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읽은 소설의 주인공이 성좌였다-183화 (183/206)

제183화

episode(19) 단 하나의 게이트#4

개념신도 모자라, ‘검은 날개를 가진 밤의 여왕’이라는 말을 하자, 헤르메스의 두 동공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중이었다.

저러다 튀어나오겠군. 역시, 대놓고 말하면 안 되었던 건가…?

헤르메스는 한숨을 푹, 내 쉬더니 나를 향해 말했다.

“네놈이 현계에서 그자와 어떤 연이 있는 줄은 모르겠지만, 여기서 그 ‘개념’들을 찾는 건 무의미해.”

“어째서죠?”

“그들은 이미 수 세기 전, <올림포스>를 척지고 그 어떤 분쟁에도 끼어들지 않는 외부인과 다르지 않다. 그런 네 놈이 그것들을 찾는다면….”

“신들의 왕권께서 노하신다?”

“그렇지. 이해는 빠른 놈이네.”

아무래도 헤르메스의 도움을 받아 ‘검은 날개를 가진 밤의 여왕’을 찾는 건 무리일 것 같았다. 당연한 소리지만 금기를 어겨가면서까지 내 존재가 대단하질 않았으니.

헤르메스는 내 표정을 금세 읽어냈고.

“방법이 전혀 없지는 않아.”

“그 방법이 무엇이죠?”

“내 힘. 내가 도와주면 아주 잠시지만 만날 순 있지.”

“……”

헤르메스의 힘이라. 아무래도 <올림포스> 내에서 전령 역할을 하다 보니, 헤르메스가 가지 못할 곳은 없는 것 같았다. 나는 아주 잠시간 고민을 마친 뒤, 헤르메스를 향해 말했다.

“혹시, 도와주실 수 있습니까?”

“일단 몇 가지 질문부터.”

고개를 끄덕이자, 헤르메스는 금세 흥미 가득 찬 표정으로 눈빛을 번뜩이고 있었다. 이곳에서의 생활은 지루하기 짝이 없는 그런 삶. 아주 재미난 일이 벌어질 것 같다는 그는 감으로 움직일 뿐이었다.

“첫째, ‘개념’을 만나려는 이유는?”

“현계에서 동료의 배후성이었습니다. 많은 도움을 주었지요. 인사 한 번 정도는 괜찮지 않겠습니까?”

“아…. 그건 그렇지. 좋아, 다음 두 번째. 정말로 아버지의 말씀대로 137군단을 이끌어 성운전을 치를 셈이냐?”

“……”

정곡을 찌른 헤르메스의 말에 아무런 답을 할 수 없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거짓을 말하기엔, 번뜩이는 그의 눈이 나를 꿰뚫어 보는 그런 기분….

“글쎄요, 신들의 왕권, 그분의 번개로 심장이 재가되지 않으려면, 해보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하핫, 역시 그렇구만. 계약되어있었군.”

헤르메스는 아주 잠시, 고민에 빠진 듯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무엇을 느낄 수도 무엇을 알아낼 수도 없었지만 나에게 적대적이지 않다는 것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알 것 같았다.

말없이 기다리기를 수 분.

“좋다. 난 네놈에게 걸지. 크큭, 재미난 일이 벌어지겠는데?”

“무슨….”

“자, 지금부터 그녀에게 이동할 거다. 다만 나도 함께 들어갈 것이니 그리 알거라.”

“괜찮겠습니까? 혹 걸리기라도 하면….”

“상관없다. 잠시뿐이라면.”

헤르메스는 정확한 속내를 보이지 않고 나와 함께 ‘검은 날개를 가진 밤의 여왕’을 만나기로 한 것 같았다.

무슨 생각이지?

헤르메스는 소풍이라도 가는 듯 콧노래를 부르며, 나를 허공에 띄워냈고 동시에 내 시야는 어두운 공간으로 변모해 있었다.

“여기다.”

정말이지 편리한 능력이 아닐 수가 없었다. 순간이동이라니.

“아무것도 없군요.”

“아니, 있어. 그녀는 개념이기에 그 개념에 맞는 장소에 머무는 것뿐이다. 너도 곧 알게 되겠지.”

알 수 없는 헤르메스의 말과 그녀가 거주 중이라는 장소. 모든 것이 새까만 어둠으로 아무것도 보이질 않았다. 다만 기척과 기운으로 어느 곳에 건물이 있고 어느 곳에 풀과 나무가 있으며 깊숙한 어딘가에 그녀가 나를 기다리는 것만큼은 쉽게 알 수 있었다.

