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0화
episode(19) 단 하나의 게이트#11
두 성좌의 연기에 비릿한 웃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그것도 모른 채 치우는 호탕한 웃음소리를 내며 말했다.
“이 정도의 전력이라면 훗날 <대륙>에 큰 힘이 될 것이야.”
“맞습니다. 저와 이들의 강함은 곧 당신을 위한 힘.”
나와 두 성좌는 동시에 고개를 숙여냈다. 무언가 주고받은 것은 아니었지만, 치우를 속여내기 위해 한마음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었다.
헤르메스와 크로노스는.
촤릉.
척.
동시에 자신들이 사용하는 신기를 꺼내었다.
“주군을 위해, 저기 <올림포스>의 성좌들을 바치겠나이다.”
“오오, 그리해주겠느냐!?”
속은 줄도 모르는 채로….
치우가 몸을 움직여 <올림포스>를 바라볼 때였다.
허공에 붕, 떠 있는 용광검과 헤르메스의 지팡이가 그리고 크로노스의 스퀴테가 동시에 치우가 바라보는 방향으로 따라 움직였다.
치우가 말했다.
“저곳을 지휘하는 성좌는 그렇군, 나와 같이 전쟁의 수식언을 받은 자인데…. 가능하겠나?”
“물론.”
나는 단숨에 모든 버프를 사용하고 나아가 정령화까지 사용했다. 흔들리는 지면이 그 강함을 보여주었고, 치우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크하하핫, 이것이 신 <대륙>을 위한 첫걸음이로구나. 자!! 보이거라 그대들이 내 곁에서 <대륙>을 이끌어갈 힘이 있는지를.”
치우는 무방비하게 등을 보이며 계속해서 말했다.
“보이거라 그대들의 강함을!!!”
무엇이 그리 좋은지, 광기에 휩싸인 모습이었다.
“가라, 내 부하들아!!! 아레스의 목을 베어 오거라!!!”
치우의 여섯 팔이 <올림포스> 방향으로 뻗는 순간.
파천만뢰공, 홍염
그리고.
태극혜검
용광검에서 시작된 스킬들은 오롯이 한 명. 치우의 등을 향해 쏟아졌다.
콰과과과!!!!
그것을 신호탄으로 시작된 움직임은 한 가지였다.
헤르메스의 신기에서 뿜어져 나온 마력은 뱀의 형상으로 치우를 집어 삼켜냈고.
콰직!!!
크로노스가 휘두른 스퀴테인 거대한 낫이 치우의 전신을 일자로 그어냈다. 그림자마저 베어낼 수 있는 어둠의 힘이 잔뜩 담긴 힘이었다.
콰아아앙!!!
두 성좌의 힘이 동시에 치우에게 쏟아졌고, 이랑 진군에 상처를 입혔던 내 전력이 치우를 집어삼켰다.
쿠구구구구.
거친 흙먼지와 함께 사방 일대가 전부 터진 것이 그 위력을 증명해주듯, <올림포스> 12 주신 중 하나인 헤르메스와 전 <올림포스>에서 제우스 자리를 맡고 있던 크로노스의 전력과 나아가 중위급 성좌를 웃도는 내 힘은 그만큼 강렬했다.
거친 땅울림과 함께 나와 두 성좌는 동시에 눈을 마주쳤다.
“죽었나?”
헤르메스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하자.
“아, 아니다! 전열을 가다듬어라!!”
크로노스가 스퀴테를 치켜들었다.
두 성좌가 아무리 강해도 현재의 전력으로는 뒤편에 포진된 <대륙>의 병력을 이길 수는 없었다. 하지만 치우를 죽인다면? 그야말로 파죽지세로 몰아붙일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것이었다.
나는 양손에 홍염을 가득 실어내고 용광검을 머리 위로 띄워냈다.
연기는 서서히 걷히기 시작했고.
끄그그그그.
기괴한 소리를 내는 무언가가 연기 속에서 걸어 나오고 있었다.
저벅, 저벅.
그것은 곧 모습을 드러냈다. 우람해진 전신에 거친 공격의 흔적들.
“후욱…. 훅…….”
거친 숨을 몰아 내쉬면서도 쓰러지지 않겠다며 버티는 양 다리.
“비, 빌어먹을 새끼들이 감히 나를…!!!”
악귀와 같은 얼굴로 우리를 노려보는 이.
치우였다.
여섯 개의 팔은 이제 두 개밖에 남지 않았지만, 그 기세는 여전했다.
역시…. 최상위 성좌는 다르다 이건가?
넝마가 된 치우는 허공에 무언가를 쏘아내며 우리에게 말했다.
