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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소설의 주인공이 성좌였다-182화 (182/206)

제182화

episode(19) 단 하나의 게이트#3

제우스가 자리를 이탈하고, 헤르메스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중이었다. 그의 표정에서 많은 것들이 느껴졌고 조금 뒤에야 입을 열기 시작했다.

“너,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글쎄요.”

“그 똥고집 아버지가 약하디약한 현계인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라….”

“…….”

헤르메스는 조금 당혹스러워 보였다. 나 또한 이렇게 될 줄은 몰랐기에 마땅한 답변을 해 줄 수는 없었지만 아무래도 제우스의 이런 방식은 최초이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보았다.

헤르메스는 다시 한번, 나를 허공에 띄워냈다.

“뭐, 아버지의 말이라면 들어야지. 당분간 함께 할 테니, 그리 알아라.”

“이동하는 번거로움은 덜 수 있어서 다행이군요.”

“야 인마, 분명하게 말하지만 나는 포탈이나 워프 장치 같은 이동용이 아니야. 알았냐?”

“그렇게 알아두죠.”

이동용 포탈이나 워프가 아니라고는 했지만, 헤르메스는 이곳에서의 생활 중 나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이동 수단이었다. 그도 그럴게, 헤라와 포세이돈이라는 막강한 성좌가 나를 싫어하니, 무턱대고 돌아다닐 수도 없는 법.

제우스의 보호는 한계가 있는 법이었다.

“일단, ‘헤파이스토스의 대장간’의 대장간으로 가시죠. 신기부터 만들어야겠습니다.”

“흐응…. 그건 어렵지 않을까. 그 형님은 황소고집인데, ‘입장권’을 구해야만 만들어 줄 텐데?”

“그거라면….”

나는 인벤토리에서 헤파이스토스의 대장간의 입장권을 꺼내 보여주었다.

“이거면 됩니까?”

“……생각보다 예상을 자주 깨는 놈이군. 쉽게 구할 수 없었을 텐데.”

“어째서죠?”

딱히 궁금하진 않지만, 일행들의 무기를 만들어 줄 수도 있으니 알아놔서 나쁠 건 없었다. 헤르메스는 잠시 고민을 이어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입을 열었다.

“미션 중, 최상위 게이트에서만 얻을 수 있거든. 물론, 그 게이트는 우리 <올림포스>의 게이트여야만 하고. 여러모로 조건이 까다롭다는 거지.”

“아.”

“아무래도, ‘트로이 전쟁’ 그 게이트에서 얻은 거지?”

“알고 계셨군요.”

“당연하지 인마. 내가 전령 짬이 몇 년인데.”

쓸데없는 물음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나는 괜스레 헤르메스를 향해 장난을 쳐보았다. 몇 년인지 알게 뭐겠냐마는….

“몇 년입니까?”

“…….”

“모릅니까?”

“아, 알아! 아마도…. 수천 년…?”

“모르네요.”

“빌어먹을 놈. 말하는 것이 꼭 디오니소스 놈과 닮았군.”

“칭찬으로 받아들이죠.”

“후…. 아무튼 가보자.”

강함으로 따지자면 헤르메스가 나보다 우위인 건 분명했다. 그런데도 무언가 친근한 것이 편한 마음이 들은 나였다. 헤르메스는 곧, 허공에 지팡이를 그어냈고.

“그 똥고집을 만나면 적어도 마음에는 들어야 할 거다. 입장권이 있어도 마음에 들지 않은 놈 무기는 대충 만들어 주거든. 간다.”

번쩍!!

* * *

순식간에 이동한 장소는 일전에 무림계 게이트에서나 볼 법한 평범한 대장간이었다. 사람이라곤 주변에 아무도 없고 오롯이 대장간과 그에 필요한 물건들만 있는 그런 곳.

장인의 손길이 느껴지는 그런 장소였다.

나는 헤르메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분은 없는 겁니까?”

“아니, 있을 거야. 온종일 이곳에 틀어박혀 있거든. 아버지도 직접 찾아오지 않으면 얼굴 보기가 힘들지.”

성좌들고 척지고 자기 일에만 몰두하는 타입인가? 어쩌면 상대하기 어렵다는 생각마저 들었지만, 버프가 있다 보니 일시적인 강함을 보이면 ‘헤파이스토스’의 마음에 들 수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몸을 움직였다.

“난, 더운 건 질색이거든. 다녀와라. 이곳에 있을 테니.”

헤르메스는 곧 허공에 몸을 띄워 벌러덩 누워버렸다. 더운 게 싫다면서 해가 쨍쨍 비추는 곳에 눕다니….

저벅, 저벅.

그런 헤르메스를 두고 대장간의 입구로 들어섰고. 곧, 엄청난 열기와 망치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깡-!! 깡-!!!

