뒤쪽에서 여리여리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 너…. 설마 안이니?”

“……”

뒤를 돌아보고 싶었다. 당장, 뒤를 돌아 드디어 이곳에 돌아왔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마음과는 다르게 돌아볼 수 없었다.

촉촉하던 눈가에선 여성의 목소리를 듣자, 눈물이 흘러내렸기 때문에.

“아, 안이 맞아? 안아!!”

타타탓.

한참을 돌아보지 않자, 여성은 빠른 속도로 달려와 등 뒤에서 나를 끌어안았다. 아무런 말도 없이 한참을….

먼저 입을 연 것은 나였다.

“누나, 나 다녀왔어.”

“고생했어…. 진짜 고생 많았어.”

* * *

여성의 거처로 이동한 뒤, 한참 동안 대화를 나누었다. 그동안의 이야기와 끝이 머지않았음을 알리는 것이 내 일이었기에.

이들은 나와 동생을 믿고 게이트에서 벗어나길 기다리고 또 기다린 것이었다.

“누나, 다른 사람들은?”

“모두 이곳에 있어. 민혁 씨의 몸도….”

“……”

이민혁.

내 형이자, 스킬 ‘각성’을 건네고 카르마로 겨우 생을 유지하며 나를 도운 이. 이곳에도 형이 존재했다. 물론 영혼 없는 몸뚱이뿐이었지만….

“형이 많이 도와줬어. 누나도 알지? 형은 쓸데없이 정의감 넘치는 바보인 거.”

“후훗, 알지. 그래서 우리가 살아있는 거고.”

“바보 같은 놈.”

처음 고블린의 게이트에서 나를 굴려대던 것이 문뜩 떠올랐다. 상당히 약이 올랐던 나였기에, 빌어먹을 성좌라며 욕지거리를 내뱉었건만. 그놈이 형이었다니.

나는 여인에게 물었다.

“모두와 만나고 싶은데…. 다들 이곳에 있는 거 맞지?”

“응, 모두 오고 있을 거야. 내가 널 발견한 건, 민혁 씨가 쓰던 스킬을 알아채서였으니까.”

여인은 나를 향해 환한 미소를 내보였다.

김희연. 누나라고는 부르지만, 사실 친누나는 아니었다. 형의 연인으로 부모님을 잃은 충격에 전선에서 이탈한 그녀. 다친 이들을 치유해주며 형과 내 뒤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이였다.

그녀와 대화를 나누기를 한참이 지났다.

쿠왕!!!

밖에서 굉음과 함께,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너무 강한 힘에 문짝은 부서지고 말았지만.

“그놈은 어디 있지?”

조금은 흥분한 표정의 사내. 사내는 차정우와 같이 풀 플레이트 아머에 하얀 망토를 걸치고 있었다. 망토 사이로 보이는 성검은 그가 누구인지 단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

“여, 왔냐? 용사 나부랭이?”

“……”

한민성. 차정우와 같이 전 우주에서 ‘내부세계’의 용사. 형과 라이벌 관계였지만 결국 형을 믿고 등 뒤를 맡긴 이였다.

물론, 나와 사이는 좋지 않았다. 서로 형을 구하려 다툼을 멈추지 않았었으니까.

한민성은 두 눈을 찌푸리면서도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오래 걸렸군. 나였으면 더 빨리 이곳에 도달했을 것이다.”

“그래, 너였으면 이다음 우주에서나 왔겠지.”

“네놈의 주둥이는 언제나 후려치고 싶군”

“마찬가지야. 왜 아직도 용사 행색이람?”

한민성이 무장을 해제하지 않고 지낸 이유는 알고 있었다. 언제건 형과 함께 싸울 수 있게 지낸 것이었다. 알 수 없는 시간을, 수백, 수천 년 동안을.

“나와라.”

“좋은 생각이다.”

한민성은 손가락을 까닥거리며, 나를 밖으로 불러내었고.

저벅, 저벅.

나 또한 지지 않고 그를 따라나섰다.

거대한 공터에 나와 한민성 그리고 김희연이 여전하다며 웃음을 짓고 있었다.

“용사 나부랭이, 그동안 조금은 강해졌냐?”

“네놈은 성검도 필요 없겠군.”

“말투를 보니, 그놈이 떠오른다. 쥐어패고 싶은 그놈이.”

“……?”

“있어, 너랑 같은 용사 놈이. 용사들 말투는 죄다 그 모양이냐? 무슨 유행도 아니고.”

“혀가 길군.”

“내가 누굴 닮았겠냐. 우리 형이지.”

“흥.”

한민성은 성검을 바닥에 휙 던져놓은 뒤, 나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간단한 휘두름에도 주변 일대가 터져나가는 것이 역시 이놈은 강하다.

형 다음으로 강했던, 성좌가 될 수 있으면서도 형과의 의리로 그 자리를 마다하고 이곳에 머무른 그였다.

하지만.

휘릭.

꽈앙!!!

강함으로 치자면 나 또한 그에 지지 않을 정도로 성장했다. 서로 주먹을 여러 차례 나누면서도 누구 하나 밀리지 않았고.

몸을 우뚝 세운 한민성이 말했다.

“쓸만하군.”

“너한테 그런 말 듣고 싶지 않거든?”

한민성은 대답할 필요도 없다는 듯 몸을 돌려 내었다.

“느려터진 것들, 이제야 오는군.”

그제야 하늘을 날아오는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기 시작했다.

내부의 각 종족의 수장들, 외부의 나라 수장들, 죽은 자들과 형의 오른팔과 왼팔이 되어 주었던 이들까지. 그중에는 다이아나와 같이 전 우주의 최후룡도 존재했다.

