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읽은 소설의 주인공이 성좌였다-184화 (184/206)

제184화

episode(19) 단 하나의 게이트#5

이걸로 확실해진 것은 한 가지. 성운에 속했다 하더라도, 결코 그들은 한마음 한뜻이 아니라는 소리였다. 나는 희미한 미소를 감추지 못한 채, 헤르메스를 향해 말했다.

“지금의 전, 약합니다. 그걸 모르지는 않을 텐데요?”

“알지.”

“그런데, 왜 저에게 그런 기대를 거는 겁니까? 여차하면 당신은 천벌(天伐)에 다음 생은 없을 텐데.”

“뭐, 이렇게 꼭두각시로 사는 것보다 한 번 발버둥 쳐보는 것이 재미있는 삶 아니겠나?”

“……”

“걱정하지 말거라. 내 반드시 너를 성운마저 두려워할, 그런 존재로 만들고 말 테니.”

헤르메스는 확신을 가친 채, 나를 향해 말했다. 단순하게 믿는다. 안믿는다로 그를 판단 할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제우스를 향한 적대감은 진실인 것 같았다.

다음 우주로 이어지는 생. 그 생에서 헤르메스는 현재의 주신들 없이 자기들 손으로 살아가고 싶은 것. 그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려운 길이 될 겁니다. 제가 강하다고 한들, 현계에서나 먹힐법한 강함이니.”

“쓸데없이 자신감이 낮은 아이구나. 그런 건 걱정하지 말거라. 너도 듣지 않았느냐.”

“무엇을…?”

“아버지는 너에게 <올림포스> 내에서 모든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권한을 건넸다. 그 말은 즉, 신기를 비롯해 신약 등 강해질 방법은 이곳에 수두룩하다는 말이다.”

자신감을 가지는 게 옳은 것일까. 나는 ‘명’을 위해 움직이는 이. 절대적인 강함을 보이는 이들에게 나는 무엇으로 보였던 걸까.

“좋습니다. 까짓거, 해보죠.”

“좋았어!! 형제들에겐 내가 잘 말하겠다. 드디어 그 ‘때’가 도래했다고.”

“그 전에, 제우스의 번개는 어떻게 할 겁니까?”

헤르메스는 아주 잠시간 말이 없었다. 그도 나와 같이 심장에 번개가 박혀있었기 때문. 하지만. 지금 당장, 그녀의 도움을 받아 번개를 제거해도 이곳을 벗어나면 제우스가 알아차릴 가능성이 컸다.

나 또한 그 부분을 염두에 두고 이곳에 온 것이니….

“그건 지금부터 생각해보는 것이….”

“……이곳에 오래 머물면 안 되는 것 아니었습니까?”

“그건 그렇지. 그렇다고 번개를 제거하면 아버지는 금세 눈치챌 것이다.”

헤르메스도 내가 걱정하는 부분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다는 듯 행동을 사리기 시작했다. 계약을 해지한다는 건, 제우스에게서 자유로워진다는 말. 그 말은 곧 제우스와 <올림포스>를 배신했다는 말과 다르지 않았다.

그 순간. ‘검은 날개를 가진 밤의 여왕’이 불쑥 대화에 끼어들었다.

“이것 참. 예의 없는 남자들이네요. 절 앞에 두고 저들끼리 속닥거리다니.”

여왕을 만나러 와서 헤르메스와 계속 대화를 나누었으니, 심기가 불편한 건 당연했다. 나는 그제야 몸을 돌려 말했다.

“당신은 절 돕기로 하셨죠.”

“물론, 전 거짓은 말하지 않는답니다. 아린이를 다시 보고 싶기도 하고. 후훗.”

“아린이 그 아이는 어째서 그렇게 아끼시는지.”

여왕은 ‘개념신’중 한 자리를 꿰고 있는 성좌. 그녀의 힘은 주신 급에 필적할 정도로 강력하다. 그런 그녀가 임아린을 제 딸처럼 아낀다는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었다. 물론, 어린 소녀인 임아린을 지켜주는 것은 내게 좋은 일이었지만.

그녀는 입을 열었다, 닫기를 반복했고. 헤르메스도 그녀의 입에 집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입을 열었지만 어쩐지 표정이 슬퍼 보였다.

나는 애써 말하려는 그녀를 향해 말했다.

“말하기 싫으시면, 말하지 않아도 됩니다. 때로는 그것이 전달하기엔 충분한 대답일 테니까요.”

“아니요. 이건 그대가 들어야 할 이야기 중, 하나에요. 지금부터 과거, 어떤 이들의 여정에 대해서 말해줄까 하는데, 괜찮을까요?”