일정한 패턴과 세기로 치는 망치 소리를 듣자 하니, 이 분야에 대해서 모르는 나조차도 헤파이스토스가 얼마나 장인 정신으로 무구를 만드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조심스레 그에게 말을 걸었다.

“저….”

깡, 깡!!

아무리 무구만 만드는 실력 좋은 대장장이라도, 이 자는 무려 제우스와 헤라의 친아들. 결코 내 기척을 못 느꼈을 리 없었다. 그런데도 헤파이스토스는 나를 무시하고 망치질을 멈추지 않았다.

계속해서 말을 걸어볼까.

아니, 참자. 이 정도로 열중하는 데 방해하면 오히려 불청객이 될 수도 있으니.

나는 잠자코 그의 행동을 유심히 바라보기 시작했고,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한 나머지 잠이 들고 말았다.

빡!!!

“끄악…!!”

눈을 뜬 것은 무언가 강한 것에 머리를 얻어맞은 듯, 엄청난 고통과 함께였다. 가격당한 머리를 부여잡은 뒤 고개를 들자.

“넌 뭔데, 남의 집에서 잠을 쳐자고 있는 거냐?”

“……”

“말 안 해? 또 맞을래?”

이건 뭐, 깡패야 뭐야?

이미터는 가뿐히 넘을 것 같은 크기에 흡사 ‘장비’를 떠올리게 하는 덥수룩한 수염. 열기에 온몸이 시뻘건 사내.

나는 침착하게 몸을 일으켜, 사내에게 말했다.

“신기를 만들러 왔습니다. 입장권은 여기….”

“뭐, 인마? 다짜고짜 신기를 만들어달라고? 이거, 웃긴 놈이네. 크하핫.”

뭐가 웃긴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이런 식으로 시작하는 건 아닌 것 같았다.

“야 인마, 내가 만들어달라면 만들어 주는 공장이냐? 어디 이상한 놈이 와서는. 죽으려고.”

“……”

“입장권은 그렇다고 쳐도, 너 어디서 온 놈이냐?”

“현계인입니다.”

“현계인…?”

헤파이스토스는 현계인이라는 말에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의 의중을 알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흥미가 없는 건 아닌 것 같았다.

더 말해봐야 좋을 게 없을 것 같은 생각에 조용히 헤파이스토스가 입을 열기를 기다렸고. 계속해서 바라보던 그는 내 머리에 손을 가져다 댔다.

“지금 뭐 하는….”

“조용히 해라. 신기를 만들려면 영혼의 그릇을 확인해야 하니.”

스아아아.

헤파이스토스의 손에서 무언가 알 수 없는 기운이 생성되었고. 그것은 나의 몸 전체를 휘감았다. 딱히 거부감도 공격에 당한 건 아니었다. 조용히 그의 손길에 맡긴 순간.

“하, 너 진짜 어디서 굴러온 놈이냐? 현계인 맞냐?”

“맞습니다만.”

“이쯤 되면 미션을 위해 현계인들이 넘어온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헤파이스토스가 당황하는 이유에 대해서 어쩐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단순한 이유지만 나는….

“현계의 인간, 지옥 변방으로 쫓겨난 죽은 자, 기록자라 불리는 신선, 삼계의 축을 담당하는 요마, 거기에 더 말도 안 되는 건, 관리자의 힘까지….”

역시, 이것 때문이었군. 내가 봐도 혼종이긴 하지.

헤파이스토스는 망치를 들었다 놓기를 반복하더니, 조금은 생각의 정리가 된 것인지 말을 이어갔다.

“다시 한번 묻겠다. 너 현계인은 맞는 거냐?”

“다시 한번 대답해도 변하는 건 없지요.”

“깐죽거리는 것이 디오니소스 그놈과 비슷해. 한 대 치기를 잘했군.”

“……”

그놈의 디오니소스. 어떤 놈이길래 깐죽거리는 걸 자꾸 비교하는 거였을까.

“아무튼 신기가 필요하다고?”

스스릉.

용광검을 꺼낸 후, 헤파이스토스에게 검을 건넸다.

“이건, 빌린 거라서 곧 못쓰게 됩니다. 이것보다 성능이 좋은 검이면 좋겠는데.”

“흐음…. 이건, 꽤 특이하게 생겼군. 좋다. 네 놈이 이곳에 온 것은 아버지의 인정을 받았다는 것도 포함이겠지.”

“어쩌다 보니, 137군단을 맡게 되었습니다.”

“음…? 그 망나니들을 네놈에게 맡긴 건가? 어지간히도 마음에 들었나 보군.”

망나니들…?

헤파이스토스는 새로운 장난감을 만난 것처럼 무척이나 신이 난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내게서 느껴지는 기운이 그 어떤 이의 신기를 만들 때보다 새로운 경험이겠지.

