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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소설의 주인공이 성좌였다-179화 (179/206)

제179화

episode(18) 흑아(黑兒)#5

뜬금없는 욕설에 등륜은 고개를 갸웃거리곤, 나를 인자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 모습이 흡사, 정말로 신이라도 된 것 같은 그런 표정.

그런 등륜을 향해 한 마디를 더 보탰다.

“미성년자 집단으로 전 세계를 장악하겠다? 무슨 흑화한 만화 주인공도 아니고, 안 되겠다. 넌 좀 맞아야지.”

[스킬, [만인지적(萬人之敵) LV.2]을 발동합니다.]

파앗-!

쿠구구구구.

스킬을 사용하자, 흑아 간부 수백 명이 기운을 뿜어낸 것보다 더욱 강대한 기운이 용솟음치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간부진 전원이 움찔거리는 것도 잠시.

등륜은 정말로 자신이 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나에게 말했다.

“과연, 그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으니, 이 나에게 대드는 것인가?”

“뭐, 뭐?”

“본좌에게 오라. 그대의 힘을 능히 살려줄 터이니.”

“하, 나 참…. 이거 뭔….”

기가 차서 말도 안 나오는 나였다.

이런 성격을 가지고 어떻게 안재훈 밑에서 버틴 거지?

선인의 격과 만인지적까지 사용할 수 있는 버프는 모조리 사용했다. 정령화는 사용하지 않았다지만, 이들을 죽이기 위해 사용할 힘은 아니었으니.

나는 허공에 몸을 띄워 주변에 포진한 간부진들을 하나하나 바라보기 시작했다. 저마다 비장한 표정을 짓는 것을 보니 흡사, 악당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너 이 새끼, 배후성의 힘을 쓸 때랑 안 쓸 때랑 너무 차이 나는 거 아니냐?”

“무엇이 말이냐.”

“뭔, 이중인격도 아니고 인자한 스님처럼 말하는 건데?”

“그것이 중요한가? 나는 전지한 능력을 지녔고, 그 능력은 당연히 세계의 왕으로 추대돼야 하지 않겠나?”

아무래도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아무리 배후성의 힘을 사용한다고 해도 성격이 이 정도로 변하지는 않을 터. 이 모습은 빙의라도 당한 것 같은 모습이었다.

말투와 행동 모든 것이 처음 보았던 등륜과는 딴판이었다.

조금이지만, 역사는 알고 있었기에 가능한 것. 치우는 전쟁의 신이기는 했지만 전지전능한 주신 급은 아니었다.

적어도 그들의 역사를 조금이나마 알고 있는 나는 치우의 최후를 대강 알고 있었다. 어디서 누구에게 죽었는지를.

물론, 전승에 따르는 것이므로 이것이 사실은 아닐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사는 세계에 성좌들이 나타나고 여포를 비롯해 고대 무장인 항우의 존재가 있듯, 치우도 아주 말이 안 되는 것은 아니었다.

조그마한 기억을 훑은 나는 한 가지 전승을 떠올릴 수 있었다. 치우의 최후는 딱히 알려진 바는 없었지만, 황제(黃帝) 공손헌원이 죽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것이 대부분이 아는 사실이고, 다른 설로는 고향으로 도망쳤거나 공손헌원의 산하가 됐다고 나오기도 한다. 즉, 그의 사망설과 생존설은 확실하게 정립된 것은 없었지만….

적어도 중국 역사의 무장 관우나 그리스 신화의 아레스가 패배의 역사가 있음에도 전쟁의 신으로 여겨지듯, 치우도 그런 대우를 받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그런 등륜을 향해 무언가를 떠보듯이 말했다.

“너, 황제에게 죽은 그 치우냐?”

내 말에 순간, 정적이 흘렀고.

스아아아.

등륜은 악귀와 같은 얼굴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그의 팔은 여섯 개로 늘어났고, 본래 있던 눈 아래로 두 개의 눈이 더 생겨났다. 이마는 은빛으로 빛나기 시작했으며, 황소와 같은 두 개의 뿔이 머리 위로 솟아나고 있었다.

덩치는 말할 것도 없이 거대해져 곰과 같은 풍채를 보였고.

기운은 악귀와 같은 것이, 죽은 자들이 내 뿜는 기운보다 더욱 어둡고 쿰쿰한 냄새까지 스멀스멀 내 코를 간지럽혔다.

역시, 이놈은….

나는 그런 등륜 아니, 치우를 향해 물었다.

“성좌나 되는 놈이 어린 애들 싸움에는 왜 끼는 거지? 네놈은 성운(星雲) <대륙>의 일원이 아닌가? 지금쯤이라면, 이곳에 신경을 쓸 여력이 없을 텐데…?”