“감히 나를 건드리다니…. 현계인 따위를 믿는 것이 아니었거늘!!!”
“그러게. 믿은 네놈이 멍청한 거지. 누구 탓하지 말라고.”
“이놈!!!!”
치우의 일갈이 전장에 울려 퍼지며.
쿵! 쿵! 쿵! 쿵!
성운 <대륙>의 병력이 우리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치우가 쏘아낸 것은 <대륙>을 움직이기 위한 신호탄.
이것은 한 방에 죽이지 못한 우리들의 실착이나 다름없었다.
앞은 치우, 뒤는 <대륙>의 병력.
물론, <대륙>의 모든 병력이 있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 기세가 하나의 중소 성운과 맞먹는 기세였다.
“역시, 병력빨은 <대륙>이네.”
스킬, 냉정이 있으면서도 앞뒤로 엄청난 기세가 울부짖는 것에 등줄기가 오싹해지고 있었다.
척.
헤르메스는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며.
“크하하핫, 재미는 있었지만 무리였구먼.”
“아무래도 그렇겠죠. 충분히 예상했습니다.”
크로노스는 치우를 견제하며 말했다.
“이제 그 방법을 쓸 때인가?”
“뭐, 조금 이른 감은 있지만…. 치우 하나만 죽인다면.”
“너만 믿는다. 이거 망하면 우리 셋 다 죽는 거야.”
“그래서 플랜 B를 짜둔 거지 않습니까? 해보시죠. 안되면 뭐, 죽기밖에 더할까 봐요.”
“크크큭, 좋다!! 해보자고!!!”
헤르메스는 무엇이 그리 재미난 지, 치우를 공격한 후부터는 계속해서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그동안 전령을 하면서 많은 것이 억압되어 있었을까.
나는 축지를 사용하며, 치우를 향해 공격을 퍼부었다. 동시에 헤르메스와 크로노스는 각자가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다.
헤르메스는 <올림포스>로, 크로노스는 <대륙>으로.
지금부터는 시간 싸움이다.
홀로 <대륙>을 상대하는 크로노스와 치우를 막아서는 내가 얼마만큼의 시간을 끌어주는지에 따라 <올림포스> 진영으로 움직인 헤르메스가 <대륙>을 향한 총공격이 감행될 것이다.
나는 치우를 향해 비릿한 미소를 지어냈다.
“여, 대장 씨 기다렸나?”
“찢어 죽일 새끼!! 감히 신을 우롱하는 것이냐!?”
“당한 네가 잘못이지, 내 잘못이냐? 애초에 현계인을 믿은 네가 멍청한 거 아니야?”
“크큭, 좋다. 네놈의 그 아가리를 반드시 찢어주도록 하지.”
“해볼 수 있으면 해보시든지.”
콰앙!!!!
찰나의 순간, 치우의 공격과 양손에 쥐어진 홍염이 강하게 부딪혔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시간을 버티는 것일 뿐. 약해졌다고는 하나 전장에서의 치우는 강하다.
제우스가 번개의 좌로 군림하듯, 수식언에는 그만한 힘이 존재했다. 수식언도 없는 현계인이 아무리 강해졌다고는 해도 이길 수 있는 상대는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다시 한번 치우에게 온갖 스킬을 퍼부었다.
“크하아아!!!! 쥐새끼 같은 놈이!!”
할 수 있다.
데미지는 천천히 치우를 집어 삼켜냈고, 헤르메스와 크로노스의 공격이 없음에도 고통에 몸부림치는 치우였다.
쾅!! 콰콰쾅!!!!
뒤쪽에서 들려오는 굉음이 크로노스 또한 전투를 시작했다는 소리.
그를 도우러 갈 수는 없었지만, 정령화가 끝날 때까지 공격을 퍼붓고 그때도 죽이지 못한 상황이라면 시간을 때우면 그만.
크로노스가 죽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어디, 해 보거라!! 비루한 현계인아!! 네놈의 공격은 내게 닿지 않는다!!!”
치우는 남은 두 손에 자신의 신기를 소환해 용광검을 막아내었고.
챙-!!! 채챙!!!
내 양손에서 발동되는 홍염을 온몸으로 맞아내고 있었다.
아직도 부족하다고…?
자신이 있던 처음과는 달리, 전투의 향방은 조금씩 불리해져 갔다. 간단한 이유지만 정령화는 곧 끝이 날 테고 크로노스도 <올림포스>의 몇 배나 되는 <대륙>의 병력을 상대로 그다지 오래 버티지 못하기 때문.
심지어 크로노스는 상당한 힘을 잃은 상황이었다. <올림포스>의 주신이었던 적은 아주 먼 옛날. 지금은 나와 힘이 비슷하거나 아주 조금 우위일 것이 분명했다.