“일단, 네 놈의 강함을 확인해야겠는데? 무구는 마냥 좋은 능력을 지녔다고 아무나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더군다나 우리 같은 성좌들은 영혼과 무구의 힘이 서로를 끌어당기는…. 아무튼.”

“무구와 제 영혼의 합을 맞추기 위해 강함까지 확인한다는 말인 거죠?”

“어. 그거다.”

피식.

나는 헤파이스토스의 말에 웃음을 지어냈고.

“제가 낼 수 있는 최선의 힘입니다.”

[선인의 격 LV.2]

[만인지적(萬人之敵) LV.2]

[정령화 LV.2]

[요선(妖仙)의 기운 LV.1]

쿠구구구구.

네 가지 버프 스킬을 사용하자, 곧 대장간과 그 주변에 엄청난 진동이 일어났고.

이어서.

[칠정안(七情眼) LV.MAX]

[화안금정 LV.MAX]

스아아아.

양쪽 눈 색이 금빛과 무지갯빛으로 물들며, 진동은 서서히 멈추었다. 이것이 현시점에 내가 낼 수 있는 최선의 힘이었다.

“호오….”

그 순간.

쿠당탕!!

“뭐, 뭐야!! 둘이 전투…. 아니네.”

헤르메스는 갑작스러운 기운에 놀란 건지, 대장간 안으로 뛰어오다 넘어지고 말았다. 이 사람이 12 주신이라는 성좌라니. 퍽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네 놈도 와있었냐?”

“하하, 오랜만에 봅니다, 형님.”

“형님은 얼어 죽을. 됐고, 이놈 이거 뭐 하는 놈이냐? 이 강함도 말이 안 되고 느껴지는 기운도 한 가지가 아니다. 무슨 혼종을 데리고 와서….”

헤르메스는 내게서 느껴지는 기운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하, 저도 놀랍습니다. 이건 뭐야?”

“사람보고 혼종이라니, 이건 뭐냐느니 실례 아닙니까?”

“음, 그건 그렇지.”

헤르메스는 내 말에 쉽게 수긍하더니, 곧 헤파이스토스에게 말했다.

“정확한 건, 저도 모릅니다. 아버지에게 초대받은 유일한 현계인이죠. 동시에 137군단을 맡고 <올림포스>내 모든 지원을 허가받은 놈입니다.”

“하?”

“형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그, 아르테미스의 게이트 중, ‘트로이 전쟁’을. 그 게이트를 깽판 친 놈이 이놈입니다.”

“으응? 크하하하하핫.”

헤파이스토스는 갑자기 우레와 같은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그 소리가 어찌나 큰지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이거, 오랜만에 재미난 작업이 되겠구먼. 좋다. 기운을 풀어라.”

“그럼….”

파앗.

순식간에 모든 버프를 해제하고 양쪽 눈마저 본래대로 돌려냈다. 그리고 헤파이스토스가 입을 열었다.

“그 휘황찬란한 그 눈.”

칠정안을 말하는 건가?

“그 눈은 어지간하면 이곳에서 보이지 말거라. 이유는 묻지 말고.”

“아…. 네.”

“시작해보지.”

헤파이스토스는 자리를 옮겨 한쪽 구석에 있던 단검을 내게 건넸다.

“네놈의 피가 필요하다. 영혼 자체를 담아낼 수 없으니, 피로 그것을 대체하는 것이지.”

“양은 얼마나 필요한 겁니까?”

“한 방울이면 족하다.”

촤악.

그가 준비해둔 그릇에 피를 담아낸 나는 더 필요한 건 없는지, 헤파이스토스를 바라보았다.

“나가.”

“네?”

“나가라고. 만드는 데 방해되니까, 나가라고 인마.”

“아….”

이놈 이거, 깡패 맞다. 제기랄 현계인 최강인 내가 이곳에서는 혼종, 찬밥이라니.

헤르메스는 싱글벙글 웃으며 내게 말했다.

“<올림포스>를 구경시켜줄 테니, 나가자. 형님은 작업할 때 누군가 있는 걸 안 좋아하거든.”

“그렇군요. 구경은 괜찮습니다만.”

“아, 그래? 그럼 네놈이 맡기로 한 137군단을 보러 갈래?”

“그것보다….”

헤르메스는 의아한 표정을 지어냈고. 나는 동시에 입을 열었다.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습니다.”

“일단, 나가서 듣지. 형님이 망치를 던지려고 해.”

“아, 가시죠.”

재빨리 대장간 밖으로 나온 후, 나는 헤르메스를 향해 물었다.

“개념신. 그러니까, 성좌, ‘검은 날개를 가진 밤의 여왕’은 어디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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