등륜에게 빙의한 치우는 그제야 혀를 날름거리며 시뻘건 두 눈으로 나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크크큭. 어떻게 안 것이냐. 제법, 감이 좋은 놈이지 않은가?”

“내가 좀 해.”

“나는 <대륙>의 군대를 만들 것이다. ‘내부’와 ‘죽은 자’가 사라진 이 시점에 남은 것은 이 어리석은 놈들이 키워낸 하찮은 군대지 않은가?”

아무래도 이놈, 노선을 잘못 짠 거 같은데.

나는 치우의 말을 조금 더 듣고자 그의 말이 사실이 아님에도 맞장구를 쳐주기 시작했다.

“그렇지. 최후의 승자는 ‘외부’니까.”

“네 놈은 다음 미션에서 선택해야 한다. 전쟁은 이제 시작이니.”

“그 말은…. 다음 미션에서 ‘외부’의 ‘흑아’를 전부 <대륙>의 편에 세우겠다는 말이지?”

치우는 내 물음에 기괴한 소리를 내며 한참을 웃더니, 웃음을 뚝. 그치곤 나에게 말했다.

“아니지, 아니야. 이놈들은 내 방패막이 되어 줄 장기 말이 될 것이다. 그로 인해 <대륙>은 내 손에 들어올 것이야. 크크큭.”

아무래도 치우는 성운 간에 전쟁이 벌어지는 시점에 자신의 야욕을 채우기 위해 이곳에 나타난 것 같았다. 그것도 ‘흑아’를 자신의 수하로 삼기 위해서.

나는 그런 치우에게 조금 더 정보를 얻고자, 은근하게 말을 돌려 물었다.

“그렇다면, 네가 <대륙>을 장악했다고 치자. 한 가지 문제가 있는 거 아닌가?”

“무슨 문제가 있다는 거지?”

“잘 생각해봐. 한참 미션이 진행 중인데, 네가 <대륙>을 장악한다고 해도 다른 성운들과 싸울 병력이 필요하잖아? 그런데 이 꼬꼬마들 그러니까, ‘흑아’로는 다른 성운들을 이길 수 없을 텐데?”

“그, 그것은….”

이놈, 이거. 멍청한데…?

그것까지는 생각하지 않은 것인지 말을 잇지 못하는 치우. 나는 그에게서 얻을 수 있는 정보를 모두 캐내기 위해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이봐, 치우. 너 정도 되는 성좌라면 잘 알 거야. 내 강함이 어느 정도인지.”

“……”

“난 이곳에 존재하는 이놈들 전부가 덤벼들어도 지지 않을 강함을 가지고 있어. 그건 네놈도 파악하지 않았나?”

치우는 무슨 말을 하냐는 듯, 의아한 표정을 지어냈다. 악마 같은 외형을 가진 놈이 저런 표정을 지으니 조금 묘한 느낌이었지만.

“난 다음 미션에서도 살고 싶다. 야욕이 있는 네놈에게 들어가면 살 수 있나?”

치우는 그제야 내 말뜻을 깨달았는지, 네 개의 동공이 커져 가고 있었다.

“물론이다. 내 밑으로 들어온다면, 내 너에게 <대륙>의 대장군 자리를 선사하마.”

“대장군이라…. 그것 좋네. 내가 서열 2위야. 알겠지?”

“크크큭. 제법, 말이 통하는 놈이었군.”

치우는 그제야 호탕하게 웃으며 뿜어내던 기운을 멈췄다. 당연하게도 주변 흑아의 간부진들은 성좌의 빙의가 이뤄진 시점에 모두 바닥에 쥐포처럼 뭉개져 있었으니까.

“잘 생각했어. 네가 기운을 그렇게 내뿜으면 저놈들을 못 써먹잖아. 안 그래?”

“음. 그렇군.”

“아, 궁금해서 그런데 우리 상좌님께서는 <대륙>을 차지하고 어디부터 칠 생각이지? 아니, 지금 몇 개의 성운이 남아 있는지 상황을 대략 알려 줄 수는 있나?”

치우는 별거 아니라는 듯, 말을 해주기 시작했다.

“전쟁은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어째서?”

“다음 미션에 증원될 네놈들과 다른 세계의 생존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함이지. 그들은 시스템의 힘을 받아 강해졌고 우리에게 더할 나위 없는 전투원이 되어 줄 테니.”

“아하. 그래서, 남은 곳은?”

“소성운(小星雲)은 이미 대성운(大星雲) 성운에 먹혀들었고, 중위급의 성운들은 저들끼리 동맹을 맺었다. 그로 인해 전쟁은 소강상태로 잠잠해졌지. 그렇다고 한들, 이전과 같이 네놈들에게 메시지를 보낸다는 유희는 즐길 수 없지만.”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모습을 보니, 다음 미션에서 이놈을 어떻게 골려줄까 고민이 들었다. 나는 치우를 향해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남은 성운의 이름은? 그래도 이인자인데, 이 정도는 알아야 대책을 세우지. 안 그래?”