“으랴아아!!!!”
기합을 내지르며 치우에게 맹공을 퍼부었다. 하지만….
[스킬, [정령화 LV.2]의 사용 시간이 종료되었습니다.]
스스스스.
정령화가 끝남과 동시에 마력으로 만들어진 팔이 사라지고 말았다.
그 모습에 치우가 비릿한 미소를 지어냈다.
“반쪽짜리 힘이었구나, 큭큭. 어찌 그리 무지하느냐 현계의 인간이여!”
“아니. 무지한 건 너일 텐데?”
정령화가 종료되면서 힘의 차이는 극명해졌다. 지금의 난 치우에게 털끝도 건드리지 못하는 존재. 지금까지 입힌 데미지가 무색할 정도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 아가리는 여전하구나. 좋다, 내 네놈에게 최강의 힘으로 보답해주지.”
치우는 양손에 쥔 두 자루의 검을 하나로 합쳐냈다.
사아아아.
강렬한 악귀의 기운이 전장을 휘감았고.
“큭…!!”
무언가 전신을 강렬하게 패대듯, 고통이 밀려들었다.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저 공격에 맞으면 죽는다는 것을. 하지만, 나 또한 비장의 수는 남겨두었기에 당장은 버틸 수 있었다.
치우는 하나로 합친 검을 허공에 띄워내고 본래 있어야 할 네 자루의 검을 추가로 소환해 하나의 검으로 만들어냈다.
그 크기나 기운 자체가 용광검과 부딪힌다면 같은 신기였음에도 금세 깨져버릴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확실히 네 놈은 괴물이군.”
“아니, 신이니라. 전쟁터에서 나를 이길 수 있는 자는 모든 성운을 데려와도 손에 꼽힐 정도.”
“지랄. 자신감 하나는 대단하네. 빌어먹을 돌대가리가.”
“……”
현계인에게 모욕까지 당하자, 치우의 표정은 더욱 기괴하게 구겨졌다. 안 그래도 악귀 같은 얼굴이 저렇게까지 구겨지니 정말이지 쳐다보고 싶지 않은 몰골이었다.
“네놈을 믿은 바보 같은 내 행동에 속죄하는 의미니라, 한 방에 죽여주지.”
“할 수 있겠어?”
“언제까지 그 아가리를 자유분방하나 보자꾸나.”
치우의 여섯 자루의 검이 하나로 합쳐진 순간.
일전에 보았던, 신공표가 사용한 것은 어린애 장난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걸 맞으면…. 나는 확실히 죽는다.
“죽거라, 무지한 현계인이여.”
쿠와아아아아!!!
치우의 검이 하늘을 가르며 내게 떨어졌다. 그 속도는 피해낼 수 있다고 느렸다. 아니, 느려 보이는 것일 뿐. 느린 속도가 아니었다.
지평선 너머까지 잘라낼 것만 같은 검은 그대로 내 머리 위로 떨어졌고.
쿠콰콰쾅!!!!
나는 막지 않았다. 온몸이 사라져가는 고통이 들었음에도 치우를 향해 입꼬리를 올려냈다.
그 모습을 본 치우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마지막 할 말이라도 있었느냐? 재수 없게 웃기는.”
그의 말을 대답하기도 전에 온몸이 분해되어 사라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동시에 의식은 잠깐 꺼졌다.
번쩍!!
그 순간.
내 몸에서 이변이 일어났다. 반짝이는 빛에 휘감긴 몸이 순식간에 재구성되어 본래와 같이 돌아왔다. 온몸에 남은 상처는 단 하나도 없었으며, 재구성되면서 없었던 왼팔도 생겨났다.
“어?”
기사회생에서 진화한 스킬로 단 한 번 죽음을 벗어나 모든 체력과 마력 그리고 상처를 회복할 수 있는 스킬이었다.
[초속 재생 LV.1]
스아아.
[스킬, [초속 재생 LV.1]의 효과로 모든 스킬의 쿨타임이 초기화됩니다.]
왼팔이 생겨난 것과 시스템 메시지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한 채, 치우를 바라보며 말했다.
“안 죽었네? 역시, 네놈은 말뿐인 머저리군.”
“……!?”
치우가 가진 네 개의 동공이 엄청난 기세로 커졌다.
“어찌, 어찌 내 전력을 다한 공격을!!!!”
분노한 치우의 일갈이 울려 퍼졌고.
[스킬, [정령화 LV.2]을 발동합니다.]
파앗!!
다시 한번 스킬을 발동한 나는 치우를 향해 말했다.
“전쟁 신은 너 혼자가 아니야. 죽어라 멍청한 신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