* * *

사람들은 미어터질 듯이 많아졌고, 나를 환영하며 파티를 열었다. 그 파티의 중심엔 당연히 내가 있었다. 그동안의 일을 모두에게 말하자, 누군가는 눈물을 흘렸고, 누군가는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한명 한명이 소중한 이들이었다.

나는 전 우주 최후룡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잘 지냈냐.”

“물론이지, 인마. 내가 누구냐? 우주 최강의 최후룡님 아니냐!”

“여전하네, 병이 낫지 않은 건….”

“응?”

“중2병이라고 그런 게 있어.”

아탈로스. 전 우주에서 내부세계 최후룡이었던 그. 생긴 것은 멀쩡한 청년이었지만 그것과는 다르게 굉장한 중2병 환자였다. 다이아나와 다른 종인 흑룡이어서 그랬을까. 조금만 어른스럽다면 다이아나와도 친구가 될 수 있을 텐데.

보나 마나 까일 게 분명하지.

아탈로스는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고생했다, 전우야.”

“그 말투 좀 어떻게 해보지.”

“으하하핫, 여전하구먼.”

“이번 우주에서 너와 같은 최후룡이 있다.”

“오!! 정말이냐!?”

오래된 친구를 만난 것처럼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아탈로스. 당연한 소리였다. 홀로 최후룡으로 지낸 세월이 워낙 길었기에, 동족을 만날 수 있다는 건 고향에 돌아갈 수 있다는 말과 다르지 않을 정도로 설레는 말이었다.

“그런데, 날개도 한쪽밖에 없고…. 네가 많이 도와줘야 할 거다.”

“하핫, 물론이지!! 최강의 최후룡쯤 되면 뭐든 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한 가지 말해주자면, 그 말투 계속 쓰면 싫어할 거야. 고치든지.”

“크흠…. 노력해보지.”

아탈로스는 엄청난 세월을 살아온 최후룡답게 그 지식이 방대하다. 그 때문에 전 우주에서 현재까지 버티기 위해 정신 연령을 어린 나이로 봉인한 것이었다.

처음부터 중2병 환자가 아닌, 세계의 지식을 통달한 최후의 룡이 아탈로스였다.

몸을 움직여 동료들과 인사를 나눈 뒤.

한민성과 김희연 두 사람을 불러냈다.

“궁금한 게 있는데.”

“물어봐, 뭘 고민하니?”

김희연은 어깨를 으쓱거렸고, 한민성은 내 질문의 의도를 금세 파악하곤 먼저 입을 열었다.

“이 게이트를 부수고 모두와 나갈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거지?”

그렇다. 나는 이곳에 들어올 수는 있어도 나가는 방법까지는 알지 못한다.

더군다나 무한한 삶을 살며 전쟁이 없는 이 장소에서 모두를 데리고 나가는 것이 가장 큰 고민이었다. 이제는 평화로운 이곳에서 살아간다면, 앞으로도 이들은 전쟁 없이 세상에서 저들끼리 살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나와 함께 나간다면, 다시 한번 전쟁을 치러야 했다.

내게 그런 자격이 있을까…?

“여전히 유약하군. 나갈 방법은 내가 가지고 있다.”

“뭐?”

“네놈의 형과 ‘해동의 천왕랑’이 만든 게이트 따위 내가 못 부술 거로 생각하나?”

“하하…. 그건 그렇지. 너도 괴물이었지.”

“단, 결정은 네놈이 해야 한다. 모두를 데리고 나갈지. 아니면, 싸우겠다는 이들만 데리고 갈지.”

“…….”

맞는 말이었다. 모두를 데리고 가는 건, 지극히 내 욕심. 그들이 있어야 성운전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에 반면 싸우겠다는 인원이 몇이나 될지 몰랐기에, 모두를 데리고 가지 않으면 성운 전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것.

두 가지 생각에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가야 한다는 사람만을 데리고 나가는 것.

가기 싫다는 사람은 놓고 가야 하는 것.

“결정은 네놈이 해라, 한 가지 말해주자면 네놈이 하는 선택은 모두가 받아들일 것이다.”

한민성은 결정할 시간을 주겠다는 듯, 팔짱을 끼고 눈을 감아냈고.

그 뒤를 이어 김희연이 입을 열었다.

“안아, 모두 민혁 씨를 좋아하고 따른 건 알지?”

“알지.”

“그들을 믿어. 이곳에 남고 싶다고 하면, 그건 그들 나름의 선택이니까.”

“존중해주는 게 맞겠지. 하지만….”

“조그마한 인원으로 현재 벌어지는 성운 전이 걱정되는 거야?”

“맞아. 현 우주의 동료들은 이 게이트에 존재하는 이들보다 그 강함이 현저히 떨어지거든.”

“…….”

혼자 성장하고 모든 것을 독식한 결과였다. 전 우주에선 모두가 협력하여서 한 사람 한 사람이 강했다면, 현 우주는 나를 제외하곤 성좌와 싸워 이길 수 있는 이는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다.

그마저도 도박에 가까웠지만.

김희연이 말했다.

“안아, 넌 그들을 믿니?”

“그야 당연히….”

“그들도 너를 믿을 거야. 인원이니, 전쟁이니 뭐가 중요하니?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지.”

“아….”

김희연의 말에 정신이 번뜩 들었다. 사실, 내가 걱정하는 건 승리였다. 모두를 위험에 빠트리기 싫어 그들을 믿지 않은 것이었다.

“누나, 나는….”

“그래. 너 하고 싶은 대로.”

마음을 다잡은 후, 한민성에게 말했다.

“사람들을 모아줘, 그리고 네 도움이 필요해. 도와줄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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