“네, 들려주세요.”

무슨 말을 할까 긴장되는 마음으로 그녀의 입에 집중했다.

“아주 먼 옛날, 우애가 깊은 삼 남매가 있었어요. 부모님을 모두 잃고 셋은 서로를 사랑하며, 삶을 지속했죠. 그때, 운명의 장난인지 세상엔 멸망이 도래했죠.”

“……”

“멸망의 시작과 동시에 맏이는 다행히 둘째를 만날 수 있었죠. 그런데. 막내만큼은 아무리 찾아도 보이질 않았답니다.”

삼 남매. 누구의 이야기였을까. 여왕의 과거? 아니, 아닐 것이다. 이건 분명히….

“첫째와 둘째는 막냇동생을 찾기 위해 멸망 속에서 살아남았고, 결국 막내를 찾는 것에 성공한답니다. 그 후, 그들은 그들만의 이야기를 지속했고.”

여왕은 입을 열기 전보다 더한 슬픔을 보이며 말했다.

“이야기의 끝에서 결국, 비참한 결과가 그들을 맞이하게 되었죠.”

“비참한 결과라니요?”

“이 우주는 계속해서 반복하고 있다는 걸 아십니까?”

“대충은요.”

“삼 남매는 기어코 성운전을 승리로 이끌어, 다음 우주로 넘어갈 수 있는 자격을 얻었죠. 하지만…. 모두가 갈 수 있는 건, 아니었어요. 첫째, 그 사내뿐이었죠. 즉, 둘째와 막내를 두고 갈 수밖에 없었죠.”

“그렇다는 건, 둘째와 막내는 첫째를 보내고 죽음을 맞이한 겁니까?”

“결과를 따진다면 맞아요. 첫째를 제외한 우주의 모든 생명체는 죽을 운명이었으니까요.”

운명이라는 말에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그놈의 운명. 운명이 뭐길래 이토록 나를…!!

여왕은 그런 내 모습을 바라보며 쓰게 웃은 뒤.

“그런 그들은 어떻게 되었을 것 같나요?”

내게 질문했다. 질문의 의도가 무엇인지, 삼 남매의 이야기를 한 것이 무엇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계속된 기시감에 고요했던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죽었나요…?”

“아니요. 첫째는 제 형제와 같은 동료들과 함께 동생들을 그리고 동료들을 살리는 길을 택했어요. 희생이었죠.”

“……”

온몸에 소름이 오소소 돋아나기 시작했다. 추운 날씨가 아닌데도 털이 바짝 서는 기분. 나는 그제야 이야기의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게, 첫째 혼자 모든 것을 짊어지는 모습에 동생들은 화가 날 수밖에 없었어요. 죽더라도 같이 하자는 것이 그들의 약속이었으니까요.”

“설마.”

“네, 맞아요. 지금 당신이 생각하는 첫째와 동생들은….”

“하….”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나조차도 기억이 나지 않는 이야기. 누군가가 기억해주는 것이 고맙기도 했지만, 어째서 형이라는 존재가 내게 중요하게 작용했는지. 내게 ‘명’이 주어졌는지. 모든 퍼즐이 맞아 떨어져 갔다.

“그러나, 동생들은 맏이를 희생시켜 자신들이 사는 것을 원치 않았어요. 결국, 첫째는 다른 선택을 했죠.”

“어떤 선택을….”

“모든 이를 살리며, 동시에 자신도 살아날 가능성이 있는 방법. 봉신(封神)을 택한 거죠. 인간으로 시작해 신이 된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어요.”

“그 성좌가….”

“처음엔 저도 알 수 없었어요. 우주가 이어졌음에도 모든 이들이 이어진 것은 아니니까요.”

여왕의 눈에서 눈물이 또르륵 흘러내렸고. 울먹이는 음성이 나지막하게 흘러나왔다.

“아린이는, 삼 남매의 막내 아이. 전 우주에서도 그 아이의 배후성은 나였답니다.”

“……”

아무런 말도 나오질 않았다. 머릿속에 정리가 필요했지만 난잡한 기억들은 그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나는 정리를 채 마치기도 전에 여왕을 향해 물었다.

“재미로 삶을 반복하는 자.”

“맞아요. 그 성좌가 삼 남매의 첫째이자, 동생들을 위해 봉인 당한 성좌랍니다.”

“그럼, 동생들은….”

“첫째가 봉신을 하며, 막대한 ‘카르마’는 게이트를 만들어냈어요. 수많은 게이트 중, 한 곳을요.”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게이트.”

“그곳에 삼 남매와 함께한 모든 이들이 삶을 지속하며 살아가고 있을 테죠. 첫째의 희생으로.”