“여기부터 내 순간이동은 먹혀들지 않는다.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길을 잊을 테니, 잘 따라오거라.”

헤르메스는 여전히 신이 난 얼굴로 나를 이끌었고.

저벅, 저벅.

말없이 걷기를 수 십여 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거대한 문 하나가 우리를 반겼다.

끼이이익.

순간, 문은 자동으로 열려 나와 헤르메스에게 들어오라는 듯한 모습이었다. 이미 많은 대화를 했지만 <올림포스>의 개념신이라니. 나름대로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그녀는…. 아군일까, 적일까.

단순한 물음이었지만, 현 상황에 그녀가 도와주지 않으면 계약을 계속해서 이어가야 했기에, 훗날 일행들을 내 손으로 죽여야 하는 상황이 온다. 그렇지 않으려면 계약 전에 들었듯 그녀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거대한 문을 넘어, 앞으로 걸어 나가자 곧 사방이 넓게 펼쳐진 공간이 느껴졌다. 아무것도 그 누구도 존재하지 않은 그런 공간. 그저 기척과 기운이 마력의 흐름이 말해줄 뿐이었다.

“여왕이여, 당신을 만나러 왔습니다.”

내 외침에도 적막이 흘렀고, 헤르메스는 어딘지 모를 방향을 멍하니 바라보는 중이었다. 무슨 생각으로 금기를 어기고 나와 이곳에 온 것이었을까.

단순한 호기심? 아니면…. 무언가 내가 알지 못하는 이유라도 있던 걸까.

생각만으로는 정답에 도달할 수 없었기에, 금세 생각을 접고 그녀의 기운을 느껴내기 시작했다. 처음 이곳에 들어왔을 때 느껴지지 않던 그저 어둡고 차갑기만 한 기운이 나를 지긋이 바라보고 있었다.

겁을 주는 것도 아니었고, 그저 나를 바라보는 기운. 그 기운은 곧, 나를 향해 다가왔고.

“운이 좋네요. 벌써 오다니.”

“처음 뵙습니다. 여왕이여.”

“후훗, 여왕이라는 말은 넣어두지, 그래요. 메시지와 같이 편하게 했으면 하는데요?”

생각보다 온화한 말투를 가진 그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불청객이 있는데, 괜찮겠어요? 저자는 제우스의 아들일 텐데.”

헤르메스를 콕찝어 말하는 그녀. 나는 괜스레 헤르메스를 바라보았다.

“아니! 불청객이라니요! 나도 손님인데….”

둘 사이에 왕래는 없었는지, 아무래도 많이 어색한 것 같았다. 나는 그런 헤르메스를 바라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무슨 생각으로 절 따라온 겁니까? 여기서는 솔직히 말해도 되지 않을까요?”

“그렇지. 이곳에 온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이곳은 외부와 단절된 장소니까. 다만, 나와 네놈이 사라진 것은 주신들도 금방 눈치챌 것이다.”

“그렇겠죠.”

“솔직하게 말하기 전, 이곳을 나가면 핑곗거리라도 생각해두거라. 그렇지 않으면 네놈도 나도 간단한 처벌로 끝나지는 않을 테니까.”

처벌이라. 신들의 처벌은 천벌(天伐)

단순하게 벌을 받아, 감옥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의 죽음. 그 위험을 감수하고 이곳에 들어온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었다.

그 순간.

딱!

무언가 손가락으로 낸 소리가 나더니, 곧 주변이 환해지며 헤르메스와 여왕의 얼굴이 자세히 보였다. 여왕이 말했다.

“그대들은 밝은 것이 좋지요? 잠시지만, 이 정도는 괜찮으니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죠.”

우아한 검정 드레스에 기다란 검은 머리. 새하얀 피부를 가진 그녀의 눈동자는 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공허함이 가득해 보였다. 미지의 아름다움을 보는듯한 기분에 넋이 나가 그녀를 바라보자.

“후훗, 직접 보니 좋군요. 아린이도 직접 보았으면 좋았을 것을.”

나는 아차, 싶은 표정으로 정신을 차려냈다.

“큼큼, 아무튼 내가 먼저 이야기해도 될까!”

“해보세요.”