“으음, 그렇군. 남은 곳은 크게 여덟 곳. <안락국>, <타카마가하라>, <대륙>, <수메르>, <올림포스>, <아스가르드>, <마비노기온>, <왕가>다.”

거참, 친절한 보스구만.

궁금한 것들을 자연스럽게 모두 들은 나는 환한 미소와 함께 치우를 향해 말했다.

“그렇다면, 보스 당신은 지금 <대륙>의 눈을 피해서 이곳에 나타난 것이겠네?”

“그렇다. 시간이 없어 빨리 해결하려던 차에, 네놈이 나타난 것이지.”

“아하.”

나는 조금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빙의체쯤이야, 이전보다 훨씬 강해진 나에겐 간단한 일이었지만 쓸데없는 전투는 피하는 것이 당연하였다.

“그렇다면, 내가 이인자. 이들은 당신의 군대라는 말이지?”

“여러 번 대답하게 하지 말아라!”

“오케이. 알겠는데, 잘 생각해봐. 지금 전투를 벌여 이들의 수가 줄어들면 당신에게 손해인 것 아니야?”

치우는 아차! 싶은 표정을 짓더니, 나를 지긋이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인자의 생각을 들어보겠다는 듯.

이놈. 확실해. 멍청한 걸 넘어서 그 이상이다.

나는 그런 치우의 반응에 답하고자, 이미 굴려놓은 머리를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했다.

“잘 봐, 나는 이들 모두를 제압하고 수장이 될 강함을 가지고 있어. 알지?”

“음, 안다.”

“그렇다면 우리가 싸우는 건, 병력 낭비고.”

“그렇지.”

“그럼 보스 당신이 여기 있을 필요가 없지. 안 그래?”

“그, 그것도 맞는 말이군.”

“좋아. 그럼 당신은 빙의를 풀고 성운으로 돌아가. 그다음 다음 미션에 진입했을 때. 우리는 당신과 계약하겠어. 당신의 종으로 평생을 함께하는 거지.”

“호오…!!”

계약은 무슨. 이놈 어떻게 성좌가 된 거지…? 싸움밖에 할 줄 모르는 바보인가?

음흉한 속내를 계속해서 뿜어대고 있으면서도 치우는 한 치의 의심도 하지 않는 듯, 나를 향해 말했다.

“좋다. 기간은 얼마나 걸릴 것 같으냐.”

“기간이라고 할 게 있어? 당신이 떠난 후, 한 달 안에 넘어가야지.”

“알겠다. 그럼 그때 보자꾸나. <대륙>의 이인자여.”

“오, 듣기 좋은데? 잘 들어가라고 보스!”

그렇게, 치우는 일말의 망설임 없이 빙의를 풀어냈고.

“어? 이게 무슨….”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등륜을 향해 딱밤을 강하게 날려냈다.

빠악!!!

어이쿠. 이마 터진 거 아니야?

괜한 걱정에도 전쟁의 신을 배후성으로 삼고 있는 자라 그런지, 등륜은 정신을 잃지 않고 버티고 있었다.

이마에 피를 철철 흘려대며.

“자, 정리하자 아이들아.”

성좌의 난입으로 간부진들은 우왕좌왕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 모습에 등륜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기운을 뿜어내려 했지만….

“어? 어어? 왜 힘이…!!”

등륜은 배후성의 그 어떤 기운도 성흔도 사용할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게 이미 치우는 내 말에 속아 넘어갔으니까. 힘을 빌려주지 않을 테지.

나는 상황을 정리하고자, 성좌의 기운에 짓밟힌 모두를 허공에 띄워냈다. 몇십만에 달하는 인원임이 분명했음에도 아직도 성좌 한 명의 기운을 이겨내지는 못했듯, 정신을 잃은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나마 등륜과 간부진 몇십 명만이 버티고 서 있는 수준이었다.

그 순간.

찌이이이이-

무언가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허공에 거대한 포탈이 생겨났다. 임아린이 제때 맞춰 온 것 같았다. 포탈이 생겨난 방향을 바라보자, 불안한 눈빛으로 전장 이곳저곳을 살피는 아이.

그런 임아린을 향해 소리쳤다.

“아린이, 나이스 타이밍.”

“아저씨!!”

“아린아, 나와!”

나는 임아린에게 소리치며 허공에 띄운 인원들을 포탈에 강제로 집어넣으며 말했다.

“갱생의 시간이다, 이놈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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