“그러니까, 동생들도 거기 있다는 말입니까?”

“……”

여왕은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냈다.

“아쉬운 말이지만, 없어요.”

“그럼…?”

“봉신을 당한 첫째는 영혼과 자신의 카르마를 이곳저곳에 나누어 현계에 뿌렸어요. 그 열쇠가 훗날 자신의 봉인을 풀기 위함이었으니까요. 하지만.”

“봉인을 풀 열쇠를 모아야 한다.”

“맞아요. 한 사람이 집중해서 모으지 않는 이상, 봉인을 풀리지 않았을 테니.”

이야기가 서서히 완성되어가자, 나도 모르게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어째서 그런 것일까. 눈물은 계속해서 흘러내렸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여왕은 나를 조용히 끌어안았다.

“그동안 고생했어요. 당신과 아린이는 봉신 당한 첫째를 살리기 위해, 지금까지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것에요.”

순간, 다리가 풀렸고.

바닥에 주저앉아, 멍하니 여왕을 바라보았다.

“저는 그런 당신들을 도우려고 지금까지 힘을 비축하고 또 비축했어요. 개념신들은 어떤 성운에 존속하지 않기에 가능한 일이었죠.”

“그, 그렇다면 어째서 봉신 당한 형이 저에게 메시지를 보낼 수 있던 거죠?”

“그건 간단합니다. ‘카르마’는 게이트로 ‘영혼’은 조금이나마 동생들을 지킬 수 있는 수단으로 성좌로써 남은 거죠.”

“지금 메시지가 오지 않는다는 건, ‘카르마’의 소실이 너무 크기 때문에…. 맞습니까?”

“맞아요. 열쇠를 모을 동생들을 발견했으니까요.”

“그렇다면, ‘재미로 삶을 반복하는 자’는 봉인을 풀어줄 남매를 기다리기 위해 수없이 많은 생을 살아온 겁니까? ‘카르마’를 쌓기 위해서…??”

“맞아요. 개미로, 용으로, 때로는 인간으로 수많은 삶을 살았죠. 당신에게 ‘각성’이라는 제힘을 전달하기 위해 많은 ‘카르마’를 쓴 것으로 압니다.”

“빌어먹을, 그 모든 행동이 우리를 기다리고, 우리에게 힘을 주기 위해서….”

“당신도 알겠지만, ‘카르마’가 없다면, 영혼은 소실되고 말 테니, 수없이 많은 생을 반복하면서도 남매를 기다린 거죠.”

모든 이야기가 형이라는 존재로 풀린다는 것을 깨달은 나는 우리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그런 식으로 봉신 당한 형이라는 존재. 그렇다면, 동생들은 어떻게 해서 다음 우주로 이어졌는지를.

“마지막으로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말해 보세요.”

“동생들은…. 어떻게 다음 우주로 이어질 수 있었던 거죠?”

“후훗, 말했다시피 셋은 우애가 그 누구보다 돈독했어요.”

“……?”

여왕은 나를 향해 싱긋 웃었다.

무슨 의미로 웃은 건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그 웃음이 결코 비웃음이 아니란 것은 이제는 알고 있었다. 삼 남매는 우애가 좋았다는 말. 그 말에서 나는 금방 힌트를 찾을 수 있었다.

“설마, 현생(現生)을 포기하고 다음 우주에서의 환생을 택한 겁니까?”

“맞아요. 그들은 이미 전 우주에서 기록자, 성좌 등 세계의 강함을 책임지고 있는 이들과 연을 맺었어요.”

“그들의 도움으로….”

“하지만, 남매의 모든 동료가 환생할 수는 없었죠. 인원 대부분이 봉인됨과 동시에 둘째와 막내만이 환생을 할 수 있었답니다.”

지금까지 들은 이야기는 아주 간단한 이야기였다.

형이라는 존재는 가족과 동료를 살리기 위해 봉신(封神)을 택했고. 그런 형을 살리고자, 나와 임아린은 환생을 택한 것. 그로 인해 ‘명’을 부여받은 후,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이었다. 간단하지만 이리저리 얽힌 이야기는 한 번에 받아들이기엔 너무 어려운 나였다.

“……”

“절 도운 이유가, 아린이를 아끼는 이유가 저희 남매에게 힘이 되어 주기 위한 것. 맞습니까?”

“네, 안 믿기겠지만 사실이에요.”

헤르메스는 무언가 깨달았다는 눈빛을 뽐내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아니, 그럼…. 전 우주에서 아버지가 이기지 못한 현계인은 이놈과 그 형이라는 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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