인자하게 싱긋 웃는 그녀는 헤르메스의 말에 답해주었고. 곧바로 헤르메스는 신나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일단…. 이 현계인은 단순하게 동료의 배후성을 만나러 왔다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어째서죠?”

“간단한 이유지. 아버지도 감히 건들지 못하는 ‘개념신’을 만나러 왔다는 건, 당연히 목적이 있을 거야. 뭐, 계약을 해지한다던가? 아니면 그들의 도움을 받아 <올림포스>를 무너트린다거나.”

단순히 바보인 줄만 알았더니, 여기까지 생각한 헤르메스를 물끄러미 바라본 나였다.

“부담스러우니까, 그렇게 쳐다보지 말고. 아무튼, 나는 찬성.”

“지금 뭐라고….”

“뭐든 찬성이라고. 아버지의 폭정은 너무 지겹거든, 아니 이렇게 말해야 할까? 현계인 네놈은 이전 우주에서의 승자가 누구라고 생각하냐?”

“기록자는 역시, 곤륜산의 신선들이 맡았고 성운은…. 글쎄요.”

단순하게 생각하면 <올림포스>, <대륙>, <아스가르드>같은 커다란 성운이 차지했을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헤르메스의 말은 나를 당혹게 만들었다.

“<안락국>이라는 작디작은 성운이었지.”

“<안락국>이 이전 우주의 승자였다고…?”

무언가에 머리를 강하게 맞은 기분이었다. 성좌, ‘해동의 천왕랑’ 나의 ‘형’ 더 나아가 <안락국>의 태양신들 모든 것이 하나의 퍼즐 조각이었다는 생각과 함께.

“사실, 그건 중요한 것은 아니야. 지금이라도 <안락국>은 우리가 무너트릴 수 있는 작은 성운이니까. 그런데, 왜 그들을 건들지 못하는 줄 아나?”

“모릅니다.”

“변수가 있기 때문이야. 아버지는 전 우주의 기억을 아주 조금 읽어냈고, 그중에 현계인 한 사람의 행동으로 많은 것들이 틀어졌다는 걸 보셨지.”

“그래서, 이번에는 현계인 중 여러 가지 기운을 가지고 성운전에 참전한 나를 포섭했다.”

“바로 그 말이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연결된 이야기였던 걸까. 생각이 많아졌음에도 정리는 되질 않았다. 그런데도 헤르메스는 말을 이어나갔다.

“성운전에서 이기면 그다음 우주에서 온전한 기억을 가지고 성좌로 다시 태어나는 건 알고 있나? 그렇게, 지구의 창세는 시작되는 거지.”

“뭐, 삼계의 신선, 천인, 요마들도 그러했으니 비슷하겠죠.”

“아버지는 그간 이뤄온 기억을 모두 잃은 것이 화가 났던 거야. 고작 한 명의 현계인 때문에.”

“……”

“하지만, 우리 자식들은 그런 아버지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지. 너무나도 강한 압박과 넘어설 수 없는 강함 덕분에. 너 심장에 아버지의 번개가 박혀있다고 했지?”

“확인해 보지는 못했지만, 말로는 그렇다고….”

“우리도 그래.”

미친.

자식들에게도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심장에 번개를 받아둔 제우스의 행동에 어처구니가 없었다. 헤르메스는 그것을 계기로 엇나가기 시작한 게 분명했다.

“그래서, 내가 해줄 말은 단 하나. 나 또한 아버지처럼 네놈을 믿을 거다. 대신 조건이 있다.”

“무엇이죠?”

“아버지를 포함한 주신격들.”

“제우스, 포세이돈, 헤라 같은….”

“맞아. 그분들을 이겨줘. 그다음 성운전은 이기든 지든 우리 알아서 하겠다.”

“……어째서 그렇게까지.”

헤르메스는 말없이 허공을 바라보더니, 곧 해맑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우리 <올림포스>에도 세대교체가 필요하지 않을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말이었다. 그동안의 압박으로 아버지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고 억지로 성운전을 이어가며 제우스의 장기 말로 죽어 나가는 것. 그것만은 싫었던 것이다.

나는 그런 헤르메스를 향해 안쓰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고.

헤르메스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거기까지 하면, 우리 <올림포스>는 네놈과 동맹으로 움직이겠다. 이건 내 단독이 아닌, 이 순간만을 기다려온 우리 뜻이니.”

“우리라고 한다면?”

간단한 말을 물어 무엇하냐는 듯.

“신 <올림포스>의 뜻이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